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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감사

by 이우기, yiwoogi 2021. 8. 11.

감사

 

냉장고에 탈이 났다. 7월 마지막 주쯤 눈치 챘다. 냉장실 물은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했는데 이상하게 미지근했다. 얌전히 있던 버섯에 곰팡이가 피었다. 냉장고 냄새가 많이 났다. 맨 아래 채소칸은 그나마 시원한데 위로 갈수록 밍밍했다. 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휴가 첫날이던 8월 2일 아침 9시에 전화했다. 자동응답기계 목소리가 들렸다. 번호를 몇 번 누른 뒤에는 "모든 상담원이 상담 중입니다. 다시 하시거나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고객님의 대기 시간은 약 10분입니다." 이러는 거다. 전화기 들고 있는 손에서 땀이 흘렀고 어깨는 저렸다. 몇 번 시도했으나 번번이 허사였다.

인터넷 누리집으로 들어갔다. 어찌어찌 하여 겨우겨우 '방문 서비스 예약'을 신청했다. 8월 10일 오후 5시다. 그러니까 8일 동안은 그 냉장고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게 됐다. 누리집을 살펴보니 수리기사(엔지니어)는 2명이다. 2명이 냉장고, 김치냉장고 따위 물건을 담당하는데, 그 지역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대단한 것도 있다. 기사 한 분이 한 가정을 방문하여 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30분으로 정해놓았다. 자동차로 이동하고, 주차하고, 계단(또는 승강기)으로 올라가고, 인사하고, 설명 듣고, 수리하고... 이러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고맙다. 냉장고를 수리점까지 들고 오라고 하지 않으니 고맙지. 한두 달 기다리라고 하지 않고 열흘만 기다리면 된다고 하니 고맙지. 기사분이 오시기만 하면 30분 안에 해결해 준다는 것이니(실제로는 그보다 더 빨리) 고맙지 아니할 손가. 8월 10일 오후 기사님이 오시면 시원한 물이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뜻하지 않게 미지근한 물을 드릴 수밖에 없음은, 미안함이다.

 

2021. 8. 6.(금)

시윤

 

그리고 뒷 이야기

 

8월 7일 토요일 오전에 수리 기사께서 오셔서 정말 15분 만에 수리해 주셨다. 예정일보다 3일이나 일찍 오셨다. 전화로 증상을 듣고서는 필요한 부품까지 미리 챙겨 오셨다. 한 치 빈틈없이 빠른 그의 손놀림을 어깨 너머로 보던 나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여 예정에 없이 일찍 방문해 주신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냥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했고, 아내는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드렸다. 결제도 현장에서 카드로 바로 하게 되어 불편하거나 어렵거나 번거로운 게 하나도 없었다(부품값+출장비 합하여 8만 2000원). 신기하고 고마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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