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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큰들의 <오작교 아리랑> 일본 간다

by 이우기, yiwoogi 2025. 2. 23.

큰들의 <오작교 아리랑> 일본 간다

 

마당극 전문 극단 큰들이 일본으로 공연하러 간다. 7년 만이라고 한다. 큰들 공연 팸플릿을 보면 일본, 독일, 라오스 등 외국에서도 공연했다고 나온다. 나라별 공연이 모두 똑같지는 않은 듯하다. 마당극을 공연하거나 풍물판을 벌이거나 합창을 하거나, 큰들이 가진 다양한 재주를 해외에서 멋지게 선보였을 것이다. 그중 일본 공연은 19년 전 처음 시작되어 이번이 5번째이다. 일본의 음악공동체 로온(勞音)의 초청으로 이뤄지는 올해 공연은 3월 10일부터 23일까지 우베, 히메지, 시소, 도코로자와, 도쿄 등 5개 도시에서 열린다. 도쿄는 일본 수도 아닌가. 공연 내용은 풍물판굿, 국악인 전지원의 민요공연,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등 모두 2시간 정도라고 한다. 어떤 도시에서는 한국사람, 일본사람 100명이 풍물을 친다고 하고 어떤 도시에서는 한국사람, 일본사람이 모여 베토벤 교향곡 ‘합창’을 연주한다고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대단히 뜻깊은 프로젝트이다.

 

큰들이 일본으로 공연하러 간다는 소식을 들은 건 지난해부터였다. 지난해 11월 열린 큰들 창립 40주년 정기공연 130명 풍물놀이 참가자를 모집할 때부터, 참가자 가운데 일부는 올해 진행될 일본 공연에도 함께 갈 수 있다고 했었다. 130명 풍물놀이에 참가한 시민 중 몇 분은 일본까지 가고 싶어 했을 수 있다. 가고 싶어도 사정상 못 가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합창을 하러 가는 분도 지난해 가을부터 꾸준히 연습을 해 왔다고 들었다. 그냥 풍물을 치는 것만 해도 신명나고 유쾌할 텐데, 그것을 일본까지 가서 일본 사람과 손을 맞춘다는 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그냥 합창을 하는 것 자체만 해도 설레고 즐거울 텐데, 그것을 일본까지 가서 일본사람과 화음을 맞춘다는 건 또 얼마나 설레고 즐거울까. 그저 상상해 본다.

 

큰들은 일본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진정성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보통 큰들은 12월 말 한 해 결산 총회를 하고 나면 2개월간 장기 휴가를 간다. 물론 휴가라고 하여 놀고 지내는 건 아닌 줄 안다. 아무튼 큰들 가족들은 귀한 겨울 휴가를 거의 반납하고(2주간 휴가) 일본 공연을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풍물판굿과 마당극은 큰들 가족들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쉽게 해내는 주특기 종목 아닌가. 그런데도 겨울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열심히 연습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이야기는 한국사람이라면 10초만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다. ‘남남북녀’ 한마디만 들어도 이야기의 절반은 알아챈다. 견우 직녀 이야기, 결혼 전에 함 파는 이야기, 댕기풀이 이야기, 버나 돌리기 같은 것도 초등학생 이상만 되면 대번에 알아본다. 우리말만 알아들을 줄 알면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관객은 일본사람이다. 우선 말부터 다르지 않은가. 우리나라 전통 혼례 풍습과 전통 놀이를 쉽게 이해하기도 어렵다. 큰들이 지난해 가을부터, 아니 거의 1년 전부터 이번 일본 공연을 열심히 준비했다는 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그 어려운 걸 큰들은 잘 해낸다.

 

2월 23일 일요일 오후 2시 마당극 마을로 찾아갔다. 일본 공연을 가기 전에 최종 연습을 하는데 와서 한번 보라고 초대해준 것이다. 일본에서 실제 공연하는 것과 똑같은 순서대로, 똑같은 언어로, 똑같은 배우들이 공연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마당극을 이끌어 가는지 몹시 궁금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흔쾌히 가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10여 일간 내 발목에 붙어 있던 통증이 엊그제부터 잦아들지 않았다면 나는 귀한 기회를 아쉽게도 놓쳤을지 모른다. 천만 다행으로 통증이 어느 정도 나아진 듯하여 산청으로 갈 수 있었다. 밀린 일은 토요일 오전, 일요일 오전에 대강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뭔가.

 

일요일 오전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과 씨름을 하면서도 나는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라디오 듣듯 힐끔힐끔 보았다. 오늘 본 작품은 2019년 11월 2일 하동 화개장터에서 공연한 것이다. 163회째 공연이었다. 남돌이 부모와 꽃분이 부모의 연기가 잠시 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씩 웃었다. 조금 있다가 하하 웃었다. 빵 터졌다는 말이 어울릴 웃음이었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구라도 있었더라면 참 실없는 사람이라고 웃었음 직하다. 아무튼 오랜만에 <오작교 아리랑>을 보게 된 설렘을 나는 그렇게 다스리며 시간을 기다렸다.

 

 

바람이 찼다. 입춘 지나고 우수 지나고 다음 주엔 경칩인데, 어쩌자고 날씨는 이토록 겨울을 사랑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산청 마당극 마을에는 겨울바람이 불었다. 차갑고 날카로웠다.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까망극장으로 향했다. 극장 입구에는 ‘2025년 3월 5개 도시 순회공연 한국 시연회’라 적힌 현수막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이게 오늘 행사의 공식 제목이다. ‘한국 시연회’라고 한 것을 보면, 일본에 가서도 ‘일본 시연회’를 한번쯤은 하겠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까망극장은 지난해 7월 개관한 극단 큰들의 전용 공연장이다. 오며가며 오랜만에 만나는 큰들 식구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그들은 늘 그러하지만, 자부심과 행복함이 가득한 미소를 짓는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이도 있다. 맞잡은 손에 전해지는 온기가 참 좋다. 추운 겨울바람을 녹이는 데는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극장 안에는 일본에서 온 16명의 손님과 산청에 사는 일본인 3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큰들은 ‘한국 시연회’에 일본사람을 초청하여, 특히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에 대해 고치고 보완해야 할 점을 듣고자 한 것이었다. 일본사람들은 2월 22일 입국하여 산청군 여러 곳을 둘러보았고 큰들과 친해지기 위한 환영회에 참석하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들은 큰들이라는 단체를 일본 5개 도시의 무대에 올리기 위한 대단한 프로젝트를 주최한 사람들답게 공연 전체를 아주 열심히 보며 중간중간 메모까지 해 가면서 적극적 관심을 보여 주었다. 그들 외에 공연 무대에 오르지 않는 마당극 마을 식구들도 객석에 앉았다.

 

 

본격적인 ‘한국 시연회’가 시작되기 전에 뜻밖의 선물 같은 공연이 열렸다. 2020년 2월 26일 마당극 마을에서 첫 번째로 태어난 이세아 어린이가 아장아장 걸어 나와 발레를 하는 것 아닌가. 가녀린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할 텐데, 세아는 무아지경으로 최선을 다하여 무대를 누볐다. 관객들은 작은 어린이의 열정에 감동한 것인지, 쉴 새 없이 엄마와 눈을 맞추는 세아의 표정이 재미있어서인지 시종 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공연이 끝나자 터져 나온 박수 소리는 우레였다. 앞으로 무궁무진 자신의 꿈과 끼를 펼쳐 나가기를 빌어 주었다.

 

 

풍물판굿은 처음 시작하여 마지막 끝날 때까지 30~4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북, 징, 장구, 꽹과리 등 사물과 대평소가 빚어내는 화음이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들썩들썩했다. 발꿈치를 가볍게 쿵쿵 찧었다. 발목 통증이 가시지 않았더라면 “얼씨구” 하다가 “아야” 할 뻔하지 않았는가. 악사들의 몸은 가벼웠다. 사뿐사뿐 걷는 듯 뛰고 뛰는 듯 달리면서 무대를 넓혔다가 좁혔다가 했다. 일본사람들도 장단에 맞춰 손뼉을 쳤다. 표정을 보니 만족함이 가득 묻어나온다. 이곳이 실제 일본이라고 해도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그들의 얼굴을 펴지게 하며 그들의 입에서 “얼씨구”, “잘한다”라는 감탄사가 나오도록 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쿵다닥 쿵다닥하는 소리에 질서가 잡히고 순서가 정해지고 높낮이가 어울리며 섞임과 분산됨이 조화를 이룰 때 타악기도 리듬악기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왜 음악이 세계 만국 공통어인지도 다시 알게 됐다.

 

 

국악인 전지원이 무대 가운데로 나왔다. 나는 전지원의 판소리와 민요를 들은 적 있다. 극단 큰들 창립 40주년 정기공연 때도 보았다. 이 국악인은 목소리가 참 좋다. 걸걸한 막걸리 같은 목소리를 가진 국악인이 있고 서양악기 바이올린 같은 목소리를 가진 국악인도 있다. 전지원은 비유하자면 불일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외침 같은 목소리를 지녔다. 가장 낮은 음에서 가장 높은 음까지의 높이는 불일폭포쯤 되지 않을까 싶다. 막걸리도 아니고 소주도 아니고 맥주도 아닌 그 어디쯤의 목소리인데, 고음을 낼 때는 듣는 이가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높다. 지리산 높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뱃노래’, ‘배 띄워라’, ‘임진강’, ‘아름다운 나라’ 4곡을 불렀다. 나는 ‘아름다운 나라’가 가장 좋았다. ‘뱃노래’와 ‘배 띄워라’는 이미 한두 번 들은 때문이리라. ‘아름다운 나라’는 가사가 유난히 좋았다. 이렇게 가락과 가사가 잘 어우러진 노래를 일본사람들 앞에서 불러줄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또한 기쁨이고 긍지이다. 젊은 국악인의 공연을 자주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임진강’과 ‘아름다운 나라’는 영상을 담아 왔다.

 

 

드디어 2부 <오작교 아리랑>을 볼 차례다. 나는 <오작교 아리랑>을 1팀이 할지 2팀이 할지 조금 궁금했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1팀은, 내가 처음 마당극을 보러 다니던 2018년 즈음부터 2팀이 <오작교 아리랑>을 도맡아 공연하기 전, 그러니까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하던 틈을 타 큰들이 2팀을 창단하던 2020년 5월까지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하던 팀이다. 그 이후부터는 <오작교 아리랑>은 줄곧 2팀이 공연했다. 1팀의 배우들은 이 마당극의 대사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공연은 1팀이 맡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돌이 부모, 꽃분이, 꽃분이 부모는 2019년 11월 2일 하동 화개장터에서 공연하던 배우들이 출연했다. 그 밖의 배우는 조금씩 역할을 바꾸었다. 오전에 사무실에서 주마간산 격으로라도 <오작교 아리랑>을 한번 본 것이 참 잘한 일처럼 느껴졌다. 

 

 

오늘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은 나에겐 230회째 관람이다. 까망극장에서 처음 <오작교 아리랑>을 본 날이 되었다. 무엇보다 대사의 80% 정도를 일본말로 하는 <오작교 아리랑>을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공연하는 것과 똑같이 하는 것이어서, 그동안 보아온 작품과는 사뭇 달랐다. 특히 견우, 직녀, 오골계, 까마귀, 까치 등을 낯설어하는 일본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그것도 일본말로 설명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나는 다 알아듣지 못해도 미루어 짐작하며 감상했다.

 

 

대사는 우리말로 하다가 일본말로 하는데 통역하듯 끊어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말로 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일본말로 하고 있다. 일본사람 처지에서 보면, 역시 우리말로 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한국말로 하고 있는 것이다. 긴 대사를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일본말로 연기하는가 하면 어떤 대목에서는 일본말로 했으면 좋았을 대사를 우리말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한 것은 1년가량 일본 공연을 준비해온 큰들이, 앞서 네 번의 일본 공연 경험을 되짚어가며 잘 갈무리한 것으로 믿는다. 큰들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산청에 사는 일본사람을 찾아가 대본을 놓고 꼼꼼하게 지도를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빈틈없이 준비하는 큰들인지라 나는 그 모든 것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골계 역을 맡은 홍수완 씨의 노력은 따로 칭찬을 해주고 싶다. 오골계는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전체 극을 이끌어 가는 길잡이 구실을 한다. 그만큼 대사가 많고 연기도 많다. 그런데도 수완 씨는 하늘의 옷에 바늘 자국이 나지 않듯이 연기를 해냈다, 고 나는 본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사람들에게 일본말처럼 들리게 하려면 얼마나 외우고 배우고 익혔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오로지 최선을 다함으로써 스스로 만족하겠다는 ‘큰들다움’을 나는 느꼈다.

 

 

일본에서 하는 공연이다 보니, 대사나 표정에서 종전에 보이지 않는 모습을 더러 볼 수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봄 직한 몸동작과 대사의 말투 같은 게 재미있었다. 일본사람 관객들은 그런 대목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인지, 더 크게 웃고 박수 쳤다. 큰들이 20년 가까이 일본 문화 단체와 관계를 이어오고, 5회에 걸쳐 총 51회 정도의 공연을 일본에서 하게 되는 속내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것을 갖고 가되 서로의 그것이 다르지 않음을 알도록 하는 것, 초대 받은 쪽은 우리지만 마치 주인인 것처럼 진정성을 다하는 것, 말이 문화의 전부일 수도 있지만 문화가 섞이면 말은 그다음일 수도 있다는 것,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서 살아왔지만 우리끼리의 역사와 문화는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런 것을 공연하는 쪽이나 공연 초대한 쪽이나 다 같이 느끼지 않았을까.

 

 

준비한 공연이 끝났다. 평가하고 경청하는 시간이 되었다. 일본사람들은 <오작교 아리랑>을 본 소감을 말했다. 얼마나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관람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극단 큰들은 그들이 지적하는 걸 하나하나 받아 적어 잘 반영하겠다고 답변했다. 일본에서 열리는 공연의 성공을 위해 큰들과 일본 로온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준비하는지 알겠다. 긴 시간 동안 땀 흘리며 노력해 온 만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마당극 마을에서 공연을 떠나는 순간부터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모두 안녕하기를 기원한다. 해마다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서로 여건이 허락한다면 이러한 공연이 대를 이어가기를 또한 기원한다. 큰들을 초대해준 일본 로온에 감사드린다.

 

큰들의 일본 공연 소식은 일본 언론에 이미 보도된 바 있다. 3월 15일(토), 3월 16일(일)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와 시소시에서 공연되는 '한일시민 100명 사물놀이' 공연 소식이 일본 <고베신문>에 보도됐다. 이런 홍보 덕분인지, 히메지시에서 공연하는 2000석 아크리에홀은 1층 1200석을 채우는 게 목표인데 벌써 1100명이 예약했다는 소식이 현해탄을 건너왔다고 한다. 더 큰 성공을 빈다. 

 

2025. 2. 23.(일)

이우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