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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남명선비문화축제와 마당극 <남명>

by 이우기, yiwoogi 2019. 10. 19.

무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감상하고 촬영하기 위해 맨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나를 극단 큰들의 최샛별 씨가 찍어서 보내주었다. 집안의 가보가 될 것이다. 한때 마당극에 미쳐 돌아다니던 젊은 날의 나를 10년 뒤, 20년 뒤에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샛별 씨 고마워요~!


산청군은 1018~19일 이틀 동안 시천면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일원에서 제43회 남명선비문화축제를 개최했다. 남명 선생 탄신 518주년에 43회 행사가 열렸다. 남명선비문화축제가 처음 창설될 때 행사 이름은 남명제였다. 1977810일 산청군 시천면 덕천서원에서 제1회 남명제가 열렸는데, 남명사상 학술강연회와 남명 선생 475주년 탄신추모제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아고등학교 박종한(朴鐘漢) 교장선생은 남명사상을 진주정신의 표상으로 삼고 재조명 운동을 맨 처음 시작했다.

 

첫 행사의 주최는 남명 조식 선생 제전위원회가 맡았고 주관은 덕천서원과 두류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맡았는데 이 두류문화연구소는 대아고등학교 안에 있는 연구소였다. 대아고등학교 50년사에서는 남명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 대아고등학교에서는 이미 남명 선생의 정신에 대한 실천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 남명의 경의(敬義) 정신이 올바른 사학의 건학 정신에 심어져야 한다고 보고, 남명을 연구하여 학생 교육에 접목시키고 남명학 연구를 위해 1978<남명집>을 발간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올해 행사는 크게 제전공연문화행사학술전시체험부대행사로 나누어 진행했다. 제전공연문화행사는 남명선생묘소 참배, 식전공연, 남명제례, 개막식, 마당극 <남명> 공연, 흥겨운 풍류마당, 미스트롯 공연, 퓨전국악한마당, 명창 김영임 콘서트, 21회 전국시조경창대회, 18회 전국한시백일장, 2019년 경남학생백일장, 5회 남명학생휘호대회가 열렸다. 학술전시체험부대행사는 국제학술행사, 17회 천상병문학제 및 산천재시화전, 21회 산청군 서도연합 회원전, 국립공원사진전, 남명 어록 쓰고 전시, 가족 선비놀이 체험, 선비부채 만들기 체험, 인쇄문화(목판) 체험, 의병장군복 입고 사진 찍기, 가족단체 궁도체험, 선비문화체험, 서당체험, 전통혼례식이 마련됐다. 이틀 동안 무려 26개 다양한 행사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대단한 행사이다.

 

이틀 동안 행사가 열리는 덕산에 머무르면서 모든 행사를 다 참여하고 구경하고 체험하고 느껴보았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건 다음에 해보기로 한다. 나는 43회째나 열린 이 행사에 지난해와 올해 두 번 가 보았다. 이런 저런 많은 볼 거리, 즐길 거리, 느낄 거리 들을 두루 돌아보지는 않았다. 나의 목적은 마당극 <남명>을 보는 것이었다. <남명>2018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역형콘텐츠개발지원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마당극 <남명>은 지난해 제42회 남명선비문화축제 때 처음 공연했다. 20191019일 공연은 20번째 공연이다. 나는 지난해와 올해 <남명>14번 보았다.

 

지난해 남명선비문화축제 때 첫 공연을 보고, 1111일 오후 1시 동의보감촌에서 열린 2번째 공연을 보았다. 1213일 대입 수능을 치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을 진주시 초전동 실내체육관에서 보았다. 그렇게 지난해에만 3번 보는 행운을 얻었다. 올해는 동의보감촌 상설 공연으로 4, 산청한방약초축제장에서 4,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큰들 창립 35주년 정기공연(629), 사천문화예술회관 초청 공연(910), 그리고 1019일 제43회 남명선비문화축제장에서 보았다.

 


공연이 시작됐다. 앉은 자리와 무대가 너무 멀다. 내 둘레는 좀 부산스럽다.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에라 모르겠다. 무작정 앞으로 나가자. 순간적 결심이 아니었다면 오늘 마당극 감상은 어찌 됐을까.


<남명>은 모두 여섯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 마당에서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우물에서 마을 사람들이 우물물이 오래도록 펑펑 잘 솟아나도록 우물굿을 한다. 둘째 마당에서는 남명이 제자들을 양성했던 합천 뇌룡정을 배경으로 이론만을 중시하는 다른 선비들과 달리 실용적 학문을 가르치며 실천을 강조한 선생의 사상을 표현한다. 셋째 마당에서는 낮은 벼슬아치들에서부터 높은 벼슬에 이르기까지 모두 뇌물을 주고 벼슬을 사는 것이 횡행했던 부정한 세태를 풍자한다. 관객 중 한 명이 ‘5분 사또로 등장하는 대목이다. 넷째 마당에서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기에 급급한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그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묘사한다. 세금 낼 돈이 없어 도망간 백성은 임꺽정을 찾아가 도적이 되는 시대상이다. 다섯째 마당에서는 이런 처참한 세태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남명이 임금께 목숨을 건 사직상소문을 올리고, 이 상소문에 크게 감화된 선비들이 남명의 제자가 되기 위해 덕산으로 모여든다. 여섯째 마당에서는 남명 선생이 돌아가신 후 20년 만에 발발한 임진왜란에서 남명의 제자 수십 명이 의병장으로 떨쳐 일어나 큰 활약을 펼친다. 성찰과 실천을 중시했던 남명의 정신이 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섯 마당으로 구성된 <남명>, 그러나 매번 다르게 드러난다. 마당극 <남명>14번 보았는데, 한 번도 똑같은 작품은 없었다. 명종 임금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뭬야~!”라는 대사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어느새 없어졌다. 다시 보고 싶은 명장면이다. 남명 조식 선생을 소개하기 위해 칠판과 함께 등장하는 안경 낀 훈장은 처음엔 없었다. 큰들 창립 35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첫 장면에 선비들이 학춤을 추며 등장한다. 윤원형의 하인들과 함께 배 타고 강을 건너다가 원형에게 가는 뇌물 보따리를 강물에 집어던지는 장면도 있었다. 이 두 장면은 그 뒤로 사라졌다. 사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공연과 43회 남명선비문화축제 공연에서는 무예시범단원들이 등장한다. 왜구로 분장한 김 영감, 돌이와 함께 남명 제자들을 혼쭐 낼 때 등장한다. 맨 마지막 남명 제자들이 의병장이 되어 구국의 깃발을 높이 들었을 때도 등장하여 박진감 넘치는 무예를 선보인다. 이들은 공연 때마다 나오는 게 아니다.

 


안경 낀 훈장이 칠판을 들고 들어와서 박수를 유도하고 남명 조식 선생을 소개하는 장면은 올 여름 동의보감촌 공연 때부터 등장한 장면이다. 처음 분위기를 띄우는 데 그만이다. 남명은 한자로 쓰고 조식 한글로 쓰는 게 내겐 퍽 인상적이다.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오늘은 또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전체 내용을 왕창 바꾸거나 앞뒤 순서를 바꾸지는 않는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다듬어 가고 바꾸어 가고 발전시켜 간다. 한두 번 보는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할 것이지만, 자주 보면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 눈에 들어온다.

 

20번째 공연이던 1019일에는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의병장이 되어 나타난 남명의 제자들 등장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그 전 공연에서는 볼 수 없던 명장면이다. 큰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원래 하던 대로 의령 곽재우부터 순서대로 칼 또는 깃발을 들고 등장한다. 가슴을 쿵쾅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그 순간 무대 위와 무대 양쪽으로 의병장 이름을 적은 깃발을 들고 20명의 시민 배우들이 등장한다. ‘등장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타난다도 아니다. , 부족한 어휘력이여. 시민 배우들은 자신이 든 깃발을 힘차게 몇 번 펄럭이게 흔든다. 깃발을 꽉 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갈 것이다.

 

남명선비문화축제를 며칠 앞둔 10월 어느 날 진주시청 앞 송강식당 시청점에서 경남일보 임명진 기자를 만났다. 올해 창간 110주년을 맞이한 경남일보가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기사는 남명의 길이다. 임 기자가 이 기획시리즈를 끌고 간다. 경남일보 창간기념일인 1015일에는 남명과 관련한 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실었다. 1016일자 1면과 13면에 기사 두 편을 실었다. 경남일보는 남명의 길기획기사를 10회 이상 실을 것인가 보다. 그 중간중간에 조그만 상자기사도 싣는다고 한다.

 

나는 남명의 길기획기사 중간에 한번쯤은 남명을 주인공으로 한 마당극이나 오페라 같은 공연작품을 소개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원 같은 데서는 남명의 경의사상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논문으로, 책으로 낸다. 그 논문과 책은 어렵다. 장삼이사 필부필부들이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오페라와 마당극처럼 대중성 높은 공연작품으로 남명사상을 풀어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 남명의 일생과 사상을 아주 쉽게 이해하도록 해주는 이런 작품을 기사 중간에 소개해 주면 어떻겠는지 물은 것이다.

 

그렇게 말한 까닭이 있다. 경남일보가 창간 110주년을 맞이하여 진주포럼, 경남자치연구원, MBC경남과 공동으로 남명 조식의 학문사상 계승 양상 인식 조사를 한 결과 남명 조식을 안다는 국민이 4명 중 1명 꼴로 나왔다.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에 대한 인지도는 90%를 훨씬 넘었지만 남명에 대한 인지도는 25.5%에 지나지 않았다. 이이와 이황은 지폐 1000원짜리와 5000원짜리에 나오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남명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게 이제 겨우 43년 정도 됐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남명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오페라 <남명>과 남명의 경의사상을 풍자와 해학, 익살과 웃음으로 엮어낸 마당극 <남명>을 여기저기서 소개하고 공연을 초청한다면 더 많은 국민이 남명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마당극 <남명>이 국민들에게 남명 조식 선생을 인식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나는 바란다. 임 기자와 나는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열리는 <남명> 공연을 함께 보러 가기로 했고, 드디어 오늘 그 약속을 지켰다.

 


경남일보 임명진 기자와 극단 큰들의 진은주 기획실장이 대담을 하고 있다. 임 기자는 녹음까지 하며 중요한 말은 받아적었다. 멋진 사진기까지 들고 온 그는 역시 기자다. 


임 기자는 극단 큰들의 진은주 기획실장과 잠시 대담(인터뷰)을 했다. 그사이 나는 큰들 배우들과 시민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의병 옷을 입고 분장을 하며 공연 대기 시간을 즐기는 그들에게서,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붙을 전투를 앞두고 시시한 농담과 맥락없는 우스개로 긴장을 풀었을 병사들을 잠시 떠올렸다. 배우 대기 장소인 천막 안에서는 배역이 없는 큰들 단원들-이를 테면 최샛별 씨 같은-이 분장을 도와주고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남명 제례가 열렸다. 개막식은 1050분부터 1110분까지 진행된다. <남명>1110분부터 1시간 동안 공연한다. 실제 시작은 조금씩 늦어져 마당극은 1115분쯤 시작됐다. 남명 제례 때부터 객석을 가득 메운 많은 사람 덕분에 공연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다. 제례와 개막식에 참여했던 소위 기관장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임 기자는 뒤쪽에 앉았고 나는 의자도 없는 맨바닥을 감수하면서까지 맨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연 도중에 자리를 옮기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작품에 집중할 수 없었던 점이 좀 아쉬웠다. 예술회관 같은 실내에서라면, 그런 데서 공연하는 연극이나 오페라 같은 공연이었더라면 그렇게 쉽게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었겠지. 마당극은 마당에서 하는 것이고 마당에서라면 왔다 갔다 하고 소리 지르고 떠드는 게 당연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감안하고 눈치껏 재주껏 요령껏 작품을 감상했다.

 

1시간은 휘리릭 지나갔다. 늘 그렇다. 여섯 마당은 끊기거나 쉬는 것 없이 곧장 내달렸다. 우물굿을 하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남명 선생이 돌아가시는 대목이다.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남명 선생 돌아가시고 정확히 20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앞서 말한 시민 배우와 큰들 배우들이 함께 남명 제자 의병장들의 이름을 외쳤다.

 

극단 큰들이 제43회 남명선비문화축제를 앞두고 시민 배우를 모집했다. 누군가 나더러 참여하라고 했다. 나는 시민 배우가 등장하는 심장 떨리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 만약 내가 그 속에 서 있게 되면 심장이 터져버릴지 몰라서 사양했다. 덕분에 오늘 공연에서 정말 멋지고 훌륭한 장면을 보았다. 시민 배우 가운데 경상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창 바쁘게 활동하는 최승제 씨가 있었다. 그는 화헌 이종욱이었다. 시민 배우 가운데 대아고 이영조 선생이 있었다. 그는 원당 권제였다. 이영조 선생은 지난해 1213일 고3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마당극 <남명> 공연이 열리는 데 이바지한 바가 큰 사람이다. 나는 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큰들의 시민 배우가 되어준 분들 덕분에 생애 한두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작품을, 대작 마당극을 감상하였다. 무척 고맙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내가 아는 시민 배우 두 사람과 사진을 찍었다. 마음이 들떠서인지 너무 어색하게 크게 웃었다.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두 분께 감사드린다. 아니, 모든 시민 배우들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이영조 선생은 자신이 맡은 의병장에 대해 검색도 해 보고 왔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자 임 기자와 나는 재빨리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배우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그들대로 소품 챙기랴 옷 갈아 입으랴 시민배우 챙기랴 정신 없을 터인데 나 같은 사람이 기웃거리거나 알짱거리면 성가시기 십상이다. 우리는 단성면 원지로 갔다. 좀 맛있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원지 마을을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았다. 먹음직스런 식당은 아주 많았지만 우리는 꼭 쏘가리매운탕을 먹고 싶었다. 왜였을까. 이유는 없다. 아니다, 이유가 있다.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임 기자는 말했다. “솔직히 처음 마당극을 보러 올 때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들의 연기, 음악, 소품 들이 정말 훌륭했다. 대본도 좋았고 무엇보다 연출력이 대단했다. 마당극 수준(‘퀄리티라고 했음)이 매우 높아서 깜짝 놀랐다.” 이런 말을 몇 번 되풀이했다. 큰들 후원회원인 내 기분 좋아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점심 밥을 먹으면서도 오늘 본 작품에 대한 감동을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를 이야기해 주었다. 단원은 몇 명인지, 지금은 사천에 둥지를 틀고 있지만 산청 마당극 마을로 옮아가는 중이라는 것, 현재 절찬리 공연 중인 작품은 무엇 무엇인지, 지난 4월 대아고 총동창회 체육대회 때 큰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했다는 것 등등.

 

식당 주인은 냉동 쏘가리라고 했다. 값을 조금 깎아 주었다. 운전을 맡은 임 기자는 밥만 먹고, 운전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는 소맥을 말았다. 운전할 사람을 앉혀 놓고 시원한 맥주를 쭉 들이켜니 그야말로 폐부 깊숙한 데에서부터 ~!”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반찬들도 맛있었다. 시금한 김치와 고소한 죽순나물, 고사리나물, 박나물, 약간 매콤한 열무김치 등등 입맛을 당기는 반찬들 덕분에 점심시간이 행복했다. 임 기자는 그냥 쏘가리매운탕을 먹었겠지. 나는 <효자전>에서 임뻥아재가 잡은 쏘가리를 가로챈 갑동이가 구워먹으려던 쏘가리를 가로챈 임뻥아재 어머니가 들고 가는 쏘가리를 임뻥아재가 다시 건네받아서 매운탕 끓여 먹으려던 것을 마지막으로 내가 뺏어 먹는 기분으로, 그런 느낌으로 먹었다. 얼마나 맛있었을까.

 

그렇게 덥지 않은 날씨였는데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둘이서 먹기엔 좀 많아 보였으나 바닥까지 다 긁어먹었다. 


임 기자는 또 말했다. “기자생활을 거의 사건 담당으로만 지내와서 이런 문화 공연에 대해 잘 몰랐다. 지금부터라도 기회가 되면 챙겨보고 싶다. 앞으로 공연보러 갈 때 이야기해 주면 되도록 함께 가보겠다.” 1026(토요일)27(일요일) 하동 평사리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잇따라 공연하는데 26일 함께 보러 가기로 했다. 마당극의 재미와 묘미를 조금 알아챈 듯하다.

 

집으로 돌아와 오늘 찍은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니, 그새 성순옥 선배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다. 큰들도 사진 몇 장을 올린다. 시민 배우이자 페이스북 친구인 최승제, 이영조 씨도 사진을 올린다. 나도 몇 장 올리련다. 내가 올리는 사진은 동영상으로 찍은 것을 순간포착(캡처)한 것이어서 화질이 좋지 않다. 오늘을 기념하고 14번째 만난 <남명>을 추억하기 위해 몇 장 올려둔다.

 



극단 큰들은 지금 이 시간, 경기도 가평 남이섬으로 달려간다. 내일 일요일 낮에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공연하기 위해서이다. 남이섬에서는 해마다 한번씩 하동의 날이 열리는가 보다. 하동산 배, 감 등을 팔겠지. 남이섬을 찾은 관광객들이 경남 하동을 생각하는 날이다. 거기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라는 마당극을 본다면, 분명 그들은 앞으로 몇 번은 하동을 찾게 될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디 조심히 가시고 내일 공연 잘 하시고 안전하게 잘 돌아오시라. 늘 큰들처럼, 늘 큰들만큼, 늘 큰들답게.

 

2019. 10. 19.

극단 큰들 후원회원 이우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