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성묘한 뒤 가보지를 못해서 몹시 궁금했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무너지지 않았는지 멧돼지들이 파뒤지지는 않았는지 두더지들이 굴을 만들어 놓지는 않았는지 무척 걱정됐다. 해마다 이맘때 잠시라도 다녀와야 마음이 놓이던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 날을 잡았다. 소주, 육포, 술잔, 젓가락, 접시, 낫, 호미를 챙겼다. 준비물 목록은 머릿속에 들었다. 점심 숟가락 놓자마자 차를 달렸다. 15분쯤 걸린다. 시골 동네엔 벚나무와 자두나무와 앵두나무와 복숭아나무와 진달래가 저마다 아름다운 꽃을 터뜨렸다. 정작 산소 주변엔 아직 봄이 닿지 않아 찬 기운이 깔렸다. 잔디는 아직 누렇고 그 사이사이 동작 빠른 잡풀들 몇 포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술 따르고 안주 놓고 절했다. 다녀간 흔적이나 남기자 싶어 내버려둬도 괜찮을 잡풀 몇 포기를 잡도리하다 말았다. 굴러다니는 녹차씨앗을 시험 삼아 한 귀퉁이에 묻었다. 산소 아래 논둑에서 어린 머위 이파리 한 움큼 뜯어 돌아왔다. 다다음주쯤엔 머위도 제법 많겠고 두릅도 구경할 수 있겠다. 잡초들도 제 이름을 불러달라며 고개를 더욱 더 빳빳이 내밀 것이다. 주말 또는 휴일 오전엔 산소 가고 오후엔 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는 일상이 빨리 회복되기를 빈다.
2020. 3. 28.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