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 아리랑> 하동 공연
하동에서 큰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관람했다. 2024년 5월 12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몇 해째 마당극 공연장을 쫓아다니는 나로서는 2019년 3월 30일 화개장터에서 전무후무하게 <역마>를 본 날에 견줄 만큼 기쁘고 다행스러운 날이다. 마당극을 200회째 관람하고 새롭게 1회를 더한 날이기도 하여, 더욱 뜻깊다 하겠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하동 최참판댁에서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오랫동안 공연해 왔다. 최근에는 <영웅의 부활 정기룡>을 공연했다. 하동지역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과 실제 하동 출신 역사인물을 극화한 두 작품을 번갈아가며 선보여 왔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2010년 9월 25일 처음 공연하여 13년간 200회 이상 열연한 명작이다. 주로 최참판댁에서 공연했고 경남도문예회관이나 남이섬 등지에서 공연했다. <영웅의 부활 정기룡>은 2020년 창작하여 9월부터 최참판댁에서 본격적으로 관객을 만났다. 하동 금남면 어느 바닷가 정기룡 생가 근처에서도 공연한 적 있다. 그런데 올해는 <오작교 아리랑>이다.
첫 공연일인 5월 11일 토요일, 오전 10시께 집을 나섰다. 금요일 날씨알림을 확인했을 때엔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만 비가 온다고 했다. 마당극 공연하는 오후 2-3시를 요리조리 잘 피해주는 하늘이 고마웠다. 10시에 나선 것은 가는 길에 다솔사(多率寺)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다솔사 대웅전인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연등을 달았는데, 부처님 오신 날을 불과 나흘 앞두었는데도 아직 연등을 달지 못한 때문이었다. 다솔사 종무소에서 연등을 신청하고 부처님 오신 날을 기다리는 절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적멸보궁엔 이미 빈 자리가 없어서 ‘응진전’(應眞殿)에 연등을 달게 되어 그 응진전을 잠시 살펴보았다. 아내가 다솔사 갈 때마다 반드시 들러 절하는 절집이다.
나한전이라고도 하는 응진전은 신라 선덕여왕 5년(636)에 자장율사가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숙종 6년(1680)에 다시 세웠다. 그 뒤 낡은 건물을 1930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위키백과에서 인용)
그때, 갑자기 주머니 속 전화기가 진동한다. 문자 메시지가 왔다. 큰들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이다. 제목부터 눈에 들어온다. ‘큰들 5월 11일 하동공연 취소 안내’이다. 이런…. 내용은 ‘오늘(5/11.토) 2시 예정이던 하동 최참판댁-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은 비 예보로 인해 취소하였습니다. 공연 관람 예정하셨던 분들은 차질을 드려 죄송합니다. 야외공연은 늘 이런 난감한 때가 있네요…. ㅠ’라고 썼다. 그러고선 ‘내일(5/12.일) 공연은 정상적으로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공연 보시러 출발 전 한 번 더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공연 때 뵙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아뿔싸. 나무관세음보살.
큰들 페이스북으로 들어가 보았다. 똑같은 내용을 올려놓았다. 몇몇 분이 공연 취소를 아쉬워하는 댓글을 올려놓았다. 나도 내일은 공연을 할 수 있길 빈다는 댓글을 달았다. 하동에서는 공연 자체가 귀한 데다 최참판댁에서 <오작교 아리랑>은 처음으로 볼 기회였는데 아쉬움이 무척 컸다. 어쩔 수 없다. 하늘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야외 공연인지라 불가피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어디에서 달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진주로 돌아왔다. 길 나섰다가 되돌아오는 경우엔 정말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시간도 어중간하다. 다른 가족과, 친구와 일정을 새로 짜기도 애매하다. 그러한 날이었다. 아내와 비빔라면 끓여 점심 때우고선 잤다. 오후 내도록 비는 오지 않았다. 바람은 거셌다. 저녁 9시쯤 빗소리가 들렸다. 밤새 들렸다.
다시 일요일이 되었다. 마음은 설레었다. 베란다 앞쪽 하늘은 쾌청했다. 베란다 뒤쪽은 먹구름이 남아 있다. 밤새 내린 비로 공기는 맑았다. 바람은 잔잔했다. 베란다 앞쪽은 문산, 마산 방향이다. 베란다 뒤쪽은 산청, 하동 방향이다. 대충 짐작해 보니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밤새 비가 다 내린 모양이다. 다행이다. 아내와 목욕부터 다녀왔다. 학교 관련 원고가 걸렸다. 원고를 정리하여 제출하는 일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11시 35분쯤 길을 나섰다.
마당극 한 번 보러 가는 길은 늘 아름답고 유쾌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간혹 뜻하지 않은 복병도 생긴다. 전기차를 몰고 가는데 배터리가 하동 왕복에는 좀 모자랄 듯했다. 하동 최참판댁 대형 버스 주차장 구석에 있는 충전기를 생각하며 일단 달리자 했다. 목욕 후 출출해진 뱃속은, 아이러니하게도 토요일 다솔사에서 되돌아올 때 진양호 댐 밑 길가에서 산 성주 참외로 달랬다. 달았다. 원고를 정리하여 제출하고 점심을 먹고 전기차에게도 밥을 먹여야 했으므로 마음이 급했다. 몇 해 동안 하동 나들이한 기록 가운데 가장 빠르게 달렸다. 하동 최참판댁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기가 여러 대 설치돼 있었다. 지난해에는 하나밖에 없었는데 웬일이랴. 반가웠다. 하지만, 정상 작동하는 한 대엔 다른 전기차가 주차해 있었고 나머지는 고장 아니면 아직 개통 전이었다. 될 대로 되라 하고 국숫집으로 향했다.
아씨국수는 서너 번 간 곳이다. 이 집 국수는 정말 양반집 아씨처럼 다소곳하고 얌전하다. 국물은 깔끔하고 고명은 가지런하다. 양념간장엔 대파를 두어 조각 썰어 넣었는데, 이 양념간장이 신의 한 수이다. 자칫 비릴 수 있는 멸치국물에 단맛과 짭조름한 맛을 더해준다. 끝내준다. 그 아씨국수집 옆 밥상에 노트북을 켜놓고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손님이 꽉 차지 않은 게 다행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참 많다. 이래저래 정리를 마치고 국수를 허겁지겁 들이켰다. 공연장으로 올라가니 1시 35분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선 큰들 단원들과 눈인사, 손인사를 나누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이 평온했다는 듯이.
최참판댁에서 열리는 큰들의 마당극 장소는 안채 마당 아니면 바깥마당이었다. 안채에선 관객들이 비교적 빽빽하게 둘러앉고 선다. 안채 축담이나 마루에 걸터앉는 사람도 많다. 늦게 당도한 관객은 앞에 앉은 관객들 뒤편에 서서 구경한다. 키 큰 사람들은 담벼락 위에 얼굴을 얹어놓고 구경한다. 마당극 내용도 재미있지만 관람하는 관객들의 위치와 자세와 표정도 항상 재미있는 구경거리다. 안채에서는 공연하는 배우도 관객도 쉽게 집중한다. 집 건물로 둘러싸인 하나의 실내 공연장 같다. 위채 지붕 위에는 뭉게구름이 떠가거나 새들이 날아가거나 간혹 패러글라이더가 떠간다. 그런 곳이다.
바깥마당은 넓고 크게 열린 공간이다. 넓은 마당엔 흙먼지가 인다. 공연하는 위치에는 마당에 깔개를 깔지만 그것으로 바람으로 인한 흙먼지를 막을 순 없다. 오른쪽으로는 넓디넓은 무딤이들이 펼쳐지고 그 건너엔 구제봉이 안개 속에 아득하다. 그 오른쪽으로는 섬진강이 뱀처럼 흘러간다. 멋진 풍경이다. 공연에 집중하기 어렵다. 무대 바로 뒤쪽에 선 모과나무의 잎이 나고 지고 열매가 맺히는 장면도 시선을 끈다. 객석 바로 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아름드리 포구나무가 있는데, 간혹 잎이 떨어지기도 하고 간혹 송충이 같은 벌레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객석에 마련된 의자에 관객이 앉고 그 뒤로 관객이 둘러서서 환호를 지르고 손뼉을 쳐대면 집중도가 높아진다.
이번에 열린 공연장은 안채도 아니고 바깥마당도 아니다. 그 중간에 좁다란 마당이 하나 있는데 그곳을 공연장으로 꾸몄다. 행랑 마당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큰들이 마당극 공연 때 갖고 다니는 소품인 병풍 6폭이 꼭 알맞게 들어찬다. 양 옆으로 배우들이 들락날락하기엔 조금 비좁아 보이지만, 잘 적응하면 이만한 공연장도 없을 듯하다. 비가 오면 어쩔 수 없더라도 웬만한 바람에는 공연장이 피해를 보지 않을 것 같다. ‘철옹성’이란 말은 이런 공연장엔 어울리지 않는 군사용어 같지만, 한 편의 마당극을 성공적으로 공연해야 하고 관객의 편의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큰들로서는 군사작전 못지않은 공을 들일 터이므로, 이 공연 장소를 일러 철옹성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관객이 앉을 자리엔 의자 120여 개쯤 놓았다. 가로 세로 줄을 지어 잘 정돈해 놓았다. 혹시나 햇살이 따가우면 관객들 피부 상할까 봐 천막도 쳐 놓았다. 배우들은 햇살을 마주보면서, 배우들은 비도 맞으면서, 배우들은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감내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공연하면서도, 관객들은 항상 편안하고 안전하고 쾌적해야 한다는 게 큰들의 철학이다.
무대 정면 위쪽에는 높이가 무대 병풍 세 배쯤 되어 보이는 나무 두 그루가 섰다. 나무 종류는 모르겠다. 다음에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이 두 그루의 나무 덕분에 무대가 꽉 차 보인다. 마치 오늘의 공연을 위해 오래전 미리 심어놓은 나무 같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10-11월쯤 이 나무에 단풍이 들면, 더욱 멋진 공연장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뭔가 이상하고 새롭고 깔끔하고 신비롭다. 무슨 일인가. 그렇다. 나는 짧은 시간 내에 그 이상하고 새롭고 깔끔하고 신비로운 것을 알아챘다. 바로 마당판에 까는 깔개가 완전히 새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행연습 중인 배우들도 신발을 신지 않았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새 깔개에 발자국을 찍지 않으려는 몸짓 같다. 손으로 만져보니 까끌까끌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이 손가락 끝에 감지된다.
이 깔개 위에서 앞으로 몇 해 동안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얼마나 많이 뛰고 구르고 자빠지고 엎어지고 뒹굴고 주저앉을 것인가, 잠시 생각하자니 괜스레 숙연해지고 엄숙해진다. 큰들 배우들의 깨끗한 놀이터가 참 마음에 든다. 그것만 보아도 공연 한 편을 다 본 듯 행복하다. 전 기획실장이자 현 사업부장님과 잠시 잡담을 나누었다.
객석엔 일찌감치 앞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있다. 중간쯤 자리를 잡은 관객도 있다. 할머니와 손주도 보이고 중년 부부도 보인다. 진주큰들풍물단 가족도 보인다. 우리는 둘째 줄에 앉았다. 맨 앞자리를 고집하던 것은 이제 옛 이야기다. 공연을 시작하려면 20분은 더 남았는데 여기저기서 관객들이 몰려든다. 얼추 짐작하기에, 절반 정도는 공연을 하는 줄 알고 일부러 찾아온 분들이고 절반 정도는 우연히 관광지를 찾았다가 운 좋게 공연을 만난 것 같다. 늘 그 정도로 보인다. 눈대중이고 지레짐작이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오작교 아리랑>은 한마디로 명작 마당극이다. 군말이 필요치 않다. 주제도 분명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이 작품을 수십 번 보아온 바에 따르면, 완전무결한 작품이다. 관객들 반응도 가장 좋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연세 많은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 되어 마당극에 집중하고 참여하고 반응하고 감동한다. 그런 작품이다. <오작교 아리랑>은 오래 전부터 공연하던 큰들의 대표 작품인데,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1년 5월 창단된 극단 2팀이 전담하여 공연하고 있다. 극단 2팀은 막 공연해대는 팀이라고 하여 ‘막공팀’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요즘은 그런 별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완전한 작품이라고 생각해 왔는데도, 큰들은 올해부터는 <오작교 아리랑>에 큰 변화를 주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변화를 꾀하고 그 변화에 대한 반응을 유심히 살펴서는 또 다른 변화를 가한다. 이것이 큰들이다. 오늘 내가 보는 <오작교 아리랑>은 어제 본 그것과 같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애매하고, 내일 보게 될 <오작교 아리랑>은 오늘 본 작품과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 6년에 걸쳐 200번이나 보러 가는 것 아니겠는가.
올해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마당극 전체를 유튜브 ‘채널 오작교’의 콘텐츠로 상정하여 진행한다는 것이다. 젊은 배우 두 명(박정현, 손리현)이 나와서 유튜브 채널 오작교를 진행한다. 요즘은 옥황상제가 하늘나라에 다리를 놓아주는 바람에 까마귀와 까치가 굳이 칠월칠석에 오작교를 이어주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까마귀, 가치가 할 일이 없어진 건 아니다. 견우, 직녀처럼 사랑을 이루고 싶은 남녀의 사연을 신청 받아 까마귀와 까치가 이어주게 하고, 그것을 채널 오작교에서 중계한다는 설정이다. 직접 보면 간단하고 쉬운데 글로써 설명하려니 쉽지 않다.
박정현, 손리현 배우가 채널 오작교를 진행하는데, 제법 웃긴다. 극 초반부터 관객들의 눈길과 신경을 집중시켜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부드럽게 잘 이어나간다. 느닷없이 배꼽을 잡게 만드는가 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엔 채널 오작교에서 사랑을 이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임을 잊지 않도록 몇 번이나 환기시켜 준다.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예! 예! 예!”라는 경쾌한 추임은 어느새 귀에 쟁쟁한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게 된다.
남돌이와 꽃분이가 혼례를 올릴 때엔, 이전에는 임기원 배우가 주례를 맡았는데, 이번에는 박정현 씨가 그 사회 겸 주례를 맡는다. 조금 전 꽃분이 이모로 나오던 배우가 어느새 주례가 되었다. 안경 하나 끼고 손에 명품 백 하나 걸쳤는데도 완전 딴 사람이다. 딴 사람이 된 줄 착각하게 만드는 건 목소리와 말투다. 영판 귀부인 행색이고 ‘에헴’ 기침깨나 하는 중년부인 느낌이다. 하객더러 축의금 잘 내고 가라고 당부까지 착실히 한다. 그렇게 재미있게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혼례청이 마련된다.
왼쪽 뒤에 앉은 중년 신사가 웃음이 헤프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1시간 내내 허허 하하 웃는다. 큰들 마당극을 처음 보는 듯했다. 남돌이 부모와 꽃분이 부모가 등장할 때엔 ‘혹시 이분이 실신이라고 하면 119에 신고해야 하나’라고 걱정할 만큼 웃음소리가 커졌다. 끝날 때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던 그는 배우들이 “여러분 재미있었습니까?” 묻자 가장 큰 소리로, 심지어 나보다도 더 큰 소리로 “예에~~!”라고 길게 외친다. 이분 최참판댁 찾은 본전은 넘치도록 찾아가셨다.
오른쪽 행랑채 마루에 앉은 머리 허연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2019년 즈음의 나를 보는 듯하다. 스마트폰이 가볍게 보이지만, 그걸 한 손으로 들고 어떤 장면을 오랫동안 촬영하자면 어깨와 팔꿈치와 팔목이 아프게 마련이다. 이분, 오른손 왼손 번갈아가며 열심히 촬영한다. 그 곁에 앉은 아주머니는 한번쯤 대신 들어줄 만도 하지만, 제 스스로 극에 빠져 웃느라 남편으로 보이는 이 남자의 어깨가 아픈지 어쩐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런 걸 곁눈질하며 나는 마당극을 즐긴다.
<오작교 아리랑>은 마고자에 핫바지 입고 중절모 쓴 노인네가 지팡이 들고 등장하기 때문에 오래전 조선시대 이야기로 착각하기 쉽다. 아니다. <오작교 아리랑>의 시대적 배경 또는 시간적 배경은 공연이 펼쳐지는 바로 오늘이다. 그 오늘을 함께하는 수많은 젊은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큰들의 변신과 노력이 돋보인다. 상대적으로 연로하신 분들은 유튜브 채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함진애비를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마당극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듯이, 유튜브 채널이라는 개념을 전혀 모르는 어르신들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다. 그저 배우들이 이끄는 대로 긴장 풀고 경계심 풀고 무작정 다가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당극은 원래 그렇다. 특히 큰들 마당극은 그렇다.
지난 4월 중순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새로운 <오작교 아리랑>을 두 번 보았다. 낯섦의 신비로움과 새로움의 신기함이 컸다. 문화 예술에서는 기시감(旣視感: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나 처음 본 인물, 광경 등이 이전에 언젠가 경험하였거나 보았던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을 자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낯설게 하기’도 그만큼 중요하다. 오랫동안 <오작교 아리랑>을 보아온 관객들에겐 낯설게 하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4월에 산청에서 본 <오작교 아리랑>이 한 달 뒤 하동에서 본 <오작교 아리랑>과 같은 작품인지 다른 작품인지에 대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다. 앞으로 열 번은 더 보아야만 새 옷으로 갈아입은 <오작교 아리랑>이 어떤 작품인지 조금은 더 자세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내와 기념촬영을 했다. 많은 관객이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 줄의 길이는 그날 공연의 성공 여부와 관련 있다. 남돌이 역을 맡은 관객도 가족 셋이서 사진을 찍었다. 아내는 이날 남돌이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꽃분이와 춤을 출 때는 모든 관객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처음 약간 빼는 듯하다가 스스로를 내려놓고 열심히 참여해준 관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런 추억도 우리의 사진에 함께 담겼을 것으로 믿는다. 201번째 마당극 관람의 기억도 사진에 채색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 하동군 문화예술회관 주차장에서 20분간 충전했다. 그 사이에 아내와 섬진강 둑으로 올라가 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32살 신혼 때 나는 아벨라 승용차를 몰고 이 길을 달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섬진가앙 푸우른 물에에 노오 젓는 배엣사아아공 흘러가안 그 옛날에 내 니믈 시이잇고” 그러면 아내는 물었다. “무슨 노래냐?”고. 나는 <눈물 젖은 섬진강>이라고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하하, 호호.” 웃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2024. 5. 13.(월)
이우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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