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큰들은 2019년 한 해 동안 104회의 마당극 공연을 했다. 12월 23일 창원에서 마지막 공연을 펼친 배우들이 마당에 드러누워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친 즐거움과 보람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은 극단 큰들 페이스북에서 빌려옴. 원래 사진은 컬러임)
2019년 한 해 동안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서른아홉 번 ‘공연장에서’ 보았다. 먼저, 재미있고 감동적인 공연을 펼쳐준 극단 큰들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바쁜 시간을 요리조리 잘게 쪼개어 공연장으로 달려간 스스로도 고맙다. 혼자 관람하러 간 적도 많지만 많은 좋은 분과 함께했는데, 그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래 전부터 알던 큰들과 2018년 무척 가까워졌고 2019년에는 더욱 가까워진 것 같다. 인연이란 참 소중하다.
12월 23일 창원동중학교에서 열린 <오작교 아리랑>을 끝으로 올해 공연이 끝났다고 한다. 한 해 동안 104회 공연했단다. 365일 토ㆍ일요일도 없이, 설ㆍ추석도 없이 공연했다고 가정하면 3.5일 만에 한 번씩 공연했다. 실제로는 열흘 이상 날마다 공연한 적도 있고, 산청에서 오후 공연을 한 뒤 경기도까지 저녁 운전을 해 간 적도 있다. 7~8월에는 비록 저녁이긴 하지만 무더위를 견뎌가며 공연한 적도 있다. 갑작스러운 비 때문에 공연장을 옮긴 적도 있고 기껏 공연 준비를 마쳤는데 비가 올까 싶어 조마조마한 적도 많다. 야외공연이 많은 마당극이라서 그렇다. 그렇지만 큰들은 한 해 동안 기나긴 행군을 즐겁고도 유쾌하게, 보란 듯이 마쳤다. 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마당극 공연은 주말이나 공휴일에 많이 하게 되는데, 휴일 나들이객들에게 잊히지 않는 추억을 선사하느라 무척 애쓴 큰들에 큰 박수 보내드린다.
하동 최참판댁에서 공연하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의 경우 10년째 한 곳에서 한 작품으로 공연 중이다. 한 해에 한 번씩 남이섬으로 나들이 공연도 한다. 옥외에서 한 자리에서 한 작품으로 ‘10년의 기록’은 쉽사리 찾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잘 만든 작품이라는 뜻이고 그만큼 하동군의 지원이 있었다는 뜻이다. 올해 마지막 공연은 11월 9일 열린 177회 공연이다. 산청 동의보감촌도 마찬가지고 산청한방약초축제장 공연도 그렇다.
내가 올해 본 마지막 공연은 11월 23일 경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진주아이쿱생협조합원한마당 행사로 마련된 <오작교 아리랑>이다. <오작교 아리랑> 공연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롭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170회를 넘어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이날은 생협 이사 한 분이 출연하여 더 큰 웃음을 안겨준 날이다. 그 뒤로도 마당극 공연은 10여 차례 더 있었는데 가지 못했다. 오후를 휴가 내거나 두어 시간만 외출해도 다녀올 수 있는 곳에서 공연하는데도 번번이 일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39번째에서 마당극 관람 행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쉽다. 지난해 34번, 올해 39번 관람했으니 내년에는 합하여 100번째를 채울 것으로 기대한다.
공연장을 찾아가서 본 것이 39번이라고 하면, 스마트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집에서 본 건 몇 번일까.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는 걸 컴퓨터로 옮겨서는 더 큰 화면으로도 본다.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고 보면 50번쯤 되지 않을까. 하나하나 적지 않아 모르겠다.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 <남명>, <역마>를 찍어 놓은 동영상이 15편인데 이 작품들을 자주 틀어본다. 잠에서 깨어 멍할 때 한 편 본다. 집에 아무도 없이 혼자 책 읽다가 문득 틀어본다. 밥 안치고 찌개 끓이면서 머리맡 찬장에 얹어 놓고 본다. 보다가 끊기면 밥 먹다가 이어 본다. 설거지할 때 틀어 보다가 그길로 1시간 동안 보고 앉았다. 어떤 이는 큰들 마당극 공연이 끝나고 다음해 3월 다시 시작하기까지 대략 석 달을 어찌 견딜지 모르겠다며 나를 놀리지만,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그저 웃을 뿐이다(진짜 속으로는, 좀 걱정된다).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보는 건 까닭이 있다. 첫째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극본과 연기와 음향과 연출과 관객 모든 게 신기하다. 어쩜 저렇게 잘 맞춰 돌아갈까. 어쩜 저렇게 잘할까. 어쩜 이렇게 재미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참 신기한 일이다. 둘째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여섯이던 까마귀와 까치가 은근슬쩍 일곱으로 되는 게 보인다. 소품으로 쓰는 산삼 줄기가 빠지던 것을 은근슬쩍 끼워 넣는 장면도 눈에 띈다. 셋째 기억력이 하도 나빠 금세 까먹곤 하던 대사나 몸짓 들을 잊지 않도록 해준다. 워낙 바쁜 세상살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작품 줄거리를 까먹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풀이하여 보노라면 절대 잊히지 않게 새겨진다. 넷째 심심풀이 땅콩으로도 그만이다. 마당극 작품 한 번 보는데 거의 정확하게 1시간 걸린다. 심심하고 잠도 오지 않을 때 한 편 잘 관람하고 나면 1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케이티엑스(KTX) 타고 서울 출장 갔다 오는 길에 세 작품을 한 번씩만 보면 어느새 서울에 가 있고 어느새 진주에 와 있게 된다. 다섯째 마당극을 관람하며 동영상으로 찍을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함께 간 사람도 생각나고 그날 들렀던 밥집도 생각난다. 마당극 덕분에 나섰던 나들이길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돌아와서 신나게 떠들며 뒤풀이하던 것도 다시 생각나 웃음 짓게 된다. 언제든 어떤 작품이든 되풀이하여 보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이 따로 없다.
마당극 여러 작품을 되풀이하여 보다가 문득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당극을 관람하는 어린이들의 태도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2년 동안 70여 회 마당극 공연장을 찾았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님 손을 잡은 어린이들은 늘 있었고, 그들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아주 가끔은 따분하게 마당극을 관람하곤 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는 것을 경험한다.
첫째 어떤 어린이는 마당극 내용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둘째 어떤 어린이는 건성으로 보는 듯했다. 이런 어린이는 머릿속에 스마트폰 게임이나 유튜브 장면이 가득 들어 있었을까. 셋째 어떤 어린이는 극 내용으로 빨려 들어가 자신이 배우인 줄 착각하였다. 넷째 어떤 어린이는 부모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자다가 화들짝 놀라 깨기도 했다. 다섯째 어떤 어린이는 마당극 전체 장면을 자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 꼼꼼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열에 여덟은 마당극이 재미있는 듯했고 한둘은 아닌 듯했다. 한둘에 포함된 어린이들은 마당극보다 만화영화(애니메이션)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첫째 마당극 내용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은 <오작교 아리랑>에서 흔히 본다. 2018년 12월 6일 거창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할 때다. 남돌이 연기를 할 배우를 관객 중에서 찾는다. 마침 맨 앞에 앉은 가족에 눈길이 갔다. 아빠가 남돌이로 불려 나갔다. 꽃분이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일곱 살쯤으로 보이던 딸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니 대성통곡했다. 세상에, 아빠가 모르는 여자와 결혼을 하다니! 이 아이는 무대 쪽으로 나가 울면서 아빠를 부르고 신발을 벗어 집어 던지기도 했다. 하도 울어서 공연이 잠시 중단된다. 남돌이 아버지가 그 어린이에게 “이건 실제 상황이 아니라 연극이다.”라는 식으로 말해주지만 그 딸아이의 흥분을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결국 엄마가 아이를 안고 공연장 밖으로 나갔다. 은근히 걱정됐다. 어린아이에게 너무 큰 정신적 상처를 준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연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그 세 가족은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못내 불편했을 것이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남돌이의 딸들이 이렇게 현실과 공연 내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신발을 집어던지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자신의 아빠를 뺏기지 않으려는 딸들의 반란은 더러 있는 일이다. ‘딸바보’가 흔한 세상이라서 더욱 그럴 것이다. 가정의 행복이 중요해진 시대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둘째 마당극을 건성으로 보는 어린이도 제법 있다. 열심히 보는 것 같기는 한데 반응은 전혀 엉뚱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남명>에서 김영감이 포졸의 몽둥이에 맞아 죽는 장면의 경우, 모든 관객이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쥔다. 그 장면은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어떤 비극적인 장면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런 걸 알 리 없는 어린이들은 그저 몽둥이에 맞아 죽는 한 사람의 ‘뛰어난 연기’로 이해하는 듯하다. 김영감이 순식간에 꼬꾸라지는 게 아니라 2~3초 정도 뜸을 들이면서 주저앉듯 꼬꾸라지는 장면이 그들에겐 우습게 보였던가 보다. 앞에 앉은 몇몇 어린이들이 재미있다고 웃는다. 내용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부분부분 연기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더 커서 이 장면을 다시 보는 날이 오면, 그는 좀 부끄러움을 느낄지 모른다. 이런 어린이들을 가만히 보노라면 극이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더욱 떨어져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풀을 뜯거나 돌을 들고 공기놀이를 하거나 곁에 앉은 부모를 졸라 일찌감치 자리를 뜨곤 한다. 그래도 싫다 하지 않고 번번이 공연장을 찾는 걸 보면, 마당극이 재미있기는 한 것 같다.
셋째 극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자신이 배우인 줄 착각하는 어린이도 있는데, 11월 2일 화개장터에서 <오작교 아리랑>을 함께 보던 어린이들에게서 그런 걸 느꼈다. 남돌이 가족과 꽃분이 가족이 버나 이어달리기를 했다. 처음엔 꽃분이 가족이 이겼다. 꽃분이 쪽에 앉은 어린이 서넛이 난리가 났다. 학교 운동회에서 자기편이 이긴 것 같다. 그 순간 그들은 실제 꽃분이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그건 연습경기란다. 안 된다고 난리친다. 고함을 지른다. 다시 경기를 하게 된다. 꽃분이 아버지가 “또 이기면 되지”라고 한 말에 기대를 건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번엔 남돌이 가족이 이겼다. 아이들은 숨이 넘어가도록 항의를 한다. 자기들이 보기엔 이건 게임의 법칙에 맞지 않은 것이다. 손가락질을 하다가 엄지손가락을 땅으로 향해 꽂는다. 한 번 더 하자고 항의한다. 실제 결혼식장에서 신랑 가족과 신부 가족이 무슨 대결을 벌이고 있는 현장 같다. 어찌 보면 ‘관객의 반응이 폭발적이다’라고 할 것이다. 어찌 보면 ‘그만큼만 하고 넘어가면 좋겠는데 아이들은 막무가내다’라고 생각될 정도다. 남돌이 아버지가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원래 대사에 없는 몇 마디를 했다. 그러다가 다음 대사를 잠시 까먹었다. 그래서 긴장감 넘치고 그래서 더 재미있다. 이날 어린이들은 마당판의 배우들 연기만 열심히 따라간 게 아니다. 남돌이로 등장했던 한 남자가 중간에 없어졌다. 집으로 간 것이다. 나중에 남돌이와 꽃분이가 다시 결혼식을 이어가기 위해 남돌이를 찾자 어린이들은 “남돌이 없어요!” “남돌이 갔어요!”를 외친다. 배우들은 물론 다른 관객들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는데 어린이들은 꽃분이와 결혼할 남돌이를 곁눈질로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진짜 꽃분이 조카라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을 일이었다.
꽃분이 가족이 이겼는데 그걸 연습경기였다고 하고 다시 경기를 하여 꽃분이 가족이 졌다. 아이들은 제 나름대로 항의를 한다. “사기다.”라는 말도 한다.
그러니 남돌이 아버지가 아이들을 달래는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다음 대사를 잠시 까먹기도 한다. 아이들의 열성적인 응원과 참여는 마당극 공연을 더욱 흥미롭게 하는 요소이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한 아이는 “갔어요~.”라는 말을 자꾸 해댄다. 엄마가 “좀 조용히 해라.”라고 다그치지만 소용이 없다. 뭐가 갔다는 말인가. 독립군 길상을 잡으려는 일본군과 조준구, 그들을 피해 독립자금 모으고 태극기 옮겨오고 사격연습하는 독립군 간에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계속되는 와중이다. 이 아이는 그런 장면 하나가 머리에 꽂혔나 보다. 숨 쉴 틈 없이 드나드는 배우들 가운데 누가 갔다는 것인지, 그 아이의 엄마도 나도 알 수 없는 가운데, 계속해서 “갔어요~.”를 외치는 아이야말로 마당극에 심취한 것이 분명했다. 자신도 독립군으로서 다른 독립군에게 긴급한 군호를 전파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넷째 이런 일도 있다. 오뉴월 또는 구시월 마당판이 벌어지는 동의보감촌은 햇살이 따사롭거나 시원하다. 대여섯 살 되는 어린이를 데리고 온 부모는 하루 종일 아이들 따라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돌아보고 들여다보느라 파김치가 된다. 마침 마당극 한 판이 벌어지니 이보다 좋은 구경거리가 있겠나. 하여,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부모가 나란히 앉아 마당극을 본다. 1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중간쯤 지날 즈음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든다. 배우들의 고함소리도, 악사가 두드리는 북소리도 자장가로 들리나 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흠칫 놀라 번쩍 깨어난다. 꿈결에, 잠결에 상황판단이 안 된 아이는 울음보부터 터뜨린다. 엄마는 다른 관객들에게 방해될까 봐 아이를 안고 얼른 뒤쪽으로 달아난다. 아빠가 안고 나가는 경우도 많다. 부모로서는 관람을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겠지만, 아이는 그걸 알 리 없다. 가족 나들이는 그렇게 마무리되기도 한다.
다섯째 어른보다 더 적극적인 어린이도 만난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안채에서 공연하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는 어린이가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5~6학년이나 됐을까. 혼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간혹 곁에 앉은 아빠를 바라보면서 열심히 찍는다. 특히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출연 배우들이 오른쪽, 왼쪽, 앞쪽, 뒤쪽에서 쉴 새 없이 드나드는데 그걸 일일이 따라가며 찍는다. 찍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유튜브에 심취하듯 마당극에 빠져보려는 것일까. 저 어린이의 학교생활은 어떨까. 혹시 풍물 동아리에 들어간 건 아닐까. 혹시 부모님이 오랫동안 마당극 공연장을 데리고 다닌 건 아닐까. 혹시 학교에서 마당극 본 소감문을 써내라고 했을까. 공연이 끝나지 않았는데 아빠가 아이 손을 잡고 나가자고 했다.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것이다. 아이는 마당을 빠져나가면서도 한 손에 든 스마트폰을 마당을 향했다. 마지막 0.1초라도 더 찍고 싶었던 것일까.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는 어린이는 뜻밖에도 자주 만난다.
마당극을 보다가 중간에 부모를 따라 집에 가야 했다. 아쉬움을 달랠 길 없어 돌아서서 나가는 순간까지 마당극 공연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이 어린이가 마당극에 푹 빠진 까닭은 무엇일까.
3월에 30일 하동군 화개장터에서 열린 마당극 <역마> 공연 때에도 왼쪽 귀퉁이에 앉은 한 어린이가 공연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은 재미있다. 남녀노소 누구든 즐길 수 있다. 주제는, 따지고 보면 의미심장하지만, 가볍고 쉽다. 어린이들이 재미있어 할 요소가 많다. <효자전>에서 엄마와 숨바꼭질하는 장면도 재미있고 임뻥아재가 잡아온 쏘가리를 낚아채가는 것도 흥미롭다. 저승사자의 검은 옷과 높은 키도 새로운 경험일 것이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함진애비 장면이야 잘 모르는 전통에 속하겠지만 관객 중 한 명의 남자와 꽃분이가 결혼한다는 설정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단, 그 남돌이가 자신의 아빠여서는 안 되겠지만.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서희가 간도로 쫓겨가는 것은 오래전 역사적 사실이지만 어린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치, 니, 산, 시”라며 등장하는 일본 군사들은 한마디로 요절폭도하게 하는 장면들이다. 어린이들도 매우 재미있어 한다.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대목에서는 마치 자신이 독립군이 된 듯하다. <남명>은 상대적으로 더 진지한 편이지만 전반적으로 신세대 용어(무료배송, 공감댓글)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시종일관 흥미를 놓치지 않을 작품이다. ‘5분 사또’가 말을 타고 달릴 때 배꼽을 잡고 웃는 건 어른뿐만 아니다. 영화나 유튜브 속 동영상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 웃기는 장면이다.
부모들이 초등학생 어린이들을 마당극 공연장으로 데리고 가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인지력이나 집중력이면 큰들이 공연하는 마당극을 제대로 감상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일부러 몇 가지 경향과 태도를 분류해 보았지만, 대체로 웃고 손뼉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이 어른들과 일치한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가족들이 함께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특히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나눠준 태극기는 소중하게 간직한다. 어쩌다 태극기를 받지 못한 어린이는 마당극 공연이 끝난 뒤 지나가는 어른에게 손을 내밀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부모들 손잡고 공연장에 나타나면 주위가 환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공연 전에는 마당 주변을 즐겁게 뛰놀고 공연할 때는 재미있게 관람하며 공연 후에는 소중한 추억 한 장을 넘긴다. 어린이들이 웃는 모습, 우는 모습, 찡그린 모습, 잠투정하는 모습들에서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지고 세상이 더 밝아짐을 느낀다. 이런 어린이들이 자라나 우리 것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하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끼며 왜 우리 것이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면 더없이 좋겠다. 우리 전통과 문화를 이어나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세계적인 시민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큰들 마당극을 통하여 조금씩 배워 나갔으면 한다. 내년에는 더 많은 어린이들을 마당에서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특히 어린이날에 공연을 하게 되면 큰들에서 커다란 사탕 하나씩 안겨 주리라는 것을 예상해 본다.
아무튼 2019년 큰들 마당극 공연이 끝났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다. 새벽같이 일어나 천릿길 멀다 않고 달려간 배우들과 연출가들. 신새벽에 신발끈을 동여매는 동료들에게 잘 삶은 고구마, 달걀 건네는 남은 배우들과 사무국 직원들. 함께 밥 먹고 함께 공연하고 함께 돌아오는 배우들. 그들을 기다리며 사무실을 지키고 큰들문화예술센터를 이끌고 가는 또 다른 단원들. 새로 옮긴 삶터에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으며 먼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모두모두 정말 수고 많으셨다. 이제부터 몇 달 동안만이라도 기쁨과 보람과 긍지를 듬뿍 안고 여유와 휴식을 즐기시길 빈다. 큰 기쁨, 큰 즐거움, 큰 행복을 안겨 주셔서 무척 고맙다. 나와 함께 나들이한 어머니와 친구들, 큰형님 내외, 이웃사촌, 동네 형님과 누나들과 동생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올해 큰들에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시시콜콜 알 필요도 없고 안다고 해도 아는 척할 필요가 없다. 단원과 그 가족 40여 명이 대가를 이뤄 살아가는데 재미있고 유쾌한 일도 날마다 벌어질 것이고 조금은 아픈 사연도 없으란 법이 없다. 하지만 모든 걸 함께 즐기고 함께 누리며 함께 이겨나가는 큰들이어서 아무런 걱정이 없다. 그런 삶의 태도를 조금씩이라도 배우고 싶고 얻어가고 싶을 뿐이다. 그런 가운데 행복이 샘솟지 않을까 여긴다.
큰들 35년 역사상 가장 큰 경사라 할 만한 일이 올해 있었다(‘가장 큰 경사’라는 말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아름다운 우리말 간판’에 선정되어 한글학회 진주지회와 경상대학교 국어문화원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것도 기억난다. 일본, 라오스 등 외국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한 것도 큰들 역사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기록될 것이다). 바로 ‘산청마당극마을’을 준공하여 사천에서 산청으로 터전을 옮긴 일이다. 10월 25일 하루 종일 축하와 격려와 감사의 정이 산청군 내수마을을 메아리쳤다. 이사한 뒤로는 아직 놀러가지 못했는데, 조만간 바람 쏘이러 한번 가보고 싶다. 그새 나무는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다. 땅은 얼마나 더 다져졌는지 보고 싶다. 아직 사천 옛 터전을 완전히 비우지는 못했으니 당분간 두 집 살림을 할 것이다. 오가는 길 안전하기를 빌고,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산청마당극마을 조성 사업을 순리대로 잘 완성해 나가기를 또한 빈다. 무엇보다, 올해 아팠던, 아픈 배우들의 빠른 회복을 두 손 모아 빈다.
2019. 12. 24.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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