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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민들레

by 이우기, yiwoogi 2020. 4. 11.

 

민들레를 찍었다. 숙호산 들머리에 민들레가 있었고 숲속에도 있었지만 찍지 않았다. ‘민들레 꽃핀 걸 본 것 같은데 벌써 홀씨가 되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가수 박미경이 부른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노랫가락을 잠시 흥얼거리다가 이내 멈추었다. 멈추고자 하는 생각이 일어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른 데로 생각이 옮아간 것이다.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도 흥얼거려 보다 곧 멈춘다.

 

한 시간 동안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곳에서 다시 민들레 홀씨를 만났다. 성심병원 앞이다. 눈만 돌리면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 주는 민들레꽃과 홀씨를 보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해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꽃 어느 풀 어느 나무 하나가 그렇지 않은 게 없지만, 민들레는 유난히 반갑고 정겹고 그저 고맙다.

 

민들레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꽃이다 이른 봄에 시작하여 초여름까지 피고 지고 또 핀다. 햇볕 따뜻한 가을날에도 민들레는 가끔 눈에 띈다. 산에서도 피고, 들에서도 핀다. 논두렁 밭두렁에서도 피고 아스팔트 귀퉁이에서도 피고 콘크리트 담벼락 틈서리에서도 노란 꽃을 피운다. 봄 개나리보다도 더 노랗고 노랑 병아리보다도 더 노랗게 피고 또 핀다. 꽃은 며칠 뒤 새하얀 눈꽃 같은 홀씨로 되살아난다. 홀씨는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날개를 민들레 씨앗은 천지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

 

민들레의 생명력은 잔디 못지않다. 흙과 물과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는 당연히 잘 자라고 ‘여기에도 민들레꽃이 핀단 말인가!’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한 곳에서도 어김없이 민들레를 만날 수 있다. 밟혀도 다시 살아나고 몇날 며칠 비가 오지 않아도 살아난다. 900번이 넘는 외침에도 꿋꿋이 살아온 우리 겨레의 삶을 민들레에 견주기도 한다.

 

민들레는 몸에 좋은 약초이다. 봄이면 들로 산으로 민들레 캐러 다니는 사람이 제법 많다. 간에 좋다고 들었는데, 그것까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노랑 민들레보다 흰 민들레가 훨씬 약효가 높아 등급이 높다고 들었다. 술 때문에 간이 안 좋아진 작은형을 위해 어머니는 흰민들레즙을 사 준 적 있다. 나도 가끔 단골 ‘강복자식품’에서 민들레즙을 주문해 먹는다.

 

민들레를 한의학에서는 ‘포공영(蒲公英)’, ‘포공초(蒲公草)’라고 한다. 민들레의 아홉 가지 습성을 사람이 가져야 할 아홉 가지 덕으로 비유한 ‘포공구덕(蒲公九德)’이 있다고 한다. 옛날 서당에서는 마당에 민들레를 심어 학생들에게 교훈을 삼도록 했다고 한다. (나영학, ≪야생화 산책≫(경상대학교출판부, 149~150쪽에서 인용)

 

첫째, 마소에 짓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으니 인(忍)의 덕이요

둘째, 뿌리를 자르거나 캐내어 말려도 싹이 돋아나니 강(剛)의 덕이요

셋째, 돋아난 잎사귀 수만큼 꽃이 차례를 지켜 한 송이씩 피어나니 예(禮)를 아는 덕이요

넷째, 잎이나 뿌리를 먹는데 온몸을 다 바치는 쓰임새가 있으니 용(用)의 덕이요

다섯째, 꽃에는 꿀이 많아 벌, 나비가 모여드니 정(情)이 있음이요

여섯째,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하얀 젖이 나오니 사랑을 베푸는 자(慈)의 덕이요

일곱째, 머리카락을 검게 하여 늙은이를 젊게 하니 효(孝)의 덕이요

여덟째, 몸에 나는 나쁜 종기는 민들레 즙이 으뜸이니 인(仁)의 덕이요

아홉째,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스스로 증식하고 융성하니 용(勇)의 덕이다.

 

경상대학교 학술림에 근무하고 퇴직한 나영학 씨는 민들레를 두고 “세계 자녀교육의 지침서인 이스라엘의 ‘탈무드’보다도 풀 한 포기에서 사람의 덕을 배우게 한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이 훌륭한 교육지침이라 할 수 있다.”라면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교육지침초(敎育指針草)인 민들레에서 청소년들이 많이 배웠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민들레는 서양민들레라고 한다. 나영학 씨는 “오랫동안 우리의 사랑을 받던 정겨운 토종민들레는 점차 밀려나고 서양에서 귀화한 서양민들레가 우리 땅을 점령하고 있으니 안타깝다.”라고 말한다.

 

2020. 4. 11.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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