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의 역사, 진주성 전투 체험과 추모
KBS진주방송국(국장 박태진)은 7월 23일 토요일 오후 3시 진주성 일원에서 ‘9일의 역사, 진주성 전투 체험과 추모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것으로, KBS진주방송국이 진주성 전투(1592년 임진년 진주대첩과 1593년 계사년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당시 희생한 민·관·군 선조를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이다.
체험과 추모 행사의 개막식, 역사 해설, 역사 퀴즈, 묵념 행사 등의 진행은 KBS진주방송국에서 맡았고, 진주성 전투 체험(의병출정식, 성벽 전투, 동문 전투)은 극단 큰들(예술감독 전민규)이 맡았다. 진주시(시장 조규일)는 이 행사를 후원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진주시의 지방보조금 사업으로 선정돼 예산을 지원받아 올해 행사를 개최했다고 한다. 진주시는 앞으로도 매년 이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KBS진주방송국은 “특히 계사년(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는 무더운 여름철에 있었던 전투이다.”라면서 “임진왜란 최대의 왜군이 모여서 진주성을 공격했고, 진주성의 군사들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온 조선군과 의병, 백성들이 합심하여 9일간 막아냈다. 성은 함락되었지만 왜군에게 준 타격도 커서 이순신의 본진, 전라도 공격 등 이후의 공격을 막아냈다고 평가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더운 여름에 행사를 하는 까닭
임진년과 계사년에 진주성을 지킨 선조들을 기리는 행사를 한여름 가마솥더위가 맹위를 떨칠 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임진년 전투는 1592년 10월에 벌어졌다. 양력으로 치면 11월이다. 진주시민의 날은 ‘양력’ 10월을 좇아 정한 것이고 진주남강 유등축제는 ‘음력’ 10월(양력 11월)에 맞춰 개최하는 것으로 안다. 계사년 전투는 1593년 6월 21일부터 9일간 벌어졌다. 양력으로는 7월 말이다. 계사년 전투는 일반적으로 패배한 전투로 알려진 때문인지 특별히 기리는 행사가 없다. 임진년, 계사년 전투와 그 이후의 7년 전쟁을 묶어서 ‘임진왜란’이라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주성 계사년 전투는 외형적으로는 패배한 전투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승리한 전투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진주성에서 왜적 10만 명을 상대로 싸운 민·관·군이 모두 장렬하게 전사했지만 왜군도 만만찮은 피해를 입는 바람에 전라도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이 9일간의 전투는 임진왜란 전체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한다. 진주성 전투 덕분에 이순신 장군도 바다에서 군량을 안정적으로 보급 받으면서 전투를 해나갔고 충청도, 경기도 등지도 비교적 피해를 덜 보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전투가 벌어진 시기를 2022년의 양력으로 보자면, 7월 19일부터 27일까지가 된다. 1593년과 2022년의 날씨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1년 중 가장 무더운 시기라는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푹푹 찌는 더위와 장마가 겹쳐 1년 중 견디기 가장 어려운 시기이다. 특히나 전쟁을 해야 한다면 가장 피하고 싶은 때이기도 할 것이다. 에어컨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얼음마저 마음껏 찾아볼 수 없던 그 시기에 우리 선조들은 진주성을 지켜내고 왜놈들을 몰아내어 마침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힘겨운 9일의 전투를 치렀다. 그때 그 마음, 그 정신을 공감해 보자는 취지에서 굳이 무더운 7월 말 토요일에 이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1593년 6월 28일(음력) 폭우가 쏟아져 진주성이 무너졌다. 힘겹게 버티던 선조들은 하나씩 둘씩 죽어갔다. 진주성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죽어갔다. 조선의 개, 돼지도 살아남지 못했다. 왜적들은 촉석루에서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의기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했다. 김천일 장군도 왜적 두 명을 겨드랑이에 끼고 투신했다. 왜놈들은 자기들의 병사 시신만 거두어 갔다. 비 그치고 날이 개자 조선인 시체가 썩어가기 시작했다. 인근 산청, 사천 등지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어 7만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체라도 거두자고 찾아왔으나 모두 돌아가고 말았다. 진주성은 시체 썩는 냄새로 지옥 그 자체였다. 지금도 진주성의 흙과 돌과 담벼락에는 그때 죽은 7만 조선인의 피와 살이 묻어 있다. 그래서 진주성에서는 특별한 행사를 할 때 말고는 노래도 부르지 말고 춤도 추지 말라고 한다.(최정희 문화유산해설사의 역사해설 중에서)
그런 진주성이다. 우리가 계사년 전투를 기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더운 여름에 비가 오더라도 해내야 하는 이유이다. 계사년 전투를 패배한 전투가 아니라 승리한 전투로 이후의 역사에 기록하고자 한다면 음력 6월, 양력 7월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묵은내 나는 땀방울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7월에 열리는 체험과 추모 행사가 갖는 의미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체험은 못하더라도 추모는 한다
KBS진주방송국과 극단 큰들이 오래 전부터 제2회 ‘2022 9일의 역사, 진주성 전투 체험과 추모 행사’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해에는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올해는 직접 조선군이나 왜병으로 참가하여 체험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추모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내던진 조상들의 거룩한 희생정신 그 근처에라도 가보고 싶었다. 429년의 세월을 건너뛴 후손들이 그날의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체험하고 추모하는지, 배우고 싶었다. 아내가 동행했다.
4월 23일 오후 3시 진주성 공북문 안 김시민장군 동상 앞으로 갔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왜군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었다. 50명은 넘어 보였다. 사실, 체험과 추모 행사를 한다면서 시민을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하여도 누가 왜병으로 자원할 것인가, 이게 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진주지역대학생연합봉사단 위더스(대표 이용진) 회원들이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왜병 역할을 기꺼이 맡아준 진주지역 대학생들이 참 고맙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장군, 병사, 왜군 복장으로 분장한 극단 큰들 배우들이 보인다. 주 무대에서는 KBS진주방송국 노민주 아나운서가 식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연예술BOX더플레이’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를 띄우는 중이다. 시민 의병으로 참여한 남녀노소 150여 명이 곧 전개될 체험 행사를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모여 앉았다. 나와 아내는 미리 체험행사를 신청하지 않았으므로 맨 뒤쪽에 조용히 앉았다. 사회자나 가수가 손뼉을 치라고 하면 열심히 쳤다. 드디어 오후 3시가 되자 개막공연과 진주시장의 축사, KBS진주방송국장의 인사말씀이 이어졌다.
울컥하게 하는 공연예술BOX더플레이 공연
개막공연에서는 ‘공연예술BOX더플레이’가 뮤지컬 ‘의기’의 몇 대목을 들려주었다. 맨 처음 곡 신중현의 ‘미인’이라는 곡은 이번 행사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뮤지컬 내용 중에 조선의 여인들이 나라를 지키고 나를 구해준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가 바로 ‘미인’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누구였을까 누구였을까 연약한 우리를 도와준 그들은 누구일까 누구였을까 너무나도 멋진 저 사내들은…” 그들은 바로 이순신 장군, 김시민 장군 그리고 수많은 조선의 의병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곧 미인이다.
‘공연예술BOX더플레이’의 공연 중 “우리가 가는 길이 기약 없는 내일과 두려운 미래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우리 후손 위해 시간이 흐르면 역사 속에서 사라져 이름도 없겠지만 나 오늘 이 순간 후회 없이 살고 싶어…”라는 대목은 우리를 울컥하게 했다. 계사년 전투에 나서던 장군과 병사들과 의병들이 부르는 노래 같다. 그들의 이름은 사라져 갔지만 그 정신과 혼은 오늘날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몫이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지난 6월에 임진왜란 3대첩인 진주대첩, 한산대첩, 행주대첩을 묶어서 앞으로 3개 도시가 문화적인 연대를 통해서 역사적인 사건을 잘 기억하고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라면서 “앞으로 우리 진주성 전투, 여러분뿐만 아니라 우리 후대에도 잘 기억하는, 그래서 우리 진주가 평화를 이끌어가는 선두 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조규일 시장은 “‘공연예술BOX더플레이’처럼 역사적인 사건을 문화적인 공연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은 젊은이가 그런 문화행사를 멋지게 잘할 수 있는 문화도시로 가꾸어 나가겠다.”라고 약속했다.
진주성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새로운 추모 방식
행사를 기획한 박태진 KBS진주방송국장은 “430년 전에도 이렇게 이런 날에 이 자리에서 전투가 있었다. 이 행사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킨 우리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기획한 행사이다. 실제로 전투가 있었던 같은 시기에 진주성에서 의병이 되고 조선군이 되어 직접 창이나 활의 소품을 들고 성벽에서 왜군과의 전투 상황을 상상하고 떠올려본다.”라면서 “관광객들은 주변에서 구경만 해도 좋을 프로그램으로 기획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박태진 국장은 “오늘 행사가 전투의 완전한 재현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과거에 선조들이 어땠을까, 또 얼마나 힘들게 나라를 지키려고 했을까를 생각해보는 행사이다.”라며 “오늘 이 행사가 진주성을 지킨 선조님들을 기억하는 KBS와 여러분의, 새로운 형태의 추모 방식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박태진 국장은 이번 행사를 위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생수를, 바로마디병원에서 구급차를 보내준 것을 비롯해 한국남동발전, 금일봉을 보내준 토박이말바라기, 미숫가루를 준비해준 KBS시청자위원도 소개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손길을 건네는 기관과 단체, 개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극단 큰들이 진두지휘하는 의병출정식
진주성 전투 체험행사는 모두 3마당으로 구성됐다. 첫째 마당은 의병출정식이다. 둘째 마당은 성벽 전투이다. 셋째 마당은 동문 전투와 승리의 축제이다.
상황은 엄중하다. 왜적 10만 명이 지금의 진주혁신도시 근처에 집결했다. 음력 6월 20일이다. 왜적 집결 소식이 진주성에 당도했다. 진주성 안팎에 있던 백성과 군인과 관원이 모여들었다. 진주 부근과 멀리 호남에서도 의병장들이 달려왔다. 의병출정식은 전투를 앞두고 민관군이 의지를 다지며 무기를 들고 훈련을 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의병출정식에 참여한 시민은 4-5살 어린이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였다. 숫자는 150여 명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더 많아 보였다.
큰들은 이런 조선시대 전투 장면을 여러 차례 공연한 관록이 있는 극단이다. 장수 한 명이 먼저 나와서 의병들에게 무기를 나누어 주도록 지시한다. 가장 나이가 어린 의병들에게는 대나무 가지로 만든 무기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청년들에게는 죽창을 지급한다. 여성 참가자들에게는 활을 맡겼다. 그 외 건장한 청년들에게는 삼지창을 지급한다. 군령이 적힌 오방기도 나누어준다. 이렇게 자기의 처지에 따라 그에 걸맞은 무기를 하나씩 쥐었다. 큰들 단원들이 신속하게 움직인 덕분이다.
큰들은 이 장엄하고 엄숙한 행사를 너무 진지하게만 진행하면 곧장 싫증을 느끼리라는 것을 고려하여, 중간 중간 우스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우리들의 체험 방식이고 추모 방식이다. 어린이에게 무기를 지급할 때 “나도 어린이인데 왜 무기를 안 주나 하시는 분들은, (자기가) 좀 컸다 생각하시면 됩니다.”라며 달랜다. “무기를 앞뒤로 흔들면 우리 편이 다칩니다. 아군끼리 싸우면 안 됩니다. 깃발과 무기는 위아래로만 흔들어 주십시오. 알겠습니까?”라는 주의사항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무기가 지급되자 구호 연습도 한다. 구호는 두 가지다. “진주성을 지켜내자!”와 “왜놈들을 몰아내자!”이다. 이 두 가지 구호는 체험 행사가 끝날 때까지 수십 번 반복한다. 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즐거운 놀이이지만, 430년 전 진주성 안의 민관군은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었을 것이다. 왜놈들을 몰아내고 진주성을 지켜내자는 의지를 불태우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런 상상 하나가 선조에 대한 감사함이고 끝내 지켜낸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감격이 아닌가.
의병들에게 무기를 지급하자 드디어 장군이 등장했다. 출정식이다. 김천일 장군이라고 해도 되겠고 최경회 장군이라고 해도 되겠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임진년 1차 전투 때 적의 흉탄에 맞아 8일 만에 서거했다. 장군은 의병들에게 외친다.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와 있는 여러분이 참 고맙소. 지금 조선의 운명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소. 왜놈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부모형제가 죽고 처자식들은 포로가 되며 평범한 삶은 사라졌으니 하늘과 땅 사이 이보다 더한 원수는 없을 것이오. 전라도로 가는 길목인 이 진주성마저 무너지면 조선 전체가 무너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오. 비록 10만의 왜군이 겹겹이 진주성을 에워싸고 있다고 하나 두려워할 것 없소. 우리는 지난 진주성 1차 전투에서 3만의 왜군에 맞서 결사항전의 각오로 승리한 경험이 있소. 전투는 숫자가 아니라 기세인 것이오. 우리 모두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반드시 진주성을 지켜낼 것이오. 진주성을 지키는 것이 백성을 구하는 것이고 조선을 구하는 것이오. 조선의 병사들이여! 진주성을 지키고 조선을 구하자!”
진주성을 지키는 것이 곧 조선을 구하는 것
참으로 감격적인 연설이다. 10만 왜군이 진주성을 에워싸고 있다. 언제 불화살이 날아올지 조총 알이 날아들지 알 수 없다. 날은 더운데 몸은 떨린다.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자 있겠는가. 하지만 진주성 안에는 왜적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 넘치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단심이 흘러넘치며, 그것이 곧 내가 사는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조선인들의 각오가 단단히 굳어져 가고 있다. 체험에 참가한 한 명 한 명이 그런 기분을 느꼈으리라.
그때다. 한 장수가 다급하게 달려와 아뢴다. “장군, 왜군이 지금 동문 앞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알겠다. 전군 동쪽 성벽으로 이동한다.” 결정과 명령은 군더더기 없이 단호하고 깔끔하다. 좌고우면하고 길게 토론할 겨를이 없다. 전투가 눈앞이다. 의병들은 무기를 들고 “진주성을 지켜내자!”, “왜놈들을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동쪽 성벽으로 이동한다. 떨리는 심장 부여잡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가며 목청껏 외친다. “진주성을 지켜내자, 왜놈들을 몰아내자!”
의병들은 공북문을 지나며 임금이 있는 한양을 향하여 목례를 올렸을까. 이미 도성을 버린 임금을 원망했을까. 의병들은 다시 진주성우물을 멀리 돌았다. 목마른 의병들은 한 바가지씩 퍼 마셨겠지. 서로 물을 떠주며 이 한 방울의 물이 이 세상 마지막 생명수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을까. 서로 의지하고 맹세하며 어깨 걸고 두 손 잡는 이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해보는 의식임을 알기나 했을까. 의병들은 천천히, 그러나 힘차게 전장으로 나아갔다.
성벽 전투와 동문 전투
왜군이 진주성 동쪽 벽으로 기어오른다. 조총을 앞세워 사다리를 밀어 올리며 곧장 성을 넘어올 태세다. 의병들은 조를 나누어 활 쏘는 훈련을 하며 전의를 불태운다. 화살 한 발 한 발이 왜놈 한 명 한 명을 쓰러뜨려 줄 것으로 기도하며, 활과 화살을 만든 조선 사람의 땀과 눈물을 기억하며, 그렇게 활쏘기 훈련을 한다. 어린 의병에서부터 어른 의병들까지 평소 활을 쏘아본 적이 없기에 처음에는 서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진주성을 지켜내고 왜놈들을 몰아내야만 내가 살고 부모가 살고 자식이 살고 마침내 조선이 살기에 그 절박함을 간절함으로 바꾸어 한 발 한 발 훈련을 한다. 드디어 교전이다.
성벽 전투에서는, 성 안의 참가자들은 성 바깥으로 향하여 활을 쏘고 물 폭탄을 던졌다. 활도 물 폭탄도 실제 무기는 아니다. 왜군들은 성 가까이 바짝 붙었다가 뒤로 물러섰다가를 반복했다. 체험 행사이므로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며 몸소 그 기분을 느껴보도록 한 것이다. 성 위에 올라서서 있는 힘껏 활을 쏘아 본 어린이는 평생 진주성 전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자기가 던진 물 폭탄에 왜군 한 명이 고꾸라지는 것을 직접 본 참가자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430년 전 조선군이라고 느낄 것이다. 체험 행사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성 안 민관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친 왜군들이 이번에는 동문으로 이동했다. 동문은 지금의 촉석문이다. 왜군들이 동문으로 이동하여 집결한다는 전령의 다급한 외침에 장군은 아군을 수습하여 긴급히 이동한다. 다시 무기를 들고 동문과 촉석루 사이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사이에 왜군들이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내쳐 들어온다. 그러나 그들은 당당하게 버티고 선 장군과 조선 의병들을 보고 기가 질린다. 그렇게 시작된 공방전이 일진일퇴를 거듭한다.
왜군이 한 발 공격하면 조선군이 뒤로 물러서고, 조선군이 기를 모아 앞으로 다가가면 왜군이 뒤로 물러선다. 장군은 “물러서지 마라!”라고 외쳤고 병사들은 “앞으로!”로 화답했다. “이대로는 승리할 수 없다. 신기전과 총통, 조선의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총공격한다! 전군 공격하라!” 마침내 전세가 기울었다.
체험 행사에서는 창과 활과 조총을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역사 속 전쟁에서는 피와 살이 튀고 비명이 하늘을 찢을 듯이 울렸을 것이다. 체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날의 전투장면을 떠올리면서도 시종일관 재미있게 열심히 전투에 임했다.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그날을 체험하고 추모한다.
임진왜란 통틀어 왜군에게 가장 강력한 타격을 입힌 전투
드디어 왜군들이 도망갔다. 실제 계사년 전투에서는 조선 민관군이 전멸했다. 이날 체험에서는 조선이 이겼다.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긴 것을 상징한다. 비록 몸은 죽어졌지만 정신과 얼은 오롯이 살아남아 수백 년 지난 오늘날에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중과부적으로 끝내 왜놈들의 총과 칼에 목이 날아갔지만, 잘린 머리일망정 이날의 전투를, 이날의 치욕을, 이날의 전쟁을 길이길이 기억하겠다는 것을 말 없는 말로 일러준다. 이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전투를 승리한 전투로 되돌려 놓는 것임을 말해준다.
장군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민관군 의병들에게 외친다. “진주성 지킴이 여러분, 모두들 고생했습니다. 많이 힘듭니까? 힘들어요. 좀 덥습니까? 저는 땀이 비 오듯 합니다. 허허…. 429년 전 그때 9일 동안 크고 작은 전투가 100여 회나 벌어졌습니다. 그때 그 진주성 지킴이들이 목숨을 걸고 진주성을 지키려 했습니다. 사람들은 진주성 2차 전투가 패배한 전투라 합니다. 하지만 6000의 병사로 10만의 왜군에 맞섰습니다. 임진왜란 통틀어 왜군에게 가장 강력한 타격을 입힌 전투였습니다. 진 싸움이 아니라 승리한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이 있기에 진주성 2차 전투는 이제 더 이상 잊혀진 전투가 아니라 길이길이 기억될 전투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분들을 잊지 맙시다. 마음속 깊이 새깁시다. 조선 의병 만세~! 만세! 만세!”
체험 행사가 끝났다. 참가자들 일부는 돌아갔다. 행사가 끝난 건 아니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50여 명의 참가자는 촉석루로 올라갔다. 문화관광해설사 최정희 씨가 진주성 전투와 관련한 역사 해설을 했다. 이어 안유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역사 퀴즈도 이어졌다. 이날 체험에 참가한, 특히 어린이들에게 진주성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알게 해 주려는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임진왜란, 진주성과 관련한 어린이들의 역사 지식이 훨씬 넓어졌을 것이다. 푸짐한 상품도 주었다.
“그날은 어제이고 오늘이고 또 내일입니다”
이날 행사의 대미는 묵념사로 마무리했다. 묵념사는 역사 퀴즈가 진행된 진주성에서 마련됐다. 묵념사 전문을 옮긴다.
“풀꽃 같은 사람들이 모인 어느 성 안에는 장군의 기상을 닮은 누각이 푸른 강 위에 서 있습니다. 들꽃처럼 지고 불꽃처럼 일어섰던 이름들. 순국선열들의 피를 딛고 빛을 되찾았던 그날들. 그날은 어제이고 오늘이고 또 내일입니다. 그리고 그날은 소중한 생명이었습니다. 신분이 귀했든 천했든 양반이든 아니든 그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 나라를 지킨 자랑스러운 진주성의 수호신이셨습니다. 당신들 덕분에 우리 후손들이 잘 살고 있다는 말씀 올립니다. 오늘 우리는 음력 6월 한여름의 한가운데 피어린 투쟁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선열들이 흘린 피의 가치를 후손들의 가슴에 꽃처럼 피울 수 있도록, 당신들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진주성을 잘 지켜나가겠습니다.”
드론까지 동원하여 유튜브로 생중계한 역사 현장
이날 행사는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이를 위해 KBS진주방송국에서는 카메라 10여 대를 동원한 것은 물론 드론과 여러 대의 스마트폰을 이용했다. 실제 진주성 현장에서 체험하는 시민 이외에도 가정에서 이 행사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며칠 전에는 KBS진주방송국과 극단 큰들이 예행연습을 했다. 이날도 오전부터 총출동하여 점검하고 챙겨보고 연습하고 준비했다.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방송국과 큰들이 들인 노력은 백만 번 칭찬해도 모자랄 것이다.
특히 KBS진주방송국은 행사 시작 전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진주성 전투 애니메이션 영상을 유튜브로 상영했으며, 현장에서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거나 지연되는 시간에는 <KBS 역사저널 그날> 프로그램(‘끝까지 진주성을 지킨 3충(三忠)은’, ‘값진 승리 1차 진주성전투’ 편)을 삽입했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진주성 전투의 의미를 쉽게 설명해 줌으로써 유튜브로 행사에 함께하는 시민들에게 입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 것이다. 방송국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기획, 그리고 그 실천력이 매우 크게 돋보였다. 이 행사가 이제 겨우 두 번째인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유튜브 행사 생중계 시간은 무려 3시간 45분이다. 유튜브 영상은 KBS진주방송국 채널에서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다. 시간을 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해 볼 일이다. 429년 전 그 뜨거웠던 여름, 9일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 현장을 상상하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며 음미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내년 이 시기에 제3회 ‘9일의 역사, 진주성 전투 체험과 추모 행사’가 열리면 직접 참가하거나 가까이 가서 함께 그 현장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진주성의 참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준 KBS진주방송국을 비롯해 극단 큰들, 그리고 각 참가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더운 여름날을 더 뜨겁게 보낸 분들 덕분에 계사년 진주성 전투가 오늘날 되살아나고 있다.
“가장 진주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행사를 함께한 누군가 말했다. “이 진주성 계사년 전투는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또 다른 누군가 말했다. “이런 행사는 진주시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다. 인력과 예산이 만만찮다.” 역시 맞는 말이다. 진주시는 이미 함께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9일의 역사라는 체험과 추모 행사가 세계적인 행사로 발돋움했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더 많은 진주시민이 참여하는 큰 행사로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다. 가장 진주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KBS진주방송국 유튜브 바로 보러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TFD_w9wvl3c
2022. 7. 25.(월)
이우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1호 태풍 힌남노 (0) | 2022.09.06 |
---|---|
제삿날의 짧은 생각 (0) | 2022.08.24 |
전기자동차 사용 후기 (2) | 2022.07.19 |
첫 충전 (0) | 2022.06.10 |
전기 자동차 (0) | 2022.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