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을이의 울음 |
지금은 밤 11시를 넘은 시각이다. 다을이는 지금 제 엄마와 꼭 껴안고 자고 있다. 날씨가 제법 더운데도 말이다.
다을이는 10시30분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했다. 한편으로는 서럽게 울고 한편으로는 두려워 우는 것 같았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방으로 들어갔다.
다을이가 울면서 하는 말에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 환경을 지켜주세요"라는 게 아닌가. 그런데 더 자세히 듣고 보니 "환경오염으로부터 다을이를 지켜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요즘 환경 관련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긴 하지만 이건 의외의 반응 아닌가.
그래서 "걱정마. 엄마 아빠가 있으니 다을이를 지켜줄 거야"라며 안심시키려 했다. 그때 이미 다을이의 얼굴, 이마, 등, 목덜미에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생각보다 심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으면... 다을이는 또 "찢어버리고 싶어요"라면서 흐느꼈다. 무엇을 찢어버리고 싶단 말인가. 겨우 알아보니, 아마 어린이집 코끼리반 벽에 환경관련 사진을 붙여놓은 모양인데 그게 무섭게 보인 모양이다. "꿈에 나타날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해대는 다을이를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그게 뭐라고... 생각해보니(어린이집 벽에 무슨 사진, 그림이 걸려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을이가 무서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일 공해 때문에 병에 걸린 물고기나 동물, 사람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사진이라면 말이다.
"선생님께 전화 빨리 하세요"라는 다을이를 겨우 달래고, 땀을 식혀 잠을 들게 했다. 이러다가 잠 자는 도중에 또 그 꿈 때문에 깨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다을이는 유난히 겁이 많은 것 같다. 귀신, 유령 같은 단어를 잘 쓰지 않으려 하고, 유희왕 카드 중에서 좀 무섭게 생긴 카드는 얼른 나에게 쥐어주며 빨리 찢어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라고 요구한다. 어린이들이 보는 책 중에 간혹 귀신처럼 생긴 그림이 있으면 덮어버리고, 공룡 모형 인형 중에서도 뼈가 앙상한 것(화석)은 아주 무서워한다. 애들은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오늘 저녁 일을 겪고 나니 걱정이 많이 된다.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무서운 병이 생기고 그로 인해 다을이 자신도 흉칙한 모습으로 변할 거라는 상상의 날개를 펴다 보면, 그게 두려워 소름이 끼치게 되고 울음이 터진 것이리라. 그렇다고 그런 환경교육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큰일이다. 내일 이 녀석이 정말 어린이집에 걸려 있는 사진들을 찢어버리지나 않을지...
2006. 6.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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