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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극단 큰들의 마당극에서 배우는 것들

by 이우기, yiwoogi 2020. 4. 18.

2018년 12월 20일 발행한 (사)경남민예총 <예술IN 예술人> 9호에 실은 원고입니다. 글 쓴 때는 2018년 9월 30일쯤입니다. 이렇게 미리 밝히는 까닭이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압니다. 안 읽어보시면 모릅니다. 몰라도 됩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 없는 큰들 마당극이기에 1년 반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공개합니다. /이우기

 

나는 ‘극단 큰들’(http://onekoreaart.or.kr, 055-852-6507)의 자랑스러운 후원회원이다. 내는 후원금도 적고 후원한 기간도 이제 겨우 2년 남짓밖에 안 됐지만 어쨌든 명예로운 후원회원이다.

2018년 5월 19일부터 9월 30일까지 넉 달 동안 극단 큰들 마당극을 스무 번 보았다. <효자전> 아홉 번, <오작교 아리랑> 일곱 번, <최참판댁 경사 났네> 네 번이다. <효자전>은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 잔디마당 상설공연과 제18회 산청한방약초축제 상설공연으로 보았다. <오작교 아리랑>은 동의보감촌에서 네 번, 남해군 스포츠파크에서 한 번, 사천시 삼천포대교공원에서 한 번,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한 번 보았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상설공연으로 보았다. 2017년 6월 큰들 창립 33주년 정기공연 때 <오작교 아리랑>을 본 것을 합하면 스물한 번이다. 한 해 공연 관람 기록은, 아마 큰들 단원을 빼고는 최고일 것이다. 후원회원으로서 마땅한 도리였다.

 

오작교 아리랑

배우들은 마당에서 공연할 때 속옷까지 흠뻑 젖을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역사상 가장 더운 것으로 기록된 올 여름, 그 지옥 같은 폭염 속에서도 배우들은 뜨거운 마당을 휘저었다. 8월 15일 광복절 섭씨 35도에 바람 한 점 없는 최참판댁 안마당에서 배우들은 정말 사력을 다해 연기했다. 전쟁이었다. 미치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장면들을 코앞에서 직접 본 사람으로서 무엇이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인지상정이었다. 후원회원으로서 무엇이든 하고 싶어졌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 세 편을 볼 때마다 나만의 후기를 썼다. 합하면 200자 원고지 500장을 넘는다. 마당극ㆍ연극 따위 공연예술에 대해 문외한이고 민족예술ㆍ전통예술이란 것에 대해서도 익히 공부한 적 없지만 마당극을 본 뒤 감회마저 없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후기는 사진과 함께 누리방(블로그)에 올렸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따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연결했다. 후기를 보고 한 명이라도 더 마당극을 보러 가고, 그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후원회원이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내가 큰들을 후원하는 방식이다. 제법 많은 사람이 처음으로 마당극을 접하였고 그중 몇몇은 후원회원이 되었다. 노력한 바가 헛되지 않았다.

 

효자전

나는 왜 이렇게 큰들의 마당극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열심히 관람하고 긴 글을 써서 널리 알리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렇게 재미있고 의미있고 훌륭한 작품을 혼자서만 즐기는 건 죄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큰들의 마당극을 보면서 극 안팎으로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여섯 가지로 풀어서 이야기해 본다.

 

큰들 마당극은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 현재 절찬리 공연 중인 세 작품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두 번쯤은 생각해 봤음직한 주제들을 다룬다. <효자전>은 제목에서 보듯 효도에 관한 이야기다. <오작교 아리랑>은 남북 통일에 대한 이야기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박경리 소설 『토지』를 각색한 것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세 작품에서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아주 쉽다. 초등학생부터, 아니 그보다 더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춤으로, 때로는 비장한 대사로 효를 이야기하고 통일을 노래하고 광복을 외친다. 우리가 잊고 살아서는 절대 안 될 매우 중요한 주제를 가볍게 눙치고 매섭게 후려치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관객과 호흡한다. 세 작품은 우리가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직간접적으로 일깨워준다. 큰들 마당극에서 첫 번째 배울 점이다.

 

큰들 마당극에서 배우와 관객은 하나가 된다. 배우와 관객은 집단 신명 같은 것을 부지불식간에 느끼게 된다. <오작교 아리랑>과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전통혼례 장면이 있다. 이때 신랑은 관객 가운데 한 명을 지명하여 무대로 불러낸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요 배역을 맡게 된 관객 남자의 반응은 각양각색 천양지차이다.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던 관객들은 뜻하지 않은 당황스러움과 황당스러움, 그리고 더할 수 없는 재미를 느낀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이 관객 신랑은 처음엔 머슴이었다가 나중엔 독립군이 된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남북 갈등을 푸는 중요한 소재로 전통 연희 ‘버나놀이’가 등장한다. 관객 절반씩 신랑편과 신부편으로 나누어 버나 이어달리기 경기를 한다. 모든 관객이 응원가를 부르고 만세를 외친다. 작품마다 관객은 아주 중요한, 배우 아닌 배우가 된다. 그런 과정에서 관객들의 일상 스트레스가 마당극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큰들 마당극은 관객들 머릿속 번잡한 잡것들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다. 일상 스트레스를 모두가 함께하는 마당에 끄집어내 놓고 함께 놀면서 극복하자는 것, 큰들 마당극이 주는 두 번째 고마움이다.

 

효자전

큰들 마당극을 보다 보면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이 생겨난다. 마당극이라는 연희 방식은 대략 1970년대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생겨난 것으로 본다. 마당극은 우리 겨레 전통 연희인 탈춤의 형식과 내용을 현대 문화 조류에 걸맞게 발전적으로 계승, 재창조한 것이다. 시장바닥과 같이 장소 제한 없이 특히 서민들이 빙 둘러앉아 양반계급을 풍자ㆍ비판하던 것이 오늘날 마당극의 모태라 할 수 있다. 마당극에는 굿, 판소리, 풍물을 비롯해 버나놀이, 탈춤놀이 같은 전통놀이가 많이 배치돼 있다. 전설ㆍ신화적 요소도 가미된다.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마당극을 전통예술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마당극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의 공연 양식이다. 연극, 뮤지컬 따위와 완전히 다른 마당극은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매우 독특한 공연 형식이다. 배우들 대사와 의상, 음향과 노래 들은 민중들 일상생활과 밀착해 있다. 장삼이사 갑남을녀가 늘상 주고 받는 대화, 그들이 부르는 노래, 그들이 입는 옷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고 묶여 있다. 전통성과 민중성이 버무려져 있다. 그렇다고 현대 서양 악기나 음악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한 것조차 우리 것으로 비벼내는 재주가 있다. 귤이 황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데, 서양 것이 큰들로 들어와서 우리 것이 되었다고 할까. 우리 것을 지키고 가꿔나갈 책임, 큰들 마당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세 번째 메시지다.

 

큰들 마당극을 보다가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영화나 연극 감상 또는 독서 따위 간접 경험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다. 이때 눈물은 마음속 묵은 찌꺼기나 머릿속 번뇌를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고 간접경험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이 해소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일’을 ‘카타르시스(catharsis; 정화작용)’라고 했다. 마당극은 성격상 해학과 익살, 풍자에 가깝다. 웃음이 주무기다. 그런데도 마당극을 보다가 눈물이 흐르게 된다. 이를 두고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효과는 분명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검은 옷 입은 키 큰 저승사자 뒤에 끌려가는 장면에서 자신의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를 떠올릴 것이다(<효자전>). 남북이 극심한 감정 대립으로 갈등이 최고조에 치달을 순간 ‘아리랑’을 부르는 배우가 홀로 등장할 때 한민족 디엔에이(DNA)를 가진 사람이라면 목이 맬 것이다(<오작교 아리랑>). 일본군이 아리따운 어린 여인의 오른손을 꽉 쥐고 강제로 끌고갈 때 그의 왼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 안간힘으로 버티는 흰옷 어머니를 본다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비분강개할지도 모른다(<최참판댁 경사 났네>). 배우와 관객이 하나 되어 태극기 흔들며 독립만세 외치다가 문득, 꼭꼭 잠가두었던 감정의 창고가 열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지도 모른다(<최참판댁 경사 났네>). 관객들은 마당극 속에 몰입하여 자기도 모르게 눈물 흘리면서 스스로는 정화작용을 일으키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각성에 이르게 된다. 큰들 마당극에서 얻는 네 번째 깨달음이다.

 

오작교 아리랑

큰들 마당극을 보고 나면 긍정과 희망의 에너지가 넘치게 된다. 단원들은 짧게는 이삼 년에서 길게는 삼십여 년 활동하고 있다. 연기는 일반 사람이 논할 단계를 넘어섰다. 스태프와 배우들 호흡도 흠잡을 데 없다. 극단 큰들 단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최선을 다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며 일한다. 공연 들어가기 전에 만나든, 공연 끝난 뒤 만나든 단원들과 잠시라도 눈 마주친다면 저절로 웃게 된다. 저절로 기쁨을 느낀다. 긍정적 에너지가 이들 얼굴 표정에 가득한데 그걸 조금이라도 얻는다면 삶이 즐겁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단원들의 긍정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선배 배우 송병갑 씨와 김혜란 씨 부부는 <예술IN 예술人> 8호(2017. 12.)에 실린 인터뷰에서 “큰들에서는 늘 기상(氣像)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공연의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 아무래도 덜 지치는 것 같아요. 공연이 아무리 빡세게 계속돼도 내가 건강하게 오늘도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관객들이 우리 공연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고… 이런 것이 정말 감사하거든요.”라고 말한다. 부부 단원이 많은 것도 그 덕분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큰들의 넉넉하고 꼼꼼하고 거센 기상을 좀 얻어 갈 기회를 얻는다. 긍정 에너지는 우리가 큰들이라는 공동체에서 얻어 갈 다섯 번째 보물이다.

 

큰들 마당극에서는 부분적인 것, 세부적인 것 즉 디테일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디테일은 매우 작고 적지만 전체를 흔드는 실마리가 된다. 마당극 한 편에는 수많은 배우(캐릭터)가 등장한다. 그 캐릭터들은 쉴 새 없이 말하고 춤추고 노래한다. 그것들이 허공에 뜬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음향과 소품들이다. 음향과 소품이 따로 놀지 않고 연기와 찰떡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60~70분 남짓 진행되는 마당극을 보고 있노라면 어쩜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하찮게 보이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짜맞췄을까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녹음한 음악을 트는 것에서부터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악사가 되어 맞춰주는 음향(주로 북ㆍ장구ㆍ꽹과리ㆍ심벌즈 들), 크고 작은 소품들까지 모든 게 정밀한 컴퓨터로 만들어 붙여놓은 것 같다. 잘 만든 영화의 컴퓨터 그래픽(CG)을 능가할 정도다. 한양에서 내의원 시험에 합격한 귀남과 벼슬길에서 밀려나 낙향할 때 귀남의 신발은 다른 것이었다(<효자전>). 그것까지 봐주는 관객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큰들은 그런 것도 놓치지 않는다. 우리 세상도, 우리 직장이나 가정도 각자 역할과 그 역할을 뒷받침하는 자질구레한 물건들 또는 제도나 법률들이 잘 맞아떨어지면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마당극을 보면 그런 것을 느끼게 된다. “프로니까 프로답게 완벽하게 잘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말로 뭉개고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촘촘하면서도 느슨한, 그래서 더 완벽하게 짜인 대본, 연출, 연기, 음향, 소품들의 향연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큰들 마당극의 여섯 번째 미학을 배운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

극단 큰들 마당극이 정말 그만큼 대단한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문부호를 던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증명해 주는 지표를 몇 가지 들여다본다. 마당극 <효자전>은 2010년 5월 8일 처음 공연하기 시작하여 2018년 9월 30일 현재까지 이백여덟 번 공연했다. 7월 21일 이백 번째 공연 맞이 작은 잔치를 연 바 있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토지문학제 10주년 행사 중이던 2010년 9월 25일 첫 공연을 올린 이후 백쉰두 번 공연했다. <오작교 아리랑>은 2015년 5월 2일 처음 공연하여 백스물두 번 공연했다.

 

극단 큰들은 이 세 작품으로 한 해 평균 백 번 이상 공연한다. 올해는 산청과 하동 상설공연 이외에도 사천, 충주, 안산, 남해, 밀양, 진주, 창녕, 의령, 인천, 영동, 화순, 서울 등지에서 잇달아 공연했다. 전국 어디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극단 큰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든지 불러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효자전>은 2010~2018년 산청한방약초축제 상설공연, 2013년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상설공연, 2011~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신나는 예술여행 선정, 2018년 우수예술단체 찾아가는 문화활동 선정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오작교 아리랑>은 2017년 일본 일곱 개 도시 순회공연,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신나는 예술여행 선정, 2017~2018년 경남도민예술단 연속 선정, 2018년 문화가 있는 날 직장문화배달 선정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이룩한 주요 성과만 간추려도 이 정도이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첫 공연 이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레지던스사업 지원을 받아 내용의 완성도를 높여 지금 모습으로 정착했다. 연간 한 자리에서 스무 번 이상 공연해 오면서 최참판댁 최고 명물, 최고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전국의 문학동호회나 문학기행 모임, 단체 여행객들이 일부러 공연날짜에 맞추어 여행 일정을 잡기도 한다.

 

특히 큰들은 올해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역형 콘텐츠 개발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우리 지역 역사인물인 남명 조식 선생을 마당극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10월 20일 산청군 시천면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초연한다고 하니, 이 책이 나올 즈음이면 새 작품이 밝은 햇빛 아래에서 눈 맑은 관객들을 만난 뒤이겠다. 큰들은 지난 6월 오스트리아 그라츠 세카우 교구 설정 80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되어 유럽의 한복판에서 풍물놀이로 세계 관광객들에게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9월에는 독일에서 독일, 한국, 일본인이 함께 마련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에 참가하기도 했다.

 

큰들 마당극을 보는 것은 스스로 삶을 살찌우는 일이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생각을 편안하게 해 준다. 절대 비켜갈 수 없는 역사적ㆍ시대적ㆍ개인적 소명과 소임 앞에서 좌고우면하는 사람이라면 큰들 마당극을 통해 환한 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천지개벽하듯 상전벽해하듯 하루가 다르게 외국 것이 밀려들어 오는데, 우리네 정신과 혼이 어느 연줄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면 큰들 마당극을 유심히 여러 차례 볼 일이다. 마당극 만드는 과정, 공연하는 모습, 관객 대하는 태도 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붙들어 보듬어야 할 물질적ㆍ정신적 가치라는 게 무엇인지, 진정성은 어떻게 드러나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허락하면 ‘큰 마당’으로 달려간다. 공부하러 간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

 

2020. 4. 18.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