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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by 이우기, yiwoogi 2024. 3. 26.

- 하만주 선생님 퇴직에 부쳐

 

 

길이 열렸다

길손이 많은 덕분이다

반질반질 반짝반짝 길은 빛났다

모두 편하게 걸어갔다

딴전 피우며 놀았고 눈 감고 즐겼다

처음엔 고마워하면서, 나중엔 당연한 듯이

아주 나중엔 길의 역사도 잊었다

잊힌 길이 있었다

 

누군가 곁눈질을 했다

청미래 덩굴도 있고 아까시 가시도 있었다

낫 하나 들지 않은 맨몸으로

빨간 장갑 하나 없는 맨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었다,

마치 맹인처럼 망설임 없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게

길이 있었다

 

길이 열렸다

새 길이 열렸다

모두 한 번쯤 걸어간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길은 전인미답이다

모두 익숙한 듯 행동하지만 사실,

모두 낯설었다, 낯섦에 당당해진 건

그다지 오래지 않아서이다

그런 길이 있다

 

길이 있다

뒤돌아보면 하염없이 아득하고

바라보면 대책 없이 막막하여도

내 앞에 놓인 길, 날 기다리는 길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묵묵히 걸어간다

좌고우면 없이 일로매진하여 비로소,

가 닿을 곳 어딘진 알 수 없다

알 수 없음이 날 보채고 들쑤신다

미몽을 깨라 운무를 걷으라 재촉한다

그럼으로써

그 길의 주인이 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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