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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콩트, 단편소설 등

한 핵물리학자의 조국애

by 이우기, yiwoogi 2007. 6. 26.
청년문학 1993.12.11(제15호)_서평_한 핵물리학자의 조국애 -이우기

한 핵물리학자의 조국애

핵은 인류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악령의 손짓이다. 핵은 인종과 민족을 가리지 않으며 국가나 이데올로기도 구분하지 않는다. 핵은, 그것을 가진 국가가 가지지 않은 국가를 단숨에 노예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수단이다.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약소국이라 할지라도 핵을 보유하면 강대국의 핵 위협을 차단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은 확실히 뜨거운 감자다. 북한 영변에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미국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여지없이 드러내었고 남한 정부도 미국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흐늘거리고 있다. 그런 조짐은 이미 여러 번 확인되었다. 영변에 건설되고 있다는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주장은 실제로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성실히 대변하고 있다. UN(국제연합)도 예외는 아니어서 말로는 세계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미국의 꼭두각시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요구는 간단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핵을 가지면 안 되고 다만 미국만이 핵을 보유하여 세계평화를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미국이 말하는 세계평화란 세계의 경제.군사.정치질서를 미국이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억지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반대하는 그 어느 국가도, 지도자도 무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은 이미 여러 번 확인하였다. 리비아의 카다피나 이라크의 후세인은 미국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극을 치러야 했다. 걸프전 이후 미국이 전쟁대상국으로 북한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는 이 사실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북한은 핵을 무기로 미국과 협상을 유도하고 있는 듯하다. 핵은 누구나 보유하기만 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유효한 무기다. 클린턴 행정부는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것을 아는 듯 하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군사행동을 끈질기게 시사하면서도 망설이고 있다. 북한은 그런 점에서 정치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핵을 개발할 명분도 능력도 없다면서 사찰을 거부하는 세련된 국제정치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김진명씨가 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해냄,1993)는 핵의 논리를 비교적 쉽고 간단하면서도 섬뜩하게 보여주고 있다. 독재자 박정희는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불러들여 핵을 개발하려 한다. 박정희가 자주국방을 소리 높여 주창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박정희의 독재를 죽기보다 싫어한 이휘소 박사도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 하나만으로 박정희의 청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휘소 박사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불과 몇 개월 뒤에 박정희도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죽는다.
이영후 박사(소설 속의 이휘소 박사)의 죽음을 끈질기게 캐는 <반도일보>의 사건기자 권순범에 의해 무서운 국제적 음모가 실체를 드러낸다.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던 이 박사가 CIA의 추적을 따돌리고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의 행방을 쫓는 미 정보부의 눈길은 날카롭게 번득인다. 그러다가 미국의 사주를 받은 몇몇 반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이 박사는 죽음을 당한다. 핵개발이 거의 완료단계에 이르렀으나 뒤이은 박정희의 죽음으로 그 간의 연구성과는 사라지고 만다. 미국은 개발완료한 플루토늄을 찾기 위해 눈에 핏대를 세운다.
이 박사와 박정희의 뜻을 이어받아 만든 권 기자의 시나리오는 비록 가상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은 사뭇 날카로울 뿐더러 의미심장하다. 규모가 비교적 크고 억지로 보이기도 하지만, 권 기자의 결론은 이렇다. 1999년 일본은 막대한 이윤이 걸린 경제적 이유로 남한을 침공한다. 러시아 개발과 관련한 이권을 남한으로부터 빼앗기 위해 독도를 침공한 일본은 울산과 포항의 산업시설을 차례로 파괴한다. 남한정부의 대책은 미국에 호소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미 일본과 한 통속이다. 불안에 떨고 있는 남한 국민들은 우리 나라에도 핵이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 핵이 바로 박정희와 이 박사가 이루다 만 연구성과를 남한과 북한이 합작으로 개발해 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하다. 미국과 일본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철저하게 비밀리에 일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도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일본열도를 향해 날아가는 핵탄두를 보고서야 일본은 아연해지고 만다. 박정희가 조국의 미래를 예견하여 핵을 개발했다는 것이 권 기자의 논리고, 그것은 충분히 정당성을 갖는다.
이휘소 박사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최근 여러 월간지를 통해 공동 관심사가 되었다. 의문을 풀고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기자(소설에서 처럼)나 역사가 혹은 경찰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의문을 환기시키고 밝혀진 만큼의 진실에다가 살을 붙여 문학적 진실을 만들어가는 것은 작가의 몫이며, 그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 또한 작가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할 수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적어도 이러한 측면에서는 썩 훌륭한 작품이다.

핵은 누가 뭐래도 인류의 적이다. 핵은 모든 인류를 단숨에 없애 버릴 수 있다. 그래서 핵은 평화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전인류의 공통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자기의 핵을 포기할 의사도, 딴 나라의 핵개발을 용인할 의사도 없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핵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 주고, 민족애.조국애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그러나 민족생존에 불을 밝히는 것도 역시 핵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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