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대 앞 <돼지랑 순대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혼자 갔다. 손님이 많았다. 손님은 계속 왔다. 늙은 부부가 먹고 갔다. 부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단체로 와서 소주, 맥주도 몇 병 비우고 갔다. 학생들은 얌전히 앉아 먹었다. 수다를 떠는 젊은 여성도 있었다. 내가 밥 먹는 동안 세 사람이 배달을 시켰다. 손님이 많다는 것은 이 집을 인정할 만한 소중한 근거가 된다.
혼자 가면 네모난 나무 쟁반에 반찬을 놓아 준다. 국수, 새우젓, 다진양념, 다진고추, 매운고추, 양파, 마늘, 깍두기, 배추김치, 부추, 된장이 질서정연하게 놓였다. 나는 김치와 마늘, 양파 , 된장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는 몽땅 털어넣는다. 오늘은 새우젓이 좀 많았던지 조금 짰다. 나는 국수와 고기 건더기 등속을 제법 먹고 난 뒤 밥을 만다. 이 집 주인이 그렇게 권한다. 밥과 반찬은 얼마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다.
돼지국밥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그런데 집집마다 다 다르다. 어떤 집에는 살코기를 많이 넣는다. 어떤 집에는 갈빗살이 들어 있다. 어떤 집에는 앞다릿살이 주인공처럼 버티고 있다. <돼지랑 순대랑>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편육처럼 얇게 썬 고기는 말랑말랑하다. 비계도 조금 보인다. 살코기도 물론 있다. 무엇보다 머릿고기를 몇 점 넣어주는 게 색다르다. 나는 미끄덩한 맛을 즐기는 편이다.
돼지국밥 국물은 대개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무엇으로 우려내는가에 따라 국물 맛이 완전히 다르다. 이 집에서는 무엇으로 우려냈을까. 그것도 중요하지만, 국을 끓일 때 무엇을 더 집어넣는가도 중요하다. <돼지랑 순대랑>에는 콩나물이 한두 젓가락 들어간다. 돼지국밥인데도 콩나물 해장국 맛을 살짝 내어준다. 나는 이게 참 마음에 든다.
예전에는 쉬는 날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한 달에 하루 쉬었다. 처음엔 월요일 쉬었다. 월요일 출근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불만을 토로했던가 보다. 요즘은 일요일마다 쉰다. 휴일이라 나들이 나선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왔다가 헛걸음을 하곤 한단다. 혁신도시 공기업 직원들이 "이렇게 싸고 맛있고 많이 주는 집은 못 봤다"라면서 찾아온단다. 진주역 부근 아파트 공사장 일꾼들이 너덧씩, 여남은 명씩 찾아온다. 주인과 일꾼들이 일요일마다 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내가 이 집을 자주 찾는 건 경상대 후원의 집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스스로 증명된다.
엊저녁에는 여차저차하여 제법 마셨다. 아침에 겨우 일어났다. 오전 내내 힘들었다. 출근하던 7시부터 점심 먹던 12시까지 5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제 기운이 좀 난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머릿속은 아직 좀 무겁지만, 괜찮아질 것으로 믿는다. 든든하게 뜨끈뜨끈하게 시원하게 해장 잘 하였으니 오후엔 휴가 내어 놀러나 가야겠다. 마침 동생이 거제에서 횟집을 예약했다 하니...
2020. 6. 26.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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