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문학 1991.8.(제10호)
주초고사 없는 월요일
"윤희야, 오늘은 학교 가지 마라"
어머니의 느닷없는 말씀에 윤희는 어안이 벙벙하여
밥을 뜨던 숟가락을 든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니를 쳐다봤다.
"아니 왜요. 어제는 일요일인데도 학교 가서 공부하라며 돈까지
주시던 엄마가 더군다나 월요일인데 학교엘 가지 말라니?"
"글쎄. 아무튼 오늘은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결석이 아니니까, 어디
친구들하고 영화나 보고 오려무나."
어머니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얘기했다.
"오늘 시험 있다는
걸 아시면서 주초고사말예요."
윤희는 머리속으로 어머니의 속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으나 알 길이
없었다.
"무슨 날입니까. 친척중에 결혼이라도 하나 보죠?"
"아니다. 내 나중에 자세히 알려줄 테니까 여러
소리 말고 오늘은 집에서 공부하다가 어디 바람이나 쐬고 오렴."
어머니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더 이상 따지지 말라는 듯이 윤희를
은근히 노려봤다. 그러잖아도 요즘 기말고사 직전이라 공부하기가 짜증났던 윤희였으나 결석을 하라는 어머니의
명령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대충 설거지를 끝내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어디 갔다오시겠다며 휑하니 나가시는
게 아닌가. 출장가신 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럴 때 뭐라고 하실까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윤희 엄마, 마침 윤희도 없고 애 아빠도 없고 잘 되었네."
"그러게 내
뭐랬어요? 우리집을 정하자고 했잖아요. 일요일인데도 학교 가란다고 입이 삐죽해진 것을 점심값 하라고 만 원씩이나 줘서 달랬다니깐요. 자, 어서
차 드세요. 식기전에." 윤희 어머니는 커피잔을 권했다. 경숙 어머니, 찬규 어머니, 기영이 어머니가 모여앉았고 커피잔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커피의 뽀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만 가르쳐도 대학에 떨어질까 걱정이 태산 같은데, 글쎄
윤희 담임선생이란 작자가 허구헌날 의식화 교육만 시킨다잖아요."
"찬규는 자기 선생이 시국선언인가 뭔가에도 서명했다며 멋진
선생이라나 참, 기가 차서, 자기도 커서 그런 선생이 되겠다고 했을 땐, 아이구 앞이 캄캄하더라니까요."
찬규 어머니가
오른손을 아래위, 좌우로 흔들며 따발총 쏘듯 한마디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기영이 어머니가 한숨을 푹 쉬더니,
"우리,
우리끼리 이럴 게 아니라 교육청이나 교장 선생한테 항의전화라도 합시다. 이래가지고서 어디 애들 대학에 가겠어요. 설령 가더라도 운동권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잖아요."
"컴퓨터에 자전거까지 사달래더니 이제 그런 것은 필요없고 자기 선생이 권했다면서 이상한 책만 계속
보더라니까요. 이 사실을 아는지 학교장한테 전화를 해야 돼요."
경숙 어머니가 맞장구를 쳤고 찬규 어머니가 무선전화 수화기를
집어든다.
윤희 어머니 경숙 어머니 기영이 어머니는 무슨 하늘 무너질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뭐라고
쫑알대다가 전화가 얼른 끝나기를 기다렸다. 응접실의 상들리에가 아침햇살에 투명한 빛을 발했다. 소파에 깊숙히 몸을 묻고 계속 전화를 해대던 찬규
어머니가 한참이 지난 뒤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뭐라 그래? 일요일인데, 교장 선생이 받았어?"
기영이
어머니가 궁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찬규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글쎄, 지금 학교에선 교장 선생님, 이사장님
그리고 교육장님이 그 문제로 논의를 하고 있는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찬규 어머니가 무슨 음모를 꾸미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돌려 세 여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커다란 귀걸이가 금빛으로 번쩍이며 덜렁덜렁 흔들렸다.
"도움이
필요하다니? 무엇을 어떻게?"
경숙 어머니의 말이다.
"우리가 뭘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어서 얘기해
봐요."
윤희 어머니도 찬규 어머니의 눈을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벽에 걸린 스위스제 벽시계의 딱따구리가 열두 시를
알리는 신호를 냈다.
"그러니까 일단은 내일 월요일 아침에 학생들이 등교를 못하도록 교문을
지키고."
"지키고," 윤희 어머니.
"그담엔 교무실로 쳐들어가서 그 문제의 선생 책상을"
"책상을." 기영이 어머니.
"뒤집을 듯이 설치고 난 뒤에 교장 선생한테도 멱살을 잡고 늘어지라는 거야."
"그래가지고." 다시 경숙 어머니.
"그러면 그 이후는 학교측에서 다 알아서 해결한대요."
대충 설명을 끝낸
찬규 어머니가 숨고르기를 했다.
"그러다가 그 선생들이 고발이라도 하는 날엔 어쩔랴구?"
"그러니까, 그
선생들한테는 약간의 겁만 주란 얘기지. 그러면 교장 선생이 문제의 원인인 그 선생들을 징계할 이유가 마련된단 얘기지."
"그렇구나!"
윤희 어머니가 마침내 손뼉을 치며 환한 웃음을 지었고, 기영이 어머니도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씨익 웃으며 금색으로 반짝이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린다. 경숙 어머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빙빙 돌린다.
그때 인근 중국집 음식 배달원이 대문 밖에서 초인종을 눌렀고, 그녀들은 팔보채 등 여러 가지 중국음식을 돼지
먹이 먹듯 입속으로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찬규한테서 전화가 온 것은 이른 열한 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찬규니?
너도 학교 안갔구나?" 윤희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래 너도 집에 있을 줄 알았어. 여기 지금 학교 앞인데 얼른 뛰어와
어서."
숨 넘어가는 듯한 다급한 찬규의 목소리가 윤의의 가슴을 방망이질 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시험도
안본다던데...... ."
"글쎄, 큰일났어. 얼른 나와 나도 설마했단 말야. 지금 우리 선생님이 우리 엄마하고 너네 엄마한테
멱살을 잡혀서...... ."
"뭐야!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지, 그럼. 다른 애들도 많이 나와
있어."
"그래. 지금 곧 갈게."
윤희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교문에 많은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이
몰려있었다. 기영이도 보였고 그 외에도 남녀 학생들이 수십 명 몰려 있었다.
"윤희
왔구나, 저길 보라구. 지금은 조금 흥분이 가라앉았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꼭 누가 죽을 것 같아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구."
찬규가 윤희에게 다가왔다. 자기도 어머니가 학교 가지 말라고 해서 마침,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서 학교로 달려왔다는 것이다. 기영이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왔던 어머니들이
교문에 버티고 서서 학생들을 들여보내주지 않더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젊은 선생님
몇 분이 나오셔서 무슨 짓이냐구 항의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감정적인 싸움으로 발전되었단
것이었다.
윤희는 거기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김 선생, 당신이 우리 애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몰라서 그러는데, 걔들이 대학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책임질 거예요?"
"윤희 어머니! 제가 언제 학생더러
공부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전 그만한 나이의 청소년이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쳤을 뿐이고, 윤희를 비롯한
나머지 학생들도 오히려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구요."
윤희 어머니와 찬규 어머니, 경숙 어머니 그리고 기영이 어머니는
맨앞에 서서 선생님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해 얼굴이 시뻘개져 있었다. 교문
안쪽에선 교장 선생님과 교감, 그리고 나이드신 선생님들이 팔짱을 낀 채 쳐다보고 있었다. 뒤쪽에선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몇몇 학생들은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응원을 하기도 했다.
기영이가 윤희의 팔을
끌며,
"윤희 너네 어머닌 새마을어머니회 회장이잖아."
"그래, 그게 무슨 관계니?"
"여기 오신 어머니들이 모두 새마을어머니회 회원들이래."
윤희는 얼굴이 파래졌다. 숨이 막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을 차린 윤희는 여기서 어머니를 설득하고 집으로 모셔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평소 선생님이
자기들에게 올바르게 살도록 가르친 것을 문제삼는 부모들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엄마,
이게 뭐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어서 집에 돌아가요. 어서!"
그때까지 자식들이 와있는 것을 모르던
어머니는,
"어! 너 학교 오지 말랬는데 왜 왔어. 엄마는 너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러는 거야."
"엄마,
선생님이 우릴 잡아먹기라도 해요? 보호가 다 뭐예요. 우리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데요."
"그런 소리 마라. 얼른 집에
가지 못해"
그때 찬규와 기영이 등 자기의 어머니가 와있는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분위기가 더욱
어수선해졌다.
순간, 학생들이 어머니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우르르 학교 안으로 밀고 들어가서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빙 둘러섰다.
어머니들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으며 교장 선생 등 지금까지 구경만 하던 늙은 선생님들이 그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학생들 속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합창으로 바뀐 노래는 어느새 울먹이는 소리로
운동장에 울려퍼졌다.
*전교조 관련 이야기입니다. 89년 창립한 전교조는 한동안 탄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도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외치며 참교육 실천을 묵묵히 해왔는데 요즘은 이념적인 부분에서 또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지요. 2006.8.7.
'[작품]콩트, 단편소설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부집 이야기 (0) | 2007.06.26 |
---|---|
한 핵물리학자의 조국애 (0) | 2007.06.26 |
밭은기침 (0) | 2007.06.26 |
[콩트] 푸른기와집.2 (0) | 2006.08.08 |
옛날 썼던 콩트, 단편소설 들을 올립니다 (0) | 2006.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