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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큰들과 함께 황금 주말을 달렸다

by 이우기, yiwoogi 2019. 10. 27.

 

 

사천 큰들 사무실 옆에 있던 건담이 산청 마당극 마을로 옮겨 왔다. 새로 색칠했다. 

박춘우 무대감독 작품이다. 사진 명소가 될 것 같다.

 

20191025일 금요일 오후부터 1027일 일요일 오후까지 48시간을 큰들과 함께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이런 날이 또 있을까 싶다. 일러 황금 주말이라 부른다. ‘황금이라는 말이 주는 배금주의적 어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렇게 달콤하고 행복하고 황홀한 주말을 달리 무엇이라 이를 것인가. 황금 주말에 일어난 일들은 머리에 남고 가슴에 남아 꿈에 나타나고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예술공동체 큰들이 산청군 산청읍 내수리 2만여 평의 터에 큰들 산청 마당극마을을 만들었다. 진주에서 사천으로 옮겨다니던 큰들은 단원들이 안정적으로 작품을 창작하고 일상 생활을 해나가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15년 전부터 꿈을 꾸었다. 진주 어디에 사무실이 있을 때는 산사태로 큰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고 들었다. 2010년 산청군 산청읍 내수리 땅 2만여 평을 사들이며 마당극마을 만드는 일이 시작됐다. 2015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사업인 신규마을 조성사업공모에 선정되어 기반공사(토목, 전기, 상수도, 도로)가 이뤄졌다. 지원사업 지침이던 30세대 단독주택 건축재정은 단원들의 전세금, 120명 후원자들의 출연, 농촌주택 개량사업 농가대출금으로 마련했다고 한다(준공기념식 안내책자 참고).

 

큰들은 1025일 오후 3큰들 산청 마당극마을 준공기념식과 잔치마당을 열었다. 오래 전 초대장이 왔다. 초대장에 그려진 그림을 보았다. 무대감독 박춘우 씨 작품이다. 초대장을 만들면서 서로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을 그들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하여 직접 축하하고 싶었다. 세월은 더디 흘렀다. 준공기념식과 잔치마당을 준비하는 큰들에겐 세월이 쏜살같았을 것이다. 꽉 짜여진 공연 일정 속에서도 수백 명 손님 치를 준비를 빈틈없이 해나갔을 것이다. 그런 때의 그들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상상해 보았다. 창립 35년 만에 완전히 새롭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마을을 직접 자신들의 노력으로 만든다고 생각했을 때, 그 순간 기분은 어떠했을까. 상상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뜬구름 같고 신기루 같기만 했다.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과 진실에 근접할 수 없었다.

 

행사를 일주일 앞둔 1019일 남명선비문화축제 행사장에서 마당극 <남명>을 공연했다. 공연장에서 이규희 대표는 나에게 행사 당일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내가 큰들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맞고 내가 직장에서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명색 찍사 노릇을 하는 것도 맞고 내가 큰들 마당극마을 준공식 날 반드시 참석하는 것도 맞지만, 그 큰 행사를 사진 기록으로 남기는 중차대한 일을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사진이 잘못 나오거나 주요 장면을 놓치기라도 하면 그 낭패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이 대표에게 후원회원을 찍사로 만들려고 하느냐?”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 대표는 다시 부탁했다. ‘, 이분들이 사람 난처하게 만드네.’ 생각하다가 나 말고 다른 사진사가 있다는 말에 반쯤 승낙했고 주된사진사는 내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승낙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곧 후회했다. 진정한 속마음은, 멋지게 진행되는 행사를 느긋하게 즐기고 차려주는 술과 안주를 마음껏 마시면서 취하고 싶었던 것이지, 행사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찍사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승낙해 버린 것을 어쩌랴.

 

금요일 오후에 휴가를 냈다. ‘워라밸이라는 희한한 말을 지어내어 휴가를 늘 권장하기에 부담은 없었다. 같은 직장 동료이자 큰들 후원회원인 두 분과, 돌아올 때 술취한 우리를 태워주기로 한 아내, 이렇게 넷이 만났다. 점심을 국수와 땡초전으로 때웠다. 오후 3시까지 가면 될 것을, 사진을 맡은 나 때문에 일찍 가게 됐다. 도착하니 115분이다. 마을 입구에서 이진관 농사팀장이 차량을 안내하고 있다. 내리면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서지은 사무국장이 맨 먼저 반겼다. 후원회원을 챙기는 윤정순 후원회원관리팀장, 김혜경 배우, 박정현 특별사업단원 들이 손을 흔든다. 방명록에 이름을 쓰라 하고 가슴에 다는 배지를 나눠준다. 방명록에 날로날로 커가기를 바란다고 쓰고 돌아서니 위쪽에서 누가 부른다. 전민규 예술감독이다. 공식 행사는 오후 3시부터이지만 나에겐 이미 행사 시작이다.

 

 

 

구경하는 집 거실에 놓인 야생화. 이정희 선생이 찍었다.

 

구경하는 집(오픈 하우스)에 들어가 보았다. 큰들 단원들의 살림집을 공개한 것이다. 집은 좁았다. 거실, , 주방, 욕실 등 사람이 살기에 부족함은 없었지만 일반적인 가정에 견주면 좀 좁게 느껴졌다. 혼자 살면 넓겠고 두 명 살면 알맞겠고 세 명 살면 좀 갑갑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무릎을 쳤다.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대문 나서면 남의 집이다. 앞뒤 베란다에서도 건너편 건물이 보일 뿐이다. 큰들의 집은 대문 나서면 또 가족의 집이다. 거실 큰 유리를 통해 보이는 풍경은, 절경이고 선경이다. 거실에 앉아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한없이 펼쳐지는 작품의 꿈과 창작의 열정으로 지붕도 벽들도 뻥 뚫려버릴 것이다. 몇 평이냐 하는 게 무슨 소용이랴.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들끼리 체조하고 식사하고 연습하는 동안 해는 산 위로 떠올랐다가 식구들 사는 마당극마을을 밝게 비추다가 남명 조식 선생이 그토록 좋아했다는 천왕봉 쪽으로, 아니면 상설마당극 열리는 동의보감촌 쪽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런 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에겐 2만 평 마을이 이불이요 정수산이 베개가 되지 않을까. 천왕봉은 그들에게 무엇일까.

 

사천에서 옮겨온 건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 단추를 누르면 발바닥에서 붉은 불빛을 내쏘면서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전시해 놓은 마당극 소품들도 찍었다. 누군가 !” 신호만 보내면 소품들이 마당으로 뛰어들 것만 같다. 배우들의 손때 묻은 소품을 보면서 잠시 감상에 젖었다.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을 눈앞에 드러나 보이게 하는 데는 소품이 많이 필요하다. 톱질하고 못질하고 붙이고 칠하며 만들어낸 소품들은 마당극을 마당극으로 만드는 크나큰 역할을 한다. 컨테이너 하우스에도 가 보고 뒷산 언덕에도 올라 보았다. 멀리 천왕봉이 손짓하는 듯하다. 빨강, 노랑 원색이 뒷산 푸른 소나무와 묘한 대조와 대비를 이룬다. 참 잘 구성된 마을이다.

 

오며가며 단원들을 만났다. 나는 마음속으로 34명 단원 모두와 악수하리라 다짐했다. 손을 맞잡고 마음껏 축하해 주고 싶었다. 평소 공연장에서 보는 것과 달리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느라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단원들에게 앞앞이 인사하고 악수했다. 나중엔 누구를 만났는지 누구를 안 만났는지 모르겠던데, 결국은 성공하고야 말았다. 전민규 예술감독, 이규희 대표, 송병갑 상임연출, 서지은 사무국장, 진은주 기획실장, 박춘우 무대감독, 김혜경 배우장, 김영란 창원큰들단장, 정용철 진주큰들단장, 이은숙 살림단장, 이진관 농사팀장, 최명희 특별사업단장, 임경희 작가, 하은희 배우, 윤정순 후원회원관리팀장, 류연람 극단큰들단장, 임기원 사무국원, 김안순 배우, 정태국 사무국원, 김상문 배우, 김정경 문화예술교육팀장, 안정호 배우, 최샛별 배우, 오진우 배우, 박진묵 공간관리팀장, 이인근 배우, 김세림 사업단장, 무로하라 쿠미 국제교류팀장, 박정민 배우, 조익준 배우, 박정현 특별사업단원, 홍수완 공간관리팀원, 김가람 배우. 군대 간 이명기 배우 빼고 모두 만나 손을 잡았다.

 

 

 

 

 

준공기념식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기관장도 오고 단체장도 오고 군의원도 오고 도의원도 왔다. 축하 공연할 사람도 오고 일본에서도 손님이 오고 라오스에서도 손님이 왔다. 나처럼 그냥 후원회원도 오고 나보다 훨씬 오래된 후원회원도 왔다. 엠비시(MBC)경남에서 기자들이 취재를 왔다. 경남도민일보에서도 취재 왔다. 주차장엔 자동차가 빼곡히 들어찼고 천막 아래엔 삼삼오오 지인들끼리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큰들 단원들의 가족들도 많이 오신 듯했다. 특히 부모님들은 내 자식이 어떤 집에서 살게 될지궁금하여 발걸음을 하신 듯했다. 자녀인 단원들과 이리저리 둘러보는 눈길에 자애심이 가득하다. 어느 분이 누구신지 알기만 하면 모두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그건 무리였다. 몇몇 단원들은 아버지, 어머니 혹은 시부모님과 사진을 찍었다. 무심코 찍은, 갑자기 찍힌 사진 한 장이 그들에게 오래도록 간직되기를 바랐다.

 

공식 행사 시작 전에 산청지역 큰들 강습생들이 길놀이 공연을 했다. 니나노 시스터즈와 가수 김원중도 노래를 불렀다.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분위기와 행사 성격에 걸맞은 가수를 잘 섭외했을까. 이 생각은 나중에 잔치마당과 뒤풀이에서 더욱 깊이 들었다. ‘큰들답다’, ‘큰들스럽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개회를 선언하고 오신 분들을 소개하고 전민규 산청 내수지구 신규마을 정비조합 조합장이 인사말을 했다. 여러 분의 축사도 이어졌다.

 

 

전민규 큰들 예술감독이자 산청 내수지구 신규마을 정비조합 조합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전민규 조합장은 행사 안내 책자 인사말(모시는 글)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과 응원 덕분으로 지어진 마을인 만큼 기대에 어긋남 없이 예쁘게 잘 꾸려가고 싶다. 안정적인 창작 공간에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전국으로, 세계로 더 신명나게 공연 다니겠다. 마을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활동들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더 크게 기여하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했다. 이재근 산청군수는 마당극뿐만 아니라 순수한 예술가들이 한 마을을 조성하여 입주하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더욱 뜻깊다. 앞으로 큰들 단원들께서는 더욱 특색있는 마을로 발전시켜 전국 최고의 마당극 마을로 발돋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축하했다. 츠쿠타니 오사무 일본 로온 산요도 지역 사무국장은 아름다운 여러분의 따뜻함과 강인함이 새로운 역사를 마침내 이곳에 새겼다.”고 축하했다. 라따나 분쑤완 라오스 루앙프라방 교원대학교 총장은 라오스 국민은 물론 라오스를 방문했던 해외 관광객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주셨던 큰들이 이렇게 마당극 마을을 만들어 준공식을 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큰들은 마당극 마을을 조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건축 관계자들에게 감사패를 드렸다. 감사패는 박춘우 무대감독이 그린 그림을 액자에 담은 것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큰들만의 감사패였다. 이어 극단 큰들의 공연 <순풍에 돛 달고> 공연이 펼쳐졌다. 모든 큰들 가족이 마당으로 나가 함께 인사하고 노래하고 춤췄다. 역대 공연 작품의 주인공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분위기를 이끌었다. 나로서는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 <역마>, <남명>을 기억하지만, 오래된 큰들 팬들은 <순풍에 돛 달고>, <흥부네 박 터졌네> 등을 기억하는가 보다. 주인공 배우들이 대사를 짧게 짧게 하면서 행사에 참석한 손님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자세히 보니 배우들이 바뀌었다. <오작교 아리랑>의 남돌이 어머니는 원래 이규희 대표인데 이날은 오진우 씨가 맡았다. 오진우 씨는 꽃분이 아버지였는데 말이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의 조준구는 오진우 씨인데 이날은 김가람 씨가 맡았다. <효자전>의 임뻥아재 어머니는 류연람 씨인데 이날은 김혜경 씨가 맡았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낯설게 하기는 또다른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단원과 모든 손님이 함께 손뼉치며 뱃노래를 열창했다. 내수리 마당극마을이 들썩들썩했다.

 

단체 사진을 찍을 시간이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0명 이상, 더 많이 잡으면 700명도 넘을 인원을 한자리에서 한꺼번에 사진을 찍겠단다. 이 무모한 계획을 큰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준공기념식 행사가 열린 너른 마당 바닥에 깔개를 깔고 딛고 올라설 계단을 갖다 놓았다. 동작 빠르고 눈치 빠른 단원들이 순식간에 사진 촬영장을 만들었다. 쭈삣쭈삣거리던 손님들이 주섬주섬 앞으로 나갔고 사진사들은 거슬리는 탁자와 의자를 치웠다. 그러고선 역사에 길이 남을 단체사진이 완성됐다. 나는 보조 카메라여서 제대로 찍지 못했지만, 주인공 사진사의 작품은 두고두고 명작이 될 것이리라. 나중에 커다랗게 인화하여 큰들 사무실에 걸어놓을 사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사진을 다시 확대해 보니 앞사람 머리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분이 많다. 사진도 약간 삐딱하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고 어쩔 수 없으면서도 미안했다. 하지만 사진은 큰들과 큰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 만들어낸 기적적 작품임에 틀림없다.

 

 

 

'큰들 산청 마당극마을 준공기념식과 잔치마당' 공식 행사 후 기념촬영을 했다. 크고 위대한 예술작품 같다. 

 

잔치마당은 더욱 흥겨웠다. 이때부터는 소주, 맥주, 막걸리를 갖다 놓고 수육, 파전, 가오리무침 등 안주와 함께 공연을 즐겼다. 멀리서 가까이서 찾아와준 손님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잔치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멋진 곳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행사를 함께한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곧 큰들의 저력인 듯했다. 큰들의 힘이 무엇인지 느낄 만한 시간이었다.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종횡무진 여기저기 이곳저곳 다니면서 찍고 또 찍으면서 나도 모르게 흥이 났고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왔다. 술의 힘이었을까. 정수산 산신령의 조화였을까. 무려 7시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그다지 힘든 줄 몰랐다. 어둑어둑해졌다. 사진기 플래시를 본격 가동할 시간이 되었다. 잔치마당이 끝나고 자리를 옮겨 뒤풀이에 들어갔다.

 

뒤풀이는 그야말로 난장이었다. 처음 차분하게 시작했다. 공연이 이어졌다. 그사이 손님들은 술을 비웠다. 큰들 단원들은 부지런히 술과 안주를 날랐다. 소고기국밥을 날랐다. 비좁은 탁자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뛰어다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사진을 찍었다. 오다가다 맥주를 얻어먹었다. 국밥도 한 그릇 맛있게 비웠다. 축하공연이 이어질수록 행사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젊은 단원들이 무대에 올랐다. 함성과 박수와 노랫소리가 건물을 흔들었다.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불렀는데 다 기억하지 못하겠다. 사진을 보니 오진우, 김상문, 류연람 배우가 노래를 부른 것 같은데 그들이 무슨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하지 못하겠다. 전민규 예술감독의 딸인 전지원이 '흥부가' 한 대목을 불렀던 것 같다. 숲샘 최세현 선생님이 축시를 낭송했다. 그 즈음 나는 이미 만취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나는 찍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플래시 건전지를 갈아 끼워 다시 찍었다. 주방에서 주걱을 들고 떼창을 하는 분들도 찍고 일본 손님도 찍었다. 뒤편에 서서 전체를 관망하는 단원들도 찍었다. 그들은 흥분했고 즐거워했고 들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했고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의지했다. 그들은 서로 사진을 찍었고 서로 술을 권했고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웃는 모습도 찍었다. 마시는 모습도 찍었다. 밤은 깊어 갔고 바람은 차가웠다.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3시부터이지만 실제로는 1시쯤부터 시작한 행사가 830분쯤 일단 마무리됐다. 일찍 온 사람 늦게 온 사람, 일찍 돌아간 사람 늦게 돌아간 사람들이 모두 흐뭇하고 행복한 하루였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큰들이라는 큰 이름을 새겨넣어준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렇게 장대하고 원대한 꿈을 꾸도록 했을까. 무엇이 이들의 꿈을 이루어가도록 했을까. 큰들이 만들어 나가는 문화예술과 대동세상이 현실로 나타나게 할 그 무엇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참되고 올바른 성질이나 특성이라고 할까. ‘남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남을 이끄는 영웅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아를 성찰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할까(이 두 가지 풀이는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서 가져옴). 그리고 늘 큰들이 말하듯 인정, 배려, 진정, 감사, 감동을 나누며 화목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그것이 오늘의 큰들이 있게 하였고 내일의 큰들을 믿게 하는 것 같다.

 

손님들은 저마다 큰들과의 인연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추억과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누리소통망(SNS)에 자기가 가진 기억과 추억을 펼쳐놓았다. 바라는 바도 적는다. 죄다 찾아 읽지는 못했다. 그중 김석봉 전 환경운동연합 의장님의 글 한 대목을 옮겨 놓는다. “저 끓어넘치는 풍자와 해학이 역사와 인물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지역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큰들의 경륜과 능력이 더 무한한 곳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나는 이 거친 세상과 위기의 인류를 구원할 미래주제로 발걸음을 내디뎌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욱한 미세먼지에 암울한 인류의 미래,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를 꽂은 채 죽어가는 바다거북, 온갖 쓰레기로 배를 채운 아귀, 무너지는 열대우림과 수출을 자랑하는 핵발전소. 나는 우리들의 큰들이 세계인의 큰들이 되기를 희망한다. UN총회장 앞마당에서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풍자와 해학의 마당극이 한 판 농염하게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애정 없이는 말하기 어려운 주문이다.

 

뒤풀이장에서 축시를 낭송한 최세현 선생님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를 한 편 올렸는데 행사장에서 낭송한 것과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나는 모른다. ‘물안실에 새 둥지를 튼 큰들에게라는 제목의 시에서 한 대목을 옮겨 놓는다. “이제, 지리산 천왕봉이 빤히 보이는 이 물안실에서 / 그대들이 그렇게 꿈꾸었던 대동세상의 둥지를 틀었으니 / 지리산의 기운 받아 튼실하게 뿌리 내리는 일만 남았으리라 // 그렇게 내린 뿌리, / 머잖아 새싹으로 꽃망울로 피어나 / 이 땅 구석구석 힘들고 아픈 이들의 눈물 닦아주고 / 상처 보듬어 주는 치유와 위로의 굿판을 펼쳐주시라 // 시월의 가을 햇살로 가득한 이 물안실, / 큰들 그대들이 꿈꾸는 대동세상 희망의 씨앗을 / 온 세상으로 널리널리 퍼뜨려주시라 / 그것이 큰들 그대들이 오늘 이곳에 자리 잡은 까닭이리니...”

 

사진 찍느라 행사장을 몇 바퀴나 돌아다니고 무대 뒤쪽 산에도 올랐다. 무대 중앙에서 벌어지는 인사말 장면, 감사패 증정 장면, 축하 공연 장면 등을 담느라 앞과 옆과 뒤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행사 장면을 찍는 많은 사람의 스마트폰에도 내가 찍혔다. 얼떨결에 나를 찍은 분들이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주인공을 찍는 내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기쁘고 고맙다. 단체 사진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찍사는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올려주는 어쩌다 찍힌내 사진을 보면서 단체 사진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사진 찍는 나를 최세현 선생님이 찍어 페이스북에 올려 주셨다. 감사드린다.

자세가 엉성해서 그런지 많은 사진이 삐딱하다. 

 

 

뒤풀이할 때도 찍혔다. 이정희 선생이 저 멀리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아니다. 주인공을 찍다보니 내가 '찍힌' 것이다. 감사드린다. 

 

1026일 토요일 아침 눈을 떴다. 모든 게 꿈처럼 비현실적이다. 퉁퉁 부은 눈으로 컴퓨터부터 켰다. 저녁에 만취 상태에서 사진은 컴퓨터로 옮겨 놓았다. 밤새 사진기 안에 있던 사진들이 어디론가 달아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었다. 사진은 사진기에도 있었고 컴퓨터에도 있었다. 세어보니 2702장이다. 맙소사.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여러 장 지웠다. 사진 속 주인공이 눈 감은 사진은 모조리 지웠다. 심하게 흔들린 사진도 지웠다. 흔들린 사진은 대부분 뒤풀이 때의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보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주로 내가 아는 사람들 위주로 찍혔다. 불가피했을까. 의도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러나 큰들을 너무나 잘 알고 큰들도 잘 아는 더 많은 분들을 찍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다. 그것을 술 깬 아침에서야 깨달은 것이다. 미안한 마음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그렇게 사진들을 지우고 지우고 나니 2034장이 남았다. 이동용기록장치(유에스비)에 담으니 8.5기가바이트가 된다.

 

나는 이 유에스비를 들고 하동으로 갔다. 하동에서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 175회 공연이 열릴 것이다. 가는 길은, 늘 그렇듯이 느릿느릿하고 가물가물하다. 아련하고 감미롭다. 섬진강도 다정하고 악양들판도 정답다. 가을걷이가 끝난 악양들에는 부부송이 유독 눈에 띈다. 가을에 벌어진 허수아비 축제는 자취만 남았고 내년에 다가올 파종의 기다림은 아직은 부질없다. 부부송밀면 식당에서 밀면을 먹었다. 일부러 시원한 국물을 부탁했다. 물이라기보다는 얼음이라고 해야 더 알맞을 육수를 천천히 녹여 먹으면서 지난밤 광란의 추억과 만취의 쓰림을 달래었다. 식당 안 기둥에 태극기가 꽂혀 있다. 반갑다. 이 태극기는 마당극에서 쓰는 소품이다.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나 된다. 이 집 쥔장이 큰들 팬인가 보다. 누군지 모르지만 손님으로 온 관객이 두고 간 것을 그대로 꽂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디에서건 이런 걸 만나면 반갑고 고마운 마음부터 든다. 이날 공연에는 전날 준공식 행사 때 고생한 젊은이들이 많이 왔다. 큰들 연기캠프 학생들이란다. 이규희 대표도 왔다.

 

 

 

 

진은주 기획실장에게 사진이 담긴 유에스비를 전달했다. 내 임무는 끝났다. 사진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 하는 분석과 판단은 오로지 큰들에 맡기고, 크나큰 행사가 잘 마무리되는 데 0.01%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은 2시에 시작했다. 나는 맨 처음 길놀이에서부터 맨 마지막 배우들이 손 흔드는 장면까지 자르지 않고 한꺼번에 이어서 찍었다. 이렇게 찍는 건 처음이다. 중간중간 카메라 방향이 틀어지기도 하고 손이 떨리기도 하였지만 어쨌든 전체 그림을 끊지 않고 담았다는 게 신기하고 기분 좋다.

 

 

일본군인에게 끌려가는 임이. 큰들에서 연기를 배우는 지수빈 학생이다. 긴박하고 처절한 장면을 매우 잘 연기했다.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목은 임이가 일본 군인에게 끌려가는 장면이다. 임이는 박정민 배우가 맡아 왔다. 이날은 다른 사람이다. 공연 시작 전 연습할 때 모습을 보이던 젊고 예쁜 배우다. 누군지 살짝 물어보니 큰들에서 연기 실습 중인 학생이란다. 대견하고 멋지다. 그이는 길놀이에서 유난히 신나게 팔을 흔들었고 유난히 밝은 표정이었다. 조준구가 최참판댁 재산을 분탕질할 때는 춤꾼으로 나온다. 어린 서희가 간도로 쫓겨갈 때 등장하는 세 명의 아낙 중 한 명으로도 나온다. “간도? 간도 크다!”라는 대사를 한다. 세 아낙 중에 가운데 섰다. 그리곤 임이로 등장하여 일본 군인에게 끌려간다. “엄마!, 엄마---!”를 외칠 때 온몸에 전기가 찌르르 흐른다. 임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어머니와 강청댁, 그리고 임이를 끌고 가려는 일본 군인 사이에서 임이는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한다. 결국은 끌려간다. 일본 군인에게 오른쪽 손목을 붙들린 채 끌려가면서도 돌아보며 엄마를 부르는 임이의 목소리는 가슴을 찡하게 한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임이의 왼손을 놓친 엄마와 그 엄마의 뒤에서 함께 용 쓰던 강청댁도 바닥에 쓰러진다. 슬픔이 극에 달한다. 이날 임이를 연기한 사람은 지수빈 학생이라고 한다. 큰들에서 연기를 배우는가 보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마 처음이었을 배역 연기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아주 잘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다음날인 1027일 일요일에도 역시 그러하였고, 나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혼자 마당극을 보면 좋은 점이 있다. 곁의 어느 누구를 위해 마음 쓰거나 몸 움직일 필요가 없다. 오로지 나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 자신만의 감정에 충실하게 된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마당극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볼 때보다 몰입도가 높아진다. 지난해, 올해 마당극을 70회 가량 본 나로서는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실제 경험에서 드러나는 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 경기도 안산에서 오신 장인, 장모님과 큰처남, 조카와 함께 즉 여섯 명의 대 식구를 대동하여 마당극 보러 가기로 마음 먹은 것은, 정말 재미있는 마당극을 꼭 보여드리고 싶은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일부러 마당극 보러 오시라고 해도 될 것을, 이날까지 기다린 것은 가을에 진주에 한번 오시기로 되어 있고 어쩌면 마당극 공연날짜와 맞출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장인어른의 부모님이 625 때 비명에 가시고 어린 형제를 거두어 키운 고모의 제사가 다가왔다. 장인어른은 토요일 마산 어디쯤 공원묘원에 있는 생명의 은인이자 부모나 다름없는 고모의 산소에 가서 절하고 오셨다.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술도 제법 마셨다. 그리곤 일요일 오전 하동으로 출발할 계획이었다.

 

, 그러나 계획은 미정이라는 말을 누가 했더란 말인가. 아버님은 안산에서 일정이 급하다며 한사코 하동행을 부담스러워 하셨고 결국 아침 밥 드시자마자 910분경 처남이 운전하는 차로 귀가하시었다. 하동으로 갔다가 구례, 남원으로 가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산청 동의보감촌에 가서 구경 좀 하고 버섯전골로 점심까지 드시고 가면 안 되겠느냐는 사위와 딸의 요청도 끝내 뿌리치시고 급한 걸음을 놓으셨다. 야속하고 안타까웠다. 죄송하고 또 죄송했다. 함께 출발하려고 나서던 우리는 하릴없이 다시 집으로 와서 드러누웠다. 당초 하동에 가서 만나기로 했던 아내의 친구와 그이의 어머니를 아예 진주에서부터 동행하기로 했다. 올해 74살인 그이의 어머니는 명랑하고 쾌활했다. 건강하고 밝고 환했다. 11시쯤 가좌동에서 하동으로 출발하는 차 안에는 나와 아내, 아내의 친구와 그이의 어머니 이렇게 넷이 타고 있었다. 원래 함께 출발하려던 장인, 장모님과 처남과 조카는 110분쯤 안산에 도착했다고 문자로 알려왔다.

 

 

한산사 앞에서 악양들판(무딤이들)과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일행. 유쾌하고 건강한 어머님 늘 행복하시길 빈다.

 

악양들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하동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한산사 앞에 갔다. 들판을 내려다보는 어머니는 탄성을 질렀다. 건너편 산아래 자락에 박혀 있는 집들을 보면서 사람이 참 많이도 산다.”고 했다. 사랑채 식당에서는 비빔밥이 맛있다.”고 하셨다. 주렁주렁 매달린 대봉감을 보면서 감이 매달린 것은 처음 본다. 나무가 무겁겠다.”고 하셨다. 붉게 물든 벚나무 단풍을 보고서는 색깔이 너무 예쁘다.”고 감탄사를 내뱉으셨다.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먹을 때마다 자기 감정을 아낌없이 내놓으셨다. 맑고 높은 하늘을 보면서, 엷게 번져가는 구름을 보면서 소녀시절 감성을 거르지 않고 날것대로 풀어헤치셨다. 부러웠다. 그런 감성이 부러웠고 감성을 포장하는 어머니의 단어 선택이 부러웠다. 딸과 나누는 대화 속에 흐르는 도타운 정이 부러웠고 흉금을 터놓고 나날살이를 드러내는 그들의 속깊은 정이 부러웠다. ‘오늘 하루 함께 여행하면서 모녀의 알콩달콩한 정을 조금 배우고 느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어쩌다 내가 쓴 책 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를 읽으셨고 글쓴이를 만나보고 싶다 하셨단다. 그래서 마련된 하동 나들이는, 책 이야기보다는 경치 이야기 날씨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 이야기들은, 미안하게도, 마당극 이야기에 묻혀졌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 1부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내년에 꼭 다시 모시고 가야겠다.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1부를 모녀가 나란히 앉아 보았다. 자리를 옮겨 2부 끝까지 대단히 진지하게 그리고 아주 열심히 보았다. 보는 중간 중간 웃음보가 터졌고 어떤 데서는 눈물을 닦았다.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극의 내용에 몰입하는 그들을 옆에서 흘깃흘깃 보면서, 모시고 오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었다. 그 옆 자리에 우리 장인, 장모님도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내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꼭 기억해 두고 싶은 것은, 이 모녀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 번 이상은 되는 듯했다. 텔레비전 연속극도 죄다 섭렵한 듯했다. 마당극 내용에 나오는 서희, 길상, 조준구, 홍씨 이름을 익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서희가 앙칼지게 내뱉는 찢어죽이고 말려죽이고 말 테다, 내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야!”라는 대사까지 알고 있다. 토지애독자가 마당극을 만나는 역사적 장면이다. 어머니는 돌아올 때 말하셨다. “그래도 소설이 더 재미있다. 그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자세하고 재미있는지 모른다.”라고. 또 말하셨다. “마당극 정말 재미있다. 연기도 잘하고. 다음에 또 언제 하는가?” 올해는 일정이 맞지 않고 내년 봄 날씨 따뜻할 때 꼭 다시 보러 오자고 약속했다. 나는 이런 분들 모시고 마당극 보러 다니는 게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 공연 보면서 에너지를 얻고 공연 본 사람들로부터 또 에너지를 얻는다. 오늘은 아내의 친구와 그 친구의 74살 어머니로부터 내가 가을하늘 같은 커다란 에너지를 얻었다. 돌아오는 길에 하동 배 한 상자와 단감 한 상자를 경기도 안산으로 부쳤다. 덤으로 얻은 대봉감은 친구네 어머니와 나눴다. 차 안에서는 아귀포와 단감과 배와 과자를 먹었다.

 

1025일 금요일 12시 점심 먹을 때부터 1027일 일요일 하동 공연 보고 진주로 돌아온 오후 5시까지 온통 큰들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런 주말을 황금 주말이라고 부른다. 실제 황금 들녘도 많이 보았고 황금보다 조금은 빨간 감도 많이 보았고 황금배도 보았고 황금 빛깔로 염색한 옷들도 제법 보았으니 황금 주말이라 일러 부족할 게 없긴 하다. 큰들이 15년 동안 꿈꿔온 마당극 마을의 준공기념식과 잔치마당에 함께한 것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일이다. 주말과 휴일 이틀 연속 하동으로 마당극 보러 간 것도 기억에 남을 일이다. 한번은 나 혼자, 한번은 즐거움과 유쾌함이 넘치는 어른과 함께했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가 잠시 바뀐 것 또한 추억이다. 마당에 사람을 불러모으기 위해 시작하는 길놀이에서부터 맨 끝까지 끊기지 않고 동영상으로 촬영한 첫날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처갓댁 어른을 모실 뻔한 날이기도 하고. 그래서 아내 마음이 더욱 아팠을 날이기도 하고. 한가지 더 있다.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장을녀 선배님을 공연장에서 만난 날이기도 하다. 선배님은 큰들의 전신이라고 할 경상대 전통출신이라고 한다. 나처럼 마당극을 열심히 보러 다니시는 진주큰들풍물단도 만났다. 진큰풍, 큰들과 함께 영원하길 빈다. 그 이름도 그 우정도 그 열정도. 기억해야 할 것이 아주 많은 황금 주말이다. 기억장치에 고장이 나지 않는 한, 10월 마지막 주말은 나에게 황금보다 더 귀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모두가 고맙고 모두가 자랑스럽다.

 

 

 

공연 끝난 뒤 배우들과 기념촬영했다. 공연 볼 때마다 찍지는 않는다. 이렇게 기념촬영한 사진만 벌써 몇 장일까. 

 

글을 맺기 전에 궁금증 하나 풀어 놓는다. 큰들 산청 마당극마을 준공기념식과 잔치마당 안내 책자에는 여러 사람의 축하 인사말이 실렸다. 그 가운데 이종혁 민들레건축사무소() 대표의 글이 있다. 이렇게 써 놓았다. 전체 배치계획(마스터플랜)을 세우던 때 큰들에서는 건축물에 12지신을 형상화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마당극마을에 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에게 요청했다. 그 순간 저는 이걸 어쩌지?’ 좀 당황스러웠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개별 주택 마당을 최소한으로 계획하고 크고 작은 마을마당 13개를 계획했다. 12지신 마당과 12지신에 들어가지 못한 고양이를 위한 마당까지 덤으로 만들었다. 큰들마을을 방문하시는 여러분 마을을 돌아보며 숨겨진 13개 동물을 찾길 바란다. 큰들 식구들은 13개 동물과 벗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실 거라 믿는다.” 이종혁 대표께서 흥미롭고 재미있는 숙제를 내어 주셨다. 그 숙제 감사히 받든다. 13개 동물 찾으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큰들 산청 마당극마을로 나는 가야 할까(나중에 알고 보니 이 12지신+1 계획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한다).

 

2019. 10. 27.

극단 큰들 후원회원 이우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