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상황이 매우 나아졌다. 우리나라에선 하루 10명 안팎의 감염 확진자가 생겨난다. 감염됐다가 치료 받고 나은 사람도 무척 많아졌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다시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는데, 다행히 이 사람 때문에 걸리는 사람은 아직 없는 듯하다. 엊그제 확진 판정을 받은 10명 가운데 9명은 해외에서 들어온 사람이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공항에서부터 옮아가는 곳을 따라가며 확인하기 때문에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 솜씨는 아주 빼어났다. 전 세계에서 앞다퉈 배우려고 하고 도와 달라고 한다. 부러워 하거나 시샘하는 나라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진단 도구를 보내달라고 하는 나라도 많다. 진단 도구와 교민의 귀국을 맞바꾸는 기발한 생각도 해냈다. 코로나19 사태 100일쯤 된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국가의 품격’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정부에서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강력한’을 뺐다. ‘완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자는 것이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대비하면서도 일상의 삶을 조금씩 회복하게 됐다. 교회도 나간다. 절도 문을 열었다. 프로야구나 축구는 비록 관중은 없지만 경기를 시작했다. 관중이 모인 가운데 경기를 곧바로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문을 꼭꼭 걸어닫았던 유원지나 휴양림, 관광지 들이 문을 열었다. 입장하기 위해서는 몸에 열이 있는지 재 보아야 하고 입마개도 해야 하지만, 어쨌든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을 회복한 듯하다. ‘생활방역’으로 넘어갈 단계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석 달 가까이 일을 제대로 못한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행ㆍ숙박업계를 비롯해 식당 같은 업종이 직격탄을 맞았다. 생활 필수품 아닌 물건을 파는 가게들은 개점 휴업 상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됐거나 무급 휴직 상태다. 아주 단순한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도 위기에 놓였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에 놓인 분들이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위기에 빠진 경제 주체들을 살려낼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기간산업을 우선 일으켜 세우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중소상공인 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원래대로 돌아갈지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것을 예상하여 이런저런 걸 준비하고 마련하는 때가 온 것이다. 다른 나라 상황과 견줘보면 참 대단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코로나19가 끝난 뒤의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을 쓴다. 언론 기사 제목을 살펴 보면 △박원순 시장, ‘포스트 코로나 시대’..새로운 표준 제시(4.27. 파이낸셜뉴스) △‘포스트 코로나’…이낙연 당대표 출마에 힘 실리나(4.27. CBS노컷뉴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준비하자(4.20. 한국일보) △‘포스트 코로나 경제후폭풍 대비 최우선(4.17. 수도권일보) △‘포스트 코로나’ 최우선 과제는 ‘일자리’(4.19. 부산일보) △강화군, ‘포스트 코로나19’ 전략 수립에 총력(4.21. 경기일보) △‘포스트 코로나’ 경제대책 속도전 필요(4.20. 전북도민일보)… 이렇게 나온다.
‘코로나’는 어찌어찌 대충 알겠는데 ‘포스트’는 무슨 뜻일까. 들머리사이트 ‘다음’에서 찾아보았다. 포스트(post)는 지위 또는 부서를 이르는 말이다. ‘기둥, 표주, 붙이다. …을 공표하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편, 우편제도, 우송하다’와 같은 뜻도 있는가 보다. 그러면 ‘포스트 코로나’는 무슨 뜻인가. 잘못 찾은 듯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있다. 주로 문학 용어로 썼다. ‘모더니즘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으로, 비역사성, 비정치성, 주변적인 것의 부상, 주체 및 경계의 해체, 탈장르화 등의 특성을 갖는 예술상의 경향과 태도’라고 한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단순히 말하면 ‘후기모더니즘’이라고 한다. 즉 ‘모더니즘 이후’라는 말이다.
‘post’가 한 낱말로 쓰일 때는 ‘직위, 부서’의 뜻인데 이게 어떤 단어의 앞에 붙어 접두사 구실을 하면 ‘~이후’라는 뜻으로 쓰이는가 보다. 어렵다. 아무튼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이후’라는 뜻이고 ‘포스트코로나’는 ‘코로나 이후’를 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없어지고 시민들이 평범하고 평안한 일상을 회복한 상태를 ‘코로나 이후’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알기 쉽게 ‘코로나 이후’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포스트 코로나’라고 할 건 뭔가.
유식을 자랑하는 것인가. 우리나라 국민들, 언론 소비자들이 이 정도는 다 알아듣는다는 뜻인가. 이런 말을 모르는 사람은 언론 기사를 읽지 말라는 말인가. 우리나라 언론들은 자신이 만드는 기사의 독자를 한국 사람으로 보는가 미국 사람으로 보는가. 이런 게 아니라면 정말 아무 생각없이 이 말 저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인가.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회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쓰면 “왜 우리말을 쓰지 않느냐?”라고 꾸지람을 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이런 말을 부추기는 것 같다. 그 속내가 정말 궁금하다.
코로나19가 있기 전과 후 사람들의 삶은 많이 다를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방 가던 일상은 그대로 이어질까. 주말이면 승용차 타고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배 타고 국내외 여행을 쉽게 떠날 수 있을까. 절에 가서 절하고 교회 가서 기도하는 풍경은 이어질 수 있을까. 열 명 스무 명이 한 식당에 둘러앉아 술잔 주고 받으며 떠들고 놀던 것은 가능해질까.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원래 일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무급 휴직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집에서 쉬던 사람들이 다시 활기찬 모습으로 일자리로 돌아가 원래 받던 만큼의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문을 닫았던 술집, 밥집, 찻집 들은 다시 문을 열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던 세계 경제는 1~2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든 쉽게 오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다시 올까.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일상을 즐기게 될까.
2020. 4. 27.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