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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마침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by 이우기, yiwoogi 2019. 8. 5.

큰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150, 151회 공연을 보고

 


오후 2시에 치과를 가야 해서 휴가를 냈다. 201812일 의사선생님과 상담하고 115일 이 6개를 뽑았다. 그전에 뽑은 것까지 합하여 모두 10개를 임플란트해야 했다. 큰 공사다. 아랫니 4개는 지난해 7월에 끝났다. 윗니 6개는 이제 막바지다. 82일 금요일 오후 치과에서 1시간 남짓 드러누워 있으면서 참 잘못 살았구나생각했다. 의사선생님은, 술은 이 주일에 한 번만, 한 번에 소주 반 병 정도씩 마시라고 하셨다. 그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이지만 그렇게 살다가는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싶었다.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겠다 다짐한다.

 

오후 5시에 대아고등학교 아래 농협주유소에서 교장선생님 한 분과 동네 형님 한 분을 만나기로 했다. 동네 형님은 시내버스에서 내렸고 교장선생님은 택시 타고 서진주주유소까지 가셨다. 시간 크게 차이나지 않게 세 사람이 만났다. 만난 이유는 단 하나다.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에서 저녁 7시에 열리는 극단 큰들의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함께 보기 위해서이다. 이날 공연은 150회째다. 동네 형님은 지난해 이맘때 함께 마당극 보러 갔다가 '남돌이' 역을 한 적 있고, 올해는 진주 큰들 창립 기념 정기공연 때 '130명 풍물놀이'에 참가한 적 있다. 그후 장구를 사놓고 가끔씩 연습한다 하니 어지간한 열정을 넘어선다.

 

오랫동안 기다렸다. 629일 진주 큰들 창립 35주년 기념 정기공연 <남명>에서 최샛별 배우 대신 하은희 배우가 나선 것을 알았다. <오작교 아리랑>에서 꽃분이 어머니 역할도 하은희 씨가 하게 될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허리 구부러진 할머니 역할을 어떻게 소화해낼지, 두 배우의 연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매우 궁금했다. 하은희 씨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효자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까닭이다하은희 씨는 배우들의 의상도 담당한다.

 

셋은 생초나들목에서 내려 금서면 주암마을로 갔다. 산청군과 함양군의 경계다. 남원, 백무동, 뱀사골, 칠선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경호강(임천강)이 경계이다. 다리를 건너면 함양군 유림면이고 건너지 않으면 산청군 금서면이다. 금서면 끝자락에 주암식당이 있다. 주암식당은 민물고기 요리 전문점이다. 메기매운탕, 잡어매운탕, 추어탕, 어탕국수, 피리튀김과 같은 요리를 한다. 이 집 어탕국수를 여남은 번 먹어 봤고 메기매운탕은 한 번 먹어 봤다. 맛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무질러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 집 어탕국수가 꼭 마음에 든다.

 

셋은 어탕국수 한 그릇씩 먹었다. 점심 때 열무국수를 드셨다는 교장선생님은 국수국물에 밥을 말아 드셨다. 운전 맡은 나 빼고 두 분은 이순신 막걸리 한 병 비우셨다. 이순신 막걸리는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시절에 이순신 프로젝트라는 걸 대대적으로 벌일 때 선정된 기획 상품이라고 한다. 이순신 막걸리를 만드는 술도가는 경호강 건너 오른편에 있다. 여기서 만드는 팔선주도 좋다. 보약을 먹는 느낌이 든다. 처음 입맛은 달달하고 약간 쌉싸름한데 조금 있으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조금 더 있으면 금방 깬다. 여러 번 사먹어 봤고 주변 여러 사람에게 나눠 봤는데 싫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쨍쨍 내리쬐는 작열하는 태양이 매우 눈부셨다. 8월의 하늘은 높았고 넓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뭉게구름이 두둥실 흘러가고 있어서 여름 풍경 치고는 정겨움이 묻어났다. 비를 머금지 않은 새하얀 새털 같은 구름이 멀리 가까이 떠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올려다보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여름이건만 그 여름을 맞이하고 여름에 맞서고 다시 여름을 보내는 과정은 해해연년 다르다. 지난해와 올해는 산청에서 맞이하고 산청에서 즐기며 산청에서 보내게 된다. 큰들 마당극 덕분이다. 마당극을 함께 즐기는 지인들 덕분에 더운 여름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보내는 듯하다. 고마운 일이 늘렸다.

 

공연은 7시에 시작할 것인데 630분도 되기 전에 여러 사람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큰들 마당극을 보러 가면 늘 보는 풍경이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소문을 듣고들 오는지 신기할 때도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수에서 수십 명이 단체로 왔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서 뒤에 서서 보았다고 한다. 우리는 맨 앞에 세 자리를 찜해 놓고 여유를 부렸다. 공연마당 뒤쪽 기바위빵가게에 가서 커피를 샀다. 배우들은 마이크 성능을 점검하고 연기를 맞춰보는 등 느릿느릿 침착하게 공연을 준비했다. 관객들이 서서히 몰려드는 것을 보고서는 자칫하다가 자리를 뺏길까 저어하여 다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극단 큰들 배우, 연출 등 아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악수하고 마주보며 웃었다. 공연마당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왕산으로 넘어가는 여름 햇빛 몇 조각이 잔디 위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새 햇빛은 저 멀리 마당 끝으로 달아났다. 7시가 되자 제법 선선해졌다. 어둡지는 않았지만 양쪽에 세워놓은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교장선생님은 간간이 사진을 찍었다. 동네 형님도 이따금 사진을 찍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찍었다. 공연을 보다가 뒤를 돌아보니 빈 걸상이 하나도 없이 둘러앉았고 걸상을 에워싼 관객들이 겹겹이 섰다. 웃음은 여기저기서 동시에 피어오르기도 하고 대중없이 퍼져나가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나, , 하면 산청~!”이라고 하고 다시 하나, , 이라고 하면 좋다~!”를 외친다. 나는 큰들!”, “최고다!라고 외쳤는데 다른 분들 목소리에 묻혔다.

 


진주로 돌아왔다. 저녁 먹을 때부터 돌아와서 막걸리 한잔씩 하기로 약조를 한 터였다. 치과 의사선생님 앞에서 했던 다짐은 뭉게구름이 되어버린 것일까. 서부도서관 앞 잔가득에 가고 싶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공설운동장 옆 촌국수에 전화하니 11시까지 문을 연단다. 낙점. 셋은 기념촬영 마친 뒤 쌩 달렸다


금요일 저녁 시간 상행선, 하행선 모두 차가 많았다. 어렵다, 어렵다 해도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오는 법이다. 갈 곳이 있는 사람은 있어서 좋고 없는 사람은 없어서 섧다. 나는 좋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갈 곳이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 처음엔 그냥 갔다. 한두 번 가다 보니 습관이 됐다. 습관이 되다 보니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촌국수에서는 고성 하이생탁과 진주 가맛골 막걸리를 마음껏 마셨다. 안주로는 땡초전과 고등어구이를 시켰는데, 곁들이반찬도 무척 맛있었다. 잘 먹고 헤어졌다. 11시 안 되어 내 차는 주차장에 둔 채 택시 타고 귀가했다.

 

토요일은 더 더운 듯했다. 아내는 아침 일찍 서부도서관에 공부하러 갔다. 피서도 되겠다. 거실에서 <임꺽정>도 읽고 페이스북 보고 신문 보다가 낮잠도 잤다. <임꺽정>은 세 번째 읽는 건데 10권 중 8권이다. 다 읽어 간다. 잡으면 손을 놓지 못해 잠을 설쳤다. 냉장고 뒤져 식은 밥과 찌개 데웠다. 열무김치 건더기를 쓱쓱 비벼 한 그릇 비웠다. 택시 타고 가서 내 차를 갖고 왔다. 차 안은 아주 뜨거웠다. 토요일은 길다.

 



오후 5시가 되었다. 두말없이 옷 갈아입고 모자 쓰고 색안경 끼고 차를 몰았다. 잠을 설치도록 재미있는 <임꺽정>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오작교 아리랑>을 또 보러 간다. 출발 준비하는 장면을 누군가 지켜본다면 참 엄숙하구나!”라고 할 만할 것이다. 산청나들목에서 내려 동의보감촌을 스쳐 지나 주암식당에 갔다. 이틀 연속 출석이다. 손님이 많다. 늘 그렇다. 어탕국수 깔끔하게 비우고 술도가가서 팔선주 댓 병 샀다. 한 병은 내 몫이고 네 병은 큰들 몫이다. 이틀 연속 마당극 공짜로 보는 데 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간 길을 되밟아 동의보감촌으로 왔다. 아직 630분도 안 되었건만 사람들이 몰려든다. 한 뼘 가웃 자란 잔디가 폭신폭신해서 좋다. 옅은 구름이 끼어 금요일보다 덜 더워 좋다. 극단 큰들 식구들이 왔다 갔다 한다. 분장은 했지만 옷은 아직 입지 않았다.

 



공연 시작이다.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의 좌충우돌 결혼 이야기다. 아랫마을은 남쪽을, 윗마을은 북쪽을 이야기한다는 건 척 보면 안다. 5000년 동안 함께 살았고 70년 동안 헤어져 살았다는 남남북녀의 결혼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리라는 것도 짐작하기 어렵잖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서부터 북미회담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을 눈여겨보고 있는 국민들인지라 <오작교 아리랑> 이야기가 마음에 쏙쏙 들어올 것이다.

 

이 마당극의 주연은, 모두가 주연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남돌이 부모와 꽃분이 부모이다. 꽃분이 어머니는 그동안 최샛별 배우가 열연했다. 공연 한 시간 동안 허리를 구부리고 있기 때문에 허리가 아프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지난봄에 공연 보러 간 우리 동네 아지매들은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면서 최샛별 씨에게 우찌 그리 잘합니꺼?”라고 묻고 허리 안 아픕니꺼?”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최샛별 씨가 어떤 사정에 따라 물러나고 하은희 배우가 등장했다. 하은희 배우는, 내가 본 것을 기준으로 하자면, 629일 정기공연 <남명>에서 처음 봤다. 하은희 배우는 극단 큰들의 의상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실제 배우이다. 그의 연기를 잇따라 가까이에서 보게 된 건 행운이다. 



금요일 함께 간 동네 형님은 말했다. “샛별 씨 연기와 은희 씨 연기가 복사한 듯 똑같다.” 나는 누가 잘하나, 못하나 따져보고 싶었는데 부질없는 짓임을 알겠습디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교장선생님은 공연을 처음 보셨고. 한 배우가 사정에 의하여 잠시 연기를 쉬게 되면 다른 배우가 그 공간을 완전무결하게 채워나가는 체제가 큰들에는 마련돼 있다. 지난해 여름 이명기 배우가 군대 간 뒤에 <효자전> 저승사자를 누가 할지 궁금하고 걱정했는데 큰들은 홍수완 배우를 투입함으로써 오랜 관객들의 짧은 우려를 단숨에 불식했다. 마당극을 계속 보면, 한두 번 보는 관객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 도무지 알 수 없는 부분까지 보게 되고, 그런 것을 보는 것도 무척 재미지다.

 



처음 등장할 때 땅재주 넘는 것도 똑같고 남돌이 아버지 턱밑에 손가락을 들이밀어 들어오라우!” 하는 모습도 똑같다. 버나 돌리는 실력도 막상막상이다. 어쩜 그렇게 똑같이 하는지 모르겠다. 습자지 아래에 먹지를 대고 그 아래에 다시 종이를 넣어 글씨를 꼭꼭 눌러쓰면 똑같은 문서를 두 장씩 만들 수 있다. 1970년대 이야기다. 요즘은 복사기에 문서를 얹어놓고 단추를 누르면 몇 장이든 똑같은 문서를 생산할 수 있다. 컴퓨터에 문서 하나를 작성, 저장해 놓고 인쇄를 누르면 몇 장이든 똑같은 문서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라서 큰들은 한 배우의 멋진 연기를 연기창고에 차곡차곡 잘 저장해 놨다가 다른 배우로 교체할 때는 창고 문을 열어 그 연기를 다른 배우에게 들씌워주는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해본다.

 


2일 저녁 남돌이는 제법 나이 많은 분이 뽑혔다. 신랑 신부 맞절을 하는데 절을 하다 말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신부 얼굴을 훔쳐본다. 그분은 실제 결혼식에서도 자기 부인을 그렇게 바라보았음 직하다. 정말 어데선가 연기를 좀 해보신 분 같다. 어색해하거나 긴장하는 빛이 조금도 없었다. 여태까지 본 남돌이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재미있다. 부모님께 절을 해 놓고는 세뱃돈 내라고 한다. 아버지는 설날도 아닌데 웬 세뱃돈이냐고 지청구를 준다.

 

3일 저녁 남돌이는 (결혼이) “처음 맞제?”라고 묻는 주례 할배에게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린다. 이번까지 합하면 두 번이라는 뜻이다. 그는 남돌이로 뽑혀 마당으로 나갈 때 미리 여보 미안해.”라고 말하기도 해 벌써부터 관객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돌이들은 어디에서 소문을 듣고 오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공연에서는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인 줄 아는지, 아무튼 약간 당혹해 하지만 결국은 마당극을 성공으로 이끄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뒤집어 말하자면 큰들 배우들이 관객 배우를 그렇게 잘 이끄는 것이다. 다른 관객 모르게 살짝살짝 귀띔도 하고, 말없이 손으로 당기거나 밀어가면서, 또 어떤 때는 대놓고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시켜 가면서 극을 이끈다. 이틀 연속 백 점짜리 연기를 보여준 남돌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출연 기념으로 큰들에서 주는 자그마한 사진 액자는 그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이 사진을 찍는 과정도 재미있다. 남돌이는 부모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결혼식을 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남돌이는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 취직해서 따로 나가 살다가, 꽃분이를 만나 제 맘대로 결혼을 결정해버린 것으로 설정돼 있다. 남돌이 아버지는 네가 하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집에 가족 사진이 없어!”라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남돌이 어머니는 가방에서 셀카봉을 꺼낸다. 관객 배우와 남돌이 부모, 이렇게 셋이 사진을 찍는다. 꽃분이 부모가 대사를 하는 동안 뒤로 돌아앉은 남돌이 어머니는 찍은 사진을 무대 뒤 동료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그 사진을 즉석에서 인화하여 액자에 넣어 주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관객들은 극이 끝난 뒤 남돌이에게 주는 사진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아낌없는 손뼉을 보내는 것이다. 남돌이에게 사진 선물을 하는 건 지난해 12월초 거창공연 때 처음 봤다. <남명> 공연에서도 ‘5분 사또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선물을 준다.

 

저녁 7시에 마당극을 시작할 때는 세상이 환하다. 저녁이라기보다 그냥 오후의 어느 때 같다. 무대 주변도 환하고 저 멀리 필봉도 뚜렷하다. 그러던 것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극이 끝날 때는 아주 캄캄해진다. 하늘은 파란빛과 검은빛을 섞어 놓은 것 같다. 검푸른 하늘 아래 시커먼 산이 있고 그 산이 둘러싸고 있는 보금자리에 큰들의 조명이 서 있다. 관객들의 표정은 밝고 시원하다. 조명에 비친 얼굴들은 조금 상기돼 있으나 맑고 깨끗하다. 배우들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조명에 비쳐 다이아몬드 같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기하는 배우들의 얼굴엔 보람과 긍지가 넘친다.

 

마당극은 현실 풍자적 요소가 강하다. 마당극의 시대적 배경이 조선시대든 고려시대든 간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적당한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는다. 어느 항공회사 회장이라는 자가 가는 곳마다 여성 승무원을 동원한다는 뉴스도 마당극에서 다뤘고(<효자전>에서), 다른 항공사 대표 가족이 직원들에게 못된 짓을 하더라는 이야기도 다뤘고(<효자전>에서), 어떤 아이티기업 회장이 갑질을 하다가 경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녹여낸다(<남명>에서). 특히 <오작교 아리랑>은 남북 관계를 형상화한 것이어서 지난해 427일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8선 경계를 넘어갔다 왔다 하는 장면도 재연했다.

 



이번 <오작교 아리랑> 공연에서는 일본의 경제침략이 도마에 올랐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우리 국민을 강제로 잡아가서 일을 시키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조선의 소녀들을 성노예로 끌고 가 갖은 곤욕을 치르게 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박정희 때 한일협정을 맺어 경제개발 원조를 받는 조건으로 국가 간에는 배상을 끝낸 것으로 했다. 그의 딸 박근혜가 조선 소녀 성노예와 관련하여 턱도 없는 조건으로 합의를 해 놓고는 불가역적 합의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법원은 강제노역에 동원된 우리나라 국민에게 일본 기업에서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본 아베 총리는 이에 반발하여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인 삼성과 하이닉스 등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때 반드시 필요한 화학 소재를 수출하지 않음으로써 기업의 힘을 빼고 그것으로 인하여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치졸한 전략을 구사한다. 어떤 언론은 경제보복이라고 하지만 이는 명백히 경제침략이다. 전쟁이다. 국민들은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하겠다.”면서 일본 제품 안사기, 일본에 여행 안 가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양 나라 간에 갈등은 광복 이후 최고조에 이르렀다. 마당극에서 이를 놓칠 리 없다. 다음은 남돌이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대화이다.

 


남돌이 어머니: 아이고 영감. 날도 더분데 시원한 맥주 한 캔 하소.

남돌이 아버지: 맥주?

어머니: ! 오데 버려놨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싸! 이 맥주 내 끼다하고 갖고 왔소.

(어머니가 가방에서 일본기가 그려진 맥주 캔 하나를 꺼내 건넨다.)

아버지: 뭐야? 이거 아사히 맥주 아냐? 이거!
어머니: 아싸, 이 맥주!

아버지: 이놈의 할망구가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지금 온 국민들이 응? 독립운동은 못해도 불매운동은 한다고 난린데, 이걸 왜? 으이그~! 그건 그렇고 말이야. ? 이거 제대로 된 사죄는커녕 적반하장으로 경제침략이나 하는 이거 아베 이 개 @#$%^&*(!@&*^^%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 !@#$~%^&*() 독도는 우리 땅~ )(*&^%$#@!~

(남돌이 아버지가 쌍욕을 퍼부을 때 남돌이 어머니가 ~~’ 소리를 내어(이른바 삐처리) 관객들은 직접 욕을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라면, 무슨 욕을 퍼붓는지 다 안다.)

어머니: 아이고 영감, 삭히소. 혈압 오른다.

아버지: 어우, 열받네.

어머니: 오데 그란다고 저 일본 아들이 알아듣나?

아버지: ?

어머니: 나 하는 거 잘 보소이. 아베! 빠가야로~~~~~~~~~~~!

아버지: 이거 봐! 제대로 들었냐?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의 외침이다. ? 우리 이번에는 지지 맙시다. ? , 아자아자~!

어머니: 한일전이다 한일전. 지면 다 죽는다이!

 

잠시 동안이지만 관객들은 하나가 된다. 고함을 지르고 손뼉을 친다. 어디 가서 울분을 토해놓지 못해 가슴이 답답하던 국민들이 잠시나마 통쾌함을 느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신을 가다듬고 현실을 직시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무심코 사용하는 물건이 일본 것 아닌지 생각하게 되고 마시는 맥주 하나라도 일본 것은 뿌리쳐서, 정말 우리 조상들이 독립 운동했듯이 우리도 불매운동에 동참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의지를 확고히 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구한말 때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마당극을 보면서 뜻밖에 애국이라는 보약을 선물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금요일은 셋이 맨 앞에 나란히 앉아서 보았다. 마당극은 맨 앞에서 봐야 재미있다.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배우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그대로 보인다. 땀에 젖은 배우들의 옷을 보노라면 안쓰러움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수록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손뼉을 친다. 응원이고 성원이다. 맨 앞자리는 늘 경쟁적 위치다. 한가운데 자리를 노리고 오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시간을 앞당겨 당도한 덕분에 가장 좋은 자리에서 감상했다.

 

토요일엔 거꾸로 맨 뒤에서 보았다. 나 혼자이므로 자유롭다. 등받이 없는 걸상 하나를 들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했다. 키 큰 사람들 뒤에서 걸상 위에 우뚝 올라서서 보았다. 배우들이 뛰어다니는 마당과 객석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사진을 찍자니 저 멀리 동의보감촌호텔과 필봉산이 한 번에 잡힌다. 장딴지를 물어뜯는 물것들이 귀찮기는 했지만 마당극 감상하는 데는 그만이었다.

 


650분쯤 한 가족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후 일정이 빠듯한 듯했다. “이거 몇 시간 동안 하노?” “한 시간인 것 같던데.” “그라모 좀 바쁠 것 같은데.” “보다가 재미없으면 그냥 가지뭐.” “얼마나 보다 가야 되겄노?” “한 이삼십 분 정도 보다가 아이다 싶으면 가자.” “그러까?” 이야기 중간에 좀 끼어들까 하다가 참았다. 이 사람들은 공연 다 끝나고 나서 손뼉 수십 번 치고 정말 재미있게 잘 봤다는 듯이 기지개를 크게 켜고 웃으며 떠났다.

 

옆에 섰던 한 사내가 눈에 띈다. 공연 내내 난리다. 마치 태어나서 이렇게 재미있는 공연은 처음 본다는 표정이다. 스마트폰 사진기를 연신 눌러댄다. 옆에 선 다른 가족을 쿡쿡 찌른다. 찌르지 않아도 잘 보고 있는데, 더 잘 보라고 재촉이고 성화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여름휴가 얻어 놀러 온 모양이다. 웃음보가 터질 때마다 꼭 나 쪽으로 돌아본다. 자기가 웃을 때 다른 사람도 웃는지 보는 것이다. 웃음의 공감대가 이루어지면 더 재미있는 법이다. 공연을 즐길 줄 아는 분이다.

 

바로 앞에 앉은 짧은 머리 굵은 목 사내가 말이 많다. 옆에 앉은 친구와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는다. 가끔 옳소!”라거나 잘한다.”라고 외쳤다. 손뼉 칠 때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힘차게 쳤다. 그런 사내를 보는 마음이 아주 좋았다. 마당극을 제대로 즐기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사내는 마당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할 때 벌떡 일어서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올렸다. 엄지척이다.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워낙 순간적인 일이라 놓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그렇게 해 달라고 할까 싶었으나 차마 그러하지 못했다. 스마트폰 사진기를 켜놓고 망설이고 있는데 이 양반이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엄지척을 해준다. 내 마음을 읽었을까. 내 마음이 들켰을까. 연속동작으로 몇 장 찍었다. 어두운데다 갑작스럽게 찍은 사진이어서 그다지 잘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가 그려진 버나를 가운데 두고 배우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서 인사를 하는 배경에 한 사람의 굵은 엄지손가락이 뻗어 있는 모습은 두고두고 명장면이 될 터였다. 그이는 배우들이 안녕~!”하며 손 흔들 때도 따라서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관객으로서는 백 점이다.

 


정말 잘 쓴 극본에 따라 대단히 훌륭한 배우들이 열심히 공연했다. 의상도, 연출도, 음악도 모든 게 완벽했다. 관객들은 비교적 선선한 가운데 느긋하게 때로는 가슴 졸여가며 작품을 감상했지만, 그래서 제대로 피서를 즐겼지만, 배우들은 소금물 같은 진한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들에게 엄지척을 열 번 백 번 해주어도 모자랄 판이다. 모든 관객들이 같은 마음이었을 터인데, 문득 내 앞에 앉은 사내가 벌떡 일어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으니 이만한 찬사는 다시없을 것 같다. 마당극을 본 사람이라면, 극단 큰들이 그러한 찬사를 받아도 충분한 예술공동체임을 절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극단 큰들 페이스북에서 빌려옴. 언제 갚을지는 모름>


토요일 저녁 1045분에 큰들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151회째 공연 잘 마쳤어요. 공연 마치고 난 후 김해에서 오신 젊은 부부가 후원회원 가입도 해 주시고, 구미에서 오신 어떤 분은 가진 현금 전부인 5만 원을 주셨어요. 배우들은 더웠지만 공연 보기는 어제보다 훨씬 좋았어요. 관객 반응도 참 좋았어요. 감사 합니다~^^”라고 썼다. 공연 마당에 깔았던 검은색 천 모양으로 눌린 잔디의 네 귀퉁이를 잡고 찍은 사진이 있다. 다른 것 다 정리하고 잔디에게 미안한 마음도 달래고 공연 후의 허전한 마음도 달래는 듯하다. 송병갑 감독으로 추측되는 한 배우가 빗자루를 들고 섰다. “다 정리하고 큰들 들어오니 밤 11시입니당. 왕 피곤~~~~”이라는 글을 읽으며 눈물을 닦는다. 수고하셨소, 여러분. 고맙소, 여러분.


2019. 8. 4.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