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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울다가 웃게 만드는 신묘한 재주-큰들의 마당극

by 이우기, yiwoogi 2020. 4. 11.

2019년 11월 20일 저녁 진주시 칠암동 ‘모두의 아지트’에서 큰들문화예술센터 전민규 예술감독의 ‘큰들 이야기’ 강연회가 열렸다. 한 해에 100회가량 공연하는 큰들 마당극 작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했다. 그 가운데 마음에 확 와닿는 건 “열 번 웃기고 한 번 찡하게 한다.”라는 말이었다. 마당극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백 번 공감할 것이다.

 

자영업자든 직장인이든 농민이든 어민이든 도시노동자든 가정주부든 학생이든 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누구든 일상의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억압 받는 감정이 있고 짓눌린 욕망이 있다. 이런 것을 그때그때 잘 풀어버리면 건강하게 장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 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저녁에 술자리를 찾고 주말에 관광지로 여행을 떠나며 연말에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는 건 이런 까닭 때문이리라.

 

주말에 관광지로 여행 간 사람은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상설공연을 하는 하동군 악양면 최참판댁이나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을 말한다. 어느 지역의 어떤 잔치를 찾아가더라도 마당극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몇 해를 보기로 들면 의령, 남해, 사천, 진영, 산청, 진해 등지에서 공연했다. 경남지역에서만 공연하는 건 아니다. 전국구 극단이니까. 운 좋은 나들이객이라면 지역의 명품 축제를 보러 갔다가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보는 행운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18년 6월 1일 오후 남해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오작교 아리랑> 공연 장면이다. 남해 마늘축제+한우잔치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 관광객 가운데 마당극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10대 어린이에서부터 70대 이상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본다. 부부가 손 잡고 보고 부모자식 간에 나란히 앉아 보고 늙은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서 본다. 철도 들지 않은 아이를 품에 안고 보는 젊은 부부도 많다. 그들은 우연히, 혹은 미리 일정을 맞춰서 큰들 마당극을 보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이들에게 필요한 건 웃음이다. 즐거움이다. 유쾌함이다. 일주일 동안 이런저런 일을 치르고 처리하고 진행하느라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 있을 터인데, 이런 공연 한 편으로 그것을 풀어내고 싶어한다. 웃음은 명약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일소일소(一笑一少)라고 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했다. 그 웃음을 기대하는 것이다. 마당극 한 편을 한 시간 동안 보면서 열 번 웃으면 열 달 젊어지고 백 번 웃으면 백 달 젊어진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건 웃음만이 아니다. 슬픔도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왜 그런가. 마당극이나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 극 내용에 몰입하다 보면 주인공이 겪는 지독한 고난과 지극한 슬픔에 젖어들게 된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 흘리게 된다. 그렇게 눈물 좀 흘리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정된다. 정서적으로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든다.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고 간접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이 해소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일을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정화작용(淨化作用)’이라고 한다. 문학비평에 주로 등장하는 말이다. 심리학에서도 비슷하게 다룬다고 한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은 관객을 열 번 웃기고 한 번 울린다. 한 편에서 열 번만 웃기고 한 번만 울린다는 뜻이 아니다. 10 대 1의 비율로 웃기고 울린다는 말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시종일관 관객의 마음을 잡고 흔들며 웃겨준다. 그러다가 예상치도 못한 데서 감정의 실마리를 꽉 쥐고서 놓아주지 않는다. 목이 메어 눈물이 자동으로 흐르게 만든다. 희비쌍곡선은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 엑스(x) 축과 와이(y) 축의 절댓값은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보는 1시간 남짓 웃느라 정신없을 정도다. 낄낄 웃고 깔깔 웃는다. 배꼽 잡고 웃고 허리 꺾으며 웃는다. 요절복통 포복절도가 따로 없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닦는다. 목이 따가워진다. 마당극 속 주인공 사연이 애처로워 눈물 짓고 그 사연이 남의 일만은 아니기에 코끝이 찡해지는 것이다.

 

2019년 4월 28일 오전 산청 생초국제조각공원에서 <효자전> 공연이 열렸다. 꽃잔디축제가 한창이었다. 공연 보고 꽃잔디 구경하고 나면 일상의 스트레스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2020년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축제를 취소했다고 한다. 

극단 큰들은 치밀하다. 관객이 코끝이 너무 시려서 코 푸느라 정신 못 차리면 극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안다. 주인공이 궁지에 몰리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여 가슴이 조마조마할 때쯤 극적인 웃음을 던져준다. ‘슬프다, 안타깝다, 아쉽다, 불쌍하다’ 이런 감정이 관객들 의자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다닐 즈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사와 몸짓으로 순식간에 이성을 풀어놓도록 해 버린다. 웃음의 절정은 곧 눈물이고 비극의 극한은 곧 희극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흐르는 눈물을 닦기 위해 손수건을 꺼내던 관객이 도로 손수건을 집어넣도록 한다. 주인공의 어쩔 수 없는 슬픔과 고난이 자기의 어떤 경험에 겹쳐져 순간적으로 아득하게 느껴질 때 공연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긴장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재주는 큰들이 지닌 비장의 무기이다. 마당극을 처음 보는 사람이야 당연히 그 신통방통한 재주에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한 해에 마당극을 열 번 넘게 보는 사람도 그 대목에선 울다가 웃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서른 번 넘게 봐도 마찬가지다.

 

가장 슬플 때, 가장 안타까울 때 순간적인 웃음을 던져주는 연출법이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효자전>이라고 본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도 만만찮다. 순전히 내가 바라본 기준이다.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직접 공연하는 큰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본다고 대답해 주랴만….

 

다른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건 좀 미뤄두고 우선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만 대충 훑어보고 뜯어본다. 참고로, 마당극 <효자전> 정말 잘 만든 작품이다. 소재와 주제가 ‘통속적’이다. 통속적이라는 건 그만큼 모든 세대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웃음과 눈물을 매우 적절하게 잘 배합한 작품이다. 관객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감동이 묵직하여 꽤 오래 간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소설 ≪토지≫를 극화한 작품이다.

 

<효자전>은 산청군 지리산 자락 약초골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형제 이야기다. 큰아들은 귀남이고 작은아들은 갑동이다. 이름에서부터 뭔가 묻어난다. 귀남은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의사가 되기 위해 한양으로 시험 보러 간다. 갑동은 어머니 돈을 몰래 훔쳐 싸돌아다니는 천둥벌거숭이다. 귀남은 재주가 있었던지 내의원 시험에 합격한다. 승진을 하자니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 돈이 필요하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 돈!”

 

어머니는 귀남이 좋아하는 곶감을 바리바리 싸서 한양으로 찾아간다. 마침 대감과 기생집에서 술판을 벌이던 큰아들 귀남은 시골에서 올라온 냄새 나는 가족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외면한다. 천릿길을 걷고 걸어 묻고 물어 올라간 어머니와 동생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나는 니가 돈이 필요하다 캐서 급한 일인 줄 알고….”라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 자식에게서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되었으면서도 그 말은 들리지 않는 듯하다. 그때 귀남이 하는 말. “아, 은행에서 계좌이체를 하면 되지….” 긴장하던 관객이 한번 웃는다. 조금 전 어머니와 동생을 모르쇠했던 건 잠시 잊는다. 귀남은 끝내 어머니가 갖고 간 돈만 챙기고 곶감은 팽개친다. 갑동과 갈등이 솟아오른다. 어머니는 “내가 더 못해 줘서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1970~80년대에는 자식이 많았다. 그중 큰아들은 산청에서 진주로, 진주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각각 공부하러 떠났다. 큰누나 또는 할머니가 맏아들 뒷바라지를 해주러 함께 떠난다. 큰누나들과 할머니들은 자기 몸을 태우는 촛불과 같은 희생을 해가며 오로지 큰아들의 성공만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는 사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불귀의 객이 된 사람도 적지 않다. 안타까운 사연이다. 드디어 큰아들은 대학을 가고 성공한다. 그 큰아들은 자기가 성공하는 데 모든 가족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곁에서 정성을 다한 누나와 할머니의 희생, 고향 마을에서 소 팔고 논 팔아 학비를 대던 부모님, 큰아들 밑에 집 기둥뿌리를 빼서 바치느라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동생들의 억울한 사연을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 잘나서 성공한 줄로만 아는 큰아들의 일탈과 배신은 곧잘 연속극의 소재가 된다.

 

그런 가슴 시린 사연을 직접 겪었거나 이웃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귀남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고향에서 어렵사리 올라온 어머니와 동생을 외면하고 기생집으로 달려가는 귀남을 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솟는다. 지병이 도진 어머니를 갑동이 업는다. “갑동아, 형님 너무 미워하지 마라. 내 죽고 나모 너 형님밖에 없는 기라., 좀 죽는다는 소리 좀 하지 마라. 인자부터 엄마 병은 내가 고칠끼다.”라는 다짐은 감동적이다. 의사가 된 형을 믿을 수 없어서다. 많은 관객이 손뼉을 친다. ‘천둥벌거숭이 갑동이가 이제 사람이 됐구나!’라고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신다. 그 순간 어머니는 말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엥간히도 잘 고치겄다.” 가슴을 적시던 감동이 순식간에 푹 꺼진다. 울다가 웃게 만든 것이다.

 

의사인 큰아들은 어머니 병환을 돌보지 않는다. 작은아들 갑동이 "이제 어머니 병은 내가 고칠 끼다."라고 한다. 어머니는 "엥간히도 잘 고치겄다."라고 한다. 짧은 대사 한 마디가 귀에 닿자마자 웃음이 터진다.

갑동이 어머니를 업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관객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극이 3분의 1은 지났을 즈음이다. 무대 뒤로 사라졌던 배우들은 구급차 소리와 함께 다시 등장한다. 그사이 어머니는 침대에 누웠다. 쓰러진 것이다. 몸의 병만 해도 버거운데 한양에서 얻은 마음의 병이 겹친 것이다. 갑동이가 의사 임뻥아재를 다급하게 부른다. 관객들은 저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 아닌가 마음 졸인다. 동네 한의사 임뻥아재와 조수가 달려온다. 과연 어머니는 어찌 될 것인가. 위중한 건 아닌가. 큰아들 귀남을 데리러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관객의 마음은 복잡하다. 조금 전 어머니를 배신한 귀남이 다시금 원망스러워진다.

 

그런데 그순간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에 웃음이라니. 임뻥아재와 함께 등장한 조수(지금으로 치면 간호사겠지)가 병원 침대 머리맡에 링거를 꽂는데, 그게 자세히 보니 표주박이다. 조선시대에 링거가 있었다고 설정하는 것부터가 기상천외한데 그 링거가 표주박이다. 노란색 표주박이 침대 머리맡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을 보는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린다. 구급차 소리와 함께 침대에 드러누워 어머니가 등장하고 갑동이 다급하게 임뻥아재를 찾을 때만 해도 조마조마하던 가슴속 긴장의 끈이 툭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놓았다 조였다 다시 놓았다 조였다 하는데 배겨낼 재주가 없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는데 빨려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게 <효자전>의 매력이다. 병원에 문병 갔다가 환자 곁에 선 링거를 보고서는 이 장면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기도 한다. 후유증이라고 할까.

 

쓰러진 어머니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머리맡에 표주박 링거가 걸려 있다. 관객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슬픈데 우습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갑동이 천신만고 끝에 지리산에서 산삼을 구해 왔다. “이제 엄마 병은 다 낳은 기라!”라고 좋아했지만, 세자 저하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산삼을 구해 오겠노라고 큰소리친 귀남이 그 산삼을 뺏어 가 버린다. 귀남과 갑동이 실랑이를 벌이는데 어머니는 그 귀하디 귀한 산삼을 귀남에게 줘버린다. 산삼을 먹었더라면 어머니 병환이 나을 수 있었는데….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 가슴에 어떤 한이 쌓였을까. 큰아들 귀남의 더 큰 성공을 보지 못한 게 한이었을까. 갑동이 이제 사람이 되었는데 더 오랫동안 즐거운 세상을 보지 못한 게 한이 되었을까. 어머니는 저승사자 뒤를 따라간다. 저승사자는 사람보다 키가 두 배나 더 크고 어머니 허리는 구부러졌다. 그 높이의 차이를 보는 관객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 이승에 남은 자식을 돌아보고 돌아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그 마음의 언저리에라도 가 볼 수 있을까. 관객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친다. 두 무릎을 바짝 붙인 채 집중한다.

 

부모님이 병원을 갔다 왔다 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데가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요양원에 계신 관객이라면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아마 압도되는 이 분위기를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다. 내 아버지가, 내 어머니가 숨을 거둔 뒤 저승사자 뒤를 따라가며 못난 이 자식을 돌아보고 돌아보고 하였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가 닿을 것이다. 객석은 조용하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갑동과 귀남이 서로 잘못을 따지며 싸운다. 저승길 가는 어머니는 마음이 편치 않다. 형제끼리 다정하게 지내기를 바라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어머니는 저승길에서 잠시 이승으로 환생한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가 무너져 버렸다. 먼저 갑동이를 나무란다. “오데서 형님한테 성질이고? 내가 그리 가르쳤더나!”라고 호되게 꾸지람한다. 다음엔 귀남이 차례다.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린다. “보자보자 하니까 사람 베리놨네!”라고 야단친다. 두 아들의 정신머리를 고쳐놓지 않으면 저승도 마음놓고 갈 수 없던 것이다. 관객들은 어머니 마음에 동화되거나 꾸지람 듣는 자식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대개 후자일 것이다. 부모님 구존 여부를 떠나 자식 된 도리를 생각하고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형제의 우애를 생각하는 순간이다. <효자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이때 저승사자가 한마디한다. “이승의 미련일랑 다 버리고….” 갈길이 바쁘니 얼른 가자는 말이다. 서산에 해 지기 전에 얼른 저 강을 건너자는 말이다. 저승사자의 말은 곧 법이다. 어길 수 없다. 미룰 수 없다. 어머니는 두말없이 따라야 한다. 그냥 “예.”라고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가 아니다. 이승에 미련이 남고 한이 남아 잠시 저승길을 피해서 이승까지 온 사람 아닌가.

 

"됐소, 됐소. 내 알아서 가요!" 저승을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알아서 간다니...?

어머니는 대뜸 “됐소, 됐소! 내 알아서 가요!”라고 일갈한다. 그 말과 함께 팔을 훼훼 젓는다. 관객들은 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어머니의 당찬 모습이 개운하다고 여긴 것일까. 예상했던 행동과 태도가 나오지 않아 깜짝 놀란 것일까. 심장이 쫄깃쫄깃하던 차에 어머니의 “내 알아서 가요!”라는 말 한마디가 모든 걸 녹여버렸다. 몹시 슬픈 장면인데 웃음이 터진다. 무척 슬퍼 눈물을 흘리던 상황인데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을 터뜨려 버린다. 이게 큰들 마당극의 묘미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로 가 본다. 조준구와 홍씨가 어린 서희를 쫓아내려고 흉계를 꾸몄다. 부모 잃은 서희는 기댈 데가 없다. 최참판댁 집과 땅을 다 버리고 도망가야 하게 생겼다. 소설 ≪토지≫를 읽었거나 연속극 <토지>를 본 사람은 다 안다. 이 대목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나이 어린 서희가 믿었던 삼촌에게 쫓겨나는 장면이라니. 그것도 부모 모두 돌아가신 천애의 고아 아닌가.

 

처음 조준구가 나타나 최씨 집안 재산을 제 재물인 것처럼 흥청망청 쓰고 돌아다닌다고 마을 아낙이 일러바치자 “시끄럽다. 이 집은 조가 것도 홍가 것도 아니야!”라고 서슬 퍼렇게 목청 높이던 서희이다. 머슴 길상이 가마를 갖고 온다. “아씨, 가실 시간입니다.”라고 아뢰자 “내, 이 수모를 한시인들 잊을 줄 아느냐?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테다!”라고 독설을 퍼붓던 서희다. 그 서희가 길상이 준비한 가마를 타고 떠난다. 동네에 큰 사건이 터진 것이다.

 

강청댁과 임이네를 비롯한 마을 아낙들이 모여 수군댄다. “아이고 불쌍한 서희 애기씨….”라며 눈물 흘린다. 한때 최고의 갑부였다가 졸지에 몰락한 집안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쫓겨나는 장면이라니. 한 아낙이 묻는다. “그래, 어디로 간다 쿠데?” 한 아낙이 대답한다. “저 압록강 건너 간도로 간다 안 쿠요.” 관객들은 소설의 한 장면이나 연속극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하동과 간도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말이 쉬워 간도이지 거기가 어디란 말인가 생각한다. 꽃 피고 새 우는 따뜻한 남녘땅 하동에서 얼어붙은 동토 간도까지 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걱정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오래도록 하도록 큰들은 내버려두지 않는다. 곧이어 세 아낙이 동시에 합창한다. “간도? 간도 크다!”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빵’ 터진다.

 

서희는 조준구의 계략에 빠져 전 재산을 다 뺏기고 머슴 길상에 의지하여 간도로 쫓겨 가게 된다. 한 가정의 비극이 압축돼 있다. 모두가 한숨을 내쉰다. 이 일이 장차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가, 싶은 것이다. 
"그런데 오데로 간다 쿠데?" "저 압록강 건너 간도로 간다 안 쿠요." "간도? 간도 크다." 최씨 일가의 비극으로 가슴 졸이던 관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다. 

‘간도’와 ‘간(肝)’의 발음이 같은 것을 절묘하게 갖다붙인 ‘아재개그’다. 서희 집안의 비극에 감정이 이입되어 숨이 막힐 지경인데 “간도? 간도 크다!”라는 말이 숨구멍을 틔워 준 꼴이다. 흘러내린 눈물을 미처 닦을 겨를도 없이 웃고 만다. 큰들은 관객의 가슴을 일방적으로 죄었다가는 졸도를 해버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것 같다. 숨이 막히는 비극만 겪고 나면 다시는 마당극 보러 오지 않을까 걱정한 듯하다. 죄었다가 풀었다가 묶었다가 풀었다가 관객을 즐겁게 해 준다. 마당극을 보지 않을 수 없고 한번만 봐서는 그 흥미로움과 즐거움을 도무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마당극 <남명>에서 가짜 왜적이 나타나 혼쭐이 난 뒤에 남명이 제자들에게 일장 훈계를 하는 장면에서 하인 돌이가 “샌님, 조식 드시고 하세요.”라고 하는 장면도 비슷하다.

 

코로나19를 이기기 위해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정부 방침을 따른다. 3월 중순 이후 저녁 약속은 꼭 한 번만 지켰다. 나머지 약속은 모두 취소하고 미뤘다. 술자리 제안하는 전화를 야속하게 사양했다. 매일 퇴근하면 집 근처 숙호산을 한 바퀴 걷는다. 한 시간 걸린다. 주말엔 할 일 없이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본다. 페이스북을 들여다 보며 시간을 죽인다. 주중에는 세 가족이 매일 저녁을 같이 먹는다. 주말에는 삼시세끼를 같이한다. 코로나19가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게 아니란 말인가.

 

그런 가운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마당극을 나 혼자 보고 또 본다. 열심히 볼 때도 있고 라디오 듣듯 켜 놓기만 할 때도 있다. 2018년부터 2년 동안 촬영한 열댓 편을 보고 또 본다. 같은 작품이라도 찍은 위치에 따라 다르고 날씨에 따라 다르고 함께 간 사람에 따라 다르다. 마당극 한 편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매우 익숙한 작품인데도 혼자 웃다가 울다가 한다. 가족들은 귓등으로 듣는다. 그렇게 들어도 다 안다는 염화미소를 짓는다. 

 

오늘은 마음 먹고 아침부터 이 글을 썼다. 200자 원고지 50장가량 된다. 중간 중간 밥 먹고 잠 자고 텔레비전 보고 하느라 글쓰기는 밤 10시를 넘어간다. 그래도 즐겁다. 별 내용도 없고 주제도 산만하고 문장도 괴발개발이고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나는 이 작업이 즐겁기만 하다.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프고 무엇보다 어깨와 손목이 욱신거리고 아리지만 그래도 즐거운 작업이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상황이 끝나고 일상을 되찾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몇 마디 글로써 남겨두는 것이다. 하루빨리 마당극 공연하는 현장으로 달려가고픈 간절함을 몇 자 글로 적어둔다.

 

전민규 예술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큰들은 열 번 웃기고 한 번 찡하게 한다.”

큰들 마당극 덕분에 오늘 하루 종일 울다 웃다 울다 웃다 했다. 그러느라고 코로나19의 엄중함 한가운데 있는 것도 잠시 잊었고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사전투표 마지막 날이라는 것도 잠시 잊었다. 첫날에 미리 투표를 했으니 그까짓 것 잠시 잊어도 괜찮다. 하루쯤은 이렇게 허송세월해도 된다. 비극, 슬픔의 절정에서도 참고 견디면 희극, 웃음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이치를 깨달았으니 말이다. 세상은 쉽게 안 망한다.

 

2020.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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