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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타잔

by 이우기, yiwoogi 2012. 3. 16.

국민학교’ 4~5학년이던 1970년대 중반 우리 동네에는 텔레비전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내 또래 아이들은 주말 외화 타잔에 푹 빠졌다. 개울가에서 미역을 감다가도 누구 하나 시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귀신같이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 주인집 아들의 텃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타잔의 힘과 제인의 매력과 치타의 웃긴 동작에 눈을 떼지 못했다. 타잔 흉내도 곧잘 냈다. 아이들 서넛이 모여도 안을 수 없는 커다란 느티나무 낮은 가지에 새끼줄을 몇 겹 꼬아 만든 줄을 걸치고 단단하게 고정하면, 타잔이 제인을 안고 멋지게 정글 숲을 날아다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훌륭한 넝쿨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타잔 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과 힘에 압도되어 있었다.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큰 악어를 그것도 물속에서 싸워 이기는 장면이나 사자,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를 보면서 내가 마치 타잔이라도 되는 듯 까불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골목의 넘버3’ 쯤은 되던 나는 타잔이라는 한 인물을 닮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나이 서른 즈음에는 윤도현이 부른 타잔이라는 노래를 노래방 애창곡으로 점찍었다.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요즘 나는 타잔이라는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 사나운 호랑이를 물리치고 못된 사냥꾼으로부터 제인을 구해내는 것은 타잔의 힘과 용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하는 울부짖음 소리에 화답하기 위해 불도저보다 강력하게 밀어닥치는 코끼리, 코뿔소 떼의 힘이 없이는 정글의 평화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가 들고 난 뒤 나중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잔 같은 영웅이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나 심지어 자연재해도 어떤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인 또는 지략가가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음으로써 모든 것을 원상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웅 타잔이 위기에 처한 정글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하고 단말마 같은 고함을 지를 때, 코끼리가 되고 코뿔소가 되어 있는 힘껏 달려가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 자신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남일보 201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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