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들 창립 40주년 정기공연 관람 후기
큰들문화예술센터(대표 이규희, 산청군 산청읍 물안실로 478-164, http://onekoreaart.or.kr/, 055-852-6507~8, onekoreaart@hanmail.net)는 1984년 11월 30일 창립했다. 당시 이름은 ‘물놀이패’이다. 마당극 <진양 살풀이>를 창작하여 공연했다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읽어보지 못했다. 1985년 ‘놀이판 큰들’로 이름을 바꾸었고 1997년 ‘큰들문화예술센터’로 다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큰들문화예술센터는 크게 극단 큰들과 사무처로 나뉜다. 극단 큰들에는 작·연출부, 무대미술소품부, 의상제작부 등으로 나뉘고, 사무처는 기획실, 사업부, 관리부, 문화예술교육팀, 후원회원팀, 농사팀으로 나뉜다(큰들 누리집 참조). 이렇게 나뉜다고 하여 각 부서에 여럿이 따로 있는가 하면 그건 그렇지 않은 듯하다. 35명 큰들 가족 한 명 한 명이 여러 부서에 소속되어 많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극단 큰들의 무대미술소품부 또는 의상제작부가 배우이기도 하고, 사무처 직원들도 배우를 맡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복잡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조직을 꾸려나간다. 창원큰들풍물단(16명)과 진주큰들풍물단(14명)도 있다. 직장인들이 큰들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풍물을 배우는 조직이라고 이해한다. 후원회원도 있다. 2400여 명이라고 들었는데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한 해에 100명 정도씩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 게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조직이다. 이런 게 알게 모르게 큰들을 40년 동안 이끌어 온 힘이 아닐까 짐작한다. 40년이다.
큰들문화예술센터의 주특기는 마당극이다. 풍물강습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는 듯한데, 마당극을 가장 잘 한다. 요즘 공연하는 마당극 작품으로는 ‘위대한 스승, 다시 세상을 깨우다’ <남명>, ‘유쾌하고 신명난 전통 연희로 풀어내는 요절복통 혼례 이야기’ <오작교 이리랑>, ‘지리산 산청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귀남, 갑동 두 형제의 효도 이야기’ <효자전>, ‘주인공 정귀래와 인체의 오장이 들려주는 동의보감 삶의 지혜와 철학 이야기’ <찔레꽃>, ‘온 세상을 데운 따뜻한 씨앗 이야기’ <목화>, 임진왜란 전세를 역전시킨 청년장수 이야기가 마당극으로 불활한 <영웅의 부할-정기룡> 등이다. 큰들은 “언제든지 불러만 주세요! 어디든지 달려갑니다!”라고 말한다(공연 안내 책자 참조).
지난해 창립 39주년 정기공연을 산청 큰들마당극마을에서 할 때 “아, 내년은 40주년 정기공연을 하겠구나. 40주년이라면 뭔가 달라도 많이 다르겠지. 코로나19 때문에 몇 해 동안 마당극마을에서 정기공연을 해왔는데 내년에는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하겠지….” 이렇게 생각했다. 그때부터 40주년 정기공연을 기다려 왔다. 정기공연에 올릴 마당극은 어떤 것일까. 한창 인기가 치솟는 <찔레꽃>으로 관객들 눈물을 쏙 빼놓을까, 관객들 반응이 가장 뜨거운 <오작교 아리랑>으로 예술회관 지붕을 날려버릴까, 역사적 인물 이야기로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남명>일까. 이런 걸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다. 130명 풍물놀이는 어떻게 준비하고 무엇을 보여줄까, 초청공연은 어떻게 구성할까도 생각했다.
큰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 정기공연 소식을 꾸준히 알려왔다. 130명 풍물놀이에 참가할 시민을 모집하는 이야기, 그들의 연습장을 찾아다니는 이야기, 130명이 여기저기에서 더운 여름을 더 뜨겁게 보낸 이야기를 궁금증에 목마른 관객에게 들려주었다. 정기공연 포스터가 나왔다. 올해 작품은 <목화>이고, 초청공연은 누가누가 하는지를 알게 됐다. 후원회원과 일반 관객들에게 공연장 입장권(티켓) 판매 소식을 공지했다. 11월이 다가왔다. 130명이 한 자리에 모여 마지막 연습을 하는 소식도 올라오고, 그런 가운데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을 먹으며 잠시 땀을 식히는 이야기도 보았다. 마당극마을에서 농사지은 나락이 추석 즈음 쌀이 되어 후원회원에게 조금씩 배달되고 사람들은 너나없이 큰들 이야기를 하곤 했다. 큰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정성과 후원회원과 관객이 공연을 기다리는 마음이 줄탁동시를 이루는 지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드디어 2024년 11월 23일 큰들 창립 40주년 정기공연을 하는 날이 왔다.
이규희 큰들 대표는 “큰들의 40년은 큰들을 응원해주고 도와준 후원회원님들의 역사입니다. 공연을 보고 울고 웃었던 관객분들의 눈망울입니다. 함께 북 치고 장구 치던 어머님, 아버님들의 신명입니다. 큰들 생각하면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하던 벗님들의 따뜻한 정입니다. 큰들의 여러 순간을 함께 했던 많은 선후배님들의 노력입니다. 그렇게 큰들은 40년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큰들 벗 김명철 경남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은 “큰들이 제가 사는 근처에 있다는 것은 큰 자부심이자 큰 혜택입니다. 큰들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로 간에도 재미나고, 이웃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며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공동체로 자리매김하며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화답했고, 큰들 선배 하계윤(진주오광대 예능보유자)은 “청년 시절 노동운동을 하면서 문화의 대중성을 알게 되었고 큰들과 같이 한 날이, 그리고 바라본 날이 40년이 되었습니다. 많은 문화예술단체가 재정과 배우의 부족으로 해단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번성하는 단체는 큰들이었습니다. 이제 큰들은 월드클래스입니다. 선배로서 큰들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응원했다.
27년차 큰들 후원회원인 유순필 전 경해여고 교사는 “1990년 정월, 시내 대안동에 나갔다가 지신밟기 하는 풍물패를 보고 나도 모르게 흥에 겨워 따라다닌 게 큰들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후 35년 세월을 큰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면서 서로 웃고 울고, 힘든 일들도 있었고 밤새 북 장구 치며 신명나게 놀기도 했던 참 많은 일들이 기억납니다.”라고 추억을 말했고 큰들 일본 벗 시노자카 마사하루(전국 로온 사무국장)은 “큰들 역사 속에는 로온과의 교류가 새겨져 있고 로온의 역사에도 큰들과의 교류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역사를 토대로 더욱 앞으로 나아갑시다.”라며 연대의 정을 나타냈다.(위 내용은 정기공연 안내 책자 인사말, 축사에서 인용함)
햇살이 무척 따사롭던 11월 23일 토요일 오후 2시 30분경 경남문화예술회관으로 갔다. 자동차들은 벌써 주차장을 가득 채웠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삼삼오오 환하게 웃으며 나타나는 관객들을 보면서 비로소 잔치가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큰형과 우리는 표를 받고 3층 공연장 입구 옆에 앉아서 안내 책자를 넘겨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큰들 식구들은 오는 손님에게 인사하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코로나19가 오기 전, 그러니까 2019년에 보던 정기공연 시작 전의 풍경이 재연되었다. 관객 중에는 아는 사람이 제법 많을 것이었으나 나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안내 책자를 읽었다. 설레고 떨리고 긴장되고 초조하고 자랑스럽고 멋지고 훌륭하고 대견하고, 그런 마음이 수없이 교차했다.
“저 나리 덕분에 우리 살았어!”
마당극 <목화>는 2022년 창작한 작품이다. 이번 정기공연이 28번째 공연인 듯하다. 이 가운데 나는 17번 관람했다. 극단 큰들의 모든 마당극 작품은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교훈적이다. 우스워서 한참 웃다가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작품들이다. <목화> 역시 그렇다. ‘온 세상을 데운 따뜻한 씨앗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참 따뜻한 이야기이다.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를 들여와 산청군 단성에서 장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 재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이다. 객관적,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포개고 덧대어 재미있는 마당극 한 편이 탄생했다. 관객이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쉴 새 없이 웃음 폭탄을 날린다. 그렇게 웃다 보면 1시간이 어느새 지나가 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웃고 놀았는데 나중에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고 따뜻해진다. 눈물을 흘렸다는 관객이 아주 많다. 번번이 그렇다.
이 작품에는 문익점 선생님의 애민정신이 잘 녹아 있다.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일정을 마치고 고려로 귀국 중이다. 국경에서는 고려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한겨울이다. 이들은 군인인데도 변변한 옷도 없이 추위에 벌벌 떨고 있다. “하늘은 왜 사람을 만들고선 추위를 만들어서 우리를 이렇게 괴롭게 하나”라고 한탄한다. 홍건적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땐 입에서 침을 뱉어 물리쳤다는 말 같잖은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침을 뱉는 순간 그것이 얼음으로 변하여 적을 공격한다는 것이다(이 대사는 정기공연에서는 없었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추위를 이겨낼 수 없다. 꽁꽁 얼어 동태가 되기 직전에 문익점 선생이 마침 이곳에 당도했다. 문익점 선생은 자신이 입은 옷을 병사들에게 벗어서 입혀 준다. 병사들은 동사 직전에 생명을 구한 것이다. 한 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 나리 덕분에 우리 살았어!”
마당극 <목화>는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의복혁명을 일으킨 덕분에 백성들이 따뜻한 겨울을 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마당극 내용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우리가 자유롭게 마시는 공기처럼 누구든 목화를 키우고, 따뜻한 옷을 입고 사는 그런 세상이오.” 이 말은 목화 생산에 성공한 문익점 선생에게 사업을 제안한 박 행수에게 해주는 말이다. 이 말은 ‘문익점 선생의 입장에서 본’ 이 마당극의 주제이다. 가난하든 부자이든 계급이 높든 낮든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물과 공기를 마시듯이, 백성 누구나 마음대로 목화를 재배하여 옷감을 만들고 그것으로 옷을 짓고 이불을 지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하자는 정신이야말로 ‘문익점 정신’의 뼈대이다.
그런 반면 당시 ‘고려 백성의 입장에서 말하는’ 이 마당극의 주제어는 바로 “저 나리 덕분에 우리 살았어!”라고 본다. 얼마나 많은 백성과 병사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갔는지 모르는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백성과 병사가 문익점 선생 덕분에 추위를 이겨내고 그들의 삶을 더 길게 행복하게 이어갔는지 모르는 세상으로 바뀌어 간 것이다. 그러니 문익점 선생이 돌아가시자 조정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에 문익점 사당과 비석을 세워 주었고, 백성들은 제 조상도 아닌데 너도나도 앞다퉈 제사를 지내어 주지 않았겠는가. 문익점 선생의 애민정신과 그 실천의 위대함 앞에 고개 숙인다. “저 문익점 선생님 덕분에 우리 겨레의 삶의 질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문익점과 정천익의 입장을 넘어 고려시대, 조선시대 백성의 입장에서 이 마당극을 본다면 정말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일이고 목숨이 아깝지 않도록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이번 정기공연에서 마련한 초청공연은 ‘국악놀이단 진주’, ‘소리꾼 전지원’, ‘사물놀이 이서’이다. 큰들이 산청에 둥지를 틀고 전국으로 다니면서 마당극을 공연하고, 진주와 창원에서 직장인들 또는 학생들에게 풍물을 가르치고 있을 때 전국 곳곳에서 우리 전통문화를 배우고 익히고 가르치고 이어나가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 가운데 몇 분이 큰들 정기공연 축하를 겸하여 시간을 내어 준 것이다. 저들끼리는 정보를 나누고 정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고, 그리고 긍지와 보람을 서로 나누면서 우정을 쌓아 왔을 것이다.
국악놀이단 진주는 국악의 현대화를 통해서 국내외에서 한국 전통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추구한다. 소리꾼 전지원은 전통 판소리뿐만 아니라 창작 판소리극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젊은 소리꾼이다. <난감하네>와 <배띄워라> 두 곡을 불렀는데 관객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 곡 더’ 불러주지를 못했다. 사물놀이 이서는 ‘넷이서 함께 한다’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는데, 현재를 함께 살아가며 전통 예술을 추구하는 단체로,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김덕수패 사물놀이’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단다.
30분가량 이어진 초청공연을 보면서 관객들은 또 하나의 선물을 받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마당극의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새롭고 신선한 악기와 놀이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았으니 말이다. 한 팀 한 팀 공연이 끝나자마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1400석쯤 되는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이 터져나갈 듯한 굉장한 반응은 쉴 새 없이 터져나왔다.
관객이 받은 선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가객이자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객석에 있다가 무대로 올랐다. 큰들 30주년 때 우정 출연했다가 다시 이날 공연장을 찾았다는데 즉석에서 노래를 해주기로 한 것 같았다. 장사익 선생은 <봄날은 간다>와 <동백 아가씨>를 불렀다. 작은 체구에, 적지 않은 나이에 어쩌면 저런 목소리가 뿜어져 나오는지 그저 신기하고 신기했다. “감동적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다 담기 어려운 그 무엇이 폭발했다. <봄날은 간다>를 시작할 때 맨 처음 나오는 악기의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혀지는 느낌을 받았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 두 곡을 현장에서 직접 듣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노래를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장사익 선생에게 관객들은 손을 내밀었고 그는 가볍고 진하게 손을 잡아주며 환호에 화답했다. 큰들 공연장에 가면 이렇게 뜻하지 않는 큰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또한 큰들의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온 세상에 목화솜이 눈처럼 내리는 날
그리고, 드디어, 130명 풍물놀이가 시작됐다. 막이 올랐다. 심장이 먼저 알고 쿵쾅거린다. 몇 번째나 이 장면을 보는데, 그래서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장면인데도 심장은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려고 한다. 손바닥에는 벌써 불이 붙었다. 어느 해보다 더웠던 지난여름을 누구보다 뜨겁게 보낸 이들 130명이 환한 표정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둥둥 대북이 울렸다. 천지가 개벽하듯,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우듯 둥둥 북이 울렸다. 꽹과리가 낭창낭창 귓속을 뚫는다. 지리산 계곡물 굽이치듯 남산 위 소나무 가지 끝을 세차게 흔들 듯 꽹과리는 날카롭고 경쾌했다. 다시 북이 울렸다. 작은북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든다. 이 땅을 쳐들어온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출정하는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처럼 땅을 울리고 공기를 가르고 구름을 헤집는 듯하다. 힘을 내라, 기운을 차려라, 무찔러라 하면서 뒤에서 충동하는 건 징이다.
싸움터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그곳은 시장 바닥에서 배추 팔고 무를 사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흥겨운 춤판이었다. 아니었다. 그곳은 책 읽는 아이들의 새초롬한 눈빛이 이리저리 춤추는 도서관이었다. 아, 그것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곰베 들고 겨울 논바닥을 두들기는 농부의 노랫가락이었고 그 모습은 낫 들고 벼 이삭을 쓰러뜨리는 농부의 굵은 근육이었다. 왼손에 흙판 들고 오른손에 흙칼 들어 높고 깊고 단단하게 건물 짓던 노동자의 노동요였고 깊은 바다에 그물 던지며 떠오르는 아침해에게 소주잔 건배하던 어부들의 노랫소리였다. 찰나의 여유도 허락 없이 심장을 쥐었다 폈다 하는 130개의 사물들은 우리 눈앞에서 존재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조명도 한몫 단단히 했다.
쿵닥쿵 콩다콩 자그락자그락 쟁쟁쟁쟁 창캉창캉 우르르딱… 우레 소리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톱니 소리 망치 소리 불도저 소리 새벽닭 소리 아이들 소리 어른들 소리 빨래 소리 통곡 소리 웃음 소리 울음 소리 어지럽게 교차한다. 북치는 이의 사연이 쏟아지고 장구 치는 이의 땀방울이 번지고 징 치는 이의 어깨뼈가 불끈거리고 작은북 치는 이의 미소가 맴돈다. 가족 참가자들의 화목한 웃음이 객석으로 흐르고 일본에서 온 분들의 우정이 객석에 깔린다.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우주의 혼돈으로 빠진다. 객석에선 손뼉과 함성이 물결치고 파도친다.
상쇠는 여유를 부린다. 시종 미소를 지으며 악기별로 소개하고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가운데로 와서 지휘자로서 역할을 다한다. 태평소가 울고 건반악기도 운다. 대금이 울자 상모꾼이 나타나 눈길을 끈다. 열두발 상모가 나타난다. 상모를 볼 땐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하고, 소리에 정신을 쏟자 상모꾼이 사라진다. 웅장하고 굉장하다.
봄이다. 연둣빛 봄이 찬란하다. 삼천리 강산이 화려하다. 경호강 진양호 지리산 남강 촉석루 황매산 둔철산이 노랑과 초록과 파랑으로 찬란하다. 멀리 설악산 백두산은 검은빛이다. 가까이 가다가니 역시 연두이고 초록이다. 노랑이고 빨강이고 주황이다. 온 나라에 봄이 왔다. 만물이 쿵닥쿵 자그락자그락 우르르 소리를 내며 피어났다. 자작나무 숲길을 천천히 걷는가 싶었더니 구절초 화창한 동의보감촌 오솔길에 가 있다. 우리 땅 우리 국토 어디엔들 이렇게 반갑고 고맙지 않겠는가.
고들빼기 달래 냉이 캐러 들판으로 달려나가는 아가씨가 노래 부른다. 하늘 나는 종달새가 노래 부른다. 꼴 베는 목동이 여름을 부르고 막걸리 들이켜는 아버지가 가을을 부른다. 눈이 온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온 나라에 눈이 내린다. 얼음이 언다. 추위가 닥쳤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꼼짝달싹 못할 것만 같은 위기가 찾아온다. 눈이 내린다. 눈은 하염없이 수직으로 내리고 사선으로 날리고 서로 섞이어 눈 앞을 가린다. 동토에서 우리는 어찌 살아남을 것인가.
눈은 꽃으로 바뀌었다. 잿빛 세상에 뿌려지는 흰 눈이 어느새 흰 꽃으로 바뀌어 간다. 흰 꽃은 어느새 목화솜으로 바뀌어 간다. 어둠과 추위와 검정 빛깔은 따뜻한 흰색으로 바뀌어 간다. 목화솜은 처음에는 단성에서 피었지만 진주로 하동으로 순천으로 광주로 부산으로 울산으로 대구로 영천으로 강릉으로 원주로 청주로 충주로 서울로, 마침내 백두산까지 하얗게 하얗게 덮어준다. 문익점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온 세상을 데우고 있다. 사물은 아직도 울리고 있다. 북채, 장구채, 징채를 든 오른손들은 아직도 열심히 신명나게 두들기고 있다. 세상에 봄이 왔음을, 세상에 따뜻한 봄이 왔음을 소리로, 가락으로 알리고 있다.
“울리세 울리세 풍물소리 울리세. 하늘도 울리고 땅도 울리세. 어둠은 밝히고 맺힌 것은 풀어내고. 평화로운 우리 세상 신명으로 맞이하세.”라고 외친다.
수채화는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다시 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130명 풍물놀이패는 봄 속에 이미 여름이 있었고 그 여름이 가을을 불렀으며 가을을 노래하는 동안 우리는 겨울을 대비하고 있었음을 일러준다. 15분 동안 우리 눈길을 잡아당기고 우리 정신을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다 하여도 마침내 봄은 오고야 만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신명나고 희망차게 두드리고 또 두들겼다. 목화꽃이 피고 목화솜이 터져 동토를 포근하게 덮어주듯이, 130명 사물놀이 가락은 1400여 관객의 마음을 뜨겁게 안아 주었고 부드럽게 매만져 주었으며 시원하게 풀어 주었다. 긴장이 풀렸다. 끝났다. 백두산까지 갔던, 얼어 죽을 것 같던 정신이 겨우 문화예술회관 객석으로 돌아왔다. 살았다. 온 세상에 목화꽃이 피고 목화솜이 눈처럼 내리는 날, 우리는 행복할 수 있겠다.
전민규 큰들 예술감독은 130명 풍물놀이에 대해 “큰들 정기공연의 꽃이라고들 많이 이야기해 주시는 ‘130명 풍물놀이’는 언제 보아도 감동을 주는 공연입니다. 1998년에 시작하여 26년 동안 진행되고 있는 ‘130명 풍물놀이’는 시민들을 관객으로만 두기보다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워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130명 풍물놀이 참가자들은 오늘 공연에서도 여전히 주인공입니다. 큰 박수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공연 안내 책자에서).
큰들의 전설이 만들어져 가는 이야기
큰들은 내년 3월 일본 5개 도시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공연 내용은 <오작교 아리랑>과 <풍물판굿>이라고 한다. 마당극 대사의 70%는 일본어로 번역하여 공연하는데, 현재 단원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큰들 일본 벗 시노자키 마사하루의 인사말에 따르면, 로온과 큰들은 18년째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로온은 2008년, 2010년, 2013년, 2017년에 큰들 공연을 일본에 초청했다. 그리고 내년 2025년에도 도쿄를 시작으로 5개 도시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3월에 공연할 곳에서는 이미 준비와 홍보를 시작했다.
공연이 끝나자 몇 분께 가볍게 인사하고 예술회관을 벗어났다. 큰형 가족과 넷이서 뒤풀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6시 30분 예약해 놨는데 15분쯤 늦었다. 부리나케 달려갔다. 인사 나눌 분이 아주 많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대패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부었다. 양념돼지갈비를 얹고 차돌된장찌개를 끓였다. 큰형은 2019년 어머니와 어머니 경로당 친구분들을 모시고 갔던 공연을 기억했다. 그때는 어머니도 모시고 갔는데, 그리고 그 전 2018년 6월에는 산청 동의보감촌까지 어머니와 큰형을 모시고 간 적도 있는데, 이제는 모든 게 기억 속의 일이 되어 버렸다. 마당극의 재미와 감동, 초청공연의 빼어남, 꿈 같은 선물 장사익 선생, 130명 풍물놀이까지 몇 번씩 되뇌어 가며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집안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자동차 새로 사는 이야기도 했다.
옆 테이블에 공연을 본 뒤 식사하러 온 분들이 있다. 한 팀은 나와 직장 동료이다. 산청에서 마당극을 본 적 있고 진주큰들놀이터에서 열리는 문화오늘에도 두 번 가본 분들이다. 문화오늘 보다가 정기공연 표를 예약했다고 한다. 정기공연의 흥분과 감동을 이야기한 끝에 12월 20일 열릴 예정인 문화오늘에도 꼭 가자고 약속했다. 이날은 130명 풍물놀이의 상쇠를 맡은 분이 아코디언을 연주해 주면 좋겠다는 데에도 의견이 일치했다. 나에게 부탁을 좀 해보라고 하는데, 나는 큰들이 하는 대로 즐길 뿐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손뼉을 쳤다고 한다. 내년엔 130명에 포함되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분들도 우리 대화에 몇 마디 거든다. 역시 감동에 젖은 눈빛이고 표정이다. 관객들은 공연장으로 모여들 때처럼 흩어져 곳곳에서 밥 먹으며 술 마시며 저마다 이날의 감동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어떤 관객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사진과 함께 길고 짧은 사연들을 행복한 마음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사진은 찍지 말라고 했는데 다들 어떻게 한두 장씩은 용케 찍었겠지. 130명 풍물놀이에 참가한 분들은 또 그들대로 가족과 함께, 지인과 함께 여기저기 모여 준비 과정의 즐거움과 무대위의 떨림과 공연 마친 뒤의 후련함을 나누고 있지 않을까. 큰들은 공연 마치고 뒤풀이까지 알뜰살뜰 잘 즐기고 마을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다음 날인 오늘은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를 누리고 있겠지. 미소 지으며. 내년을 기약하며. 큰들의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져 가고 있다.
이렇게 올해 마당극 관람도 끝났다, 나에겐. 올해 공연이 10번 더 남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다. 마당극 관람 모두 229번을 기록했다. 올해는 36번 관람했다. 그동안 가장 많이 본 작품은 <오작교 아리랑>으로 57번이다. 그다음 <효자전> 45번, <최참판댁 경사 났네> 38번, <남명> 36번, <찔레꽃> 25번, <목화> 17번, <정기룡> 8번, <이상해지구 뜨거워지구> 2번, <역마> 1번이다. 2018년 34번, 2019년 39번, 2020년 32번, 2021년 20번, 2022년 31번, 2023년 37번이다. 2027년쯤 총 300번을 보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2024. 11. 24.
이우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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