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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동백

by 이우기, yiwoogi 2020. 3. 27.

경상대학교 대학본부 왼쪽에 서 있는 동백나무. 16년째 이 꽃의 개화와 낙화를 보고 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게 될지...

경상대학교 대학본부 앞에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다. 무심코 지나가는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고 봄이 가고 있음을 전해 준다. 겨울에도 윤기 반지르르한 잎사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증명하는 나무다. 벌써 16년째 이 동백과 눈인사 나눈다. 꽃잎을 사진으로 찍은 게 여러 번이고 이 나무를 배경으로 내 얼굴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 앞으로 동백꽃 피고 지는 걸 열 번 정도 더 보면 나도 이 학교를, 이 직장을 떠나겠지. 모르지. 그사이에 근무 부서가 바뀌면 다른 건물로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동백도 잊어버릴지도. ‘동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몇 가지 있다.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이 맨 먼저 떠오른다. 나는 국문학도이니까. 1936년 5월 발표했다 하니 84년쯤 됐다. “향토색 짙은 농촌을 배경으로 인생의 봄을 맞이하여 성장해 가는 충동적인 사춘기 소년ㆍ소녀의 애정을 해학적으로 그린 김유정의 대표작이다.”라고 한다. 읽은 지 하도 오래돼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읽어야겠다.

 

(이렇게 써놓고 나서 알게 된 ‘노란 동백꽃’의 정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백꽃은 붉은색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노란 동백꽃이라고 한 것은 무엇일까? 강원도 지방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박나무’, ‘동백나무’라고 부른다. 생강나무는 이른 봄에 노란 꽃을 피운다. 따라서 이 작품의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근대 문학작품 다시 읽어야겠다.)  

 

두 번째는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이다. 1964년에 발표했다. “여인의 깊은 한과 애상적인 느낌을 잘 표현한 이 노래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100만 장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공전의 인기를 끌었으나, 이후 노래가 일본풍이라는 문제 제기와 함께 금지곡으로 전격 지정되었다.”라고 한다. 1986년 6월 항쟁 이후 해금되었다. 우리 국민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누가 이 노래를 다시 불러도 이미자의 원곡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세 번째는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이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으로 시작하는 1972년 발표한 이 노래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1절은 가족을 떠나보내고 한국에 남은 사람이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2절은 한국을 떠났던 가족이 고국에 돌아와 느끼는 상념을 노래한다. 작곡가는 황선우이고 작사가는 김성술이다.”라고 한다. 조용필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노래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곡으로 인기를 끌었다 한다. 조용필이 노래한 동백섬은 부산 해운대 앞에 있는 육계도를 가리킬 것이다.

 

네 번째는 통영 앞바다의 ‘장사도’이다. 배에서 내리면 장사도 입구에 ‘까멜리아’라고 적혀 있는데 ‘까멜리아’가 곧 동백이란다. ‘동백이면 동백이지 까멜리아는 또 뭐람?’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장사도에는 동백나무가 아주 많다. 이맘때쯤이면 붉은 동백꽃잎이 여기저기 발갛게 떨어졌을 것이다. 흰 동백꽃도 있긴 있다. 서럽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섭기도 한 동백꽃잎의 낙화…. 장사도엔 업무를 핑계로 두 번 가 보았는데 이것저것 볼거리가 꽤 많다.

 

다섯 번째는 거제 앞바다의 ‘지심도’이다. 조용필 노래에 등장하는 동백섬이 부산 앞바다에 있는 섬이라면 경남지역 사람들은 이 지심도를 동백섬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동백나무가 많다는 뜻이고 그 정도로 관광지로 된 지 오래됐다는 뜻이겠다. 지심도에 동료 직원과 함께 놀러 간 적 있다. 밤 늦도록 술 마시고 아침 일찍 맞이한 바다 공기가 매우 상쾌했던 기억이 있다. 산책 삼아 가볍게 섬을 둘러 보았다. 섬을 제대로 다 돌아보려면 하루는 넉넉하게 걸릴 것 같다. 지금은 이 섬에 가려면 어디에서 어떤 배를 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물을 무서워 해서 바다, 섬, 해안 이런 데는 잘 안 가는 탓이다.

 

여섯 번째는 얼마 전 끝난 연속극 <동백꽃 필 무렵>이다. 한국방송공사 제2채널에서 2019년 9월 18일부터 11월 21일까지 40부작으로 방송했다고 한다. 높은 인기와 많은 화제 속에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들었다.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할 만하다. 나는 보지 않았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재미 붙이고 본 건 아마 5년 전 <가족끼리 왜 이래>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왜 제목이 <동백꽃 필 무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왜 ‘동백’이었는지는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유추의 근거는 김유정의 소설과 이미자의 노래와 조용필의 노래 가사에 담겨 있지 않을까 한다. 장사도나 지심도도 그 근거가 될는지는 모르겠다.

 

2020. 3. 27.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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