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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2024 문화가 있는 날-오작교 아리랑(335회)

by 이우기, yiwoogi 2024. 10. 26.

2024 문화가 있는 날

 

‘문화가 있는 날-구석구석 문화 배달’이라는 게 있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쉽게 접하도록 매달 마지막 수요일 또는 그 주중에 문화 환경이 취약한 지역, 아직 문화시설을 갖추지 못한 혁신도시, 그 외 문화지구에서 다양한 문화향유 및 활동의 기회를 지원하는데 이를 ‘문화가 있는 날-구석구석 문화 배달’이라고 한다.

 

"하동에서 만나요~!" 사돈지간이 될 이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서로를 몰라보는 것으로, 하지만 관객들은 다 안다. ㅎㅎㅎ

 

문화공연을 구경하고 싶어도 어디서 하는지 모르거나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라에서 문화 공연단을 보내어 편안하고 즐겁게 공연을 즐기도록 해주는 것이다. 중국요릿집에 짜장면 시키듯이 문화 배달을 주문하면 전국의 수많은 극단이나 문화 공연단이 일정을 조정하여 현장을 찾아간다. 물론 모든 곳으로 무조건 가는 건 아닐 것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이 이 정도에까지 올랐다. 고마운 일 아닌가.

 

2024년 10월 26일 토요일 오후 2시 하동군 악양면 최참판댁에서 열린 <오작교 아리랑> 335회 공연은 이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하나로 마련됐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날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남도, 하동군이 주최하고 지역문화진흥원,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극단 큰들이 주관하여 마련했다. 그런 날인지라 공연장에는 문화가 있는 날 주제곡이 계속 울려 퍼졌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으로 ‘문화가 있는 날-직장 문화 배달’이 온 적 있다. 2018년 11월 말이었다. 극단 큰들이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했는데, 객석을 들었다 놨다 하였더랬다. 아무튼 문화가 있는 날이 어느 회사나 단체로 찾아가면 ‘직장 문화 배달’이 되고, 축제 현장이나 지역으로 찾아가면 ‘구석구석 문화 배달’이 되는 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 좋다.

 

양 집안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꽃분이가 홀연히 나타난다. 꽃분이가 부르는 노래 한 곡으로 분위기가 반전된다. 어떤 노래일까.

 

<오작교 아리랑>이 어떤 마당극인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긴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2015년 처음 공연한 이후 9년 만에 335회를 돌파했다는 사실에도 긴 설명이 필요할 테고, 모든 관객이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하는 작품이라는 점도 제법 긴 설명이 필요할 테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쉽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와 주제라는 점도 설명을 보태야 할 것이다.

 

큰들은 이 작품을 ▲2015년 창작 초연 이후 최단기간 공연 횟수 300회를 달성한 작품 ▲2017년 일본 7개 도시 순회공연(도쿄, 히메지, 고베, 사가 등) ▲2019년 경상남도 우수예술단체 찾아가는 문화활동 선정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역활력 문화공연 사업 선정 ▲2025년 일본 5개 도시 순회공연 확정 등으로 소개한다.

 

"버나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해도 잘만 돌아가네"라는 대사는 이 마당극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큰들은 <오작교 아리랑>의 내용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원수로 지내던 아랫마을 윗마을. 이 두 마을에 상상도 할 수 없는 큰일이 생겼으니…! 아랫마을 총각 남돌이와 윗마을 처녀 꽃분이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설상가상 두 사람은 부모 몰래 혼례를 올리기로 하고…. 두 청춘남녀의 예상치 못한 혼례로 양쪽 집안이 발칵 뒤집어지는데…. 과연 두 사람은 얼어붙은 부모의 마음을 녹이고 무사히 혼례를 치를 수 있을까?”라고 소개한다.

 

이쯤이면 눈치 빠른 사람은, 이 이야기가 우리 겨레의 슬픈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또한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현재까지의 슬픈 역사와 달리 행복한 결말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것이다. 그러면 양가 부모 몰래 혼례를 올리려는 두 남녀는 어떤 작전을 구사할 것인지, 양가 부모는 어떤 계기로 화해하여 두 손을 맞잡을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오작교 아리랑>의 줄거리이고 재미이다. 사건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다.

 

서로 잡아먹을 것 같던 남돌이, 꽃분이 아버지는 서로 마음이 통했다. 센스쟁이, 재치만점의 사돈지간이 될 것 같다.

 

햇살이 무척 따사로운 주말이다. 일주일간의 피로가 쌓였지만 늦지 않게 일어났다. 아침밥 대충 때우고 미적거리다가 11시 30분 길을 나섰다. 햇살은 창 안에서 볼 때보다 더 따사로웠다. 반소매 셔츠에 얇은 점퍼를 걸치고 검은색 안경을 끼고 그렇게 똥폼 잡고 달렸다. 차 안은 더웠다. 창문을 내렸다. 하동은 1시간 거리이다. 중간에 쉬었다 가면 조금 더 걸린다. 자동차 달리는 속도를 60킬로미터로 제한해 놓은 길이 많아서 아무리 용을 써도 시간을 줄이긴 힘들다.

 

하동에 마당극 보러 다닌 게 줄잡아 6년쯤 된다. 한 해에 많으면 열 번, 적으면 너덧 번 갔다. 하동은 특히 가을이 아름답다. 잘 익어가는 대봉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동읍에서 최참판댁까지는 섬진강 덕분이다. 강변과 강언덕 억새들은 마치 나를 오라 손짓하는 것만 같다. 아름드리 벚나무도 한몫한다. 벚나무 단풍은 예전에 비해 별로다. 알록달록 예쁘게 물들던 때도 있었는데 올해는 빛깔도 예쁘지 않을뿐더러 그나마 일찍 져버렸다. 아쉽다.

 

아랫마을 남돌이 부모와 윗마을 꽃분이 부모가 함께 던지는 버나... 갈등이 해소되자 예술이 피어난다.

 

최참판댁 들머리에 ‘솔향’이라는 밥집이 있다. 나는 지난해부터 이 집에서 파는 ‘간장비빔국수’에 반해버렸다. 오동통한 면발에 간장과 참기름과 고춧가루와 김가루와 또 다른 무엇이 적당하게 버무려져 있는데, 그 맛이 정말 황홀하다. 이 집 차림표는, 이전에는 다른 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콩국수, 칼국수, 간장비빔국수 세 가지만 한다. 나는 다른 것을 먹어볼 생각을 아직은 하지 않는다. 하나로도 충분하다. 어쩜 그런 맛을 내는지 궁금하다. 그 옆집 국밥집은 기웃기웃하다가 돼지국밥을 하지 않는 듯하여 들어가 보지 않았다. 소고기국밥도 아주 싫어하진 않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돼지국밥이기 때문이다. 

 

올해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보러 다니면서 찍은 사진 가운데 아주 마음에 든다. 자리를 잘 잡은 덕분이고, 이 장면을 기다려온 덕분이겠다.

 

올해는 날씨와 병해충이 여차저차하여 악양 대봉감 작황이 이러저러하게 되어 해마다 이맘때 열리는 ‘악양 대봉감 축제’를 열지 않는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언론에서는 “하동군이 대표 특산물 축제인 악양 대봉감 축제를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 대봉감 주산지인 하동군 악양 지역은 지난해 탄저병과 냉해 피해가 겹쳐 생산량이 줄었고, 올해는 일소 피해와 낙엽병 등이 발생했다. 하동군은 축제 대신, 수도권에서 대봉감 판촉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 눈에는 정말 대봉감이 많고 크게, 잘 익은 것으로 보였다. 최참판댁 마을을 오르는데 가게마다 대봉감을 내놓고 손님을 유혹했다. 입맛을 다시면서도 그냥 지나갔다. 무엇을 들고 다닐 계제가 아니었다. 마을을 잠시 벗어나자 감나무밭이 보인다. 감나무들은 굵직굵직한 감들을 매단 채 가을 은혜를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 뒤로 악양 들판이 낮잠을 자고, 그 너머로 섬진강이 하품을 했다. 하동을 만나는 기억은 늘 이러하다. 참 좋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힘을 합쳐 커다란 버나를 힘껏 돌린다.

 

공연 시간이 다 되어 간다. 몇 안 되던 객석에는 시간을 맞추어 달려오는 사람과 우연히 지나가다 공연장을 만난 관객이 자리를 채운다. 햇살이 가려진 그늘과 제법 따가운 햇살이 내리 쬐는 마당이 관객을 갈랐다. 대부분 그늘을 찾았다. 큰들에서 종이 모자를 나누어 주었지만,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 관객을 골고루 분포하도록 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나는 처음엔 그늘에 앉았다가 햇살 쪽으로 자리를 옮겨 주었다. 이 마당극 특성상 관객은 오른쪽, 왼쪽 골고루 앉아야만 하는 줄 알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관객 생활’이라고나 할까.

 

예상하지 못한 관객이 등장하는 바람에 작은 혼동이 일어나고, 남돌이 배우와 같이 온 동료 여남은 명이 분위기를 북돋워 주었다. 남돌이는 제 흥이 있고 제 취향이 있어 보였다. 버나 이어달리기를 할 때엔 꽃분이 쪽 관객이 모자랄 뻔했다. 이어달리기는 일대일로 끝났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2승을 하지 않고 번번이 일대일이 되는 것 같다. 거기에 또한 묘미가 있다. 웃고 손뼉 치고 하느라 제법 더웠다. 뛰고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배우들에겐 비할 바 아니지만 고역이었다. 그런 날씨였다. 하지만 많은 관객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만한 재미엔 이 정도의 대가는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는 뜻이겠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객석에서 떠드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떠든다기보다 관객이 자기도 모르게 내지르는 함성이나 동료들에게 속삭이는 소리다. 지난주에는 “햐~! 역시 프로다, 프로.”, “저 할매 진짜 잘하네.”(아마도 꽃분이 어머니를 가리키는 듯), “아, 소설 토지를 각색한 작품이네. 대하 서사시다, 서사시….”라고 말하는 남자가 내 뒤에 있었다. 흘깃 돌아보니 40대 초반의 건장한 사내였다. 내가 살짝 지어 보여 준 미소를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모르겠다. 그는 공연을 5분 정도 남겨 놓고 일어났다. 차를 어디에 대어놨기에 차 빼달라는 전화가 왔던 것일까.

 

오늘은 객석이 비교적 어수선한 편이었다. 맨 앞줄에 앉은 관객이 바뀌었다. 한 가족이 앉아있다가 슬쩍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다른 가족이 달려와 앉았다. 아이 둘은 앞줄에,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분은 뒷줄에 앉았다. 엄마가 속삭였다. “이제 잘 보이제?” 바깥사돈이 마주보고 버나를 던지고 받자 아이들이 뒷줄 엄마를 돌아보며 즐거워한다. 버나 이어달리기에서, 첫 번째 연습경기에서 지자 무척 아쉬워하다가, 본경기에서 이긴 것을 확인하고는 마치 자기 덕분에 경기를 이긴 것인 양 좋아한다. 표정이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여 그 여자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고생한 배우들과 사진 한 장 찍는다. 뒤에서 보면 앞줄에 앉은 남자배우들 등이 땀으로 흥건하다. 고맙고 애잔하고, 아무튼 그렇다.

 

느닷없이 새장가를 가게 된 남돌의 진짜 부인도 웃긴다.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라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남편이 댕기풀이를 당하고, 몽둥이로 발바닥을 얻어맞고, 꽃분이와 춤을 추는데도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지 영상을 찍는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다. 단체복을 입은 여남은 명의 동료들도 뭐라고 한마디씩 하는데 모두 들리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 시간쯤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막걸리 한잔씩 하면서 오늘의 느닷없고 당돌하며 짜릿한 추억을 나누고 있을지 모르겠다.

 

공연을 마치고 ‘2024 문화가 있는 날-구석구석 문화 배달’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극단 큰들에서 제공하는 정보무늬(QR코드)로 들어가니 몇 가지 질문이 나온다. 나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할 말이 있으면 자유롭게 쓰라고 되어 있었는데, 쓰지 못했다. 작은 전화기 안에 적힌 작은 글을 읽어가며 더 작은 네모 칸 안에 글을 적어 넣기 어려웠다. 다음엔 돋보기안경을 갖고 가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글을 써 놓았다.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 덕분에 좋은 공연을 잘 보았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배우들과 사진을 찍었다. 나도 배우들과 사진을 찍었다. 하동 최참판댁에서 열리는 <오작교 아리랑>은 10월 27일(일요일) 오후 2시에 한 번 더 남았다. 27일 공연은 하동 주말 관광지 상설공연의 하나로, 하동에서 열리는 큰들의 올해 마지막 마당극 공연이다. 하지만 나는 이날은 산청으로 갈 예정이다. 산청군 단성면 목면시배유지에서 열리는 ‘제16회 산청목화축제’ 현장에서 마당극 <목화>를 공연하기 때문이다(26일 전북 부안 변산에서 공연하고 돌아온다는데, 무사히 귀가하시기를). 나는 이 공연을 보고 싶다. 따라서 올해 나에게 하동은 10월 26일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다. 찍힌 사진을 보니 참 좋다. 언제나 밝게 웃으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건강한 배우들 속에 담겨 있는, 내 모습도 참 밝아 보인다. 다행이다. 행복 한 장이 포개진다.

 

2024. 10. 26.(토)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