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을 넘기는 일은 영어 공부와 다름없다. 거의 날마다 낯선 말을 만난다. 한글로 적었으나 영어다. 어떤 날은 아예 모르겠어서 그냥 넘어간다. 어떤 날은 알 듯 말 듯하여 잠시 들여다본다. 어떤 날은 한글로 토를 달아놔서 그런 뜻인가 보다 하고 짐작만 하고 넘어간다. 신문기자들이 참 아는 게 많구나 여기기도 한다. 이런 공부는 재미없다. 짜증난다. 신문사가 국민들의 지적 수준을 매우 높게 보는 것일까. 아니면 ‘너희들은 모르지? 나는 알지롱. 메~롱!’ 하는 것일까. 나는 뒤의 경우로 받아들인다.
신문사에서 일할 때 들은 말이 있다. “중학생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춘 독자가 이해하도록 써라.” 그만큼 쉽게 쓰라는 말이다. 외국어를 마구잡이로 섞어 쓰지 말라는 뜻이다. 중국글자말이라도 되도록 쉬운 말을 쓰라는 지시다. 알파벳이나 한자를 지면에 노출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것이다. 독자가 알아보기 어려운 말을, 마치 자신의 지식수준을 자랑하듯 아무렇게나 쓰지 말자는 약속이다. 그렇게 배웠다. 그건 맞는 말이다. 옳은 길이다.
하지만 요즘 신문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외국, 특히 미국에서 쓰는 용어를 누가 먼저 가져다 쓰는지 내기하는 것 같다.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는 독자들이 모르는 말을 써놓고 뒤돌아서서 낄낄거리는 것 같다. 독자들이 일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말을 큼지막하게 써 놓고 그 밑에 깨알같이 영어와 우리말 토를 달아놓고 마치 친절을 베푼 것처럼 거드름 피우는 것 같다. 이런 정도의 말은 알아야 세계시민이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려 드는 것 같다. 신문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고민하거나 연구하거나 토론하는 일 따위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4월 22일 아침 <한국일보> 1면에서 ‘인포데믹’이라는 말을 만났다. 그냥 눈에 띄었다. 큰 글씨 제목 밑에 영어로 ‘infodemic’이라고 쓰고 그 옆에 ‘잘못된 뉴스 급속 확산’이라고 한글로 써놨다. 인포데믹이라는 말을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영어와 한글을 따로 붙여놨을 리 없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좀 심했다 싶으니까 미안해서 이렇게 한 것이리라. 미안한 마음이면 좀 낫겠지. 숫제 “너희들은 이 말을 잘 모르지? 내가 가르쳐줄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인포데믹은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다. 잘못된 정보가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팬데믹(Pandemic)이라는 말이 좀 유행하자 ‘~데믹’을 갖고 온 듯하다. 물론 인포데믹이라는 말은 이 언론사가 갑자기 일부러 지어낸 건 아니다. 사전을 뒤져보니, 2003년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데이비드 로스코프의 글에서 ‘정보전염병’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만약 ‘정보전염병’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면 이 말을 크게 쓰고 그 아래에 조그맣게 ‘인포데믹’이라고 썼더라면 좋았겠다. 사실 인포데믹이라는 말을 써줄 필요가 없다. ‘정보전염병’이라고 하면 중학생 이상의 지적 수준을 갖춘 독자라면 다 알아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국민을 독자로 상정하고 만드는 신문인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다.
2020.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