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 전문 극단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큰들은 본부 큰들, 진주 큰들, 창원 큰들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진주 큰들이 6월 29일 오후 2시, 6시 진주시 칠암동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창립 35주년 정기공연을 펼친다. 벌써 35년이다. 지난해에는 창원 큰들이 창립 13주년 정기공연을 창원 성산아트홀 대공연장에서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진주 큰들 35주년 정기공연은 마당극 <남명>을 비롯해 130명 풍물놀이와 초청공연으로 ‘박병천류 진도북춤’과 ‘가수 백자’ 공연으로 구성돼 있다. 130명 풍물놀이는 큰들만이 해낼 수 있는 독특한 공연이다. 큰들 단원과 회원, 시민, 일본 로온 회원 들이 서너 달 동안 연습하여 무대에 올리는 대형 풍물놀이다. 대단한 볼거리다.
큰들이 올해 정기공연 주요 작품(메인 이벤트)으로 <남명>을 선택한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위대한 스승, 다시 세상을 깨우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마당극 <남명>은 부정과 불의가 판치는 오늘날 우리 세상을 청렴하고 정의로운 세상으로 바로잡기 위해서는 조선 시대 실천 성리학자로 추앙받는 남명 선생의 삶과 학문, 사상이 꼭 필요해서이리라.
또한 마당극 <남명>은, 현재 극단 큰들이 절찬리에 공연 중인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 견주어 주제와 역사의식이 선명하고 울림이 크기 때문이리라. 만드는 데 들인 공도 무척 크고 배우들의 연기연습도 그 어느 작품보다 많았다고 들었다. 힘들게 제작한 대작인 만큼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마당극 <남명>은 역사 속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면서도 그의 사상을 집중 조명하는 작품인지라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경의사상’은 말로써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두꺼운 논문집을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것을 한 시간 짜리 마당극을 본 관객들이 제대로 받아들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마당극을 소설책 보듯이 밑줄 그어가면서 볼 수도 없고, 곁에서 누군가 해설해 줄 수도 없다.
진주 큰들 창립 35주년 정기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마당극 <남명>과 관련하여 다음 다섯 가지를 먼저 알고 가면 어떨까 싶다. 훌륭한 문화예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어느 정도 사전 노력과 지식이 필요한 법이다. 몇 가지 정보를 알고 본다면 훨씬 이해하기도 쉽다. 맥락을 미리 파악한다면 그만큼 다른 부분, 이를 테면 웃음 요소들을 더 빨리 받아들일 것이다.
이 글은 마당극 <남명> 공연을 다섯 번 보고, 공연 동영상을 최소 50번 이상 본 사람으로서 드리는 도움말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극단 큰들은 이번 정기공연을 앞두고 마당극 <남명> 내용을 상당 부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몇 가지 단서는 실제 공연 내용과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이해하여 주면 고맙겠다. 이 글의 대부분은 그동안 마당극 <남명>을 보고난 뒤 쓴 후기에서 옮겨 짜깁기한 것임을 밝혀둔다.
첫째, 남명 조식 선생은 누구인가.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년 7월 10일(음력 6월 26일)~1572년 2월 21일(음력 2월 8일))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
차차 큰 학자로 성장하여 퇴계 이황과 더불어 당시의 경상좌ㆍ우도 또는 오늘날의 경상남ㆍ북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숨어서 벼슬하지 않는 선비인 ‘유일(遺逸)’로서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였다.
회재 이언적이 그를 왕에게 추천하여 헌릉참봉을 내려주었으나 조식은 나아가지 않았다. 퇴계 이황의 추천으로 단성현감이 내려졌으나 역시 나아가지 않았다. 단성현감 사직 시 ‘단성소’라고 불리는 ‘을묘사직소’를 올린다. 마당극에서 이 단성소는 아주 길게 자세히 언급된다. 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대목이다. 아주 긴 대사를 외워서 읊조리는 배우에게 경외감이 생기기도 한다.
“(…) 전하의 정사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해버렸습니다. 하늘의 뜻은 이미 가버렸고 인심도 떠났습니다. 마치 큰 나무가 백 년 동안이나 벌레가 속을 파먹고 진액도 다 말라버렸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 까마득히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까지 이른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 자전(慈殿)께서 생각이 깊으시다고 해도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일 뿐이고, 전하께서는 나이 어려 선왕의 고아일 뿐입니다. 천 가지, 백 가지나 되는 천재(天災), 억만 갈래의 인심을 대체 무엇으로 감당하고 무엇으로 수습하시렵니까?” 마당극에서 읽은 ‘단성소’는 이와 아주 조금 다르다.
이때까지만 해도 퇴계 이황과는 그럭저럭 원만한 관계였으나 후일 퇴계가 고봉 기대승과 이기(理氣)의 사단칠정에 관한 7차 논쟁을 듣고 물 뿌리고(灑) 마당 쓰는(掃), 쇄소(灑掃)하는 생활 방법도 모르면서 천리(天理)를 논하며 선비를 참칭한다고 비판하면서 선비관에 대한 차이로 이황과 갈등하게 된다. 물 뿌리고 마당 쓰는 방법도 모른다고 비판한 내용은 마당극 <남명>에서도 그려진다.
그의 제자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 수백 명의 문도가 있으며,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하였다. 마당극 <남명>에서는 그의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의령 곽재우, 합천 정인홍, 고령 김면, 함양 조종도, 초계 전치원, 산청 오장, 단성 이유성, 진주 이정, 거창 문위.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백성을 구하기 위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붓을 던지고 칼을 찬다. (남명 조식에 관한 내용의 대부분은 ‘위키백과’에서 가져옴)
둘째, 경의사상은 무엇인가.
경의사상은 쉬운 게 아니다. ‘경’도 어렵고 ‘의’도 어렵다.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도록 보여주기란 더욱 어렵다. ‘內明者敬 外斷者義’(안으로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경이요, 외부의 일을 잘 판단하고 결단하는 것은 의다)라고들 하고, ‘안으로는 경’, ‘밖으로는 의’라고 쉽게들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철학이 아니다.
<남명>에서 경의사상은 첫째 마당에서부터 드러난다. 우물물이 아무리 맑아도 윗물이 썩었으면 백성들의 삶이 힘든 법이다. 그 반대로 생각해본다. 우물물도 맑고 윗물도 맑다면 백성들의 삶은 평안해진다. 고을 사또에서부터 조정 대신들까지 모두 깨끗한 상태, 그것이 곧 경의가 실현된 세상이다. 이렇게 넌지시 남명 선생의 철학을 보여준다.
둘째 마당에서는 이러한 경의사상을 노골적으로 설명해준다. 남명의 문하생들이 비질을 하면서 “스스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작은 예절도 모르면서 성리학의 이치를 입으로만 줄줄 외우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라고 한다. 안으로 마음을 밝게 한 경(敬)을 밖으로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주장이다. 유생들은 “스승님은 늘 칼과 방울을 지니고 다니신다네. ‘성성자’가 울릴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경의검’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모든 부정한 것들을 단칼에 끊어내신다네.”라고 강조한다. 곧 경의사상이다.
경의사상을 구체적으로 좀더 확대해서 설명해주는 핵심은 ‘단성소(丹城疏)’ 부분이다. 남명은 명종이 단성현감이라는 벼슬을 내려보내자 이를 거절하며 소를 올리는데 이것이 단성소이다. 이때가 을묘년이라 하여 ‘을묘사직소’라고도 한다. 남명은 사직소에서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학문을 통해 마음을 바로잡아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바탕으로 삼으시고 임금으로서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이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됩니다.”라며 명종의 각성을 촉구한다. 명종 임금이 경의사상으로 거듭날 때라야 백성들의 삶도 평안해진다는 논리다.
경의사상은 실천철학이다. 앎을 실천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느니만 못하다. 남명은 유독 실천을 강조한 학자로 손꼽힌다. 둘째 마당에서 제자들은 “우리 스승님은 배우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을 제일 싫어하셨네. 그것이 바로 스승님이 늘 강조하시는 경의사상이지. 안으로는 성찰, 밖으로는 실천, 이것이 바로 경의사상 아닌가?”라고 외친다. 여섯째 마당에서 남명은 제자들에게 묻는다. 제자들이 대답한다. “너희들은 공부를 왜 하느냐?” “나를 알고 세상을 알기 위해 합니다.” “왜 알고자 하느냐?” “제대로 알아야 정의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느냐?” “그래야 백성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안으로의 경은 청렴과 연결되고 밖으로의 의는 정의와 연결된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자 하는 일은 청렴이다. 다른 사람이 저지르는 불의와 불법에 눈감지 않고 나서서 바로잡고자 하는 것은 정의다. ‘안=성성자=성찰=청렴=경’, ‘밖=경의검=실천=정의=의’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 등식을 잘 새기기만 해도 마당극 <남명> 아니,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해 기본적인 것은 안다고 해도 될 것이다. 큰들은 이 원리를 되풀이하여 보여주고 들려줌으로써 500여 년 전 인물을 오늘날 마당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셋째, 이야기는 어떻게 짜여 있는가.
마당극 <남명>은 여섯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 마당은 ‘우물이 아니라 윗물이 맑았으면’이다. 극에 나오는 남명 조식 선생의 수석 하인 돌이의 대사 한 마디에 첫째 마당의 주제가 함축돼 있다. “우물 물이 암만 좋으면 뭐해예. 저 윗물이 썩어 있으니까 백성들이 배를 곯는 거 아니것십니꺼?” 12살 어린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 때의 백성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죽지 못해 사는 백성들의 곤궁한 삶은 마당극 전반에 흐르는 시대적 배경이다.
둘째 마당은 ‘안으로는 성찰, 밖으로는 실천-경의사상’이다. 제자들이 책에만 빠져 있지 않고 생활 속 작은 예절인 비질부터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친 남명 선생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성성자’와 ‘경의검’을 항상 지니고 다닌 남명 선생은 성성자 방울소리가 울릴 때마다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고, ‘경의검’으로 부정한 유혹을 단칼에 잘라내는 과단성을 실천했다.
셋째 마당은 ‘빨라도 너무 빠른 사또 회전율’이다. 낮은 벼슬부터 높은 벼슬까지 누구 가릴 것 없이 뇌물을 주고 자리를 사는 것이 횡행하던 시절이다. “사또 회전율이 빨라도 너무 빨라. 한양의 윗대가리들이 돈만 많이 주면 사또 자리를 막 내주니까 그런 것 아니야!”라는 아전들의 탄식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사또는 자신이 갖다바친 돈을 벌충하기 위해 백성에게서 재물 긁어모을 궁리부터 한다.
넷째 마당은 ‘백성은 우물?’이다. “백성들은 그저 퍼도 퍼도 계속 나오는 우물이라는 걸 몰라? 우물!” 이 말은 새로 부임한 사또가 아전들에게 내뱉은 명령이다. 첫째 마당에서 백성들이 우물을 중심으로 모여 맑은 물이 자자손손 끊이지 않도록 빌던 것과 대조된다. 그 백성들은 남명 선생에게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선비들을 보면서 일말의 희망을 가져본다. 하지만, 결국 사또와 아전들의 횡포 앞에서 “고마 하늘하고 땅하고 팍 붙어삣시고 좋겠다!”는 극한 탄식이 나온다.
다섯째 마당은 ‘목숨 걸고 쓴 사직상소문-단성소’이다. 남명 조식에게 단성현감이라는 벼슬이 내려온다. 남명은 벼슬을 받자마자 사직상소를 올린다. 가렴주구와 폭정으로 엉망이 된 나라와 백성의 현실을 목숨 걸고 고한다. 백성들의 처참한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남명은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죽임을 당한 선비들의 혼령으로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을 받아왔고 그것을 계기로 깨도됐던 것이다.
여섯째 마당은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다.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다. 임금은 그 위에 떠 있는 배.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말은 남명사상의 핵심 중 하나이다. 을사사화 이후 숨죽이고 엎드려 있던 선비들이 남명의 단성소를 보고 감동 받아 너도나도 제자가 되겠다고 천왕봉 아래 산천재로 찾아온다. 남명은 “학문을 하는 자들이 스스로 청렴하고 불의를 보면 떨쳐 일어나야 백성이 평안하다.”고 가르친다. 남명이 돌아가신 뒤 20년이 지났다. 임진왜란(1592)이 일어난다. 남명의 제자들은 의병을 규합해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선다.
공연장에 가면 안내책자를 나눠줄 공산이 크다. 그 전단에 마당극의 줄거리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대강 그런 줄만 알면 된다. 아니다. 안내책자를 받아도 그 자리에서 꼼꼼히 읽어보기란 쉽지 않으니 미리 파악하고 가면 좋다. 아니다. 마당극 내용이 상당 부분 바뀔 것이므로 여기서 말한 내용과 다를 수도 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넷째, 삽입곡은 어떤 노래들인가.
마당극 <남명>에는 새로 만든 노래가 3곡 들어 있다. 오로지 이 마당극을 위해 창작한 것이다. 다른 마당극에는 대부분 이미 있던 노래를 사용하는 데 반해 <남명>은 완전히 새로 창작한 곡이 세 곡 들어 있다. 세 곡 모두 남명의 사상을 설명하고 해설하는 내용이다. 창작곡 아닌 건 딱 한 곡 들어 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 났네.”라는 노래다.
첫 번째 곡은 ‘배움의 길’이다.
남명의 시 민암부(民巖賦)로 가사를 썼는데 큰들 단원 공동창작에다 음악감독 전찬율이 작곡ㆍ편곡하였다 한다. 이 노래는 둘째 마당 남명에게서 배우는 유생들이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서 부른다. 가사는 이렇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다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다네. 안으로는 경 밖으로는 의. 청렴하고 정의로운 선비들이 되세. 백성 위한 배움 백성 위한 실천. 백성들의 웃음소리 얼씨구나(좋다).”
두 번째 곡은 제목을 모르겠다.
남명이 지리산 천왕봉 밑에 산천재를 지어놓고 제자들에게 실천학문을 가르치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다. 곽재우 등 제자들이 몰려들어 “스승님 제자로 받아주십시오~!”라고 하자 남명은 “자, 수업 시작하자.”라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첫 소절은 남명이 부르고, 뒷부분은 제자들과 함께 합창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몸을 단련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남명은 문약한 선비를 키우지 않았다. 가사는 이렇다.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라. 나라의 귀한 근본이라. 찰박찰박 배 띄워라.” “임금은 물 위에 떠가는 배, 물이 있어 떠가는 배. 물은 배를 띄우지만 엎을 수도 있다네.”
세 번째 곡은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다.
마당극 <남명>의 엔딩 테마이다. 극단 큰들 단원들이 공동창작했고 작곡, 편곡은 음악감독 전찬율이 맡았다. 극 마지막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명 제자들이 거병하여 왜적과 싸우면서 부르는 노래다. 대단히 경쾌하고 밝고 힘차다. 진군가 같다. 가사는 이렇다.
“가세 가세! 우리들 일어나. 실천과 행동 스승님의 가르침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니 백성을 구하리라. 가세 가세! 우리들 일어나. 남명의 정신 스승님의 뜻 따라 험하고 어두운 이 세상을 우리가 밝히리라.”
다섯째, 웃음 요소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마당극은 웃음과 해학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연희 양식이다. 무겁고 진지하기만 한 주제라도 가볍고 재미있게 공연한다. 연극이나 영화에는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겠지만 마당극에는 비극도 희극적이게 된다. 그렇게 제작한다.
<남명>은 무겁고 진지한 주제이다. 역사 속에서 실제 존재했던 위대한 인물이 주인공이다. 큰들은 <이순신>도 마당극으로 만들었고 동의보감의 <허준>도 마당극으로 만들었고 김시민 장군도 <진주성 싸울아비>라는 제목으로 형상화해낸 뛰어난 극단이다. 그렇지만 남명은 그들 역사적 인물보다 풀어내기가 열 배, 아니 백 배쯤 더 어려웠을 터이다. 남명 조식 선생은 직접 임진왜란에 나가 싸우지 않았다. 벼슬도 살지 않았다. 남긴 책은 시와 부 같은 진지한 글뿐이다. 다행히 을묘사직소가 있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동기(모티브)가 되었다.
마당극 <남명>에서 남명 조식 선생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엄숙하고 무겁게 나온다. 수석 하인 돌이와 ‘미풍양속’으로 입씨름을 잠시잠깐 하지만. 그 부분을 빼고 나면 남명 선생은 조선시대 남명 모습 그대로(일 것으로 추측)이다. 그 대신 다른 배역들이 남명의 진지함을 누그러뜨리는 연기를 해낸다. 웃음 요소는 극 초반부터 대추나무 사랑 걸리듯 주렁주렁 걸린다.
수석 하인 돌이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것이 우리네 미풍 양속 아닙니꺼?”라고 말하니 “먹는 게 부족할 땐 슬쩍 빠져주는 것도 미풍양속이다.”라고 말하던 남명 조식 선생이다. 그런데 불과 몇 분 뒤에는 남명 선생이 반대로 말하자 대뜸 “아이구, 뭔놈의 미풍양속이 샌님 마음대로입니꺼? 엿장수입니꺼?”라고 받아친다. 이에 할말이 없어진 남명은 “어허 이녀석이? 아, 정해진 게 어디 있냐? 때에 따라서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고 실사구시하는 거지.”라고 눙치며 넘어간다.
스승 남명 조식 선생의 성성자와 경의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유생들이 “우리도 하나씩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다른 유생이 “이미 배송 중일세. 다섯 개를 주문하니 배송료를 받지 않더군.”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무료배송? 하하하….”라며 웃는다.
갑자기 쳐들어온 왜적들에게 화친을 하겠다는 유생에게 “자네 왜구의 말을 할 줄 아는가?”라고 묻자 “조또!”라고 한다. 하인 돌이가 남명 면전에서 “스승님, 밥 다 됐어요. ‘조식(朝食)’ 드시고 하세요.”라고 말하는 건 요즘 유행하는 아재개그의 전범이다.
그중 가장 웃기는 장면은 <앵두나무 처녀>라는 노래가 나오는 장면이다. 이 노래 가사는 이렇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 물동이 호밋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 말만 듣던 서울로 누굴 찾아서 /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여기서 서울은 한양으로 바뀐다. 마을 아낙과 김서방, 수석 하인이 우물가에서 빨래를 한다. 수석하인 돌이의 빨래가 가장 많다. 왜 그런고 하니 남명 선생 문하에 하도 많은 유생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마을 아낙들이 돌이의 빨래를 대신 해 준다.
그런데 이들에게 포졸들이 나타나 물을 많이 썼으니 물값을 내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런 법이 어딨냐고 대꾸한다. “나라땅에 나라에서 세금 붙이는데 나라고 별수 있어?”라는 대사도 요즘말로 아재개그다. 마을 사람들은 얼마 쓰지 않았다고 잡아뗀다. 그래서 이들이 평소 물을 얼마나 썼는지를 몰래 촬영한 몰카가 등장한다. 몰래 찍은 영상을 되감기하여 빨리감기하는 장면은 웃음의 절정이다.
이 장면에 앞서 5분 사또가 등장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관객 중 한 명이 느닷없이 새로 부임한 사또가 된다. 취임식을 한다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신관 사또가 취임사를 한다. 물론 대본이 없으니 그냥 대충하는데 할 때마다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그런데 5분도 안 되어 다시 신관사또가 등장한다. 5분 만에 쫓겨난다고 하여 '5분 사또'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관객과 배우가 하나되어 웃음을 자아내는 명장면이다.
“남명 조식을 단성 현감에 제수하노라”라고 말한 승지가 수석 하인에게 “야, 받아라. 이번에는 받아라 해”라는 대사도 아재개그다. 남명이 단성소를 올린 뒤 선비들은 공감댓글을 달겠다고 하고, 어떤 선비는 전체 문장을 줄줄 외운다고 말한다. “이 사람은 목숨이 두 개라도 된단 말인가?” “을사년 사화 이후로 목숨 걸고 바른말하는 선비가 얼마만인가?” “조선 역사에 이런 상소는 처음 보았네.” “탄산수 같은 상소였네!”라는 말이 선비들 사이에 회자된다. 10번씩 필사한 사람도 나온다. 페이스북에 나오는 “좋아요!”도 등장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이는 유행어가 잇따라 터진다. 극 후반으로 가면 웃음기는 빠지고 진지함과 엄숙함이 뒤덮는다. 곽재우가 “지는예, 산청에 가면 곶감을 꼭 먹어보고 싶었어예. 곶감아 기다려라 내가 곧 감!”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명>은 얼마나 진화했을까.
극단 큰들이 보여줄 정기공연에서 <남명>은 어디에서 어떻게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그동안 수차례 공연하면서 많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배우와 연출가가 의논을 하면서,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으면서 <남명>은 진화해왔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얼마나 멋지고 훌륭하게 변화, 발전하였을까 하는 게 가장 궁금하다. 정기공연을 꼭 봐야 하는 까닭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 내용 가운데 어떤 것은 이번 정기공연에서도 그대로 보일 것이고 어떤 장면은 아예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과신하지 말기를 당부드린다.
◑ 진주 큰들 창립 35주년 정기공연 ◐
• 언제: 6월 29일(토) 오후 2시, 6시
• 어디서: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 공연 내용
① 마당극 <남명>
② 박병천류 진도북춤(초청공연)
③ 가수 백자(초청공연)
④ 130명 풍물놀이
• 입장권: 현매 2만 5000원, 예매 2만 원, 학생 1만 원
• 문의: 극단 큰들 055-852-6507~8, 055-742-0802
2019. 6. 17.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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