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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시험

by 이우기, yiwoogi 2021. 11. 17.

<시험>

 

2018년 11월 15일 아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렀다. 아침밥 먹고 명신고까지 태워 주었다. 시내 길은 막힐까 봐 우회도로를 탔다. 시간은 넉넉했다.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아들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마음이 들뜨고 긴장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후 3시쯤 조퇴하여 시험장으로 갔다. 선택과목에 따라 마치는 시간이 다른 것인지 벌써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다. 제법 기다렸다. 춥지는 않았다. 이윽고 친구와 둘이 걸어 나오는 아들을 만났다. 가볍게 안아주고 손을 만졌다. 따뜻했다. “고생했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날 저녁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밥 먹으면서 무슨 잔소리 흰소리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들이 큰 과정 하나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것,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그런 느낌은 있었더랬다.

 

1985년 11월 어느 날 진주 대동공고에서 학력고사를 치렀다. 세로로 기다란 직육면체 검정색 보온 도시락을 들고 택시를 탔다. 일 년에 택시를 한 번 탈까 말까 하던 시절이다. 수많은 어머니들이 정문에 붙어 서 있었다. 고등학교 후배들이 따뜻한 차를 권하면서 “으쌰으쌰” 하면서 응원했다. 그런다고 시험이 쉬워지나 싶다가도 그런 그들이 고마웠다. 해거름에 집에 가니 노동일로 피곤한 아버지와 배추장수 어머니가 “고생했다”라며 위로해 주셨다. 학력고사를 봤다고 특별한 음식을 먹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인생을 좌우할 큰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만 가득했다. 성적이 좋았더라도 먼 데로 가지 못할 형편임을 뻔히 아는지라, 그날 오후 대충 맞춰본 점수가 그저 그만큼이어서 더 안도하던 날이었다.

 

내일은 2022년에 대학에 가려는 수험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대학이 무엇인지, 왜 가는지, 꼭 가야 하는지, 가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대학을 나와서는 어떻게 살 것인지 하는 질문은 서로 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맹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일 치르는 시험에 모든 걸 걸지 말라는 말은 사치일지 모른다. 그동안 땀 흘려 노력한 만큼 성적을 받기를 바란다는 말도 어쩌면 한가한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저 실수하지 말기를 바란다. 시간 늦지 말고, 갖고 가지 말라는 것 갖고 갔다가 부정으로 낙인찍히지 말기를 바란다. 수능 성적표 하나에 앞으로 인생의 많은 것이 바뀌는 나라에 살고는 있지만, 그 성적을 어떻게 이용할지 주의사항은 성적표 뒷면에 적혀 있을지 모른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한다.

 

2021. 11. 17.(수)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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