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문회 패싱’ 둘러싼 여야의 한입 두말 정치 (한국일보 2019. 9. 4.)
• “트럼프 ‘NSC팀 무시’ 가속화”…‘볼턴 패싱’ (연합뉴스TV 2019. 9. 3.)
• ‘청문회 패싱’ 정치 포기 역풍에 전격 ‘여의도 회군’ (국민일보 2019. 9. 5.)
• ‘여론 악화’ 부담에 두 당 모두 ‘청문회 패싱 책임론’ 압박감 (경향신문 2019. 9. 4.)
• ‘치킨게임’ 하던 여야 전격합의 선회…‘청문회 패싱’ 서로 부담 (연합뉴스 2019. 9. 4.)
• 청와대 ‘외교부 패싱’이 한미 외교 난맥 불렀나 (한국일보 2019. 8. 3.)
• 살인적 근무 신고했더니 “내년에 처리”…노동자 패싱한 노동청 (서울신문 2019. 9. 5.)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를 놓고 말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언론 보도 말이다. 여론조사를 하는 한 인사는 “한 명의 대통령 후보를 보도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70만 건을 넘었느니 80만 건을 넘었느니들 한다. 그중에는 사실도 있고 거짓도 있을 것이다. 사실이긴 하지만 그 뒷면의 진실은 또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능력과 자질, 도덕성 따위를 검증하는 ‘인사 청문회’ 제도가 불러 은 우리 시대의 희극이자 비극이다.
조국 후보를 기어이 장관에 앉히려는 청와대와 여당, 결단코 저지하려는 야당(대표적으로 자유한국당) 사이에서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혼란은 멀미로 이어졌다. 지겹고 넌덜머리가 난다. 정치를 싸잡아 비난하거나 아예 냉소를 보내기도 한다. 장관에 앉히려는 쪽은, 조국 후보야말로 사법개혁의 적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의 능력과 신념, 자질 따위를 크게 본 것이다. 반대쪽은 그의 가족을 둘러싼 온갖 의혹의 중심에 조국 후보가 있다고 보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도덕적 흠결은 불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검찰이 정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으니 지켜볼 일이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야당이 결사 항전하는 것은, 조국이 법무부장관에 임명된다면 현재 야당이 정치적ㆍ사법적으로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근거는 없다. 조국이 임명돼도, 임명되지 않아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 현상’(레임덕)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인사들도 있다. 조국을 ‘결절점’이라고 칭하는 이도 있다. 장관 인사 청문회 제도가 생긴 지 대략 15년 남짓 된 모양인데 이처럼 여야의 대립이 날카로웠던 적은 없었다고도 한다. 인사 청문회 제도 혹은 장관 임명 제도는 조국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같다.
어쨌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인사청문회를 9월 6일 하루 동안 열기로 합의한 것은 다행스럽다. 건곤일척으로 싸우던 여와 야가 우여곡절 끝에 합의에 이르고 드디어 국회에서 마련하는 인사 청문회를 국민들이 생방송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의혹을 던진 야당이나 언론사들이 얼마만큼 증거를 들이댈지, 의혹과 증거 앞에 후보자는 어떻게 변명하고 해명할지 자못 기대가 크다. ‘후보자 기자간담회’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국민 청문회’에서 의혹이 해소됐다고 하는 쪽과 의혹이 더 커졌다는 쪽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해진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사의 기사 제목에 ‘패싱’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패싱’이라는 말은 남ㆍ북ㆍ미ㆍ일 사이의 보도에서도 자주 보였다. (코리아 패싱, 김정은 패싱, 문재인 패싱, 일본 패싱) 무슨 물건을 가리키는 이름도 아니고 제도를 가리키는 말도 아니고 사람 이름은 더더구나 아니어서, 움직일 수 없도록 이름을 붙여서 굳어진 게 아니다. 이 말은 보통명사(또는 동사)이다.
‘패싱’이란 무슨 말인가. 영어 ‘패싱(passing)’은 ①굉장히(surpassingly) ②대단히(very) ③통과하는 ④통행용인 따위 뜻이 있다고 한다. (다른 뜻도 있다. 참고로만 알아두자. “패싱(passing)이란 어떤 사람의 외적 모습이 사회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헤어스타일이나 옷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서부터 그 성별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행동거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이 패싱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패싱은 아마도 ‘통과하는’일 것이다. ‘청문회 패싱’은 ‘청문회를 실제 열지도 않고 통과하게 하는’이라는 뜻이다. ‘볼턴 패싱’은 ‘볼턴 장관에게는 물어보거나 결재를 받지도 않은 채 사안을 통과시켜 버리다’는 뜻이다. ‘외교부 패싱’ 또한 ‘외교부에는 물어보거나 결재를 받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했다’는 뜻이다. ‘노동자 패싱’은 ‘노동자의 권리나 처지를 생각지 않고 얼렁뚱땅 일을 처리했다’는 뜻이다. ‘패싱’은 사안에 관계있거나 있다고 여길 만한 대상을 무시하고 넘어가버리는 경우, 이해관계가 분명한데도 물어보지 않고 무시해버리는 경우, 꼭 거쳐야 할 절차를 다른 이유를 들어 하지 않은 경우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앞에 보기를 든 ‘청문회 패싱’에서 ‘패싱’은 ‘열지 않은’이라는 말이다. ‘건너뛰다’라는 뜻도 있다. ‘볼턴 패싱’에서 ‘패싱’은 ‘무시하다’ 또는 ‘제외하다’, ‘배제하다’, ‘건너뛰다’이다. ‘외교부 패싱’에서 ‘패싱’도 비슷하다. ‘노동자 패싱’에서 ‘패싱’은 ‘무시하다’, ‘외면하다’에 가깝다. ‘패싱’은 아주 자주 여러 곳에서 쓰이는 말인데 그 뜻과 느낌은 조금씩 다르다. 조금씩 다른 것을 한 낱말에 뭉뚱그려 욱여넣은 꼴이다. 마치 입만 열었다 하면 ‘케어’라고 하는 것과 얼추 닮았다. 이 말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듣기 힘든데 언론사 기자들의 입에서와 글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은 마치 ‘워딩’이라는 말을 기자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것과 닮았다.
미국에서 기자들이 ‘패싱’이라고 말하니 얼떨결에 따라하는 꼴이다. 미국에서 ‘워딩’이라고 하니 깊이 생각지 않고 줄래줄래 따라나선 꼬락서니다. 미국에서 ‘케어’라고 하니 밑도 끝도 없이 따라서 ‘케어’라고 나불대는 꼴이다. 참 부끄럽다. 말을 제대로 가려 써야 얼이 살아날 것이고 얼이 바로 서야 겨레 정신이 올곧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된 뒤라야 나라가 나라답게, 겨레가 겨레답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일본 경제 침략’ 같은 황당한 상황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며, 아예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패싱’, 이 말이 자연스러운지, 이 말을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하는지... ‘무시, 제외, 배제, 배척, 통과, 없다, 안하다’ 따위 말로 바꿔 쓸 생각을 할 수는 없는지...
‘청문회 패싱’이라고 할 것을 ‘청문회 없는 장관’(세계일보 2019. 9 .5.)이라고 한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본문에는 ‘청문회 패싱’이 보인다.
2019. 9. 6.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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