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들 마당극 200번 관람>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200번 보았다. 대충 헤아려보니 6년쯤 걸렸다. 2024년 5월 6일(월) 저녁 6시 30분 진주성 안 특설무대에서 공연한 <찔레꽃>이 200번째 관람한 작품이 되었다. <찔레꽃>은 창작한 이후 이 공연이 49번째였다. 모든 걸 제쳐놓고, 먼저 스스로 놀랍고 그다음 가족에게 고맙다. 언제나 그 장소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멋지게 공연해 준 큰들에게도 정말 고맙다.
2018년 5월에 시작된 마당극 사랑
마당극 전문 극단 큰들이 공식 창립한 건 1984년인데 내가 본격적으로 마당극을 보러 다닌 건 2018년 5월부터이다. 2017년 6월 24일 창립 33주년 정기공연 <오작교 아리랑>을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본 것이 망각하고 있던 큰들의 존재를 다시금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면, 2018년 5월 18일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처음 관람한 <효자전>은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결정적 계기였다. 마당극이 얼마나 재미있고 교훈적일 수 있는지를 처음 깨닫게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제법 긴 감상글을 써서 누리방에 올렸다. 대충 찍은 사진도 정성 들여 올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내가 마당극에 푹 빠져 극단 큰들의 공연장을 그렇게 열심히 쫓아다닐 줄을 진정 난 몰랐다.
마당극 보기 위해 한 해에 두어 번은 휴가 내
마당극을 보기 위해 산청 동의보감촌, 하동 최참판댁을 수없이 다녀왔다. 이곳은 해마다 20회가량 마당극을 상설 공연하는 장소이다. 산청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하여 남해, 사천, 진영, 거창, 진해 등지를 다녀왔다. 2019년 10월 사천 완사에서 옮겨간 산청마당극마을도 여러 차례 찾아갔다. 마당극 한 편을 보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갰고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내 직장인 경상국립대로 찾아온 마당극을 본 적도 있고 통합하기 전의 경남과기대에서 열린 공연도 직접 보았다. 한 해에 한두 번은 평일에 하는 마당극을 보기 위해 오후 시간 휴가를 냈다. 주말과 휴일 오후 2시에 열리는 마당극을 보기 위해 평일과 다름없이 일찍 출근하여 급한 일을 처리하고 길을 나선 건 몇 번이나 되는지 셀 수 없다.
나의 유별난 취미에 동행한 지인들에게 감사
마당극을 보러 갈 때 함께 간 사람도 많다. 아내와 아들을 비롯하여 형제들도 여러 번 같이 갔다. 수많은 지인이 유별난 나의 마당극 감상 취미에 동행했다. 마당극 공연장은 대개 관광지인데 마당극 관람 이외에도 이러저러한 구경거리를 즐겼다.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막걸리와 파전, 도토리묵을 먹었다. 진주로 돌아와서 여흥을 즐기며 마당극, 큰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도 많다. 그 지인들은 대부분 큰들의 후원회원인데 실제 현장으로 마당극을 보러 갈 기회가 없던 사람도 있고 처음 마당극을 보고서는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경우도 많았다.
영상으로 촬영하여 보고 또 보는 마당극
지금까지 본 마당극 작품은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 <역마>, <마당극 남명>, <마당극 정기룡>, <찔레꽃>, <마당극 목화>, <이상해 지구, 뜨거워 지구>이다. <역마>는 2019년 3월 30일 하동 화개장터에서 꼭 한 번 보았는데 다행히 공연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해 둔 것이 있어서 심심할 때마다 다시 보곤 한다. 그렇게 본 횟수는 적어도 30회는 될 것이다. 나머지 작품도 대부분 영상이 있는데 수십 번 보고 또 보았다. KTX 타고 서울 출장 갈 때 녹화해 둔 마당극 3번 보면 서울 도착한다. 다시 내려올 때도 전혀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내 스마트폰엔 마당극 영상이 여럿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이상해 지구, 뜨거워 지구>는 2023년 여름에 처음 공연했는데 아쉽게도 몇 번 보지 못했다. 영상도 없다. 정말 아쉽다.
영상에 담긴 나의 웃음소리에 더 행복
마당극 공연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다 보니 공연 장면은 물론이고 객석의 반응도 고스란히 녹음된다. 주변에 앉은 관객들이 “아이고, 잘한다.”라거나 “참 재미있다.”라고 하는 말이 녹음된다. 웃음소리와 손뼉 소리도 많이 담긴다. 그중 가장 많이 담긴 건 내 웃음소리이다. 하하하 웃다가 히히히 웃다가 껄껄껄 웃다가 끅끅끅 웃다가 와하하 웃다가 흐흐흐 웃는다. 한 작품을 볼 때 얼마나 신나게 웃는지를 알 수 있다.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소리도 있다. 혼잣말로 작품을 해설하는 소리다. 손뼉 치는 소리는 거의 다 다른 관객들의 것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노라니 손뼉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동료와 짧게 주고받는 대화도 들린다.
눈물 흘린 후 마음이 평안해지고 정신은 맑아져
마당극 보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찔레꽃>을 보면서 눈물 흘리지 않은 적이 없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안 되고 아무리 누르려고 해도 안 된다. 솟구치는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다. <효자전>에서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장면에선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난다. 2012년 9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이제는 2020년 11월 돌아가신 어머니까지 동시에 떠올라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어린 임이가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도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정기룡>에서는 “눈물은 떨어지는데 숟가락은 잘 올라간다.”라는 대사에서 심장이 멎는다. <남명>에서는 못된 사또 때문에 순박한 시골 할아버지가 죽는 장면과 남명 조식 선생이 단성소를 올리는 장면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1시간 동안 열심히 손뼉 치며 웃다가 어느 순간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찍어내는 나를 발견한다. 돌아보면 주변 관객들도 비슷한 대목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 눈물을 조금 흘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마당극을 놓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진정성을 다하는 큰들 배우들에게서 배울 점
마당극 공연장을 찾아다니다 보니 극단 큰들 배우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무대를 꾸미고 분장을 하느라 왔다 갔다 하는 배우들을 만난다. 그들은 공연하기 전 마당극 주변을 얼씬거리는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한다. 공연 시간이 다가오면 작은 전단을 나눠주며 홍보를 한다. 무대를 다시 점검하고 마이크 상태도 챙긴다. 그럴 때 그들은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엄숙하고 유치원 가는 어린이처럼 천진해 보인다. 무엇을 하든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을 느낀다. 그 느낌은 관객들에게 전이된다. 마당극을 보고 또 보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큰들 단원들과 점점 가까워지며 생긴 애정
큰들 배우들과 가까워지고 보니 그들의 삶도 조금씩 알게 된다. 큰들문화예술센터 가족들은 산청군 어느 산골에 마을을 일구어 함께 모여 산다. 마을 이름은 ‘큰들산청마당극마을’이다. 어쩔 수 없이 진주 시내에 사는 몇몇 단원을 빼고는 모두 그 마을에 산다. 단원은 35명인데 딸린 식구까지 치면 50명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어느 배우와 어느 배우는 부부인 줄도 안다. 어느 부부는 중학생 또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있는 줄도 안다. 어느 배우 부부는 마당극마을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그 날짜까지 기억했다. 몇몇 아이는 이름도 알고 얼굴도 알겠다. 어느 배우와 어느 배우는 머지않아 결혼한다는 것도 귀동냥으로 들어서 안다. 그러나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200번을 만나면서 쌓인 우정과 사랑
또한 작품을 자주 보다 보니, 어느 배우가 어느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대부분 안다. 2018년 이후 6년 사이에 어느 작품에서 어느 배우의 배역이 바뀌었고 어느 배우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는지도 대충 안다. 외우지는 못한다. 주인공이 바뀌면 대번에 알아보고 대사가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도 나는 안다. 어느 배우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으면 다른 배우들이 긴급 투입되는 과정도 조금 안다. 극단이 2개 팀인데 한 팀은 주로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하고 다른 한 팀은 나머지 작품을 공연한다. 이런 것을 알게 되면 모를 때보다 더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배우들과 극단을 더 사랑하게 된다. 200번을 만나면서 쌓인 우정과 사랑의 감정은 허물어질 수 없다.
일신우일신하는 큰들에게서 배우는 게 많아
나 혼자 꿍꿍이속을 챙기려는 속셈은 없다. 남모르는 기대나 욕심 같은 것도 없다. 그저 마당극 보러 가는 시간, 보는 시간, 돌아오는 시간이 즐겁고 유쾌하고 뭉클해서 좋을 뿐이다. 한 지점에 머물러 고이는 것이 아니라 쉴 새 없이 흐르고 흘러 일신우일신하는 큰들에서 배울 게 많아 부지런히 따라다닐 뿐이다. 박수를 많이 받았다고 하여 창작과 개작을 멈추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를 찾아내어 수정하고 또 다른 웃음거리를 집어넣어 관객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큰들에게서 삶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배우들의 노력과 열정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애를 쓰고 관객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한다. 300번 넘게 공연한 작품도 어제의 작품과 오늘 공연한 작품이 같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눈빛과 말투에서 느끼는 인정과 감사함
고백하자면, 큰들에서 나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하면 고맙다. 멀리서 눈에 띄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쳐들어 알은체를 한다. 큰들에 생긴 먹거리가 있으며 나눠먹자며 일부러 챙겨주는 일이 가끔 생긴다. 사양하지 못해 받기는 하지만 부담이다. 그러고 나면 나는 그보다 더 많이 돌려주기 위해 머리를 짜낸다. 공연장으로 갈 때 이런저런 먹거리를 사 갖고 가거나 공연 마친 뒤 인근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기도 한다. 더운 여름날 땀 흘린 배우들과 객석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으며 그날 공연에서 좋았던 점을 이야기 나눈 적도 몇 번 있다. 그들의 눈빛과 말투에서 인정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 일들이 나는 좋다.
책자·앨범·달력 등은 나만의 후원 방식
마당극을 관람하고 쓴 후기를 모아 책자를 4권 내었다. ≪마당극에 미치다≫(2018년), ≪마당극에 빠지다≫(2019년), ≪마당극과 노닐다≫(2020년), ≪마당극에 물들다≫(2023년)가 그것이다. ≪마당극에 물들다≫에는 언론에 보도된 큰들 관련 특집 기사나 인터뷰 등을 가려서 함께 실었다. 큰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모아서 사진앨범도 3권 만들었다. 사진만 골라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면 알아서 인쇄, 제본해 주는 기특하고 훌륭한 회사 덕분이다. 비싸지도 않다. 3년째 큰들 달력도 만들었다. 책상에 올려놓는 자그마한 달력엔 큰들 관련 사진을 편집해 넣고 큰들 관련 기념일을 몇 군데 적어 넣는다.
더 많은 분이 더 자주 마당극 관람하기를 바라
후원회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후원 방식이다. 열심히 후기를 써서 널리 소문내어 주는 게 나의 후원 방식이다. 이런저런 책자나 앨범이나 달력을 만들어 그들의 자부심을 조금 더 높여주는 게 내 후원 방식이다. 페이스북에 공연 일정을 올려서 한 명이라도 더 보러 가게 하는 것 또한 나의 후원 방식이다. 일정이 맞는 주위분들을 모시고 가서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교훈까지 갖춘 마당극을 함께 보도록 하는 게 나의 후원 방식이다. 유별난 나의 큰들 사랑은 제법 소문이 났다. 덩달아 좋아해주는 분이 많다. 이따금씩 나와 함께 마당극 보러 가기를 원하는 분도 있다. 그렇게 인연이 쌓이고 사랑이 녹아들었다.
사흘 연휴 기간 마당극 세 번 보는 행운
이렇게 하여 큰들 마당극을 200번이나 관람하게 되었다. 가령 이렇다. 5월 4일부터 6일까지는 사흘 연휴이다. 5월 4일과 5일엔 오후 2시 산청군 동의보감촌에서 공연했고 6일엔 오후 6시 30분에 진주성 특설무대에서 공연했다. 사흘 연휴 <찔레꽃>을 공연했다. 웬만한 마당극 애호가라고 하더라도 사흘 가운데 한번만 볼 것이다. 두 번까지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 번 다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 관람했다.
첫날인 토요일엔 혼자 갔다. 숙호산 한 바퀴 돌고 산청 가는 길목인 명석에서 목욕하고 산청읍에 있는 돼지국밥집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공연장으로 올라갔다. 공연장이 있는 잔디마당에서는 산청군공예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 구경하다가 도자기로 만든 컵을 두 개 샀다. 이날은 공연하기에 날씨도 좋았고 관객 반응도 좋았다. 5월 맑은 하늘은 배우들이 공연하기엔 제법 덥다. 땀을 제법 흘린다. 관객들은 천막 아래에서 시원하고 느긋하게 관람한다. 그런데 의자가 모자라 뒤편에 둘러 선 관객들까지 열심히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콧물을 훌쩍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관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런 날엔 배우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배우와 관객의 호흡은 마당극을 더 재미있게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다. 공연 마친 뒤 객석에 앉아 아이스크림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이네’ 푸드 트럭에도 가서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시원한 커피 한 잔 사 먹었다.
둘째 날인 일요일엔 아내와 큰형님 부부와 넷이 갔다. 토요일 저녁 큰형님 집 옥상에서 삼겹살 구워먹으며 한잔했는데, 어디에서나 빠지지 않는 화제는 큰들과 마당극인지라, 일요일의 공연 일정을 나는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그렇게 많은 비가 쏟아지는데도 우리는 산청으로 향할 수 있었다. 비 때문에 실내에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사실 <찔레꽃>은 실외보다는 실내에서 보는 게 더 낫다. 호우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내려져 관객이 거의 없을 것으로 우려했는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밀려들었다. 객석이 100개라고 한다면 80개 이상은 들어찬 것 같았다. 형수님은 “정귀래가 참 연기를 잘하더라.”라고 말했다. 큰형님은 “젊은 귀래가 생선 장사를 배우는 장면에서 마음이 찡했고 눈물이 나오더라.”라고 말했다. 나는 역시 쉴 새 없이 손수건을 눈으로 갖고 갔다. 비는 그치지 않았고,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명석면에 있는 진양호민물어탕집에서 메기 매운탕을 먹었다. 소주도 한 잔 했다.
셋째 날인 월요일 저녁엔 진주성 안 진주 논개제 특설무대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아침 일찍 사무실 나가서 밀린 숙제를 좀 하고 점심시간쯤 귀가했다.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푹 쉬었다. 그러고서 해거름에 주섬주섬 챙겨서 길을 나섰다. 걸어가기엔 좀 멀고 자동차를 타고 가기엔 주차난이 예상되어 자전거를 이용했다. 이날 공연은 제23회 진주 논개제의 여러 행사 가운데 거의 마지막 공연으로 마련됐다.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새벽까지 내린 비로 꽃가루와 미세먼지는 남강으로 쓸려 나갔고 공기는 맑고 선선해서 공연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큰들은 오전 9시경부터 현장에서 무대를 설치하고 연습을 하는 등 하루 종일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처음엔 공연장이 박물관 앞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공북문 들어서자 왼쪽 잔디밭에 특설무대가 있었다. 큰들 기획실장에게 전화로 물어본 뒤 찾아간 것이다. 장소를 확인한 뒤 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에 올라갔다. 어쩐지 오늘만큼은 순국선열에게 묵념이라도 잠시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제단 앞에 서서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현재 우리가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는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청년들이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아가며 성곽을 돌아보고 있었다. 논개제 관련 각종 천막과 현수막이 여기저기 설치돼 있었다. 행사의 마지막을 즐기려는 시민이 많았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제단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가다가 시작시간을 1분 정도 놓쳤다. 6시 40분에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10분 정도 앞당겨 시작했다. 아무튼 맨 앞줄에 앉아 열심히 손뼉 치며 즐겁게 공연을 관람했다. 무대 바로 왼쪽에 설치된 멀티비전도 쳐다보았다. 객석과 무대가 좀 멀어서 배우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멀티비전 덕분에 순간순간 변해가는 배우들의 재미있는 표정, 익살스러운 표정, 슬픈 표정, 멍한 표정, 개구진 표정을 잘 볼 수 있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무대를 보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려 멀티비전을 보면서 극에 집중했다. 처음엔 객석에 빈 자리가 제법 많았는데 중간쯤 뒤를 돌아보니 의자에 앉은 많은 사람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한눈에 잡혔다.
이렇게 하여 연휴 사흘 동안 마당극 <찔레꽃>을 세 번이나 보게 되었다. 마당극을 200번 관람하면서 하루에 한 곳에서 두 번 본 적도 있고, 하루에 두 곳에서 두 번 본 적도 있지만, 사흘 연휴 동안 세 번을 관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렇다고 집안일이나 사무실 일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다. 여러 사정이 마당극을 편히 볼 수 있도록 스스로 조정되었던 것 같다. 운이 좋았다. 운이 없었으면, 그리고 그에 맞춰 나름대로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6년 만에 200번을 관람하는 행운은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 산청막걸리 두어 잔 걸친다. 기쁘다.
2024. 5. 6.(월)
이우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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