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 마주 던지기>
5천 년 동안 한 마을로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날 너 죽고 나 죽기로 싸운 뒤에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갈라져 오도 가도 못하면서 70년 넘게 살아왔다. 원수가 된 것이다. 그 아랫마을 총각과 윗마을 처녀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마음대로 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견우 직녀가 따로 없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먼 데 있지 않다. 이 둘은 결혼 날짜를 잡고 신랑 친구들이 함을 팔러 가는 등 결혼 일정을 착착 진행한다. 드디어 결혼하는 날이다.
아니다. 그보다 먼저 이 소식을 들은 아랫마을 남돌이 부모와 윗마을 꽃분이 부모가 이 말 안 듣는 녀석들의 결혼을 뜯어말리기 위해 결혼식이 열리는 산청으로 달려간다. 달려가다가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거기는 아마 진주쯤은 아니었을까. 대전쯤이었는지도 모르지. 아무튼 처음 만났는데도 반갑고 좋기만 하던 이 두 어르신네들은 결혼식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태세다. 알고 보면 이 사람들은 사돈지간이 될 터인데, 그런 것을 우리는 대번에 아는데 그들만 통 모르고 있다. 그건 그렇고.
양가 어른들이 결혼식을 파토 놓기 위해 달려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랑 신부 결혼식이 시작된다.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한다. 신랑 댕기풀이도 한다. 신나는 유행가에 맞춰 춤도 춘다.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어디에선가 매우 강렬한 쇳소리가 들려온다. 천둥 같기도 하다. “잠깐~! 이 결혼 반대다!” 혼비백산 달아나는 신랑 신부와 그 친구들.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은 이런 때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을까.
처음 만났는데도 반갑고 좋기만 하던 남돌이 부모와 꽃분이 부모가 서로 자기 자식들의 결혼식을 뜯어말리러 달려갔더니, 웬걸, 그들의 아들 딸들이 결혼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저 사람들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 했지요!”라고 말을 바꾸고 “남잔지 여잔지도 모르게 생겼다”는 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서로 뼛속 깊숙이 민족 예술의 피가 흐르는 원조 민족 예술가 집안이라느니, 고구려 시절부터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던 집안의 후손이라느니, 입씨름이 벌어진다.
급기야 버나 돌리기 시합을 벌이게 된다. 자존심을 건 한 판 승부다. 아랫마을 남돌이 부모는 윗마을 사람들을 거지 같다고 하였고 윗마을 꽃분이 부모는 아랫마을 사람들을 돈만 밝히는 사람들이라고 힐난한 상태다. 감정의 골이 깊다. 버나 돌리기 시합은 승부가 나지 않는다. 국제 심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확한 규칙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서로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파이고 만다. 파국이다.
그때 꽃분이가 등장한다. 아랫마을 윗마을이 한 마을이었을 때 부르던 그 아리랑을 조용히 부른다. 팽개쳐져 있는 버나를 꽃분이가 돌린 뒤 ‘아버님’인 남돌이 아버지에게 던지자 남돌이 아버지는 그것을 받아 돌리고 그 버나를 다시 꽃분이 아버지에게 던진다. 꽃분이 아버지가 던진 버나를 남돌이 어머니가 받아서 돌린다. 남돌이 어머니는 “버나가 이리 왔다 갔다 하니 내 마음도 심쿵 심쿵하네”라고 말한다. 닫혔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꽃분이 어머니가 다시 버나를 받아 돌리면서 “버나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해도 잘만 돌아가네”라며 웃는다. 마침내 화해가 된 것이다. 해빙이라고 할까, 봄이 왔다고 할까.
서로 배치기를 하며 극한 감정 대립을 보이던 남돌이 아버지와 꽃분이 아버지가 버나 마주 던지기를 한다. 하나 둘 셋 하는 구호와 함께 서로 자기 버나를 던지면 그것을 받아서 돌리는 것이다. 그만큼 버나 실력이 비슷해야 하고 그만큼 서로를 믿어야 한다. 그만큼 그들은 민족 예술가 집안으로서 손색이 없고 그동안 쌓였던 앙금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는 뜻 아닌가. 아래 사진들은 남돌이 아버지(오른쪽, 김상문 배우)와 꽃분이 아버지(왼쪽, 이인근 배우)가 버나를 서로를 향하여 힘차게 던지고, 그것을 사뿐히 잘 받아내는 장면이다. 이처럼 왔다 갔다 하며 서로의 마음을 열어 보이면 70년 넘게 닫혔던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감정의 골도 순식간에 메워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극단 큰들은 2021년 9월 19일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206회째 공연을 이어 갔다. 산청한방약초축제 기간인 9월 17일부터 22일까지 6일 동안 <효자전>, <오작교 아리랑>, <남명>을 이틀씩 공연한다. 9월 19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열린 <오작교 아리랑> 공연 장면을 ‘산엔청 산청여행’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스트리밍)로 보여주었다.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 유튜브로 보이는 공연을 즐기면서 댓글이나 쓰려다가 산청 공연 현장으로 달려갔다. 9월 18일에 이어 하늘과 구름과 바람이 나를 가만두지 않은 때문이고, 큰들 배우들과 단원들의 해맑고 진지하며 행복한 표정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 때문이다. 유튜브로 보는 것은 이미 17일 오후에 <효자전>을 한번 감상한 탓도 있고 무엇보다 공연 장면을 어떻게 유튜브에 담는지도 곁눈질로나마 보고 싶어지던 것이다.
비대면 공연이 원칙인지라 객석에는 의자가 20개도 놓이지 않았다. 눈치 빠르고 동작 빠른 몇몇 관객이 자리를 차지하였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몇몇 관객은 금 밖에서 팔짱을 낀 채 서서 웃음과 박수소리를 날렸다. 영상 25도 안팎의 기온과 이따금 불어주는 시원한 왕산 바람과 그런 것을 한껏 즐기는 나비 몇 마리,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공연장 분위기를 재미나게 해 주었다.
공연은 정확하게 2시에 시작하여 2시 57분에 마쳤다. 3시에 끝나리라던 예상이 3분 짧아졌다. 왜 그럴까. 신랑댁 가족과 신부댁 가족이 겨루는 가족 대결 버나 이어달리기가 생략된 탓이다. 비대면 유튜브 중계 공연은 서로 약속하기로는 관객이 없는(정확하게는 공연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 것이기 때문에 가족 대항 버나 이어달리기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꼭 그만큼 짧아진 공연이었다. 그렇다고 마당극 주요 내용이 생략되거나 줄거리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큰들은 극의 내용을 한 대목 슬쩍 빼기도 하고 슬쩍 끼워 넣기도 하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잘 해내는 신비로운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큰들은 한 해 평균 100회 정도 마당극을 공연하는 극단이다. 산청, 하동을 비롯해 조선팔도 안 가는 곳이 없다. “언제든지 불러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는 것이 큰들의 약속이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한 해 평균의 절반도 공연을 하지 못했다. 올해는 그 절반의 3분의 2 정도 공연을 하는 듯하다. 그나마 몇몇 공연은 극소수의 관객을 초청하거나 아예 비대면 유튜브로 공연 장면을 송출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그들이 가장 크게 기념하는 창립기념공연(올해는 제37주년)도 관객 50명을 초청하여 조촐하게 치렀겠는가. 그나마 창립기념공연은 9월 4일과 11일 두 번 공연을 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 큰들이 산청한방약초축제를 맞이하여 그들이 해해연년 정기공연을 펼치고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동의보감촌에서 여섯 번이나 잇따라 공연을 하고 있다. 얼마나 설레고 기쁠 것인가.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것인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 것인가. 그런 한편으로 얼마나 아쉽고 안타깝겠는가. 얼마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울 것인가. 겨우 20명 남짓 관객을 모셔놓고 공연을 한다는 것의 복합적 심리가 어떠할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코로나19가 없던 2019년 산청한방약초축제 때 열린 공연에서는 날마다 400-500명씩 모여들던 공연인데.
큰들 배우들은 공연 내내 ‘좋아서 죽겠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마당극 마을에서 내내 연습만 하고 있다가 마침내 관객 앞에 섰으니 그 감정이 어떠하겠는가. 마당극 마을이라고 해서 닫힌 동네도 아니고 숨은 동네는 더더욱 아니어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 극단이라고 이름 붙인, 그것도 세계적 유명세가 자자한 큰들이 관객을 모셔놓고 멋들어지게 한판 놀아보고 싶은 심정이 얼마나 컸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그들의 표정이 30개월 군 복무하다가 전역하는 날이 된 듯, 사흘 굶다가 공짜 뷔페 만난 듯, 모태솔로가 어느 날 갑자기 연인 만난 듯하지 않겠는가.
날씨마저 얼마나 많이 도와주는가. 9월 17일 첫 공연은 실내에서 치렀다. 태풍 때문에 비가 제법 왔으니까. 둘째 날인 18일과 셋째 날인 19일은 그야말로 아주 쾌청한 가을 날씨 속에서 마음껏 뛰고 넘어지고 노래 부르고 춤추었다. 몸과 마음속의 스트레스가 제법 풀리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관객들도 배우들의 몸짓과 말투에 따라 웃고 울고 손뼉 치며 아름다운 한국의, 남부의, 산청의, 동의보감촌의 가을을 제대로 만끽했다. 관객들은 명절을 앞둔 스트레스를 풀고 닷새 연휴의 설렘을 마음껏 풀어헤쳤다. 다행도 이만한 다행이 없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고 해도 될 어제 오늘 같은 날씨도 배우들에게는 매우 덥겠다. 먼저, 마당판에 깔린 검은 천이 햇볕을 듬뿍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다음, 배우들의 의상이 모두, 비록 간편하게 개량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복이기 때문이다. 오늘 공연에서 남돌이 어머니(이규희 배우)의 경우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현장에서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짭짤한 땀방울을 쉽게 보고 느낄 수 있다. 더위와 싸우면서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늦게나마 격려와 위로, 감사와 감동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공연을 마친 뒤 큰들이 운영하는 먹거리 트럭(푸드 트럭)으로 달려갔다. 가을날이긴 하지만 섭씨 25도를 기록하는 기온 속에서 따가운 햇살을 1시간 정도 쏘이고 나면 목이 마른 법 아닌가. 평소 같으면 편의점으로 달려갔을 터이지만 이제는 무조건 기천문 앞 ‘청이네’로 가게 생겼다. 잘 안 마시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고 나서 아직은 때가 이른 구절초 꽃봉오리들을 감상하고 멀리 가까이 산과 구름과 하늘을 감상하였다. 입과 눈이 즐거우니 귀 또한 즐거우라고 ‘산청의 노래’와 ‘산청 아리랑’이 접속곡으로 오후 내도록 흘러나온다. ‘청이네’에서 맛난 음식을 만들고 파는 큰들 단원들이 이 참에 ‘산청 아리랑’을 제대로 외우겠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일인지라 진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차가 많다. 평균 시속 90킬로미터 정도로 조용히 달린다. 30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좋은 날씨 속에 적당한 관객을 모셔놓고 신명 나게 걸판지게 한 판 놀아주기를 기대했다. 어쩌면 추석 다음날, 그러니까 연휴 마지막 날에는 만사 제쳐놓고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본다. 그나저나 추석날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어서 또 새벽 잠 깬 뒤 페이스북에 “아......”라는 장탄식을 올려놓게 생겼으니 이 일을 어쩐담...
2021. 9. 19.(일)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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