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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오민축제'를 기다리며

by 이우기, yiwoogi 2025. 4. 10.

 

저는 운이 좋습니다. 대아고 근처에 삽니다. 우리 시절 시내버스 35번 종점 자리입니다. 그 시절엔 우시장도 있었지요. 거기에 자리 잡은 작은 맨션에 삽니다. 뒷베란다에서는 나불천 맑은 물을 사시사철 볼 수 있답니다. 앞쪽 창밖으로 보면 모교 건물이 보입니다. 10시까지 불이 켜진 날이 많습니다. 어쩌다가 한 개 층은 불이 꺼져 있습니다. 시험을 봤는지 소풍을 갔는지 모릅니다. 4월 말엔 이충무공 탄신일 기념 행군을 하겠죠.

저는 5시에 퇴근합니다. 집에 차 대어 놓고 숙호산을 올라갑니다. 산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죠. 집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꼭 1시간 걸립니다. 해발 137미터 숙호산은 정겹습니다. 다리도, 허리도 아플 만합니다. 땀도 좀 납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엄살 피울 정도는 절대 아닙니다. 온갖 꽃과 풀과 나무와 새들이 있습니다. 좁다란 도랑도 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모교가 훤히 보입니다. 우리 시절 체육, 교련 시간에 숙호산에 뱀 잡으러 간 친구들 한둘이 아닐 겁니다. 숙호산에서 내려올 때쯤 모교 후배들은 몇 교시 수업을 하고 있을까요. 저녁은 먹었을까요.

집에 차 대어 놓고는 버스 타고 술 마시러 가는 날도 잦습니다. 35번 버스는 350번으로 바뀌었는데, 노선도 조금 늘어나서 이 버스를 타면 진주시내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서 다른 버스로 한 번만 갈아타면 못 갈 곳이 거의 없습니다. 진주는 작은 도시잖아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오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입니다.

이즈음엔 모교 후배들이 수업을 마치고 내려옵니다. 우리 시절엔 교복이 없었으니 모르겠고 명찰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초록색, 자주색, 군청색 이렇게 구분됩니다. 어떤 색이 몇 학년인지는 모르죠. 물어볼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이는데, 그 망설임조차 저에겐 행복이랍니다. 제가 자꾸 그들의 교복과 명찰을 바라보노라면 그들도 저를 의식하는 듯합니다. ‘중늙은이가 웬일?’ 이런 마음이겠죠.

모교를 바라보는 마음은 늘 따듯합니다. 돌이켜 보면 제 인생에서 아주 힘든 시기 가운데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군대 시절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군대 시절을 빼면 고등학교 3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공부를 어중간하게 한 탓입니다. 영어 시간에는 얻어터졌고 수학 시간엔 부끄러웠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견뎠고 위태위태하게 버텼습니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 보니 엉덩이 살이 뭉개진 적도 있습니다. ‘다 포기하고 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고민과 걱정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건, 친구들 덕분입니다. 다 말할 수는 없네요.

1학년 어느 날 3학년 선배 한 명이 저녁식사 시간에 찾아왔더랬습니다.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자기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무슨 대단한 정의감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제 자리에 누가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인지를 저는 그날 하교할 때까지 몰랐던 겁니다. 다음날 3학년 선배가 찾아와 옥상으로 끌고 갔습니다. 많이 맞았습니다. 교무실로 갈까 경찰서로 갈까 고민했는데, 역시 이 고민도 끝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선배는 16회일 테지요. 요즘 저와 가까이 지내는 동문 선배 중 16회가 가장 많고 살가운 것 같네요. 세상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국어는 좀 잘했고 덕분에 대학에도 국어국문학과를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대학 성적표를 떼어 봤는데, 전공과목이 비실비실하고 시들시들했습니다. 4.5 만점에 3.5 정도 했더군요. 어려운 고교 시기를 비교적 잘 견딘 덕분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럴 듯하게 포장하자면, 오민교육, 다도교육, 창렬사 참배 교육, 충무공 탄신일 행군 같은 교육들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 있었던 덕분이라고 말해도 될는지요.

제 아들은 촉석초등, 대아중, 대아고를 나왔습니다. 우리는 대아고 18회이고 아들은 50회쯤 될 것 같네요. 우리 중 부자가 대아고 동문인 경우가 제법 있죠. 운이 좋다고 해야겠지요. 우리 고등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은 우리들의 신붓감이 촉석초등에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진주여고, 삼현여고를 늘 눈여겨보던 우리는 웃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선생님 말씀이 영 틀린 건 아닌 듯합니다. 그런 추억이 하나둘 씩은 있지요.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문회에는 가지 않습니다. 대학교 동문회에는 갑니다. 대학에 근무하다 보니 그렇게 된 듯합니다. 고등학교 동문회에는 열심히 참석하는 편입니다. 그냥 좋아서입니다. 친구 얼굴도 좋고 목소리도 좋습니다. 그들이 하는 농담도 좋고 격정적인 주장도 좋습니다. 야한 농담엔 눈살을 찌푸리긴 하지만 말리지는 못하겠더군요. 그런 날엔 취하기 마련입니다. 아, 저는 2차는 잘 안 갑니다. 좋은 술을 좋은 자리에서 내내 먹으려면 자제하고 절제하는 미덕이 필요한 나이가 됐잖아요.

해마다 이맘때 열리는 오민축제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갑니다. 집이 가까우니 일찍 갑니다. 행사 주관기 후배들이나 총동문회 임원들이 왔다 갔다 하는 8시 30분쯤 올라가 우리 텐트를 지킵니다. 일찌감치 갖다주는 기념품이나 음식이나 기념 책자도 잘 받아둡니다. 준비해 놓은 막걸리나 맥주병 목을 따기도 하지요. 뭐 어때요. 그렇게 시작한 하루는 무척 깁니다. 술은 취하지요, 배는 부르지요, 친구는 자꾸 오지요. 어쩔 줄을 모르겠는 겁니다. 하여 오후 세 시쯤 되면 저는 휘적휘적 걸어서 집으로 갑니다. 뒤에서 누가 부르거나 말거나 그냥 사라집니다. 더 있다가는 꼭 민폐를 끼칠 것 같아서입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정신을 차려 보면 저의 배낭엔 막걸리나 소주나 맥주나 하여튼 술이 두어 병 들어 있고, 기념품도 나란히 들어 있습니다. 술주정뱅이 하나쯤은 일도 아니게 건사할 줄 아는 친구들 덕분이겠지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념품 하나는 낮술에 인사불성이 되어 귀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지청구를 덜 듣게 하는 무기가 되어주기도 한답니다. 그러니 고맙지요. 그러니 운이 참 좋지요.

올해는 어찌 될지 미리 말할 수 없답니다. 마음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행운유수하는 게 술주정뱅이의 행로 아니던가요. 그 앞날 토요일에 한잔하게 될지 아닐지에 따라 다르고요, 요사이 도졌다 가라앉았다 하는 통풍도 변수이겠지요. 혈압 때문에 뒷골이 땡기는 것도 걱정이긴 해요. 지금 제 마음은 올해도 어김없이 9시 이전에 올라가서 우리 18회 텐트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늘 운이 좋고 복이 많았으니 올해도 그러리라 믿는 것이죠, 믿음은 힘이 세다고 하죠. 그렇지만 저에게 무슨 무슨 경기에 참가하라고는 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술과 안주 축내는 것으로 제 몫을 감당할랍니다.

해마다 4월을 기다리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지만, 그건 그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4월을 눈부시게 맞이하고 있잖아요. 연둣빛 느티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뒤집혔다 펴졌다 하는 장면을 한번 봐보세요. 장미는 아직 이르고 진달래는 이미 졌을 4월 20일 우리 모교 운동장엔 어떤 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할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전 궁금합니다. 궁금함도 저에겐 힘입니다.

2025. 4. 10.
오민축제를 열흘 앞두고 이우기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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