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씻고 밥 먹고 출근한다. 스마트폰 라디오를 켠다. 시비에스(CBS)를 듣는다. 마음에 든다. 뉴스 시간에 골라잡은 소식들은 알맹이만 잘 고른 듯하다. 6시 10분부터 ‘굿모닝 뉴스 이강민입니다’를 듣는다. 대체로 좋다. 국내외 소식을 간추려 주는데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듣기에는 이만한 방송이 또 있을까 싶다. 외국 노래 두 곡도 들려준다. 잘 선곡하는 것 같다. 6시 40~50분쯤 집을 나서면 차 안에서도 듣는다.
꼭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 마지막 순서는 ‘뇌섹 뉴스’라고 하는데 나는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뉴스’는 안 쓰기 어려운 말이 되어 버렸으므로 어쩔 수 없다고 친다. ‘뇌섹’은 뭔가. ‘뇌가 섹시하다’라는 뜻인 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럼, ‘뇌가 섹시하다’는 무엇인가. ‘섹시하다’는 ‘성적인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대방의 뇌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게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다. 참 알쏭달쏭하고 흐리마리하다.
흔히 ‘뇌섹남’이라고들 말한다. 곧 ‘뇌가 섹시한 남자’라는 말이겠다. ‘뇌섹녀’라는 말도 있겠지. ‘뇌섹남’은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가 있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라고 한다. 더 찾아보니 ‘2015년 5월 한 여성 잡지의 특집기사가 뇌섹남을 ‘주관이 뚜렷해서 할 말은 하는 남자’, ‘책을 많이 읽은 언변의 마술사인 남자’로 소개하면서 알려진 말이다.’라고 설명한다.
좀 웃긴다. 설명대로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가 있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이야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개성이니 뭐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뇌가 섹시하다’고 할 건 무엇인가. 그런 말을 비틀어 만들어서 ‘뇌섹남’이라고 희한한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놀랍다. 이 말라비틀어진 희한한 말을 비판해야 할 언론이 ‘뇌섹 뉴스’라는 말을 또 만들어냈으니 더욱 놀랍다.
얼마 전까지 자주 보던 텔레비전 방송 가운데 ‘뇌섹시대-문제적 남자’라는 게 있다. 어려운 문제 푸는 재미에 푹 빠져 한때 열심히 보았다. 워낙 늦은 시간에 하는 데다 ‘뇌섹시대’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어 요즘은 안 본다. 이 방송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글귀는 ‘스케일이 다른 뇌섹피디아’이다. (‘문제적 남자’라는 말은 ‘문제를 잘 푸는 남자’라는 뜻보다는 주로 ‘나쁜 문제를 일으키는 남자’라는 뜻인데 다른 사람은 그렇게 보지 않는가 보다.)
‘뇌섹남, 뇌섹녀, 뇌섹 남녀, 뇌섹인, 뇌섹 시대, 뇌섹 뉴스, 뇌섹 지수’라는 말이 흘러넘친다. 이 말을 얼른 알아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알아듣는 사람이라도 ‘뇌가 어떻게 생겨야 섹시한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처럼 ‘말을 참 희한하게도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문, 방송에서 널리 쓰이는 것으로 봐서 상당한 기간 동안 ‘뇌섹남’ 따위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국립국어원에서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말 사전인 ‘우리말샘’에도 올라 있다. 표준어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두루 널리 쓰이고 있고 많은 이들이 꺼리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9. 9. 5.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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