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이민진 작가가 쓴 소설 <파친코>를 읽었다. 텔레비전 연속극은 보지 않았다. 8월 말부터 천천히 읽다가 추석 연휴에 좀 달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1980년대 말까지 주로 부산과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담하면서도 치밀하게 썼다. 미국 이야기도 조금 나온다.
주인공 선자를 중심으로 그이의 부모와 자식들, 자식들의 각각의 아버지, 그들이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4대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도 그렇고 현대에 와서도 재일 한국인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이니치(재일; 在日)의 피와 의식에 흐르는 뿌리 깊은 상흔도 여러 사람의 입을 빌려 들려준다.
제목 <파친코>는 일본에서 유행하는 구슬을 이용한 오락 도박 기계 이름이다. 주로 한국인이 운영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파친코는 자신의 운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를 가리키기도 한다.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애정과 관용, 이해와 용서, 사랑과 포용, 비난과 배신 들이 파친코 기계 속 구슬처럼 굴러간다.
인물들은 각각 태어나고 각각 죽어간다. 작가는 선자의 큰아들이 죽는 장면을 단 한줄로 처리한다. 선자 남편의 죽음은 암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어떤 인물의 죽음은 다음 장에서 지나간 추억으로 확인된다. 전쟁과 분단과 멸시와 가난의 틈바구니 속에서 죽음은 진지하게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는 뜻일까.
이민진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이어서 우리말을 모른다. 영어로 쓴 소설을 번역하여 우리나라에 내놨다. 번역투 문장이 난무하는 소설이다. 짧은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두 번씩 읽는 일이 많았다. 주격조사를 '은/는'으로 해야 할지 '이/가'로 해야 할지에 대해 내 감각은 번역가의 의견과 좀 다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새발의 피라고 할 만큼 아무것도 아니다. 그만큼 위대한 소설이라는 항간의 찬사에 동의한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애플텔레비전에 가입하고 싶지는 않다. 할 수 없다.
2022. 9. 14.(수)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