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오늘은 책의 날입니다. 세계 책의 날입니다.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면 “세계 책의 날(영어: World Book Day)은 독서, 출판, 저작권 보호의 촉진을 목적으로, 유엔 교육 과학 문화 기구(유네스코)에 의해 1995년에 제정되어 1996년부터 실시된 기념일로 매년 4월 23일이다.”라고 나옵니다.
더 읽어봅니다. “4월 23일은 책을 구입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축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에서 유래된 날짜다.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2001년부터 이날을 기념해 매년 ‘세계 책의 수도’를 선정하고 있는데, 인천광역시가 2015년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나옵니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같은 해(1616년) 같은 날(4월 23일) 사망했군요.
이런 책의 날 덕분에 독서와 출판이 활성화하면 서점도 활기를 띨 것입니다. 국민의 지적 수준이 올라갈 것이고 교양과 상식,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해 갈 것입니다. 책이 가진 긍정적 기능입니다. 양서만 있는 건 아니지요. 악서도 있습니다. 양서를 많이 찾아 읽으면 악서는 저절로 구분됩니다.
저는 책을 비교적 많이 사는 편입니다. 신문 광고나 출판 관련 기사를 보다가 눈길을 끌면 사놓고 봅니다. 주변 지인이 책을 내면 축하 인사와 함께 사 둡니다. 다른 분께 책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산 책을 모두 읽는 건 아닙니다. 읽는다고는 하지만 꼼꼼히 읽는 것도 아닙니다. “새 책 사서 헌책 만드는 것이 취미다.”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저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집에 책이 많으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은근히 기분 좋고 느긋해집니다. 가끔 오는 손님들도 칭찬해 줍니다.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가족들도 책을 들고 책을 읽고 책을 만지는 일을 어렵지 않게 생각합니다. 책이 가진 긍정적 기능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책은 지식의 보고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 담깁니다. 전 세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안 좋은 점은 이사할 때 이삿짐 옮기는 노동자에게 무척 미안해진다는 것뿐입니다.
책을 사 놓기만 하고 아예 읽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한 달에 한 권은 읽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만 읽는 책도 있고 머리말만 읽는 것도 있고 두세 번 되풀이해서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다가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또 까맣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사 놓고 보니 산 줄도 모르고 다시 사는 일도 생깁니다. 그 책은 선물합니다. 어떤 책은 책꽂이에서 찾느라 한참 동안 서성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샀는데….”라면서 말이죠.
제 인생의 책을 골라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전 페이스북 친구들이 ‘책 표지 올리기 이어달리기’를 하면서 저를 추천했더랬죠. 책꽂이에서 일곱 권을 골랐는데 요사이 사 읽은 책은 없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30대 시절에 읽은 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만큼 젊었을 적 읽은 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의 인생관, 세계관, 철학 같은 걸 책에서 얻고 배우고 영향 받는 것 같습니다. ‘책은 인생의 스승’이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 같습니다.
오늘은 책의 날입니다. 오늘은 퇴근길에 서점에 들르겠습니다. 입마개는 하고 가야겠지요.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서 차 대 놓고 숙호산 올라가는 일을 하루 멈추겠습니다. 진주시 평거동에 본점이 있고 가호동에 분점이 있는 ‘진주문고’에 갈 것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본점이 있으니 본점으로 가겠습니다.
어떤 책을 살지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퇴근할 때까지 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냥 가서 1~3층을 오르내리면서 책 냄새 맡으며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할 겁니다. 책의 날이니만큼 2~3권쯤 사게 될 것입니다. 소설이나 시집을 사면 좋겠는데 그건 모르겠습니다. 수필집이나 역사 관련 책을 사도 좋겠습니다만 역시 모르지요. 오늘은 사고 싶은 책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의 날이므로 한두 권 사는 게 좋겠다고 여깁니다. 어쩐지 오늘은 산 책에 책방 주인의 서명을 받고 싶어지네요.
진주문고는 진주를 대표하는 서점입니다. 역사를 봐도 그렇고 재고량을 봐도 그렇고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하면서 시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봐서도 그렇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진주시내 서점은 삼현여고 앞 문화서점, 차없는 거리 부근 대양서적 정도입니다. 헌책방도 더러 있지요. 소소책방, 소문난서점, 동현서점 들입니다. 누가 뭐래도 진주문고를 진주를 대표하는 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서점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가 봅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람들이 나들이를 하지 않으니 서점에도 손님 발길이 많이 줄었을 겁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력하게 실천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겠지요. 중고등학교가 개학을 하지 않으니 이런저런 학습 참고서나 문제집 판매도 줄었을 겁니다. ‘온라인 개학’을 해서 좀 나아질까 싶습니다만 어쩐지 모르겠군요.
진주문고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습니다.
“4월 23일은 책의 날! 드러내 놓고 서점에 오시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아직은 경계와 거리두기가 더 필요한 시간이라 여깁니다. 해마다 이날을 기념하고 서점 방문 고객들에겐 장미 한 송이를 선물했습니다. 올해는 시절이 시절인지라 그냥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 코로나 이전 일상을 기다리며 숨 죽이기보다는 꿈틀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귀한 발걸음에 고개 숙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책의 날에 책을 사는 분들께 장미 한 송이를 준다고 합니다. 왜 장미인가는 앞에서 말씀드렸죠. 책도 사고 장미도 받고 얼마나 좋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워지면 문화 관련 지출을 줄입니다. 영화, 연극 같은 공연예술이나 미술 감상 같은 건 잠시 동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의식주 이외의 것은 잠시 뒤로 미뤄두자는 것이겠지요.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경남도민일보 김민지 기자께서 3월 16일 쓴 ‘취재 노트’ 한 부분을 옮겨 봅니다. 제목은 ‘문화는 사치인가’입니다.
“사치를 정당화하는 건 아니지만 장 카스타레드가 쓴 <사치와 문명>을 보면 사치는 인류 역사에 개성을 부여하고 문명을 키워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작은 사치를 누린다. 김영하의 책을 사고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티켓을 사고 조성진 공연을 본다. 몇 년 전 힘들 때 주위 사람에게 토로해도 돌아오는 건 더 큰 공허함이었다. 그때 책은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고 텅 빈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일상을 천천히 보고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주었고 네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살 수 있다고, 그럴 힘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하는 요즘,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문화예술의 소비다.”
(전문 읽으러 가기: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24066&page=3&total=1453)
어떻습니까. 1년에 책 한 권 사지 않더라도,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 서점에 들러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언젠가 어디에선가 본 듯한 책 표지를 만나면 사도 될 겁니다. 가족에게 책 한 권 선물해도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겐, 곧 어린이날이므로 책 한 권 미리 선물해도 좋겠습니다. 거기에다 서점에서 주는 장미까지 얹어주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책의 날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책을 잘 사지 않는 분들도 책의 날엔 책 한 권 사고 주변에 선물도 하면 참 좋겠습니다.
진주문고 페이스북엔 이런 글도 올라와 있습니다.
“서점은 크고 넓은 세상을 내다보는 투명한 창문이다.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 주는 더 없이 좋은 학교이다. 인생의 스승과 따르고 싶은 선배와 마음 맞는 후배와 벗들을 만나게 한 고마운 만남과 관계의 장이다. 책과 음악과 차가 어우러진 곳, 마음껏 책의 숲을 거닐며 내면의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 토론과 휴식과 만남이 함께할 수 있는 곳, 책의 세계가 그러하듯 다양한 문화장르가 자유롭게 교차하고 표출될 수 있는 공간이다.-2018년 10월 서울도서관 컨퍼런스에서”
오늘 오후 5시 30분~6시 30분 사이에 평거동 진주문고 본점에 책 사러 오시는 분 가운데 아는 얼굴을 만나면, 나란히 책 사 들고 함께 근처 국숫집 ‘어울림’ 가서 양푼이 국수 한 그릇 하고 싶습니다. 아, 막걸리와 땡초전도 맛난 집이지요. 그렇거나 말거나 오늘 이야기 주제는 ‘책’이 될 것입니다. 어때요?
2020. 4. 23.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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