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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온 세상을 데운 따뜻한 씨앗’ 마당극 <목화>

by 이우기, yiwoogi 2024. 10. 27.

제16회 목화축제에서 <목화> 처음 공연한 날

 

 

마당극 <목화>는 2022년 12월 16일(금) 오후 2시와 17일(토) 오후 2시 산청 큰들 마당극마을에서 창작 시연회를 한 작품이다. 나는 둘째 날 처음 이 작품을 만났다. 아직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20명만 초청하여 시연회를 열었는데 운 좋게 20명에 들어간 것이다. 그날은 지금 ‘까망극장’이 들어선 빈터 여기저기에 흰 눈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람이 차가웠다. 유난히 따뜻한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던 때이다. ‘세상을 데운 따뜻한 씨앗’이라는 부제와 따뜻한 빛깔의 포스터가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도 기억난다.

 

 

그로부터 거의 2년이 흘렀다. 2024년 10월 27일(일) 낮 12시 40분 산청군 단성면 목화시배유지에서 마당극 <목화> 24번째 공연이 열렸다. 2년에 24번째 공연은 무척 적은 편이다.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등에 견주면 아주 띄엄띄엄 공연하는 것 같다. 그 가운데 나는 2022년 1번, 2023년 6번, 2024년 7번 관람했다. 모두 14번이니 전체 공연의 절반 이상은 본 셈이다. 다음 주, 그러니까 11월 2일(토)과 3일(일)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올해 상설 마당극 마지막 연속 공연이 예정돼 있고,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두 번 모두 보러 갈 것이므로, 올해까지 16번은 보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목화>는 삼우당 문익점 선생님이 원나라에서 목화씨 10개를 가져오고, 문익점의 장인인 정천익이 그중 하나를 싹틔움으로써 고려 백성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선사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초등학생 때 아버지에게서 들었고 학교에서도 배웠다. 붓 뚜껑 속에 목화씨를 숨겨서 몰래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문익점 선생님이 목화를 처음 퍼뜨린 것은 객관적 사실인 듯하다.

 

 

문익점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백성들은 자기 조상이 아닌데도 제사를 모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또한 나라에서는 전국 곳곳에 서원과 기념비를 세웠다. 전남 장흥의 강성서원, 전남 나주의 장연서원, 전북 김제의 저산서원, 전남 담양의 운산서원, 경북 군위의 봉강서원, 경기 여주의 매산서원, 경북 영덕의 충선사, 경북 의성의 목면유전기념비, 면작기념비, 경남 하동의 삼우당 선생 숭모비 등이 그것이다. 목화를 꽃 피워 의복 혁명을 가져다준 문익점 선생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만하다.

 

 

산청군 신안면에는 문익점 선생님을 모신 도천서원과 삼우당 선생 신도비가 있다. 단성면에는 문익점면화시배사적지가 있다. 사적지 경내에는 부민각(富民閣)이 있다. 백성들을 부자로 만들어준 공적을 기린다는 뜻이겠다. 단성면은 이 사적지에서 해마다 ‘목화축제’를 연다. 올해 열여섯 번째라고 한다. 목화가 고려시대에, 그 이후 조선시대에, 그 이후 현대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여 본다면, 목화축제가 이제 열여섯 번째 열린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 목화축제 현장에서 처음으로 마당극 <목화>를 공연했다. 2022년 연말 창작 시연한 작품이니 2022년 열네 번째 목화축제는 그냥 넘어갔고, 2023년 이맘때엔 마당극 <목화>를 초청할 만하였으나 서로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넘어갔다 치고, 202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목화축제 현장에서 마당극 <목화>를 처음 공연하게 되었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얼마나 다행이라고 할까. 그러니 이날 공연을 알게 된 때로부터 나는 또 얼마나 설레었겠는가.

 

 

일요일 새벽밥 먹고 사무실 도착하니 7시도 되지 않았다. 오늘 처리해야 할 보도자료가 무려 8건이다. 휴일인데도 말이다. 무슨 게임에서 적군 물리치듯 하나하나 정리하여 처리하고 모두 모아 전자우편으로 발송하고 나니 10시다. 3시간 전쟁치고는 전적이 좋은 편이다. 물론 그 결과는 월요일, 또는 화요일쯤 알게 된다. 휴일을 반납하고 달려가 처리한 일이 잘못되어 정정 자료를 내는 일도 잦고 좀더 신중하게 처리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방향을 잘못 잡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스스로 정신을 더 바짝 차리지 못했음을 탓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가좌동 들러 떡볶이, 순대, 튀김을 사 들고 집으로 왔다. 간식 먹고 11시 50분쯤 길을 나섰다. 하늘이 우울해 보였다. 마음이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빗방울이 차창에 떨어졌다. 간이 떨어졌다.

 

 

축제하는 곳은 늘 주차하기가 어렵다. 운 좋게 교묘한 장소에 차를 세웠다. 지나가는 차가 조금만 조심하면 아무 일 없을 곳이었다. 사람이 많았다. 단성면민이 다 쏟아져 나왔을까. 나처럼 인근에서 달려온 사람도 많았겠지. 이런 데 나타나서 얼굴을 알려야 할 사람도 바삐 왔다 갔다 하지 않았을까. 긴 줄은 밥을 먹기 위한 줄이었고 짧은 줄은 달고나를 만들기 위한 줄이었다. 큰들 마당극장엔, 아직은 줄이 없었다. 많은 자리 가운데 앉고 싶은 위치를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빗방울이 천막에 떨어진다. 애가 탄다.

 

 

12시 35분쯤 마당극을 알리는 풍물 길놀이를 하고 이윽고 마당극을 시작한다. 천막과 천막을 잇댄 틈으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의자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 앞뒤로 옮겨 비를 피한다. 걱정은 우박처럼 내리고 근심은 경호강처럼 흐른다. 동네 아지매 할매들, 아재 할배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차지하고 앉았다.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 전화하는 소리, 손자 손녀들 챙기는 소리가 왁자하다. 그러다가 마당극을 시작하자 그 소리들은 끓는 양은냄비에 찬물 몇 방울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진다.

 

 

배우들도 하늘을 쳐다보며 제발 비 때문에 공연이 중간에 그치는 일이 없도록 비는 듯했다. 빗속일지라도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면 손뼉과 함성으로 응원해 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비는 오다가 그치다가 다시 많이 오다가 결국 그쳤다. 제법 쏟아질 때는 ‘아, 하늘도 야속하구나’ 싶었는데 서서히 그칠 때엔 ‘우리의 응원 열기에 하늘도 감동한 거야’라고 생각했다. 좋을 대로 생각하고 편한 대로 해석한다. 그래야 재미있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로 상상하고 추측하고 즐기고 놀면 된다. 하늘아, 고맙다.

 

 

맨 앞줄 오른쪽에 앉은 아지매들이 마당극 볼 줄을 안다. 손뼉도 잘 치고 함성도 크다. 동원한 관객 같다. 마당극을 한두 번은 보신 분들 같다. 가을 등산 잠바에 파마머리 아지매들이 나란히 앉아 유난히 즐거워하는 것을, 나는 대각선 뒤편에서 재미있게 본다. 무대 왼쪽 앞에 쪼르르 앉은 아이들도 문익점 선생님에게 빠졌나 보다. 닭이 목화 씨앗 하나를 물고 갔다. 사실 이 장면은 유심히 보고 잘 해석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는데, 아이들도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나 보다. 장인어른이 “씨앗이 어디 갔지? 새가 물고 갔나?”라며 허둥대자 아이들은 “닭! 닭이 물고 갔어요!”라고 외친다. 그보다 앞서 씨앗 다섯 개를 심어놓은 뒤 닭이 등장하자마자 어른들은 말한다. “아이구, 저놈의 달구새끼가 씨를 물고 가면 안 되는데….” 농사를 지어본 분들이다.

 

 

마당극 <목화>는 문익점 선생의 일대기를 모두 들려주지 않는다. 대하소설도 아니고 대하드라마도 아니기 때문이다. 큰들은 몇 가지 중요한 장면을 보여준다.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오는 길에 목화씨 열 개를 갖고 오는 장면, 그 목화씨를 장인 정천익과 함께 심어 싹을 틔우는 장면, 이런 과정을 눈치채고 문익점의 공을 가로채어 장삿속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계략 등이 그것이다. 그 사이에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조차 한겨울에 삼베옷을 입고 추위에 벌벌 떠는 이야기, 그들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주는 문익점 선생의 애민정신, 원나라에서 고급 비단을 들여오는 장사치, 그 장사치에 붙어 온갖 고급품들을 사들이며 향락을 누리는 귀부인들 이야기도 나온다.

 

 

문익점이 마침내 목화 재배에 성공하자 소문을 듣고 나타난 박행수가 함께 사업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며 오로지 백성들이 따뜻하게 옷을 입기만을 바라는 문익점의 단호함도 드러난다. 백성들이 추위로 고통받는 것을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한 문익점. 목화는 신분과 재력의 상징이며 돈벌이와 권력의 수단이기도 했으나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목화를 백성들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박행수 일당이 목화밭과 목화창고에 불을 질러 망연자실 실의에 빠진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 내는 극적인 반전도 준비돼 있다. 장인과 문익점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장면도 그려냈다. 그들이 얼마나 손발이 잘 맞고 뜻이 잘 맞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도 반복적으로 나온다.

 

 

<목화>에서는 큰들의 젊은 배우들 활약이 눈에 띈다. 문익점 역할을 맡은 홍수완 씨, 그의 하인 역할을 하는 조익준 씨가 돋보인다. 주인공이니까. 그리고 박행수의 하인 역을 비롯해 여러 가지 역할을 종횡무진 멋지게 해내는 윤민서 씨의 연기도 눈부시다. 이들은 큰들을 대표하는 젊은이들이다(몇 명 더 있는데, 그들은 다른 작품에서 활약 중이다). 물론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김상문 씨(정천익), 이인근 씨(박행수)를 비롯해 연기 경력이 더 높은 선배 배우들의 연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말이다. 나는 특히 문익점과 동식이가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 함께 춤추는 장면에 마음을 준다. 동식이 탕후루 춤을 추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엠지(MZ)세대와 호흡하려는 큰들의 노력이 그렇게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1시간 마당극이 끝났다. 손뼉 소리가 우렁차다. 휘파람과 함성도 들린다. 물론 나도, 아내도 손에 불이 나도록 쳐댔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연기해 낸 배우들에겐 그 어떤 찬사도 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골장터 같은 공연장인지라 관객들도 들락날락 오락가락한 사람이 제법 많았고 극에 집중하지 않는 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대사 한번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공연을 마친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겐 그 어떤 칭찬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배우와 스태프들은 10월 26일(토) 오후에 전북 부안군 변산에서 <효자전>을 공연하고 늦은 밤 마당극 마을에 도착했다. 트럭에서 <효자전> 소품을 내리고 다시 <목화> 소품을 싣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것 아닌가. 그런데도 그들에게서 피로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 정신, 그 집념, 그 진정성에 박수를 보낸다.

 

목화축제는 해마다 열리겠지. 큰들의 마당극 <목화>를 해마다 이 축제장에서 공연한다면 나는 해마다 이 축제장을 찾을 것이다. 오늘은 공연 끝나고 실내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왔지만, 내년에는 전시장에서 판매하는 옷도 사고, 길 건너편으로 가서 산청한우에 산청맥주도 맛보고 올 것이다. 비록 오늘은 서둘러 길을 나서서 명석 목욕탕과 진양호어탕을 들러 그렇게 귀가하였지만 말이다.

 

 

<목화>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마당극이다. 큰들은 2022년 12월 창작 시연회 당시 이렇게 말했다. “고려시대, 백성들을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구제하겠다던 문익점의 꿈. 그 꿈은 원나라에서 어렵게 목화씨를 구해오게 하고, 공기도 토양도 기후도 다른 고려에서 마침내 목화 싹을 틔우게 하고 고려 전역에 목화를 피우게 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수한 난관과 어려움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집념과 열정이 어디에서 왔을까. 구멍 숭숭 뚫린 삼베옷 입고 겨울이면 굶주림과 함께 추위와도 싸워야 했던 백성들. 그 백성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문익점의 애민정신이 기적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었다.”

 

<목화> 주제곡 가사도 옮겨 놓는다. 2022년 12월 창작 시연회 당시엔 이렇지 않았는데 공연 횟수를 늘려가는 동안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쉽게 바꾸었다. 나는 공연장에서 늘 따라 부른다. 가사가 문학적이고 철학적이어서이다. 무엇이 문학적인가, 무엇이 철학적인가, 그것은 직접 현장에서 공연을 보면 알 수 있다. “피었네 피었네 목화꽃이 피었네. 내 나라 고려땅에 목화꽃이 피었네. 씨앗 하나 열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되어. 온 나라 고려땅에 하얀솜꽃 피었네. 목화꽃이 피었네 하얀솜꽃 피었네.”

 

2024. 10. 27.(일)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