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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경제 법칙을 거스르는 큰들 마당극

by 이우기, yiwoogi 2019. 10. 13.

* 이 글에서 사진과 글은 각각 따로 놉니다. 글은 글대로, 사진은 사진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과학, 수학, 경제를 못해서 인문대학을 선택했다. 나에게는 경제도 수학이다. 영어를 못해서 국어국문학과를 진학했다. 상대적으로 국어를 잘했던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를 못하지만 기억하는 경제 법칙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 재화의 소비량이 일정 단위를 넘어서면,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그 재화의 한계효용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 이게 무슨 말이야? 역시 경제는 어렵다. 친절한 사전은 더 길게 설명해 놓았다. ‘입으면 20도의 온도를 보장하는 점퍼가 있다고 하자. 추운 겨울 반팔을 입은 사람이 이 점퍼 1벌을 구입하면 만족도가 크지만 이후에는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 구매 시 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들머리 사이트 <다음>똑 소리나는 일반상식에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다르게 설명하면 이렇게 돼야 한다. ‘극단 큰들이 있다. 큰들은 마당극 전문극단으로서 국내외에서 한 해에 100번 가량 공연한다. 역사는 35년이나 됐다. 공연하는 작품에는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 <남명> 등등이 있다. 국내외에 유명짜한 마당극 전문 극단이어서 한번 보면 그 재미와 감동에 푹 빠진다. 웃기고 울리는 배우들의 연기에 혼이 쏙 빠진다. 그렇지만 처음 볼 때 재미가 100이라고 하면 두 번째 볼 때는 50으로 줄어들고 세 번째 보면 지루해질 수도 있다.’ 이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경제 법칙이다. 인간을 경제적 동물이라고 말한 경제학자가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친다. 경제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꼭 들어맞아야 한다.

 



아침부터 설렜다. 오늘은 극단 큰들의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러 가는 날이다. 지난주부터 약속을 정한 이가 있다. 페이스북이라는 광장에서 만난 분들이다. 지난해 여름 산청 동의보감촌에 <오작교 아리랑>을 함께 보러 간 분들이다. 서동하 누님, 정형상 형님이다. 형상 형님은 그날 남돌이로 발탁되어 굉장한 웃음을 선사한 적 있다. 이렇게 셋이 가는 건 거의 1년 만이다. 얼마나 설레었을까. 일요일인데, 오전 1030분에 만나 출발할 것인데 6시도 되기 전에 잠에서 깼다. 씻고 밥 먹고 컴퓨터로 노닥거리는데 시간이 정말 안 간다. 설렘은 점점 커졌다. 나는 올해에만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여섯 번째 보러 간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따르자면, 누군가 함께 마당극 보러 가자고 졸라도 싫다고 손사래를 치는 게 맞다. 돈을 백만 원쯤 준다고 해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그 법칙에는 맞는다.

 



대아고등학교 밑 농협주유소 앞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바쁠 게 없는 사람이다. 규정 속도를 지키며 느릿느릿 달렸다. 가을이로구나 느낄 경치도 있고 한여름 같은 경치도 있다. 진양호 끼고 돌아 국도를 달린다. 차들은 바쁜 주인들을 모시고 열심히 달린다. 완사를 지난다. 코스모스축제를 하는 북천을 지난다. 하동읍을 지난다. 이 길은 지난해와 올해 여러 차례 다닌 길이어서 매우 익숙하다. 차 안에서 동하 누님이 준비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는 일 이야기, 하고 싶은 일 이야기들을 나누며 우리는 웃었다. 섬진강을 왼쪽에 두고 달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던 국도 19호선은 이제 잘라지고 망가져 버렸다. 아름드리 벚나무 동굴은 없어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되풀이하지만 예전의 그 맛은 없어져 버렸다. ‘편리함이 아름다움을 다 망가뜨렸다.’는 누님의 말에 공감했다. 길은 빨라졌지만 길은 외면당하고 있다.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화개장터에서 구례 쪽으로 5분 정도 가면 피아골 들머리에 섬진강재첩국수가 있다. 재종형님의 가게이다. 주차장에 차들이 꽉 들어찼다. 오랜 세월 이 동네에서 재첩으로 일가를 이루어온 형님의 땀과 눈물이 일구어낸 삶의 터전이다. , 추석 명절 때나 벌초, 시사 때 만나면 씨억스런 웃음과 함께 우스개도 잘 던졌지만 가끔은 부대끼는 듯한 표정도 없지는 않았다. 지금은 형수님과 두 딸과 사위 하나와 제법 근사한 가게를 꾸려나간다. 형님은 손녀를 안고 연신 싱글벙글거린다. 수입은 예전만 못하지만 가족과 일꾼들이 손발이 맞고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 더 바랄 게 없다는 여유가 읽힌다. 재첩국수 한 그릇에 메밀전병 하나를 시켰다. 막걸리를 주문하니 남원에서 나오는 술을 내놓는다. 번호표 16번을 밥상에 붙여놓고 노닥거리노라니 늦지 않게 음식이 나온다. 재첩국수는 형님이 원조다. 낯선 국수를 한 그릇 잘 비우고 우리는 강가로 내려갔다. 태풍으로 인한 큰물이 지나간 섬진강은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그 본색은 어쩔 수 없었다. 가을이 오려면 좀더 기다려야 할 섬진강을 잠시 일람하고 우리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악양면 평사리 들판을 보고 싶었다. 마당극 보는 게 제1의 목표라면 이 들판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제2의 목표였다. 한산사는 그런 우리에게 더없이 맞춤한 곳이다. 악양 너른 들과 섬진강과 동정호와 부부송 따위 무한정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유난히 많은 관광객을 잠시 의식하면서 한산사 앞 전망대에 섰다. 누님도, 형님도 잠시 폼을 잡아본다. 다음주나 그다음 주에 오면 들판의 나락을 모두 베어버려 좀 황량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추수 전 마지막 풍경을 담았다. 한산사 전망대에는 지난해와 올해 열 번 정도 올랐지만 그때마다 다르다. 여기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로세로 반듯하게 구획을 그어 놓은 논보다는 구불구불하고 삐뚤빼뚤하던 예전의 악양들이 더 좋았다.”는 누님의 말에 역시 동감했다. 손대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자연미가 더 귀하고 그리운 시절이다.

 



이제 마당극 보러 갈 차례다. 주차장을 뱅뱅 돌아 겨우 차를 대었다. 오늘은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댔다. 느릿느릿 걸어 올라간다. 올라가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들이 골목에 빼곡하다. 좋은 날씨에 좋은 휴일이다. 감잎에서 불어오는 누런 바람을 귓불에서 느낀다. 아이 손 잡은 사람, 어른 손 이끄는 사람들이 최참판댁 골목을 메웠다. 가게에서 옷을 고르는 사람, 가게에서 밥을 먹는 사람,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사람들이, 곧이어 벌어질 마당극 공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 속에서 가을스러움을 뽐낸다. 중간 중간에 마당극 공연을 알리는 광고판이 걸렸다. 하도 여러 번 봐서 익숙한데, 익숙하여 어떤 때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는데, 그것이 눈에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괜스레 목울대가 따가워진다. 최참판댁에 들어섰다는 안도감, 잠시 후 마당극을 보게 된다는 설렘, 오늘은 또 어떤 대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생각하는 기대감, 혹시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떡해야 할까 생각하는 긴장감 따위 복잡한 감정이 순식간에 내 목울대를 때린다. 어쩔 수 없다.

 



관광객이 유난히 많다. 최참판댁 안채 객석에 미리 자리를 잡아야 했다. 일반 관객들에겐 분명 미안한 일이지만, 모처럼 모시고 온 누님과 형님을 맨 앞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동하 누님의 아우 되는 한 분이 대구에서 오시게 됐다. 대구에서 하동까지 2시간 30분 이상 걸린다. 전화 한 통화에 달려오신다는 분은 누구일까. 일행이 3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공연장 한 가운데 맨 앞에 자리를 찜했다. 입고 있던 옷과 가방으로 표시했다. 좀 비겁하다 해도, 반칙이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공연하는 줄 모르는 동하 누님을 모시고 다시 용이네 집 앞으로 내려갔다. 바야흐로 선발대 풍물대가 사물놀이를 하면서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나는 마치 사진기 값을 벌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열심히 찍었다. 눈으로만 보는 작품,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는 작품, 사진으로 보는 작품은 각각 다른 매력이 있고 다른 맛이 있다. 각각 다른 작품으로 보인다. 오늘은 사진을 찍는 날이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1020(경기도 가평 남이섬), 1026(하동), 27(하동) 세 번 남았다. 나는 특별한 일(이를 테면 중대한 가정사, 직장에서의 중대사)만 없으면 하동 공연을 보러 갈 것이다. 31일 첫 공연을 함께했으니 1027일 마지막 공연을 함께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운 좋으면 올해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여덟 번 보게 될 듯하다. 이 정도라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그 재미와 감동이 최소한 8분의 이하로 줄어야 한다. 나는 오늘 공연을 보는 1시간 남짓 시간 동안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른다. 손뼉도 얼마나 열심히 쳤는지 모른다.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작품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두루뭉술 감상해 보고, 극 속의 주인공으로 빙의해 보고,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의 마음으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아슬아슬하게 실수처럼 보이는 대목을 스리슬쩍 넘어가는 배우들의 솜씨도 본다. 무엇보다 뛰고 구르고 소리지르는 마당극 연기를 하기엔 아직은 더운 날씨인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최선을 다하여 공연하는 극단 큰들 배우들의 진정성을 보고 느낀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각색한 마당극이다. 최참판댁이 몰락하고 조준구홍씨 부부가 어린 서희를 쫓아내고 재산을 가로챈다. 간도로 쫓겨간 서희는 원래 머슴이던 길상과 공조하여 재산을 되찾는다. 그러는 사이 일제강점기가 된다. 다시 재산을 뺏긴 조준구는 일본 앞잡이가 된다. 독립군으로 돌변한 길상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 일제는 조선의 어린 처녀를 잡아가는데 임이도 표적이 된다. 때마침 길상도 체포된다. 끌려간 이들의 생사가 아득한 때 일본에 원자탄이 떨어진다. 일왕은 무조건 항복하고 조선은 광복한다. 죽은 줄 알았던 임이와 길상이 돌아온다. 독립만세 소리가 평사리와 하동과 조선에 울려 퍼진다.

 



조준구가 나귀를 타고 등장한다. 만석꾼 살림집이라 머슴이 많다. 관객이 곧 머슴들이다. 김서방 이서방 박서방 최서방 어중이 떠중이 하나하나 부르다가 맨 나중에는 기타 등등이라고 호명한다. 졸지에 조준구의 머슴이 된 관객들 입에 웃음이 가득하다. ‘기타 등등머슴에게 등등아, 방안에 에어컨은 빵빵하게 켜 놓았느냐?”고 묻는다. 보통 등등은 대답한다. “~!” 오늘 등등은 좀 다르다. 자기는 한사코 등등 역할을 하기 싫다고 손사래를 친다. 조준구가 설득한다. 결국 ~!”라고 길게 대답한다. 이 등등은 나중에 서희와 결혼을 하는 신랑 역할도 하고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사격 연습을 하는 등등 동지로도 나오게 된다. 그걸 미리 아는 나는 뒤이어 벌어질 일이 미리 재미있어서 미치겠는데, 그걸 전혀 모르는 이 관객은 ~!”라는 말로 자기 역할이 끝난 줄 알았을 것이다. 서희와의 결혼식에 신랑이 되었을 때는 아내가 옆에 있는데...”라며 난색이다. 아내로 보이는 분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다른 관객들은 배꼽이 빠져라 웃는다. 오늘 등등 동지는 그동안 보아온 등등 동지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다. 왜냐 하면, 그렇게 결혼식 장면에는 나서지 않으려던 분도 결국 결혼식 마친 뒤 피로연 시간에는 신부와 마주보고 자신만의 춤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성들 춤 솜씨는, 대개 기본은 되고 어떤 경우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이런 공연을 보면서 느낀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관객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끌어올리는 부분은 임이가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장면이다. 길상도 잡혀간 데다 임이마저 끌려가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민족적 울분이 일어난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울밑에 선 봉선화도 한몫할 것이다. 곁에 앉은 동하 누님도 눈물을 자꾸 훔친다. 한번 터진 울음보가 멈추어지지 않는 듯했다.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다가도 문득문득 안경 밖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우리 몸 속에, 우리 가슴 속에 들어앉아 있는 한국인 핏줄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광복이 되자 임이는 돌아온다.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멎는 듯하다. 특유의 목청이 귓가에 쟁쟁한다. 임이와 어머니가 껴안는 장면에서는 또 심장이 방망이질한다. 눈물을 감추려고 하늘을 보아도, 심장을 자제시키려고 한숨을 내쉬어 보아도 어쩔 수 없다. 정말 어쩔 수 없다. 그사이 길상이도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과 인사하고 아내 서희와 껴안는다. 마당극에서는 잡혀간 사람들이 그렇게들 돌아오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 우리 겨레는 얼마나 될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분노와 슬픔과 안타까움과 서러움과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마당극 한 편을 보면서 우리 겨레의 과거와 오늘을 동시에 보고 느낀다. 우리 겨레의 슬픔과 환희를 한번에 보고 느낀다. 독립만세를 부르며 환호를 지르고, 징소리의 긴 울림을 끝으로 마당극이 끝나고 난 뒤에도 여운은 오래 남는다.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 전 이장님 연기도 물이 올랐다. 그 외 두 분의 아주머니 마을 주민도 정겹다. 세 명의 마을 주민 배우들 덕분에 여기가 하동군 최참판댁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더 있다. 어린 서희 역할을 하는 악양초등학교 6학년 박채린 어린이도 있다. 앙칼진 어린 서희 역을, 그동안 여러 차례 만든 드라마 <토지>에 나오는 서희 못지않게 잘 해낸다. 중간에 김연아 학생으로 바뀌었다가 오늘은 다시 채린이가 나섰다. 채린으로서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이렇게 네 사람이 그곳 마을 주민이다. 마을 주민 배우들의 대사나 행동은 극단 배우들만큼 맨들맨들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마추어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곧잘 해낸다.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큰들과 함께 평사리 마을 홍보에 일익을 담당하시는 이분들의 노력에 손뼉을 보내드린다.

 



10월 12~13일 제19회 토지문학제가 열렸다내년이면 20주년이 된다. 마당극 공연은 토지문학제의 마지막이다. 마당극이 끝나자 바깥 행랑채(공연이 열리는 곳은 안채이다)에 막걸리와 안주를 준비해 놓았다. 마당극이 끝나고 큰들 기획실장이 잠시 들러 한잔씩들 하고 대동놀이를 하고 가시라.”는 말을 하자마자 관객들은 우르르 몰려나간다. 이렇게 멋있는 공연을 본 뒤에는 저렇게 맛있는 걸 꼭 먹어주어야 한다는 듯이. 그 막걸리 맛과 그 안주 맛이 궁금했지만 우리 넷은 마을로 내려가서 입가심을 하기로 했다. 마침 기획실장을 만났다. “한잔씩 하고 대동놀이도 함께하라.”는 그의 말에 사람도 많은데 이럴 때는 슬쩍 빠져주는 게 미풍양속입니다.”라며 마당극 <남명>에 나오는 대사로 대답했더니 이럴 때는 같이 먹어주는 게 미풍양속입니다.”라고 응수한다. 이심전심이다. 웃음을 나누고 나서 우리는 사랑채로 갔다. 동동주 한 뚝배기에 해물파전과 도토리묵을 놓고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운전 맡은 이는 맹물로 입안을 헹구었다. 제 아무리 해물파전과 도토리묵이 맛있다 한들 방금 공연한 마당극에 대한 이야기보다 찰지고 고소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대구에서 오신 분과 통성명을 하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담장 밖 길에서는 등등 동지 배우가 일행과 함께 지나간다. 불러 술이라도 한잔 권하고 싶었으나 참는다.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토지문학제 10주년이던 2010년 이맘때 처음 열렸다그러고서 10년이 지났다. 오늘 공연은 173회였다. 2021년 어느날 200회를 보게 될까.

 



동하 누님과 대구에서 오신 누님은 또다른 친구를 만나기 위해 고운동천으로 가셨다. 형상 형님과 나는 진주로 왔다. 형님은 창원에서 진주남강유등축제 구경 온 분들과 진주시청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진주에서는 셋이 출발했고 마당극은 넷이 보았고 돌아올 때는 각각 둘씩 헤어졌다. 이렇게 만나고 그렇게 즐기고 저렇게 헤어지는 게 마치 잘 짜인 각본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섬진강이 오른쪽에서 흐른다. 넓은 모래밭을 보면서 탄성을 올린다. 가는 길을 되밟아 오는 길은 즐거움과 기쁨과 웃음과 행복이 함께한다. 1030분 출발하여 오후 5시에 진주 돌아왔으니 6시간 30분 나들이다. 짧은 하루 동안 일어난 몇 가지 일화들 덕분에 내 몸속에 에너지는 얼마나 축적됐을 것인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일상의 잡념과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사라졌을 것인가. 마당극이라는 오묘하고도 신기한 것을 사이에 놓고, 큰들이라고 하는 대단하고 뛰어나고 훌륭한 공동체를 사이에 놓고, 우리는 더하면 더할수록 커지는 행복을 만끽했다. 아무리 깎아 먹어도 좀체 줄어들지 않는 가을햇살을 즐겼다.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신다. 지지난주에 아버지 산소 부근에서 주워온 도토리로 묵을 쑤어 놓았으니 가져가라고 하신다. 어머니는 옥상 조그만 텃밭에 마늘 파종을 위해 준비 중이시다. 아직 해가 남았으므로, 배는 고프지 않으므로 마늘 파종을 도왔다. 내년 4월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마늘 몇 점 까서 삼겹살이든 생선회든 먹으려면 겨울을 이렇게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10년 뒤, 20년 뒤 우리도 추억을 안주 삼아 소주든 막걸리든 한잔씩 하려거든 이렇게 마당극이라도 부지런히 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넘겨본다. 오늘 하루 동안 817장 찍었다. 셋이 한산사에서 찍은 사진을 본다. 행복이 넘친다. 여유가 흐른다. 이만하면 됐다. 마당극 장면을 눈여겨 본다. 사진 속에서 배우들은 말한다. 구른다. 웃는다. 손짓한다. 발길질한다. 장구 치고 북 치고 징 친다. 총 쏜다. 쓰러진다. 태극기 흔든다. 운다. 찡그린다. 고함 지른다. 정지된 사진 속에서 극단 큰들 배우들은 다시 살아서 움직인다. 하동에 있던 배우들이 사진기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집 거실 컴퓨터 안에서 되살아나 <최참판댁 경사 났네> 174번째 공연을 펼치고 있다. 공연을 보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태극기 흔들던 오늘의 관객들도 모조리 컴퓨터 안에 들어앉아 행복에 도취해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같은 작품을 여섯 번 보았다. 그것이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해에 같은 작품을 여섯 번 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르면 한 해에 같은 작품을 여섯 번을 보는 사람은 경제적 인간이 아닐 것이다. 나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올 3월부터 오늘까지 여섯 번 보았다. 1026, 27일 두 번 더 볼 것이므로 올해에만 여덟 번 볼 것이다. 효용이 뚝 떨어져 마이너스 효용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내게는 경제 법칙이라는 게 쓰잘데기 없는 잡동사니 같기만 하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면이 보이고 보면 볼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마당극의 묘미, 극단 큰들의 마당극의 묘미를 어쩔 수 없다.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글로써 다 설명하지 못하는 게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31일부터 1013일까지 <오작교 아리랑> 7, <효자전> 8, <남명> 10, <역마> 1번 보았다. 모두 다 합하면 올해에만 32번 보았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경제 상식을 뛰어넘어 버렸다.

 



2019. 10. 13.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