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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제11호 태풍 힌남노

by 이우기, yiwoogi 2022. 9. 6.

<태풍전야>
태풍이 온다. 태풍 역사에 기록될 만한 강한 태풍이라고 한다. 난리가 났다. 바닷물에 있어야 할 배를 육지로 올렸다. 유리창엔 반창고를 발랐다. 키 큰 나무가 걱정이다. 어쩔 수 없다. 추석 앞둔 사과, 배 같은 과일은 더 걱정이다. 고개 숙인 벼 이삭은 또 어쩌랴. 하지만 아직은 고요하다. 바람은 잔잔하고 비는 오지 않는다. 하늘은 먹장구름만 가득하다. 태풍전야이다. 
사무실 나와서 창문 잘 닫혔는지 한번 더 확인한다. 중년남자들 축구하는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온다. 머리는 희끗하고 배는 불룩한데 잘도 뛰어다닌다. 테니스 치는 사람들의 기합소리도 가까이에서 들린다. 그 사이사이 사월로 벚나무 잎 지는 소리도 들린다. 봄엔 꽃이라서 아름답고 가을엔 갈잎이라서 예쁜 벚나무의 소리 없는 노래를 듣는다. 
걱정과 감상이 교차한다. 에라, 모르겠다. 라디오를 켜니 '낭만가요'가 흘러나온다. 소리새가 부른다. <그대 그리고 나>. '낙엽 떨어진 거리를 정답게 걸었던 그대 그리고 나, 흰눈 내리는 겨울을 좋아했던 그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하고들 있는지. 마음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노래 한 소절 들으며 의자에 기대어 본다. 묵직하다. 열두 시 전에 컴퓨터 끄기는 글러먹었다. 2022. 9. 4.(일)


태풍이 시시각각 다가온다. 긴장감이 오른다. 이럴 때에는 라디오, 텔레비전 뉴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시간으로 태풍 위치를 알려주고 주의할 사항을 반복해서 일러준다. 태풍이 지나고 있는 일본 상황도 보여준다. 이럴 때 스마트폰은 쓸모가 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재난문자가 오는 바람에 방송이 자꾸 끊긴다. 아무튼 그러하다. 2022. 9. 5.(월)


<기자들 안전을 빕니다>
태풍·폭우·폭설 같은 재난이 오면 언론사 기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고생합니다. 방송 화면에 나오는 취재기자는 물론이고, 그 장면을 찍는 촬영기자도 위험에 노출됩니다. 실제 재난 현장을 보도하다가 바람이나 파도에 휩쓸려 사망하는 기자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기자들은,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목숨을 잃는 것이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업무를 하면서 한국방송공사(KBS) 뉴스 특보를 스마트폰으로 켜놓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태풍 상황을 전달하느라 현장과 방송국에 있는 기자와 아나운서가 여간 고생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게 눈에 보입니다.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꿋꿋하게 방송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거룩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KBS 제주 이경주 기자, 여수 김애린 기자, 마산 김효경 기자, 부산 이이슬 기자, 울산 최위지 기자, 포항 안혜리 기자, 춘천 이청초 기자와 방송국에 계신 앵커, 이예진 기자, 이지은 기자님 오늘 하루 수고 많았습니다. 오늘, 내일, 모레까지 특히 현장에서 취재·보도하는 모든 언론사의 모든 기자께서도 부디 안전·안녕하시길 빕니다. 2022. 9. 5.(월)


<태풍 지나간 아침>
창문을 꼭꼭 닫고 자서 그런지 잠귀가 어두워서 그런지, 밤새 빗소리 바람소리 듣지 못했다. 6시쯤 나불천 보니 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넘치지는 않겠다. 앞 베란다 여니 바람이 아주 세다. 나무들은 겨우 버틴다. 그 와중에 새 한 마리가 흔들림 없이 잘 날아간다. 라디오를 켜니 방방곡곡 피해 상황을 보도한다. 태풍은 새벽 4시 50분쯤 거제.통영에 상륙하여 부산.울산으로 달려가고 있단다. 
도로에는 아직 노랗게 변하지 않은 나뭇잎이 천지사방 흩어져 있다. 부러진 가로수는 만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천수교 가는 방향으로 진주교 아래는 지나갈 수 없다. 남강물이 불어났다. 반대로 천수교에서 예술회관 방향은 한 개 차로만 열려 있다. 경상국립대 칠암캠퍼스 아름드리 나무들은 춤을 춘다. 그 나무들 아래엔 초록색 융단이 깔렸다.  바람은 기어이 흔적을 남긴다. 
먹구름이 가득 덮고 있지만 하동, 남해, 산청 방향으로는 파란 하늘도 보인다. 서부경남은 태풍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다. 태풍 전야의 고요함이 있다고 하면 태풍 이후의 적막함도 느껴진다. 오늘 저녁 약속을 연기했는데, 괜히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무튼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큰 피해 없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를 빈다. 2022. 9.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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