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젤미마을 그린빗물인프라 조성사업 모습>(사진=창원일보)
‘밀양시, 그린빗물 인프라 사업 순풍’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지방정부에서 하는 어떤 정책이 ‘순풍’이면 좋은 일이다. 어쩌다 시민들이 바라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단체장이 없잖아 있지만, 이 일은 좋은 일로 보였다.
제주종합운동장에서도 그린빗물 인프라 조성공사를 하고 있다고 그 동네 언론에서 보도한다. 어떤 언론은 ‘그린빗물 인프라 사업 효과 의문’이라는 제목으로도 보도한다. 수원시도 빗물을 활용하는 ‘레인시티 사업’, ‘그린빗물인프라 조성사업’을 한단다. 김해시도 그린빗물 인프라를 추진한다고 지난 5월에 발표했다. 온 나라에서 이른바 ‘그린빗물 인프라 조성사업’이라는 걸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그린빗물 인프라 사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언론 기사 제목을 봐서는 잘 모르겠다. ‘그린’이라는 말이 ‘그리다’에서 온 말인지 영어 ‘그린’(green)에서 온 말인지부터 궁금했다. 기사를 읽었다. 그린빗물 인프라 조성사업이란,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하천으로 바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사업이라고 한다.
“그린빗물 인프라 조성사업은 도시화로 인한 불투수면 증가로 발생되는 수질오염, 지하수 부족, 건천화, 도시침수 같은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영향개발기법(LID)을 적용, 빗물이 땅으로 스며드는 투수성 포장, 침투 도랑 같은 침투형 시설과 식물재배화분, 나무여과상자, 식생수로 같은 식생형 시설을 설치해 빗물의 유출이 최소화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창원일보)
대강 무슨 뜻인지 알겠다. 기사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전체가 포장으로 뒤덮이다 보니 비가 내리더라도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고, 오염 물질이 빗물과 섞인 채 하천으로 흘러들어 하천 오염이 심해지는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 잘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이제야 생각해 냈다는 게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온 나라 지방정부들이 앞다퉈 이 사업을 하려는 까닭을 알 만하다. 이미 깔아놓은 포장을 걷어내고 새로 빗물이 통과하는 포장을 깔려고 하면 세금을 낭비한다는 말도 들음 직하다. 누군가 세금 아깝다고 하거나 말거나 눈치 보지 말고 꾸준히 밀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사업 이름을 ‘그린빗물 인프라 조성사업’이라고 할 건 왜일까. ‘그린빗물’이 뭔가. 하늘에서 떨어진 맑고 깨끗한 빗물이 바로 강이나 바다로 흘러가지 않고 땅으로 스며들어 땅심을 북돋우고 나무와 풀을 잘 자라게 하니, 결과적으로 빗물 덕분에 초록빛이 늘어난 것 아니냐고 해석해야 할까. 이 말을 무엇으로 바꾸면 될까. ‘인프라’는 기반, 기반 시설, 기간 시설이다.
무슨 일에서건 ‘그린’을 갖다 붙이면 다 좋은 줄 안다. 그린은 초록, 녹색이라는 말이지만 숲, 나무, 풀, 들판, 산 등의 느낌과 연관되어 자연친화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어떤 사람은 골프장의 넓고 푸른 잔디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 또 다른 사람은 초록빛깔 신호등을 떠올리기도 하겠지. ‘그린 라이트’라는 말이 유행할 때도 있었는데 이 말은 초록색 신호등의 의미가 넓혀져서 ‘어떤 일이든 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라는 말로 사용됐다.
다시 ‘그린빗물’로 돌아와 본다. 우리 생활환경을 자연친화적으로 바꿔 나가는 멋진 사업의 이름에 어쩌다 ‘그린빗물’이라는 말을 갖다 붙였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누군가 처음 이 말을 지어냈다고 하면 그 위에 있는 누군가 “이봐, 이게 뭐야? 더 멋진 우리말로 지어봐.”라고 해야 했다. 이 사업을 한답시고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냈을 때 기자 가운데 누군가는 “이것보세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공무원은 국어기본법도 모르세요?”라고 지적해 주어야 했다. 돌이켜 보면 아무도 그렇게 생각지 아니하고 신기하고 낯선 새로운 말을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닌 듯하다.
‘그린빗물 인프라 조성사업’은 ‘맑은 빗물 재사용 기반조성 사업’이라고 하면 어떨까. ‘빗물 제대로 활용하기 기반조성 사업’이라고 하면 어떨까. ‘빗물 아끼기 기반조성 사업’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빗물 순환 기반조성 사업’이라고 붙여도 됨 직하다. ‘기반조성’이라는 말은 빼도 되겠다. 이렇게 말을 붙이면 누구나 쉽게 알게 된다. 듣도 보도 못한 ‘그린빗물’이라는 말을 지어내 국민들 머릿속 복잡하게 할 일이 아니다.
수원시는 도시 이름에 ‘물’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이런 사업을 잘한다. 2009년 ‘수원시 물 순환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며 ‘물 순환 체계 구축 사업’의 첫걸음을 뗐다는 언론 보도가 보인다. 그렇다. 그냥 ‘물 순환 체계 구축 사업’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어떤 언론에서는 수원시의 이러한 행정을 일러 ‘레인시티’라는 괴상망측한 이름을 붙여준 모양인데, ‘물 순환 도시’가 훨씬 쉽고 간단하여 온 국민이 알아듣기에도 좋아 보인다.
그건 그렇고, ‘그린빗물’은 ‘초록빛깔 빗물’이라는 말인데, 실제 초록빛깔 비가 내린다면 그건 인류 멸망의 큰 재앙이 될 것이다.
2019. 7. 31.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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