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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콩트, 단편소설 등

두부집 이야기

by 이우기, yiwoogi 2007. 6. 26.
 

청년문학 1993.12.11(제15호)_이야기 글_두부집 이야기 -이우기


두부집 이야기


  내가 두부집 아들의 죽음을 안 것은 그가 죽은 지 일 주일 가량 지나서였다. 항상 출퇴근 때 한길에 앉아 두부상자에 묻은 두부 찌꺼기를 뜯어내곤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말을 걸어 본 적이 한번도 없고 그렇다고 그가 내게 관심을 가져 줄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설령 죽었다 한들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마주치다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이 정확하게 언제쯤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두부를 사러 갔는데, “이 총각이 맨 날 열두 시 넘어서 컵라면 사들고 가는 총각인갑네?” 하는 그의 어머니의 말을 듣고서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도 내게 말을 걸거나 한 적이 없었기에 그 날의 그런 인사는 이상한 기분이 들기에 충분했다. 골목어귀에 있는 두부집이니 어머니는 자주 만나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어 서로의 집안을 속속들이 알만도 하겠지만 나로서는 그저 두 어른과 젊은 아들이 있는 집 이상으로 그 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지나치다가 그 집 어른을 만나면 틀림없이 인사를 먼저 하긴 했다. 그러나 인사를 한 사람이 머쓱해 질 정도로 인사를 받아주는 법이 없었다. 가금 시장에서 만나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해도 소 닭 쳐다보듯 할 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으니, 인사를 한 나만 미친 놈 취급당하기 딱 좋았다. 그러니 자연히 인사를 하기 싫어지게 되고 덩달아 그 집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밤늦게 컵라면 사들고 가는 것까지 알 정도로 나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음을 알고는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그래, 어머니께 두부집 아줌마가 이러저러한 얘길 하더라고 했더니 그 집 아들이 며칠 전에 죽었다는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었다. 우리 동네에 젊은 사람이 유별나게 잘 죽는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이상의 의미가 담긴 것을 눈치 챈 것은 비단 나의 눈칫밥 경력 때문만은 아니리라.

  사실, 작년 추석에는 바로 옆집 큰아들이 죽었더랬다. 추석에 우연찮게 회사 일직 근무를 서게 되었는데 오후 늦게 근무를 마치고 퇴근할 무렵에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고, 남강 강턱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고, 강을 헤엄쳐서 건널 수 있겠느냔 친구의 호기에 내기를 하게 되고 급기야 강물에 뛰어들었단다. 추석 무렵이면 강물이 제법 차가울 텐데도 한사코 용감히 헤엄쳐 건너보이겠노라는 그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중간쯤이나 갔을까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킨 그는 살려달란 소리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며칠을 두고 옆집에선 곡(哭)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애처로워하고 위로말을 아끼지 않아야 할 이웃들이 오히려 시끄럽다고 짜증낼 정도로 곡은 길게 이어졌다.

  그 전 해에도 갓 장가든 젊은이 하나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그 당시였다.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비틀거리며 집으로 오다가 바로 동네어귀 큰 길에서 택시에 받혀 죽었다. 그 택시는 뺑소니쳤고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고 했다.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는 저간의 사정을 일일이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여튼 동네에 무슨 귀신이 들어서 해코지를 한다고 믿는 눈치들이 팽배해 있었다. 그렇다고 미신 따위는 믿어선 안 된다고 나서서 계몽이라도 펼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두부집 아들의 죽음은 내게 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우선 두부집 아주머니나 아저씨는 아들을 잃었는데도 전혀 슬퍼하지를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표정에 변화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 그랬다. 인사를 해도, 두부를 사러 가도, 반기거나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웃음 따위와는 아예 담을 쌓았다는 표정이다. 되레 네가 뭔데 내게 아는 체를 하느냔 식의 느낌을 주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밖에 없던 아들이 죽었으면 호로자식이라고 욕을 하든지 눈가에 섧게 운 자국이라도 있어야 정상일 텐데, 그런 기미는 전혀 없어 보였다. 아니면 귀찮은 자식 잘 죽었다고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추든지.

  이미 얘기했지만, 그 아들이 죽은 후로 아주머니가 내게 관심을 부쩍 많이 가지게 된 것이 아무래도 께름칙했다. 슈퍼마켓 주인 아주머니야 내가 출근할 땐 ‘이제 가냐’, 퇴근할 때 라면이라도 하나 사러 들어가면 ‘밤에 라면을…’하면서 꼭 눈인사 이외의 인사말을 먼저 건넨다. 그러나 말 그대로 소 닭 쳐다보듯 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것도 악상(惡喪)을 당한 뒤의 사람이 백팔십 도 달라진 표정을 지으니 미안하게도 섬쩍지근한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자식 잡아먹고 이젠 날 잡아먹으려고 …’ 하는 느낌에 오싹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니 당연하게 느껴져야 할 아주머니의 호의가 오히려 못 볼 것을 보았거나 징그러운 벌레가 얼굴에 달라붙는 기분이 들곤 하는 것을 어쩌랴.

  어머니나 형수의 변화도 내겐 심상찮게 보였다. 평소 두부집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던 어머니께서 드디어 입을 여신 것이었다. 형수도 마찬가지다. 동네 아주머니와 얘길 나누다 보면 당연히 두부집 얘기가 나왔음직한데도 전혀 말이 없다가 그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두부집 이야길 끄집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죽은 아들의 나이가 무려 서른다섯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냥 지나치면서 보기엔 많이 잡아야 스물 정도로 보이는 나이가 서른다섯이라니. 그 표정하며 그 어눌한 말투하며 그 옷차림까지 어느 것도 그를 스물 이상으로 보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정상인이 아니고 정신박약아거나 한 것인데 그래도 나이 얘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은 오히려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그 뭔가가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그런 사람, 일테면 어떤 유전학전인 이유나 미신과 관련한 이유로 정상이 아닌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형수는 마치 그게 재미있는 얘깃거리나 되는 듯 틈만 나면 해대기 시작했고 우리 가족들은 또 흥미진진하게 그 이야기를 경청했다. 모르긴 해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너나없이 그때쯤엔 두부집 얘기를 안주로 소주깨나 들이켰을 성 싶었다.

  그렇게 일이 진해되고 보니 내가 이 동네로 이사온 때부터 두해 동안 있었던 그 아들과 나의 상면이 하나씩 하나씩 주마등처럼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나는 심장이 약하지 않지만 어떤 일에 대해 심할 정도로 잘 놀라거나 잘 감동한다. 시골 큰집에 놀러 가 옛 친구들을 만나러 밤에 마실을 다녀야 할 판에도 한사코 밤이라는 이유를 들어 집에 틀어박혀 있길 잘한다. 밤에 다니면 내 발소리에 내가 놀라기 다반사요, 꼭 뒤에 누가 따라오는 것처럼만 느껴져 도저히 밤길을 혼자 다닐 수 없다. 시내로 이사오고 난 뒤엔 좀 나아졌지만 어려 시골에 살 땐 화장실 가기가 그리 무서울 수 없었던 내가 그 두부집 아들을 처음 만난 건 이사온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역시 학교에서 최루탄 냄새를 온 몸에 묻혀서는 막걸리 한 잔까지 잘 걸치고 그 흥을 깨지 못해 흥얼흥얼거리며 동네로 들어서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한 게 누군가가 나를 뒤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를 흥흥대는 소리로 봐서 잘 훈련된 사냥개가 날 따르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난 뒤돌아볼 수가 없었다. 돌아보았다간, 그리고 나를 뒤따른 사람의 얼굴과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엔 기절할 것만 같았다. 사실, 그 때만 해도 학생들의 시위가 끊일 날이 없었고 웬만한 대학생 치고 경찰의 미행이나 불심검문을 한번쯤 안 당해본 사람이 없을 때였다. 스스로야 얼마든지 떳떳하고 가슴 졸일 게 없을 정도로 어벙한 나였지만, 순간적으로 누군가가 나를 뒤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서는 혹시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불온 유인물을 갖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얼마를 그렇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미행을 당했을까. 실제 거리로야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순간의 기분이란. 그런데 그렇게 나를 뒤따르던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두부집 아들이었다. 어디를 갔다가 그 시각에 들어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때 난 그의 표정을 보았는데 가로등에 비친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다. 그것이 그와 나의 첫 대면인 셈인데 그는 그 날도 그랬거니와 그 뒤로도 항상 그 모습이었다. 길을 가다 어떤 사람과 마주쳤는데 그 사람이 날 때려죽일 듯이 험상궂은 표정을 짓는 것보다 차라리 초점 없이 흐리멍덩한 눈에다가 무표정이라면 더 놀라고 무서울 것이다. 그는 항상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그가 우리와 다른, 그러니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지만, 그 첫 만남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그이 부모도 표정 없긴 매 한가지였다.

  그새 난 학교를 졸업하고 어줍잖게 취직을 했는데 밤과 낮을 반은 거꾸로 사는 셈이 되어버렸다. 점심을 먹고 출근해서는 밤 열 시를 전후하여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는 식이었다. 어쩌다 소주라도 한 잔 걸치면 새벽 두세 시는 장난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두부집 아들과 첫 만남의 짜릿한(?) 추억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번은 또, 점심을 먹고 출근하다가 두부집 앞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그는 항상 두부상자를 씻는 일만 했다. 커다란 통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는 두부상자를 거기에 담그고 수세미로 씻는 일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는 것이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려서는 누가 지나가건 말건, 가게에 뭘 사러 오건 말건, 누가 자길 부르건 말건 오로지 제 일에만 열중이었다. 그런데 그날 어찌된 영문인지 그가 그 물통에 빠져서는 허우적대고 있는 게 아닌가. 아저씨 아주머니도 어디 가고 안 계신 듯했다. 웃기기도 하고 안됐기도 했지만 나는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이 그저 멍하니 그가 하는 짓만 바라볼 뿐이었다. 일어서 버리면 허벅지까지 겨우 닿을락말락한 물인데도 굳이 엎드려서는 허우적거릴 이유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몸 전체가 다 물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일부러 물에 들어가 몸을 헹구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를 구해줘야겠다고 판단할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그러나 그의 눈빛은 날 쏘아보며 뭔가를 강렬히 요구하고 있었다. 매정하게도 난 그런 그를 그냥 두고 출근을 재촉했다. 왠지 그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쳤다간 나마저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쉽사리 그 일을 잊어버렸는데, 어쩌다가 그 일이 떠오르면 오싹해하곤 했다. 그때 그 눈빛을 난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난 그와 되도록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저쪽 길로 돌아서 다니는 부지런함을 발휘하기도 했다. 다시 한 번 더 그런 일을 당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미치고 말 것 같았던 것이다. 초점 없는 눈과는 달리 그날의 눈빛은 얼마나 날카로웠던가.

  그때 쯤해서 그 두부집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어머니께 슬슬 이야길 비추어 보았다. 그러나 어디 가서라도 그 집 얘긴 꺼내지 말라는 충고만 귀가 따갑게 하실 뿐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두부집은 우리 동네에 존재하는 낯선 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맘때였으리라. 아저씨는 자전거에 두부상자를 가득 싣고 인근 반찬가게로, 시장으로 두부를 배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들의 일손을 도와 부자(父子)가 나란히 앉아 두부상자를 씻고 있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일부러 아는 체를 않다가 눈길이 딱 마주치면 억지로 웃음을 띠며 밥 먹었냐는 말만 휙 던지고 지나갈 뿐, 그들의 삶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어 보이는 것을 내가 눈치 챈 것도 역시 그때쯤이었다.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게 있다. 어느 날 오후에 두부집 앞에 세워둔 검은색 승용차를 발길로 걷어차고 물을 뿌리고 모래를 집어던지는 행패를 부리는 그를 본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차라리 모골이 송연해지고 말았다. 하기야 정상적인 사람도 자기 가게 앞에다 차를 세워두면 곱지 않은 눈으로 볼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은, 그는 이미 그런 세상의 시비와는 한 발짝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누가 지나가다 자길 걷어차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고는 피식 웃거나 할 일이지 멱살 한 번 잡지 못할 사람으로 난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대꾸도 할 줄 모르는 차에 대고 그토록 분노하고 있는 모습이란 일찍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배달 다녀오던 아저씨가 뜯어 말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차 한 대는 부수어야 성이 풀릴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런 장면을 보게 되면 얼른 자리를 떠야 옳은데 그걸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나는, 아들을 뜯어 말리며 나를 향해 민망한 표정을 짓던 그의 아버지와 눈길이 마주치고서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지 않느냔 눈짓을 보이고 황망히 자리를 떴다. 그러고는 제발 다시는 입장 난처해지는 일이 생기지 말아달라고, 어디에라고 할 것도 없이 빌고 했다.

  그러던 그가 죽었다. 그가 죽자 희한하게도 어머니를 비롯한 입방아꾼들이 그 두부집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과 똑같이 두부를 사러들 간다.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집의 특이한 구석들이 하나씩 알 것도 같았다. 원래 전라남도 어디가 고향인 그들이 이 동네에 정착한 것은 십여 년 전 쯤인데, 이곳으로 이사올 때부터 단 세가족 뿐으로 그들의 친척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처음부터 아들은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었고, 그들 부부도 표정 없는 밀랍인형 같은 차가운 인상이었다고 한다. 두부를 언제부터 팔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되 처음에는 콩나물 장사를 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가 콩나물에 인체에 해로운 첨가물을 넣어 기르다가 적발된 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터지자 어느 결엔가 두부를 팔더란 것이다. 아저씨나 아주머니나 동네 사람과 잘 안 어울리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 아들의 이상한 정신과 무슨 연관이 있는 듯했다는 게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어쩌면 그 집안은 대대로 정신이상자 집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들 부부도 일반 사람과는 다르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동네 사람 어느 누구도 그 정도 이상을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음직한 사실이었다. 한 번은 두부집의 내력에 대해 궁금해 하던 사람이 ‘아주머니, 저 애가 원래부터 저랬습니까’ 했다가 날카롭게 쏘아보는 아주머니의 눈빛을 보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섰다고 했다. 아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알면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죽고 약간씩 달라지기 시작한 동네의 분위기를 느끼며 세월은 흘러갔다.

  얼마 뒤에 두부집은 가게를 내놓았으나 사려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한동안 가게를 사라는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가 도저히 팔리지 않겠다 싶어서인지, 팔기를 단념하고 전업(轉業)을 하였다. 노랗게 각진 두부상자를 수북히 쌓아 놓았던 곳이 말끔히 치워졌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순대․튀김․담배를 파는 가게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순대를 팔게 되자 동네의 한다 하는 건달들은 낮이고 밤이고 그 집 평상에 앉아 소주잔을 돌렸다. 담배심부름 가기가 쉬워진 것도 좋아진 일 중 하나였다. 또 고추니 오징어 계란 튀김을 사먹으려는 동네 꼬마들로 인해 그 가게는 북새통을 이뤘다. 저녁 늦게 들어오다 배가 고파 컵라면을 사 오는 버릇을 순대나 튀김으로 대신하게 된 것은 나도 모르는 새 자연스럽게 이뤄진 변화라면 변화였다. 그리고 부부의 표정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도 그들과의 사이에 쌓아 뒀던 담을 조금씩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듣게 된 이야기지만,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그 집과 서서히 친해지면서 밝혀지게 된 사실인데 하나같이 그 집을 멀리하게 된 이유는 그 집 아들에게 귀신이 씌어 있어 동네 젊은이들이 이리저리 죽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희한하게 두부집이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동네에 이상한 일이 생기더라는 것인데, 어느 해 태풍으로 산 중턱에 있는 집이 무너져 내린 일이라든가 몇 년을 두고 시름시름 앓아오던 아주머니 한 분이 드디어 실성해 집을 나간 사실이며 모두 그 두부집 아들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알려져 어느 누구도 그들과 친분을 틔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두부나 콩나물은 꼭 그 집에서 사먹어 주더란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나도 처음엔 그 집에서 두부를 사 올 땐 꼭 무슨 병균이나 잡귀신 하나가 두부에 붙어 오는 기분이었는데 딴 사람도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그리 먼 데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다 그 집 두부를 팔아주는 것은 동네인심이라고 둘러대기엔 또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아무리 해도 그렇지 그 아들한테 귀신이 씌었다는 근거 없는 헛소문을 퍼뜨린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굳이 까닭을 밝혀보자면 멀리 전라도에서 사고무친인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 그러니 당연히 우리와는 말투가 다르고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말없는 그들의 이상한 눈빛 등이 그들을 그런 지경으로 내몬 이유가 아닐까 하며 막연하게 추측해 보는 것이었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을 무렵의 일이다. 전쟁에 대한 불안으로, 또 전쟁 뒤에 따르게 될 필연적인 불익을 염려하는 위정자들의 교묘한 꾐에 빠져 해마다 연례행사로 하는 대간첩작전이 한창일 때였다. 예비군을 불러 모아 도무지 총알이 나갈 것 같지 않은 총을 안겨주면서 밤을 새워 보초서다가 침투하는 모의간첩을 잡으라는 독수리작전.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늦게 마치고 쓴 소주 한 잔을 기분 좋게 마시고는 갈짓자걸음으로 집으로 오고 있었다. 그런데 두부집, 아니 순대집에서 싸움이 벌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나는 본능적으로 시계를 봤다. 항상 육하원칙에 시달리는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몸에 밴 버릇이었다. 열두 시 사십여 분. 그 시각이면 가게 장사는 끝나고도 남을 시각인데, 근무중인 예비군들이 문을 두드려서는 술을 팔라고 한 것이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난 원래 남의 일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기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먼발치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단인즉 이랬다. 근무 중 배가 고프기도 하고 으슬으슬 추워지기도 한 예비군 셋이서 소주나 한 잔 들이켤 요량으로 가게 문을 두드리자 아저씨가 잠옷 바람으로 나왔고, 나오자마자 대뜸 어깨에 매고 있던 총을 낚아채고는 마치 죽이기라도 할 듯이 휘둘러댄 것이다. 날랜 젊은이였기에 다행이었지 아차 하는 순간에 머리가 깨질 뻔했던 것이다. 그런 봉변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젊은이 셋도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승강이가 벌어졌던 것이다. 아저씨는 힘이 부쳤지만 쉽사리 당하지 않고 젊은이들을 호통 쳤다. “어른한테 총을 겨누다니, 그런 버르장머리를 어서 배워 쳐 먹었냐?”, “이눔들 내 자식 내놔라.” 이것은 내가 들은 말 중 비교적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잠결에 나오다 보니 그들이 자기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주머니가 나와서 말리고 예비군 중대장의 호각소리가 들려오고 주위가 어수선해지자 난 그만 자리를 뜨고 말았다. 다음날 낮 뉴스에서 난 순대집 아저씨가 한 행동이 무슨무슨 법에 저촉되었고, 예비군들도 무슨무슨 법 위반으로 즉심에 회부되었단 짤막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잃고 나니 어른이 실성한 거라고 수군댔고, 며칠 뒤 아저씨가 풀려 나왔어도 누구 하나 위로의 말을 던져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쯤 해선 나도 어땠든지 간에, 그날 밤 아저씨 편을 들어줬어야 옳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죄스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던 터였다.

  그러고 나서도 아주머니는 내게 ‘이 총각 눈매 좀 보소’라거나 ‘참 야무지게 생겼네’라는 말을 곧잘 했다. 칭찬해 주는데 화낼 필요는 없었지만 그건 그리 듣기 좋은 말이 아님은 분명했다. 어쩌다가 담배 심부름을 가면 ‘총각이 담배를 많이 하나 보지’ 라고 하고 순대를 사러 가면 ‘집에 손님이 왔나 보네’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곤 했다. 처음 관심을 보일 때에 비해서는 덜했지만 여전히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또 세월이 얼마간 흘러갔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한가하게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섰다. 순대집을 지나는데 웬 사람이 그리 많이 모여 있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내 기억으로 그렇게 많은 손님은 고사하고 한 사람이라도 손님이 있는 듯한 것은 느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일가붙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듯이, 명절이건 휴가철이건 항상 셋이서만 살고 있던 그 집에 저처럼 많은 손님이, 그것도 한꺼번에 들이닥친 것을 보면 분명 무엇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막연히 아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겠구나 생각하며 지나쳤다. 또 일부러 그 집의 사연에 대해 알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감춰져 있던 사실이 한 가지씩 드러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 집에 손님이 왔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친구와 놀다가 저녁 식사시간이 훨씬 지나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친구와 있을 때는 까마아득히 잊고 있었으나 막상 골목어귀에 다다르자 나의 궁금증은 불같이 타올랐다. 만일 그 손님들이 아직 있다면 순대를 사는 체하면서 그들의 대화 한 도막이라도 엿들을 속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고여덟 명의 손님이 한길에 내놓은 평상에 소주병을 늘어놓고 앉아서는 말쌈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순대를 사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이것들 좀 봐, 인제 제발 그만하고 가라구.”

  순대집 아저씨의 말투는 애원조에 가까웠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하루 종일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대로는 절대로 갈 수 없네. 여기까지 온 이상 자넬 두고 그냥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야.”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말투로 봐선 그냥 친척 같은 손님은 아님이 분명했다. 난 걸음을 더욱 천천히 했다. 그러다가 길 건너에 있는 영화간판 쪽으로 몸을 틀었다. 거기서도 대화의 내용은 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십삼 년을 이러고 살았으면 되지 않았나?”

  목소리가 좀 더 굵은 다른 이의 어루만지는 듯한 말이었다.

  “되긴 뭐가 돼. 딸년은 그렇게 죽이고 병신이 된 아들마저 이리 죽였으면 됐지. 뭐 할 말이 있다고 그 저주받은 델 가긴 가.”

  딸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몸이 부르르 떨려옴을 느꼈다. 이사 오기 전엔 분명히 딸이 있었고 아들도 정상이었으리라.

  “아주머닐 봐서라도 자네가 이러면 안 되네.”

  “여편네 얘긴 왜 꺼내? 다 필요없어. 모두 가라구. 날 좀 그만 괴롭혀!”

  마침 차가 한 대 지나가는 바람에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

  “이봐, 이제 세상도 많이 달라졌잖아.”

  “그래, 많이 달라졌어. 그러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잖아. 차라리 전통 때 결단내지 못했으면 그냥 죽은 좆처럼 가만히 있으라구.”

  나의 의문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난 예서 이제 서서히 정붙이고 살 거네. 아들마저 죽고 나니 동네 사람들 눈치가 전에 없이 좋아졌어. 자식 팔아 인정을 샀다고 날 욕해도 좋아. 이제 새 정부에게 뭘 더 요구하겠나. 다 부질없는 짓이야. 난 배상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제발 날 그냥 놔두게. 미안하지만 난 지난 일은 잊기로 했네. 자네들도 날 잊어주게.”

  난 뒷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은 듯했다. 난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 아저씨의 표정을 보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순대집 이층으로 눈길이 갔다. 그런데 이층 옥상에선 아주머니가 팔짱을 낀 채 물끄러미 날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가로등 불빛에 너무나도 선명한 그 모습에 이끌려 난 고개를 떨굴 생각을 못했다. 난 내 손에 라면이 쥐어 있지 않음을 의식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빚을 갚는 것으로 착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