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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축제와 마당극

by 이우기, yiwoogi 2019. 10. 1.

산청은 좋은 동네이다. 예부터 살기 좋은 동네를 말할 때 산 좋고 물 맑은이라고 하는데 산청(山淸)을 두고 이르는 말 같다. 지리산 덕분이고 이웃 덕유산 덕분이다. 경호강과 덕천강 덕분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리산은 약초의 보고로 불린다. 이에 토 달 사람은 많지 않겠다. 경호강, 덕천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일러 보약이라 하지 않을 사람도 없겠다. 산청군이 올해로 19년째 산청한방약초축제를 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고 믿는다.

 


보통 축제장에 가면 차 대는 게 문제다. 주차장은 멀고 복잡하고 좁아서 사람들을 초장부터 지치게 만든다. 가는 길부터 막히기 일쑤다. 산청한방약초축제장은 좀 낫다. 대전~진주 고속도로에서 산청나들목으로 나가면 거기가 축제장이다. 주차하는 데 운 좋으면 1~2, 운 나쁘면 4~5분 걸린다. 진주에서 출발하여 30~40분이면 주차까지 끝낼 수 있다. 어슬렁 어슬렁 축제장을 돌아다니기 딱 좋다.

 

축제는 대개 비슷비슷하다. 유명 가수 불러오고 외국인 공연단 부른다. 이런 저런 경연대회를 한다. 그림이나 사진, 공예품 같은 전시는 필수로 따라붙는다. 직접 무엇을 만들고 느끼도록 하는 체험공간도 준비한다. 전국에서 모여든 장사치들이 진을 펼친다. 먹거리 장터도 고만고만해서 색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바가지 시비는 고질이다. 진정한 문화와 예술의 향취가 넘치기도 하지만 먹고 놀자판으로 얼룩지기도 하는 게 축제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다.

 



한방약초축제도 예외는 아니다. 예외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지리산 자락 산청 각 마을에 깃들여 사는 주민들이 각자 한 해 동안 농사지은 것들을 갖고 나와서 판다. 주최 측에서 정해 준 똑같은 크기의 공간에서 각종 약초와 과일과 채소 들을 판다. 농특산물판매장터와 약초판매장터가 그곳이다. 값이 비싼지 싼지 다른 곳과 견주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축제를 맞이하여 깎아 판다고들 한다. 겨울초, 구지뽕, 벌꿀, 기바위빵 따위를 사 보았다. 값을 먼저 말하는 건 그들에게 대단한 결례이다.

 

값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청군 골짝 골짝에서 농업인들이 직접 농사지은 것들이라는 자부심이다. 자부심은 곧 신뢰이다. 우리는 신뢰를 사고 파는 현장을 목도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물건을 파는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떡하니 내걸고 장사를 하는데 속이고 뒤통수치고 할 수가 있겠나. 지난해 나왔던 분이 올해 또 나오게 되니 한 번 어떻게 잘해 먹고 꼬랑지 내뺄 계제도 아니다. 그걸 산청군이 보증 선다고 생각하면 축제장은 바로 진귀하고 약효 좋은 한약재료 박물관이 되는 셈이다.

 



먹거리 장터도 그렇다. 산청군 각 면에서 마을청년회, 부녀회들이 나섰다. 산청특화음식관에는 면 이름을 크게 내붙인 식당들이 자리잡았다. 가령 생초어탕국수를 비롯해 면별로 유별나게 맛있는 음식들을 들고 나와 판다.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일반 식당에서 먹는 것에 견주기에는 좀 그렇지만, 전국의 떠돌이 장수들에게 공간을 내어준 것보다는 훨씬 알차다. 조금 비싼 듯하고 조금 맛이 떨어져도 그곳 주민들에게 어떻게 저떻게 혜택이 돌아간다 여기면 그만이다. 축제장에서 호텔뷔페를 기대하지는 않을 터이니.

 

이런 축제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지런히 가 보는 것은, 실은 다른 데 까닭이 있다. 바로 극단 큰들이 마당극을 날마다 공연하기 때문이다(나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또 긴 이야기를 쓴다). 올해는 축제를 시작하는 927일 금요일부터 축제를 끝내는 109일 한글날까지, 930일 월요일 하루 빼고 날마다 공연한다. 모두 열두 번 공연하는데 두 번은 동의보감촌에서 하고, 나머지는 축제장에서 한다. <남명>6, <효자전>4, <오작교 아리랑>2회 공연한다.

 



공연장은 산청나들목에서 산청읍으로 빠져나가자마자 왼쪽에 자리한 산청한방약초연구원 앞마당에 있다. 관객들이 1시간 동안 마당극을 편안하게 보도록 계단식 객석을 꾸몄다. 혹시 가을 땡볕에 관객들 얼굴이 탈까 봐 천막까지 쳤다. 배우들이 공연하는 마당에는 지붕이 없다. 관객이 빽빽이 들어차면 400명쯤 될 듯하고 얼기설기 대충 모여 앉으면 200명이 될 듯하다. 마당극 공연하기 꼭 알맞은 크기와 모양을 한 공연장이다. 지난해에는 본행사가 진행되는 특설무대와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자리여서 서로 소음 피해를 보았을 터인데, 올해는 조금 방향을 틀어준 덕분에 한결 나아진 듯했다.

 

마당극은 원래 마당에서 하는 것이다. 마당이란 학교 운동장이나 시골 장터 같은 곳을 가리킨다. 넓은 잔디밭 같이 사방이 뻥 뚫린 곳이다. 가림막을 세우고 돈 받고 입장시키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누구든 쉽게 드나들면서 공연을 즐기도록 돼 있다. 관객과 배우가 무시로 대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 술취한 객꾼이 배우 대사에 끼어들기도 하고 배우가 관객들 틈으로 달려들기도 한다. 그렇게 하도록 꾸며진 곳에서 하는 게 마당극이다.

 



말하자면, 산청한방약초축제장 한구석에 멍석을 펼쳐놓고 징, 꽹과리, 장구, 북 따위 사물놀이로 관객을 끌어모은 뒤 걸쭉한 농담이나 해학을 터뜨려 가면서 세파에 시달리고 간난에 찌들어 사는 우리네 민초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스레 긁어주는 게 마당극이다. 어떤 주제를 일관되게 드러낼 수도 있고 그저 시장에 돌아다니는 잡스런 농담을 흩어놓기도 하는 게 마당극이다. 배우들이 기기묘묘한 동작이나 시원스런 춤사위나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아니한 몸짓으로 관객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게 마당극이다.

 

그러자니 자연스럽게 축제장 한쪽에서 막걸리깨나 들이켠 농사꾼이나 모처럼 나들이옷 빼입고 나선 귀부인이나 우연히 지나치다 들른 아무개나 누구든지 쉽사리 섞여 들게 되고 그러자니 어쩔 수 없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쨌건 한 시간 남짓 마당극을 구경하고 나서는 사람들은 손에 든 갖가지 진귀한 한약재료와 함께 두고두고 약초축제를 기억할 소재로 마당극을 떠올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내년에도 산청을 찾아올 것이고, 어떤 이들은 이웃에 기별하여 서넛씩 더 데리고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처럼.

 



이렇게 말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928일과 29일 이틀 연속으로 산청한방약초축제장을 갔다. 공연은 오후 2시에 시작한다. 140분까지는 객석이 썰렁하다. 나처럼 골수 관객들이야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나머지 일반 관객들은 종내 무소식이다. 다들 어디에서 무엇 하고 있는지, 마당극이 열리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정말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나타나는지 모르겠는 관객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이들은 시간 여유를 두고 딴 데서 짐짓 모르는 척 다른 일을 보다가 시간에 딱 맞춰 달려오는 것 같다. ‘산청축제=마당극이라는 등식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틀 연속 <남명>을 공연했다. <남명>은 마당극이 다루는 주제 치고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실천 유학자로 이름이 높은 남명 조식 선생의 72년 일대기를 압축, 축약한 작품으로 지난해 10월 첫 공연 이후 이제 15회 정도 공연한 걸음마 작품이다(<효자전>220회 넘게, <최참판댁 경사났네>170회 넘게, <오작교 아리랑>150회 넘게 공연한 것을 생각하면 15회는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해도 되겠다). 유학에 대해 공부를 했거나 산청의 역사, 남명의 경의 사상에 대해 식견이 있는 분들이야 크게 문제 없겠지만 처음 <남명>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고 쉽지 않은 마당극이다.

 



마당극이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객석 반응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마당극에 대해, 남명에 대해 사전 지식이 전혀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극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 중간중간 얼쑤 하는 추임새를 넣는 관객이 있다. 내용이 진지하고 슬퍼질 때는 눈물을 훔친다. 웃기는 대목에서는 서슴없이 박장대소를 한다. 돌아보면 그들은 이웃집 파마머리 아주머니이고 논 가는 아저씨이며 낮술 한 잔 걸친 술꾼이다. 마당에서 펼쳐지는 마당극을 마당의 주인이 제대로 즐기는 것이다.

 

산청한방약초축제에는 지난해 처음 가 보았다. 볼 것도 괜찮았고 살 것도 많았다. 먹을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은 마당극을 보기 위해 산청축제에 갔지만, 그 밖에 많은 것을 보고 먹고 사고 돌아왔다. 올해도 간다. 12번 펼쳐지는 마당극 공연을 모두 볼 수는 없지만,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최대한 갈 수 있을 만큼은 보러 간다. , 일요일과 개천절, 한글날이 끼어 있어서 무척 다행이다.

 



첫날은 아내와 함께했다. 토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주섬주섬 출발 준비를 하는 나에게 아내는 함께 가자고 했다. 고맙지! 구지뽕 한 상자를 샀다. 벌꿀 다섯 병을 사서 경기도 안산으로 부쳤다. 꿀이 필요한데 믿고 살 만한 데가 없어서 좀 그렇다는 처남댁의 말을 귀담아 들어 두었던 것이다. 점심은 이장님국밥과 이장님비빔밥을 먹었다. 반찬은 배추김치 하나였다. 값은 7000원씩이었다. 국밥은 소고기국밥이었는데 먹을 만한 정도였다. 비빔밥도 그 정도였다. 아내와 나는 쓰다 달다 말하지 않았다. 그저 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잔치의 한 가운데서 그들이 나름대로 정성을 쏟아 고으고 비빈 밥으로 한 끼 식사를 한다는 데 만족했다.

 

둘째날은 지인 세 명과 함께했다. 진주에서 1030분쯤 출발했다. 5명이 가려던 것이 4명으로 줄었다. 한 분은 밤새 남명 조식 선생의 일대기를 읽었다고 했다. 그중 3명은 6월에 남해에서 열린 <효자전>을 보러간 적 있다. 큰들 마당극을 본 적은 있지만 <남명>은 처음이라고들 했다. 다음엔 <오작교 아리랑>을 노린다. 우리는 동의보감촌으로 올라갔다. 기바위에 손을 대어 보고 사진 잘 찍히는 장소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스피커에서 무한 반복 들려오는 산청아리랑을 들으며 필봉과 왕산의 정기를 조금 마셨다. 대장간도 가보았다. 사지는 않았다. 처음 간 사람, 아주 오래 전에 가 보고 요즘엔 안 간 사람, 꽤 자주 가서 곳곳을 훤히 꿰는 사람이 식당으로 갔다. 소고기버섯전골을 시켜놓고 산청막걸리 세 병을 마셨다. 노루궁뎅이버섯도 덤으로 얹어 먹었다. 단체 손님과 삼삼오오 가족 손님이 계속 들어오고 나갔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축제장으로 내려갔다.

 



마당극을 시작하는 오후 2시 마당극장은 발디딜 틈 없이 빽빽했다. 배우들은 풍악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길고 긴 대사를 이어갔다. 마당극 속 어떤 배역은 나빴고 어떤 배역은 불쌍했고 어떤 배역은 훌륭했다. 나쁜 사람과 불쌍한 사람과 훌륭한 사람을 같은 사람이 연기하기도 했다. 한 배우가 서너 가지 배역을 맡아 한다. 무대 뒤로 사라졌다가 잠시 후 나오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고 다시 사라졌다가 나타나면 또 다른 인물이 되어 있다. 그런 것까지 열심히 좇아가며 남명을 알아가고 경의 사상을 배우고 역사를 깨닫는다. 1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손뼉과 고함이 터졌다.

 

마당극이라는 건 소설과 다르고 연극과 다르고 오페라와 달라서 너무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비틀어보고 꼬집어보고 할 건 아니다. 그저 한 시간 남짓 신나게 웃고 떠들고 손뼉치며 스트레스 푸는 것으로 만족해도 된다. 연기나 노래나 춤 솜씨가 좋으면 손뼉을 더 크게 쳐 주고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싫은 소리 한두 번 해도 된다. 그런 것까지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받아들이고 바람이 안개를 걷어가듯이 고쳐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한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열심히 관람한 사람에게 무엇 하나쯤은 남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명>에서는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것 하나쯤 가슴에 새기고 가면 된다.

 



나는, 남명 돌아가신 지 20년 뒤 임진왜란이 터지자 남명의 제자들이 갓을 벗어던지고 칼을 차고 달려나오는 장면에서 늘 먹먹해진다. 음악부터 박진감 넘친다. “의령 곽재우! 스승님의 뜻에 따라 왜적과 싸우겠다!”로 시작하여 극이 끝나는 5분 동안은 심장이 쿵쾅거려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정도다. 마당극 <남명>을 아홉 번째 보는데도 말이다. 대사를 줄줄 외지는 못하더라도 장면 장면을 모두 이어붙일 만큼 익숙해졌는데도 늘 그 대목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위대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들이 나오는 법이다. 배운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남명의 경의 사상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국난을 당하여 어떻게 행동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나뿐만 아니었던 듯하다. 일행들도 감동했다고 이구동성이다.

 

산청한방약초축제장에서 마당극 <남명>, <효자전>,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은 말년을 산청 덕산에서 지냈으니 당연한 일이다. <효자전>의 배경은 산청 지리산 어느 골짝이다. 약초로 유명한 곳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지리산에서 산삼을 구하여 어머니 병환을 낫게 한다는 이야기다(극 내용에서 어머니는 실제 산삼을 먹고 병이 낫는 게 아니다. 여기에 또한 묘미가 있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는 남남북녀가 만나 산청에 있는 예식장에서 결혼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이 세 마당극을 보노라면, 자기도 모르게 산청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산청이란 곳이 살기 괜찮은 곳이로구나 느낄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산청이라는 상표가 붙은 물건에 신뢰를 보내게 되지 않을까. 좀 지나치게 확대 해석했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그리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산청군이 축제 때마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상설 공연하도록 배려하는 데는 이만한 까닭이 있다고 본다. 그 배려하는 산청군의 마음과, 그만큼 진정성 있게 공연하는 극단 큰들에 큰 손뼉 보낸다.

 

그나저나 103일 개천절 공연이 어찌될지 걱정이다. 태풍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비와 바람이 만만찮을 것이라 한다. 진주남강유등축제, 산청한방약초축제 등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을축제에 피해 없기를 빈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 13일 동안 12번 공연을 하려면 배우들과 연출 담당자들, 사무실에서 내조하는 식구들의 체력도 중요하겠다. 부디 아무도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무사히 연속공연을 마쳐주기를 또한 빈다. 할 일 많은 10월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2019. 10. 1.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