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난해 5월 말 칠순잔치를 했다. 올해 연세 몇 살이라고 하지 않고 지난해 칠순잔치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아버지는 1936년에 태어나셔서 힘든 인생을 살고 계신다. 어릴 때는 어려운 시절이라서 힘들었고 장성하여서는 고된 농삿일로 허리가 휘어지셨다. 아들들 모두 결혼을 하고나서는 땀흘리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편하고 좋은 여생이라고 말하기 뭣하다.
아버지는 진주노인대학에 내리 4년을 다니셨다. 일반 대학교 4년 과정을 마치는 것과 맞먹는 긴 세월을 아버지는 노인대학을 다녔다. 거기서 아버지는 많은 것을 배우셨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이를 테면 최신 유행가에서부터 며느리에게 밉보이지 않는 방법 같은 것도 배우신 것이다. 말하자면 최신식 노인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100명이 훨씬 넘는 반의 총무까지 '역임'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정말 고맙고 존경스럽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비디오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 집에는 그 흔한 비디오가 없다. 있다 한들 무슨 영화를 빌려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40여년 전 결혼한 사람이 자신의 결혼 비디오가 있을 리도 없기 때문에 비디오가 아예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들들 넷 모두 집집마다 컴퓨터와 비디오가 있지만...
아버지는 지난해 5월 말 가족 친지 친구분들을 모셔놓고 칠순잔치를 한 뒤, 아들과 며느리에게 매우 고마워했다. 나는 비디오 기사를 불러 비디오 촬영도 하고, 내가 직접 사진도 찍었다가 사진은 하나의 앨범에 모두 담아 갖다 드렸다. 아버지는 감격해 하셨다. "보잘 것 없는 나를 이렇게까지 대우를 해주니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감사한다"는 게 아버지가 직접 쓰신 감사의 편지 요지였다.
그 앨범은 자랑거리였나 보다. 가끔 혼자 꺼내 펴 보는 것은 물론이고 이웃집 손님이 찾아오면 보여주곤 하셨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온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덩실덩실 춤추며 노래부르는 모습의 정지된 그림을 보면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셨을 것이다. 아니면 그날의 추억을 넘어 더 아득한 옛날로 돌아가곤 하셨을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젊었을 적 고생을 많이 하시는 바람에 약을 달고 계신다. 심장도 좋지 않고 장도 좋지 않고 심지어 몇 해 전에는 비염 수술도 하셨다. 3년 전엔가,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대학병원을 간 적이 있다. 위가 이상하여 동네 의원에 갔더니 혹시 모르니 조직검사를 해보란 것이었다. 가족들은 긴장하였다. 혹시 암이면 어떡하나 하는 표정들이 모두의 얼굴에 역력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나는 당시 기자여서 대학병원을 자주 들락거리기도 했을 뿐더러 낮 시간에 시간을 내기가 괜찮아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위의 조직을 떼어내기 위해 잠시 마취를 했다. 깨어난 아버지는 울었는가 보다. 아버지도 모른 척했고 나도 모른 척했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위는 조금 심한 정도의 궤양이었고 약을 계속 먹으면서 더 악화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세월을 위태롭게 건너 지난해에 칠순잔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주 그러니까 3월 19일 본가에 가니 비디오 플레이어가 하나 텔레비전 위에 놓여 있었다. 의아해 물어보니 뒷집 영감(아버지보다 한두 살 위인)이 버리려는 것을 얻어왔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 전자제품 수리점에 몇 번이나 가서 묻곤 했다고 한다. 그게 1주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며칠만 기다리면 아들들이 몰려와 서로 가르쳐 주고 그럴 텐데, 뭐가 볼 게 있다고 서둘러 비디오를 설치하고 리모컨 사용법을 배우고 했을까.
아버지는 장롱에서 자랑스럽게 비디오 테이프를 꺼냈다. 그것은 지난해 5월 벌어졌던 아버지 칠순잔치 날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담겨 있는 비디오 테이프였다. 나는 속으로 "아-"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날 찍은 사진은 내가 직접 인화하여 앨범에 담아 드렸지만 비디오 테이프는 예사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시디로 구워 컴퓨터로도 보고 비디오 테이프로도 두어 번씩 그날의 장면을 봤지만 아버지는 여태 그것을 못 보고 계셨던 것이다. 큰형 집에 자주 들르시니 한번쯤은 '시청'을 하지 않았겠나 하는 게 나의 짧은 세건머리(?)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며칠 새 칠순잔치 비디오를 몇 번이나 돌려 본 것 같았다. 그걸 보면서 "꿈만 같은데 벌써 1년이라니..." "너거가 저렇게 나를 우대해주고 챙겨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다. 저렇게 좋아라할 줄 알았더라면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서라도 다시 보여드려야 했고, 그날 잔치를 마치고 남는 돈으로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드려서 칠순 비디오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비디오를 빌려다 보여드려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실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신다면 우리는 보여드리고픈 비디오가 있다. 나는 먼저 "아들 넷의 결혼 비디오부터 매주 하나씩 보면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래, 그땐 내가 얼마나 젊었던지 한번 보자"고 하셨다. 지나간 세월, 지나간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비디오를 아들들만 갖고 있을 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도 함께 보면서 웃고 즐거워할 수 있는데 여태 그것을 몰랐다니... 아버지의 비디오는 이웃집 어른이 버리려던 것이어서 언제까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디오 고장 나기 전에 얼른 우리 결혼식 비디오부터 보여드려야겠다. 98년 여름의 아버지 어머니 모습은 어떠했었던지 모두 함께 모여 보고 싶어진다.
/200603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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