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우리 동네 목욕탕에 대해

by 이우기, yiwoogi 2006. 3. 20.

목욕탕 이름을 말할 수는 없겠다. 좋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동네 목욕탕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게 아기자기하고 살가운 이야기, 이웃집 아저씨의 재밌는 객담이나 누구집 아이의 버릇없음 따위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이해가 안되는 우리 동네 목욕탕의 경영방식, 그 중에서도 서비스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여기서 뭐라고 궁시렁대도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하도 이해가 안되고 또 간혹 우리 동네 목욕탕 뿐만 아니라 일반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일로 망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평소 느낀 것을 어디엔가 적어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4년 6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으니 아직 2년이 채 안됐다. 여름 석달 간은 거의 목욕탕을 가지 않으니 가을, 겨울, 봄, 또 가을, 겨울 그리고 지금 봄을 맞고 있다. 여섯 계절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동네 목욕탕을 거의 매주 이용했다. 동네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가깝기 때문이다. 가격은 모르겠으나 딴 데보다 비싸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요즘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간다. 아들 녀석도 좀 널널한 곳을 좋아한다. 내가 일부러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목욕을 가는 이유는 우리 동네 목욕탕의 '개념없음'을 더이상 참고 견디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 동네 목욕탕에서 욕조 안의 물을 누군가 함부로 틀었다가는 날벼락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주인인지 그냥 일하는 분인지(나는 그가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많은 분이 불호령을 내린다. 왜 함부로 물을 틀어 낭비하느냐는 것이다. 물 낭비하는 것을 꾸지람하는 데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욕조의 물을 틀어놨다면 이유가 있는지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시커먼 때가 둥둥 떠다니거나, 물이 식어 감기 걸릴까 염려되거나 등등의 이유로 인해 손님이 물을 틀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때를 밀다가 웬 노인네가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업종이든지 손님이 직접 무슨무슨 일을 하면 왜 그러시냐 묻는 게 순서다. 우리 동네 목욕탕은 그런 게 아니다. 무섭다. 나도 아들을 데리고 갔다가 물이 너무 적고 식어 안되겠다 싶어 물을 틀었는데 그 주인 노인이 나타나지 않는지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식이어야 할 목욕탕에 살벌함 가득하다.

 

옷 갈아입는 곳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손님이 많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오후에 목욕탕을 찾으면 하루종일 손님들이 털고간 머리카락이 바닥 이곳저곳에 어지럽게 널려 있어 정말 어디를 디뎌야 할지 민망할 지경이다. 아들 녀석이 그것도 모른 채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옷을 벗고 입고 하는 것을 봤을 땐 기절할 뻔했다. 청소 개념이 없는 것이다. 자기 몸의 청결을 위해 목욕탕을 찾은 손님들이 딴 사람의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둘둘 말려져 있는 먼지들을 밟으며 옷을 벗고 입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젊고 동작이 민첩한 일꾼을 한 명 들이지 않는다면 이 목욕탕의 먼지와 머리카락들은 일년 내내 굴러다닐 것이다.

 

텔레비전이 있었다. 사실 목욕탕에서 텔레비전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옷 벗을 때 잠시, 옷 입을 때 잠시 보는 것 아닌가. 본다기보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듣고 있거나 잠시 고개 돌려 바라보는 정도라고 할까. 그런데 이 집에서는 자기가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볼 것이 아니라면 절대 켜면 안된다. 그 노인네가 언제 달려와서 호통을 치면서 "보지도 않을 텔레비전을 왜 켜느냐"고 야단칠지 모른다. 물론 전기요금을 아끼자는 것은 훌륭한 것. 하지만 옷 벗고 옷 입는 과정에서 눈길 둘 곳이 마땅찮아 모른 척하며 텔레비전이라도 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약간의 전기요금 낭비는 서비스 항목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며칠 전 오랜만에 동네 목욕탕에 갔는데 그 텔레비전마저 없어졌다. 언젠가 고장났다는 말을 하는 것을 얼핏 들었는데... 진짜 고장이 난 것인지, 아니면 고장을 핑계로 아예 없애버린 것인지 알 수 없다. 후자 쪽으로 자꾸 의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다. 며칠 전에 갔을 때 나는 수도꼭지를 세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해서가 아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서이다. 사람이 워낙 많다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일요일 이른 아침에 서넛 있는 손님이 따뜻한 물을 다 소비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면, 손님이 없으니 애써 물을 뎁힐 까닭이 없다는 게, 모르긴 해도 그 목욕탕 주인의 경영방침이었을 것이다. 3월 중순이면 아직은 뜨끈뜨끈한 물이 그리운 시절 아닌가. "내가 왜 이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있나"하는 생각은 잠시 설움으로 바뀌기도 했다. 찬물을 가슴에 확 끼얹는다면 누구든지 조금씩은 서글퍼질 것이다.

 

이렇게 이 목욕탕에는 가까이 있다는 것말고는 칭찬해줄 만한 게 없다. 눈매 무서운 노인네가 친 아버지처럼 사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연중 따끈따끈한 물이 쏟아져나오는 것도 아니고 청소 상태가 깨끗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즘 한다하는 데는 다 있는 텔레비전이 괜찮은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용가리 통뼈처럼 버티나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한겨울에는 목욕탕 안에 있는 환풍기를 틀어주지 않아 그곳으로 달려들어오는 찬바람을 그대로 다 맞아 아들녀석이 기침을 해댄 적도 있고, 옷 입고 벗고 하는 곳에 있는 러닝머신의 발바닥 닿는 부분의 가죽 벨트가 없어 아들녀석이 미끄러질 뻔한 적도 있다. 하여튼 문제투성이다. 그런데 다 고장나 쓰지도 못하는 러닝머신은 왜 갖다놨는지.

 

이 글 읽는 분은 말할 것이다. "니가 안 가면 그만이지 왜 그러냐"고.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많은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서비스정신이 투철한데 일부는 그렇지 못하여 멸망을 스스로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멸망'이라 하니 좀 거창하긴 하다. 요즘은 같은 업종이라도 얼마나 친절한가 얼마나 깨끗한가 하는 것에 따라 손님의 발길이 장사진을 이루기도 하고 며칠 못가 문을 닫기도 하는 세상 아닌가.

 

"우리 동네에는 우리 목욕탕밖에 없으니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마라"는 식의 안하무인 용가리 통뼈식 경영과 서비스정신으로는 안된다는 말을 나는 꼭 하고 싶다. 나는 그 목욕탕 입구에서 돈 받는 할머니나 아주머니께 꼴보기 싫은 노인네의 횡포를 일러바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서너명에서 십여명은 꾸준히 찾는 동네 목욕탕이 가정불화로 문을 닫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에, 나만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나는 우리 동네에 있는 오래된 작은 목욕탕을 보면서 구멍가게든 대형할인점이든, 지방자치단체든 나라경영이든 무엇이든 주인이 주인의식을 갖고 친절하고 정확하게 운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교훈을 얻은 것이 그 목욕탕 덕분이라면 덕분이겠다. 씁쓸하지만...

 

2007032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