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횟집을 가려면 이런 집을 가야지.
회는 대충대충 굵직굵직 설겅설겅 썰어야 제맛이지. 대패밥처럼 얇시리하면 젓가락 갖다대기가 좀 민망할걸. 묵직한 접시는 정중앙에 떡하니 놓는 게 손님에 대한 예의 아니겠어?
맛난 회를 지키기 위한 푸성귀들의 단결력이 눈길을 끌지. 하도 재미있어서 출석을 불러보는데... 고구마 감자가 최전선에 서고 곶감 새우 돼지감자는 그 곁을 철통방어하지.
마는 기름장과 어깨 겯고 인삼은 꿀과 공동전선을 펴며 마른오징어는 마요네즈와 ‘마씨’ 동성으로 똘똘 뭉쳐 결합하였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합작전 앞에 동공이 풀릴지도 몰라.
당근 고추 순무 파프리카 양파는 우글우글 모여앉아 호시탐탐 넘보는 사람의 눈길을 딴데로 분산시키는 구실을 맡았어. 교란작전 최고 명수들이 보호색을 뒤집어 썼거든.
버섯전 호박전 마전 같은 전 종류는 언덕 아래 매복한 것처럼 언제든 달려나와 입으로 돌진할 태세를 갖추었군. 날 잡아잡숴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누룽지 햄야채볶음도 여차하면 돌격할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데 건너편 야들야들 파릇파릇 엉개잎이 맞은편 죽순 나물과 열심히 교신 중이라네. ‘한 사람이 젓가락을 들었다 오바~!’ ‘오바는 비싸다 잠바로 하라~!’
어쩌랴. 젓가락은 한가운데로 용맹 돌진하려는데 온갖 잡것들이 자기 먼저 먹어달라고 하도 보채는 바람에 회는 몇 점 먹지도 못하고 배만 불러졌으니. 형형색색 산해진미가 주인공 횟감을 둘러 싸고 있으니 이 낭패를 이기려면, 별수 없지. 과식투쟁, 과음투쟁이라도 할 수밖에.
모름지기 횟집을 가려면 이런 집을 가야지. 반찬인지 안주인지 구분이 되지 아니하고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먹거리의 행렬을 즐겨야지. 실컷 먹고 신나게 떠들고 끝없이 마셔도 값은 웬만한 횟집에 견주면 조족지혈인 이 횟집, 이런 횟집에 가야 제맛이지.
2020. 6. 1.
이우기
어랑횟집: 진주 상평동 학생실내수영장 정문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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