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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흥성흥성 페스티벌

by 이우기, yiwoogi 2020. 2. 14.

 

2020 큰들 겨울 연기캠프 공개발표회 <흥성흥성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2월 14일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하여 8시 40분에 마쳤다. 뒤풀이는 10시 넘도록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느낀 것 몇 가지를 남긴다. 행사 사진이나 동영상은 일부러 찍지 않았다. 청춘들의 초상권은 보호했다. ^^ 이들이 큰들 배우로 돌아와 마당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초상권을 보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ㅎㅎ

 

1. 캠프에 참가한 20대 청춘들 구김살 없는 밝은 표정을 보았다. 일부러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고 억지로 만들라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노랗고 파랗고 빨갛고 그리고 하얬다. 나 같은 놈은 도무지 만들 수 없는 수백 가지 빛깔이었다.

 

2. 청춘들의 어색한 연기에 담긴 진정성을 보았다. 나흘 동안 배운 연기가 이 정도이면, 넉 달 배우면 극단 큰들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삼사 년 배우면 아카데미 주연상 받겠다. 대사와 표정과 몸짓이 어울리지 않는 듯한 대목에서 웃음이 터졌고 그것들이 한데 버무려지는 듯한 대목에서는 왜 눈물이 났을까. 내 흥이 좀 넘쳤나?^^

 

3. 환상 동화 연극 한 도막 20분, 마당극 남명 한 도막 20분을 보았다. 하나는 신비롭고 신기하여 웃다 울었고, 하나는 익숙지만 낯설어서 울다 웃었다. 아홉 번 웃기고 한 번 울리는 건 내림이다. 환상 동화 ‘오늘이’를 아는 사람은 알아서 느꼈고 ‘남명’을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궁금해졌다. 아이, 정말~!

 

4. 2년 동안 마당판 따라다니며 보고 느낀 마당극을 무척 짧은 시간에 압축하여 다 보았다, 고 하면 거짓말이고... 마당극은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쉽게 공연할 수 있는 양식이다, 라고 느꼈다. 오해하면 안 된다. 실제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훌륭한 배우들이 잠시 선생님 구실을 맡아 주신 덕분일 것이다. 참, 짧은 공연 중간에는 선생님들이 울었고 끝난 뒤에는 다함께 가슴이 촉촉해졌을 것이다.

 

5. 큰들 행사는 늘 곁다리 무대까지 알뜰히 챙겨 보아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시작할 때 분위기 띄우고 중간에 쉰 다음 또 분위기 살리고 다 끝났다 싶을 때 뒤풀이에서 화끈하게 치솟는다. 나는 뒤풀이는 보지 않았다. 처음과 중간에 등장한 가수 수완 씨는, 마당판에서는 묵직한 배우이고 행사장에서는 믿음직한 가수이다.

 

6. 구경 온 분들은 큰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밀어주고 응원하고 격려하고 또한 사랑한다. 쉰 명 정도 초청한다 했는데 예순 명 넘게 온 듯하여 자리가 비좁았다. 마당극마을 공연장이 얼른 만들어지기를 빈다. 각자 인연은 다르지만 ‘큰들’로 만난 분들 모두 큰 들판으로 큰 강으로 함께 흘러가시길 빈다. 오늘 웃음 덕분에 눈가 잔주름 더 늘어났겠고 그 잔주름 덕분에 인생은 더 가멸어질 것으로 믿는다.

 

7. 큰들 사람들, 손님을 맞이하고 대접하고 배웅하는 데는 단연 세계 최고이다. 무엇을 하든 ‘큰들답게’, ‘큰들처럼’ 항상 그렇다. 배고픈 이 챙기고 심심한 이 말 걸고 어색해 하는 이 웃겨주고 떠나는 이 손 맞잡는 건 늘 변함이 없다. 캠프 온 친구들 마지막 날 떠날 때, 서로 마주보고 우는 모습 안 봐도 다 알겠다.

 

8. 큰들 배우들, 짧은 기간에 청춘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노느라고 십 년쯤은 젊어졌을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기 위해, 하나라도 더 일러주기 위해, 하나라도 더 먹여 주기 위해 노심초사 전전반측 그런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잖아도, 나에겐 동생뻘인데 이제 조카뻘이 되었으려나...

 

9. 큰들 젊은 단원들, 이를 테면 스스로 ‘20대들’이라고 일컫는 친구들에게 손뼉 크게 쳐 드린다. 이번 캠프를 준비하고 기획하고 실행하고 보여주고 마무리한 그들의 노력에 감탄한다. 이름을 일일이 적지는 않는다. 큰들이 ‘큰들답게’, ‘큰들처럼’ 흘러가는 건 아무래도 이들 덕분인 것 같다.

 

10. 극단 큰들을 알고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연기 캠프 공개 발표회에 꼭 가보시길 권한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뒤풀이까지 꼭 함께하길 바란다. 이런저런 까닭으로 뒤풀이를 함께하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쉽고 후회될 것이어서 이것마저 오늘의 느낌이라고 적어놓는다.

 

2020. 2. 14.

시윤

 

*** 극단 큰들 페이스북에서 옮겨 놓습니다. 불후의 명언들입니다. ***

 

캠프생들의 마당극 남명 공연 중 남명 선생님이 "큰들 캠프에 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입니다.


캠프생1: 분위기가 좋아서 다시 오고 싶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캠프생2: 걱정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캠프생3: 기댈 수 있는, 기대고 싶은 눈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캠프생4: 거침없이 말하고 소리 지르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캠프생5: 보고 싶은 쌤들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캠프생6: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두렵지 않고 따뜻할 수 있다는 것, 행복하지 않아도 이 정도면 괜찮아 하고 속이는게 아니라 정말 행복하다 느낀 게 처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