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길다. 길어서 안 좋은 게 있고 좋은 게 있다. 안 좋은 건 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할 때 잠시 어지럽다는 것이다. 나는 나흘 이상 휴가일 경우엔 마지막 날 꼭 사무실에 나가 본다. 혹시 컴퓨터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지나 않았는지 걱정되어서이다. 사무실 문 비밀번호도 기억해 내야 한다. 좋은 건 마음껏 빈둥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군대 간 아들이 휴일이라고 훈련을 받지 않는 데다 날마다 전화를 한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극단 큰들 마당극을 볼 기회가 생기는 것도 좋은 일 가운데 하나이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볼 기회가 생기는 건 그냥 좋기만 한 일이 아니다. 공연장까지 가는 길에서는 가을날의 햇살과 바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길가에 핀 살살이꽃(코스모스)이 반갑다고 인사한다. 노랗게 물들려면 아직 제법 기다려야 하는 은행나무는 거드름을 피우며 손짓한다. 황금들판이라는 말에 꼭 알맞게 익은 나락은 올해도 풍년임을 넌지시 일러준다. 그런 풍경을 보면서 마당극장으로 달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추석 앞날 우리는 바빴다. 어머니와 큰형과 아내와 제수씨와 나, 그리고 작은형과 동생이 총출동하여 차례상을 준비했다. 굽고 지지고 삶았다. 아무리 가짓수와 양을 줄여도 바쁘게 돌아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어머니 계신 동안 의논 좋게 해해연년 하나씩 줄이기로 한 덕분에 좀 나아지긴 했다. 추석날에도 차례 지내고 산소 다녀오고 오후엔 형제끼리 술판을 벌이느라 피곤이 쌓였다. 다음날은 하루 종일 지구를 짊어지고 있었다. 피곤은 겹쳤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볼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추석 연휴를 조금 피곤하게 보낸 나와 아내가 모처럼 다정하게 나들이하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우리는 아침부터 서둘렀다. 김치찌개를 끓이고 상을 차렸다.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사이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이 전화가 오지 않으면 일정을 맞추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마침 공연 시간에 아들 전화가 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알았는지 몰랐는지 9시 10분에 효전화를 걸어준 아들이다.
아내와 나는 2018년부터 마당극 공연을 보기 위해 하동에 15번은 넘게 간 것 같다. 주로 최참판댁에를 갔고 화개장터에도 두 번 갔다. 아무튼 하동 가는 길은 아내도 나도 너무나 익숙하여 눈 감고 운전하라고 해도 할 판이다. 새로 개통한 시속 60km짜리 도로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느릿느릿 달린다. 낮 최고기온이 24도라고 했는데 차 안은 그보다 더 덥다. 냉방기를 켜고 차 문을 열고 시원시원 달린다. 추석 연휴는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듯이.
나는 아내에게 근사한 점심을 사주고 싶었다. 하동에 있는 어느 식당엘 들어선들 근사하지 않으랴만 나는 오늘따라 ‘지리산 대박터 고매감’이라는 곳에를 꼭 가고 싶었다. 딱 한 번 가 본 곳인데 거기서 비빔밥이나 닭찜을 먹으면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곳은 가는 길이 정답고 식당에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이 아름답고 실내 분위기도 썩 괜찮은 때문이다.
섬진강 따라 19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최참판댁 방향으로 틀었다. 아기 주먹만한 감들이 주홍빛으로 반짝거렸다. 동정호 주변 무딤이들에는 허수아비들이 군데군데 알록달록 눈에 띄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허수아비 축제는 하지 않을 듯한데, 축제는 안 하더라도 해마다 해오던 풍습은 이어가려는 뜻인가 보다. 차가 많았다. 추석을 잘 쇤 장삼이사 필부필부들이 바람을 쐬며 해바라기들을 하는 것이겠다. 우리는 목적지가 있었으므로 곁눈질을 하면서 앞으로 달렸다.
지리산 대박터 고매감이라는, 이름조차 고상한 이 집은 10월 6일에야 문을 연다고 한다. 큰길 가에다 안내해 놓았으면 더 좋았을 휴가 안내를 우리는 그 식당 문앞까지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근사한 점심을 사주려던 계획은 조금 어긋났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올 가을에만 해도 최참판댁에 큰들 마당극 공연 보러 두어 번은 더 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당극 공연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토지장터주막의 등갈비찜을 한번은 꼭 먹어보기로 지지난 주에 다짐해 둔 터였기 때문이다. 돼지 등갈비찜을 먹기로 한 우리는 대박터에서 내려오면서 미리 전화를 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는 요리이겠기 때문이다.
토지장터주막은 큰들 배우들이 공연을 하는 날 점심을 주로 먹는 식당이다. 이 집 남자 사장님은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주민 배우로 출연한 적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도 이 집에서 국숫가락 제법 집어본 적 있다. 국물이 담백하고 국숫가락이 졸깃거려 이 집을 고집하는 단골이 제법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지지난 주에는 열무국수와 물국수를 먹었다. 그 앞날엔 비빔밥에다 부추전과 막걸리도 한잔했다.
최참판댁 주차장에 차를 댔다. 차가 많았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이 시간에 사람이 너무 없어 여기가 관광지가 맞는가 의심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이 당국의 코로나19 대응 지침을 이토록 철두철미하게 잘 지키는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입마개를 쓴 채 어슬렁어슬렁 최참판댁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코로나 때문에 온 국민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를 잘 아는지라 사람들 동작은 느렸고 간격은 벌어졌다.
식당으로 오르는 길가엔 감나무가 많다. 대봉감으로 유명한 하동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대봉감은, 해마다 10월 말쯤 안산 처가에 대여섯 접씩 보내는 이 지역 특산물이다. 장모님은 이웃으로부터 미리 주문을 받아 돈을 부치기도 한다. 우리는 마당극 보러 가는 길, 돌아오는 길에 맞춤한 가게에 들러 요리조리 감을 살펴본 뒤에 몇 상자를 사서 보낸다. 11월 말 장인 생신 때 처가에 가면 그 감 상자는 베란다 바람 잘 통하는 곳에 놓여 있거나, 12월 말 새해 인사드리러 가면 발간 홍시가 되어 김치 냉장고에 놓여 있곤 한다.
식당에서 남자 사장에게 카드를 건네면서 “오늘도 마당극 보러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었다. 나를 바라보더니 알은체를 한다. 극단 큰들 팬들은 이렇게 염화미소 심심상인으로 통하는 데가 있다. 마치 가을 햇살처럼 밝고 환하게, 마치 무딤이들을 건너다니는 바람처럼 느릿느릿한 그의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 이전에도 이 식당을 여러 번 이용했지만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간혹 쟁반국수나 메밀전병이나 들깨칼국수나 밀면 같은 게 먹고 싶으면 다른 데로 가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집을 마음속 깊이 점찍어 둔다.
반찬은 종류가 다양하다. 열무김치, 고구마순, 마늘종, 무생채, 우거지조림, 청포숙주나물, 오이장아찌, 매실장아찌, 멸치우거지조림, 명이나물, 시래기국이 나왔다. 오늘은 막걸리를 시키지 않았다. 막걸리는 대박터에서 돌아 나올 때 거기 언저리에 있는 악양 양조장에서 정감막걸리 세 병을 사 둔 덕분에, 술은 집에 가서나 먹자고 다짐해 둔 터였던 것이다. 잠시잠깐만 고개를 돌리면 가을과 농촌과 고향과 인정을 포개놓은 듯한 차분하고 다정한 분위기에서 갈비찜을 잘 먹었다. 밥은 좀 많지 않은가 싶었는데 먹다 보니 싹 다 비웠다. 반찬도 남기지 않았다. 오로지 남은 것이라곤 뼈다귀뿐이었다. 짜지 않고 달지 않고 맵지 않는 갈비와 반찬이, 추석 동안 오그라들어 버린 혀끝과 위장을 무장해제시켜 버린 것이었다.
나에게는 내 마음대로 정의해 놓은 어떤 명제 같은 게 있다. “어떤 식당이든 내가 가면 손님이 줄을 이어 찾아온다.”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갔을 때는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잠시 후 마치 바깥에서 줄지어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오늘도 그랬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다. 아내에게 말했다. “봐라, 오늘도 내가 이 식당에 오니 손님이 우르르 몰려온다 아이가?!” 아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빙긋이 웃었다. 나는 이어 말한다. “항상 밥때 맞춰서 맛있는 집을 찾아가기 때문 아이가?” 그제서야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극단 큰들이 공연하는 최참판댁 바깥 너른마당에는 공연을 하기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난 것 같다. 식사를 마친 배우들은 분장에 여념이 없다. 객석에 나란히 앉은 큰들 가족들이 알은체를 한다. 나와 아내는 최참판댁으로 들어가 맞춤한 곳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제법 더운 날씨였는데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옛날 어느 양반 한량이 있었다면 시조 가락깨나 읊었을 만한 자리다. 평사리 들녘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탁월하다. 멀리 섬진강이 햇살을 되쏘며 바다로 흘러가는 모습은 가히 선경이다. 그대로 드러누워 꿈나라로 간들, 지인들을 불러모아 막걸리판을 벌인들, 젓가락 두드리며 트롯 접속곡을 불러본들 그 순간의 감흥과 흥취를 다 설명해내지는 못할 듯했다. 그 와중에도 가을꽃들은 행여 눈길 받지 못할세라 빛깔과 향기를 내뿜기 여념이 없다.
웬 할아버지 한 분이 한복 차려 입고 관모를 쓴 채 나타났다. 입마개로 얼굴을 가려서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아내가 말을 걸었다. “훈장님이세요?” 삼삼오오 찾아와서 미리 신청을 하면 <논어>나 <소학> 같은 것을 강의해 준다는 안내글을 본 적이 있어서이다. 그는 “훈장이 아니라 최 참판이오.”라는 말로 받는다. 참판은 요즘으로 치자면 차관급이라고 한다. 하동군에서 명예 최 참판을 2명 위촉해 놓았는데, 두 분이 번갈아가면서 날마다 이곳으로 출근한다고 설명한다. 명예 최 참판은 관광객들에게 최참판댁의 유래를 비롯해 경치 안내, 고전 강독 같은 걸 해주신다고 한다. 제법 많은 관광객이 명예 최 참판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이윽고 마당극을 볼 차례다. 마당극 공연장에는 극단 큰들 단원이 제법 찾아왔다. 그들도 연휴를 즐기기 위해서 왔을까. 아직 시작 단계인 작품의 품평을 위해 왔을까. 배우들을 응원하고 관객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왔을까. 극단 단원 얼굴이 여기저기서 보이니 인사할 일이 많아져서 좋다. 이야기를 길게 나누지 않아도 마주보는 눈빛만으로도 알겠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유난히 힘들게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나 또한 말 없는 말로 응원하는 마음을 보낸다.
진행을 맡은 박정현, 박정민, 윤민서 씨는 관객들에게 손 소독을 안내하고 그들의 몸 온도를 잰다. 띄엄띄엄 거리를 두게 한 뒤 인적사항을 적도록 한다. 객석 걸상은 사이사이 널널하게 떨어져 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 곳에서 둑이 무너질지 모르므로 ‘만전을 기하는’ 것이리라. 그들의 안내대로만 하면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겠거니 믿어도 좋겠다. 공연 중간에 한 관객이 자리를 비웠다. 꼬마 손님이 그 자리를 채웠다. 꼬마 관객은 방역 절차에 따라 들어온 게 아니다. 박정현 씨가 살며시 다가가서 그러면 안 된다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꼬마는 두말 없이 돌아나갔다. 그런 공연장이다.
오늘은 최참판댁에 관광객이 아주 많았다. 극단 큰들은 관객석에 앉을 수 있는 인원을 80명으로 한정했다. 원래 야외 공연의 경우 100명이 기준이지만 그것보다 더 강화한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공연장의 안과 밖은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냥 공연장 옆을 지나가는 일반 관광객(마당극을 보기 위해 찾아온 나 같은 사람을 이반 관광객이라고 친다면)들도 가는 길을 멈추고 잠시 공연을 본다. 서서 보는 김에 끝까지 보는 사람도 있고 보다가 그냥 가는 사람도 있다.
마당극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손뼉 소리가 나오고 웃음이 터졌다. 나는 자꾸만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오늘 세 번째 보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미 그다음 장면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먼저 터져서 애 먹었다. 아, 그리고 어제 오늘 이것 저것 먹은 게 잘못됐는지 자꾸 아랫배가 아파서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나는 늘 이 모양이다. 내 대장(大腸)은 정기룡 대장(大將)의 반에 반만이라도 따라갔으면 좀 좋으련만, 나에겐 그런 일이 늘 꿈같이 여겨진다.
마당극 <정기룡>을 세 번째 보는 오늘 내가 가장 눈여겨본 장면은 무엇일까. 감사군 병사들이 칼춤을 추는 장면, 할매와 동네 아낙들의 일상 대화 장면, 아군끼리 벌이는 갈등 장면, 왜병들이 나타나는 장면, 객석에 있는 관객 배우의 등장, 화려하고도 멋진 마무리 등 여러 장면이 눈과 머리와 가슴에 들어앉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음향콘솔에서 연출을 맡고 있는 하은희 씨를 가장 자주, 가장 열심히 보았다. 마당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극의 내용을 열심히 따라가면서도 내 눈길은 자꾸만 무대 오른쪽에 있는 음향콘솔로 향하는 것이었다.
하은희 씨는 마당극 시작할 때 어린 정기룡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자장가를 짧게 부른다. “하동에 정기룡 장군 나셨네!”라며 아들의 장래를 축원하던 그 사람이다. 그는 그 부분만 연기한 뒤에는 음향콘솔에서 진은주 기획실장과 함께 음향을 담당한다. 그녀는 냉정하고 차분한 연출가이기를 포기한 듯했다. 아니, 타고난 성정이 무엇 하나라도 대충대충하지 않고 완벽하고 무결해야 마음을 놓는 사람인 듯했다. 내가 그분의 성정까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 공연장에서 본 하은희 씨는 그랬다.
등 뒤에서 가을 햇살이 따끈거리는 것도 잊은 채 하은희 씨는 마당안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대사와 동작과 노래와 춤에 몰입해 있었다. 마당극 시작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배우의 모든 대사와 동작과 노래와 춤을 완벽하게 머릿속에 입력해 놓고서는 그 대사와 동작과 노래와 춤을 마당 안으로 불어넣고 밀어넣는 것만 같았다. ‘몰입’,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몰입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한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열정, 애정, 노력, 관심, 걱정, 불안, 다행, 안심, 기원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이 응축된 어떤 덩어리였다. 그 덩어리는 하은희 씨의 눈빛으로 쏟아져 나왔다. 배우들과 함께 부르는 노랫가락으로 삐져 나왔다. 참으로 희귀한 장면이자 거룩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일에 몰입하는 사람은 멋지다. 몰입하여 성공해 내는 사람은 더 멋있다. 몰입하여 성공을 이뤄낸 뒤에 자기는 짐짓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한발 물러서는 사람에게서는 인간미가 느껴진다. 하은희 씨는 마당극이 진행되는 내내 그토록 깊고 넓고 높게 몰입해 놓고는, 극이 끝나자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부처님이 사바 세계를 향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웃음을 던지듯이 말이다. 그녀가 빙그레 웃었으므로 마당극은 매우 성공적으로 잘 끝난 것이다.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마당극을 완성했는데 누군가가 반드시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여야만 모든 사람이 비로소 마음을 놓게 되는 그런 것 같았다고나 할까.
하은희 씨는 마당극 <정기룡>의 연출을 맡았다. 나는 ‘연출’이라는 말을 가끔 쓰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설명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고 생각하고 겪는 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연출은, 사전에서는 ‘공연 예술이나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각본 또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기, 장치, 의상 따위의 요소들을 종합하여 일관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냄’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연출은 한 작품의 총책임자 같이 보인다. 그랬구나. <정기룡>의 총책임자이니만큼 그토록 집착하듯이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토록 눈물 나도록 몰입할 수밖에 없었구나. 그렇게 이해된다. 그런 이해 뒤에 따라오는 건 감동이다. 무한 감동이다.
아내와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군대 가 있는 아들 이야기, 혼자 계실 어머니 이야기, 가 보지 못한 처가댁 이야기, 처가댁에 대봉감 보낼 이야기, 트럼프 코로나 걸린 이야기, 하동 코스모스 축제 이야기, 내일 모레 출근할 이야기 따위를 맥락없고 순서없이 주고받았다. 극단 큰들 마당극은 보면 볼수록 재미있어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정기룡>도 지지난 주 야외 두 번째 공연보다는 더욱 다듬어진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7월 1일 하동문화예술회관에서 처음 공연한 뒤 야외에서는 이제 세 번 공연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매만지고 다듬고 벼리고 갈고 닦아서 더 멋지고 훌륭한 작품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나누었다. 오는 길 차는 많았다. 다들 추석 연휴를 그렇게들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닷새 연휴인지라 내일 일요일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가봐야겠다. 사무실 문 비밀번호도 확인해야겠고 컴퓨터도 잘 켜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밀린 일 한두 가지 잽싸게 처리한 뒤 하동으로 달릴 예정이다. 내 발목을 붙드는 그 무엇이 있어서 주저 앉을 것인지, 평사리 너른 들녘 손짓이 너무 예뻐서 뿌리치고 달릴지는 내일이 되어봐야 알겠다. 추석 연휴가 긴 덕분에 마당극을 두 번이나 보게 된다면 참 좋겠다.
2020. 10. 3.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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