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흰구름이 덩이 지어 흘러간다. 햇살은 환하게 비춘다. 바람은 제법 상쾌하다. 마당극 공연하기도, 관람하기도 딱 좋은 날씨다. 11시에 출발하려던 일정이 앞당겨진다. 10시 30분 나를 태우러 온 방성철 선생의 차를 탄다. 차 안에는 검은색 안경으로 멋을 낸 이창섭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처장이 앉아 계신다. 남해로 마당극 보러 가기로 셋이 짬짜미가 된 것이다. 마침 주말에 다른 일이 없어, 마당극 큰 재미에 대하여 여러 차례 글을 쓴 나와 동행하게 된 것이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다. 다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앞날부터 이날 아침까지 먹은 것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화장실을 수도 없이 드나든다. 사천휴게소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진교에서 남해대교 사이에서도 주유소를 들른다. 남해대교 옆에 새로 만든 ‘노량대교’를 건넌다. 남해읍을 끼고 돌아 서면 스포츠파크로 달린다. 곳곳에 행사 단체복을 입은 사람이 경광봉을 들고 섰다. 농로로 들어가려는 차들을 돌려세운다. 주차장엔 벌써 자동차 천지이지만 다행히 차 댈 곳을 찾는다.
바다다. 진주에서는 파란하늘과 흰구름이 딱 알맞게 조화로웠는데 남해 하늘은 약간 찌뿌드드하다. 꼭 내 뱃속 같다. 찌푸린 하늘 아래 바닷물은 짭쪼름한 냄새를 피운다. 정박당한 배들은 낮은 파도에 몸을 맡긴다. 축제장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하늘엔 풍선이 떠 있고 길거리엔 갖가지 음식을 파는 상인들이 춤춘다. 어데선가 음악도 경쾌하게 들려온다. 주차장 안내하는 흰장갑들이 바쁘다. 마늘의 고장답게 가장 먼저 눈에 띈 장사치는 마늘 농사꾼이다.
‘제14회 보물섬 남해 마늘축제 & 한우잔치’가 한창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왜 마늘은 ‘축제’이고 한우는 ‘잔치’인가. 궁금한 것 하나 더. ‘&’ 이 기호는 왜 쓰는가. 남해에서 마늘 농사 짓고 한우 키우는 분들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기호로 보인다. 그리고 칭찬 하나. 어디 축제하는 곳에 가면 ‘페스티벌’, ‘페스타’ 이런 말을 많이 쓰는데 남해에서는 ‘축제’와 ‘잔치’를 썼다.
나는 지난해 6월 1일 금요일 오후 2시에 이곳 서면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큰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보러 온 적 있다. ‘마늘축제 한우잔치’ 행사의 하나로 마당극을 초청한 것인데, 그것을 보고 싶어 몸이 달아올랐던 것이다. 지난해 마당극 관람 일정을 보면 5월 19일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효자전>을 보고, 5월 27일 하동 최참판댁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고, 남해 공연은 세 번째 마당극을 만나는 날이었다. <오작교 아리랑>은 2017년 6월 24일 진주 큰들 창립 33주년 공연으로 보고 난 뒤 두 번째였다. 오후를 휴가 내고 남해로 향하던 마음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남해를 다시 찾은 건 11월 3일 이순신 순국공원에서 열린 공연 때이다. 아내와 함께 <오작교 아리랑>을 맨 앞에 앉아서 보았다. 어디에서나, 무대가 어떻게 생겼든, 무대와 객석이 얼마나 멀든, 무대 뒤 배경이 어떠하든 간에 100% 공연을 만들어내는 큰들에 대해 감탄을 여러 차례 하던 차였다. 언제든 불러주면 어디든 달려가는, 큰들 마당극의 매력과 마력에 푹 빠지던 때이다.
남해는 큰들 덕분에 세 번째 찾는다. 때마다 축제가 한창이다.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다양하지만 내 목표는 오로지 마당극 하나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행이 둘이나 있으니 좀 달라야겠다 싶다. 진주에서 10시 30분에 출발하여 행사장에 12시에 도착했으니 점심부터 먹을 차례다. 기다랗게 줄지어 선 간이식당들 가운데 한곳에 쑥 들어선다. 검정색 단체복을 입은 젊은이가 주문을 받으러 온다. 경남도립남해대학 학생이란다. 우리는 소고기전골 3인분과 막걸리를 시켰다. 아뿔싸, 소주와 맥주는 있어도 막걸리는 없단다. 운전을 할 방 선생은 아무렇거나 상관없고, 나 또한 그다지 주종을 가리지 않으니 문제 없지만 이 처장은 막걸리를 매우 선호하는 편이다. 옆 식당에 가서 유자막걸리 두 병을 산다. 이윽고 우리는 일인분에 1만 2000원 하는 소고기전골과 맛과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반찬 몇 가지를 놓고 막걸리를 들이켰다. 밥은 많이 먹지 않을 것이라서 두 공기만 시켰는데 뚜껑을 열어본 순간, 안 되겠다 싶어졌다. 밥 공기에 반도 차지 않은 밥을 일인분이라고 내놓는 수작에 지고 만다.
밥먹고 일어서니 12시 50분쯤 된다. 공연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행사장에는 벌써 사람이 꽉 차 있다. 오전부터 계속되는 갖가지 공연과 행사들을 쭉 지켜보는 관객들이 꽤나 많았다. 대충 휘 둘러보니 나이로는 70살 안팎으로 보인다. 대부분 남해에서 마늘 농사 짓고 시금치 캐고 한우 드시면서 살아온 분들 같다. 지난해 공연볼 때가 겹쳐진다. 열에 여덟아홉은 아지메다.
우리가 당도할 즈음 박춘우 무대감독이 배우들 마이크를 시험하고 있다. 처음엔 굵직하고 낮은 목소리 주인이 누군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붉은색 윗옷을 입은 박 감독은 차분하게 배우들을 하나하나 불렀고 무대 뒤에서 뛰어나온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의 대사 한 마디씩을 한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악사를 맡은 박정민 배우는 북과 장구들을 두들겨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한다. 송병갑, 최샛별 배우도 자기가 맡을 악기를 맞춰본다. 짧은 시간 동안 간단한 시험을 끝낸다. 음향 콘솔에서는 안정호 배우가 기계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다. 그런 기계를 전혀 모르는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한다.
어디에선가 희한한 복장을 한 여덟 명의 밴드가 등장하여 마당을 휘젓고 지나간다. 경쾌하고 발랄한 음악은 기분을 좋게 한다. 처음 보는 멋진 공연이다. 귀가 얼얼한 순간이 지나가자 다음에는 마술공연이다. 마술이라고 하면 이은결과 최현우를 먼저 떠올리는지라 두 마술사의 공연은 좀 싱겁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에게 아낌없는 손뼉을 보내준다. 손뼉 열심히 치는 건 관객의 유일무이한 의무이다. 마술이 끝난 뒤 전체 행사 진행자가 바로 마당극 시작을 알린다. 시계를 보니 1시 29분이다. 사람들, 정말 잘한다.
마당극 <효자전>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지리산 약초골에 큰아들 귀남이와 작은아들 갑동이 산다. 어머니는 지병이 있다. 어머니 이름은 강끝순이다. 아버지는 계시지 않는다. 이웃에 한의사인 임뻥아재와 치매 걸린 그의 어머니가 산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강말순이다. 귀남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한양에 내의원 시험보러 간다. 가난한 살림인지라 어머니는 기둥뿌리마저 뽑아 귀남의 한양길 노잣돈을 마련해 준다. 지극정성이 이만저만 아니다. 갑동이는 개구쟁이 말썽쟁이인지라 늘 어머니에게 지청구를 듣는다. 친구들과 고기 잡으러 다니고, 임뻥아재가 낚은 큰 쏘가리를 낚아채 간다.
한양에서 내의원 시험에 합격한 귀남에게서 편지가 온다. 귀남은 어머니에게 돈을 부치라 하고 어머니는 약초 팔아 모은 돈을 들고 갑동과 함께 한양에 간다. 마침 대감과 함께 기생집에서 회식을 하던 귀남은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와 동생 갑동을 외면한다. 그때 대궐에서는 세자가 중병에 걸렸는데 귀남은 밑도 끝도 없이 산삼을 구해와서 세자의 병을 낫게 하겠노라고 공약한다. 그러잖아도 지병이 있던 어머니는 귀남의 못된 행동에 정신적 충격이 겹쳐 몸져눕는다. 임뻥아재의 침술도 효험을 보지 못하고 중환자실로 모셔진다.
임뻥아재는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옴 직한 이야기를 갑동에게 한다. 공동묘지 무덤을 파헤쳐 시신의 다리를 잘라 와서 가마솥에 고면 커다란 산삼이 나온다는 것이다. 갑동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덤을 파헤친다. 처녀무덤이라야 효험이 있다고 했는데 파고 보니 아줌마무덤이다. 아줌마 귀신에게 쫓기던 갑동은 애써 얻은 시신의 다리를 내어준다. 임뻥아재와 갑동은 비로소 지리산으로 산삼을 구하러 떠난다.
지리산 산신령들이 갑동의 효심을 시험한다. 산삼할매가 나타나 갑동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임뻥아재는 제 갈길이 천리라며 갑동을 재촉하지만 갑동은 불쌍한 노인을 외면하지 못한다. 효성 지극한 갑동에게는 그 할머니가 제 어미로 보이는 것이다. 반달가슴곰에 쫓기다가 할머니가 위기에 처하자 제 한 몸 돌보지 아니하고 반달가슴곰을 물리친다. 의협심도 갖춘 것이다. 갑동의 정성과 효심에 감동한 지리산 산신령들은 갑동에게 산삼을 허락한다.
집으로 돌아온 갑동은 어머니에게 산삼을 달여드리려 한다. 이때 한양에서 산삼을 구하기 위해 낙향한 귀남이 등장한다. 귀남은 그 산삼으로 어머니 병구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얼른 산삼을 대감에게 갖다바쳐 세자의 병을 낫게 하면 자신도 출세가도를 달릴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출세에 눈이 먼 귀남은, 자신이 출세해야만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귀남과 갑동이 산삼을 사이에 놓고 승강이를 벌인다. 어머니는 산삼을 뺏어 큰아들 귀남에게 준다.
한양으로 돌아간 귀남이 대감에게 산삼을 바치지만 대감은 귀남을 배신한다. 산삼만 구해 오면 높은 벼슬을 줄 듯 말해놓고는 딱 잡아뗀 것이다. 산삼만 뺏기고 거지 신세가 된 귀남은 하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사이 어머니는 돌아가신다. 갑동이 울고 임뻥아재가 울고 임뻥아재 어머니도 슬퍼하는 가운데 상여가 등장한다. 상엿소리는 구슬프다. 한 많은 한 인생이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의 문턱을 넘으려고 할 때, 상엿소리는 이승의 인연을 끊으라 하고 저승에서 새로운 삶을 살라고 한다. 거기에 삶이 있나. 없지.
불쌍한 강끝순 여사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갑동의 울음소리가 애간장을 태운다. “갑동아, 미안하다.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어머니. 귀남만 귀하게 여기고 둘째아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한 데 대한 후회가 묻어난다. 거지꼴을 한 귀남이 초상집에 나타난다. 저승사자 뒤를 따르던 어머니는 귀남을 보고 “귀남아, 네가 와 그리 됐노?”라며 한스럽게 울지만 이승과 저승의 구분은 엄연한 법이라서 애끊는 어머니 울음소리는 귀남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지켜보는 관객들만 목이 멜 뿐이다. 어머니 환갑날이 초상날이 된 것을 보고 귀남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산삼을 뺏어간 데 대해 분노를 삭이지 못한 갑동과 한판 드잡이를 벌인다.
귀남이와 갑동은 저승사자에게 “저승사자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이소, 예?”라고 애원한다. 저승사자는 냉정하다. “자욕양이 친부대(子慾養而 親不待)라, 자식은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느냐?”고 일갈하고 갑동이 어머니에게 “갑시다”라고 재촉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자애와 효성의 쌍곡선이 그려진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대반전이 일어나면서 극은 마무리된다. 마당극 시작 부분에 미리 깔아놓은 몇 가지 복선을 눈여겨 보았더라면 짐작할 수 있을 반전이다.
저승사자가 말한 ‘자욕양이 친부대’라는 말은 ‘수욕정이 풍부지(樹慾靜而 風不止)’와 대구를 이루는 말이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하지 않다가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는 것을 가리켜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고 하는데, 풍수지탄은 바로 이런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효도 이야기는 늘 가볍지 않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정성을 다하여 효도해야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래서 효도는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백행의 근본을 다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아무리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이 효도이다. 효도라는 말만 나오면, 어머니 아버지라는 말만 나오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울대가 따가워지는 것은 우리들이 효도를 죽을 때까지 해도 다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효도 이야기를 큰들 마당극에서는 아주 재미있고 매우 즐겁게 그리고 무척 흥겹게 풀어나간다. 마당극이라는 공연 양식이 갖는 특징 덕분이다. 풍자와 해학, 재치와 기지가 넘치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관객들은 공연 내내 웃다가 울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치면서 환하게 웃다가 어느 순간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훔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당극의 묘미다.
<효자전>을 열다섯 번 보면서 대충 분석해 보면 이렇다. 40~50대 나이에 든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가 어떻게 삶을 이끌어 왔는지 안다. 그래서 극중에 나오는 귀남의 어머니가 마치 자신의 부모님인 것처럼 인식된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겨우겨우 넘긴 세대가 그들의 부모다. 그 부모들은 젊은 시절의 고생 때문에 손가락 발가락이 제맘대로 휘었고 허리는 구부러졌으며 치아도 제대로 성한 게 없을 정도다. 그런 부모님의 고단하고 간난한 삶을 익히 아는 이들은 <효자전>을 보면서 울게 된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이도 있고, 입술을 꾹 다물고 끝까지 참아보려다가 마지막에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는 이도 많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지금부터라도, 조금이라도 더 효도해야겠구나 다짐한다. 효도하고자 하여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남해 공연에서는 유난히 나이 든 관객이 많았다. 70세쯤 되어 보이는 할매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우리네 어머니 세대들이다. 이분들이 <효자전>을 보는 방법은 좀 다른 것 같다. 지난 4월 28일 산청 생초 국제조각공원에 어머니와 친구분들을 모시고 갔을 때도 얼핏 느낀 것이다. 이번에 좀 자세히 살펴보니 어머니네들이 손뼉을 치는 대목은 좀 달랐다. 40~50대 젊은이들이 주로 웃음요소에서 손뼉을 치는 데 반해 어머니들은 갑동이가 어머니를 업을 때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어머니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오는 장면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자신이 극중의 어머니로 탈바꿈한 듯, 즉 빙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임뻥아재 어머니의 등장에도 공감하는 듯했다. 곳곳에서 느닷없는 손뼉소리가 나고 웃음도 나온다. 그 할머니를 자신과 동일시해서 보는 것 같다.
한양에서 성공한 귀남에게 고향 산청의 곶감을 들고 찾아간 어머니, 그 어머니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외면할 때는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속으로 ‘저놈의 호로새끼’라고 했을 것이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식이 만약 그렇게 행동한다면 절대 용서치 않으리라 다짐들을 하는 것 같았다. 곶감 보퉁이를 내동댕이치자 “저런!”이라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부모와 자식 간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는 어머니들도 있다. 이 일을 앞으로 어찌 할 것인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다. 바닥에 떨어진 곶감을 줍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이 느껴진다.
어찌어찌하여 극은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어찌어찌한 것인지는 직접 보면 안다. 기막힌 반전의 묘미를 놓치지 마시라.) 환갑날이 초상날로 될 뻔했다가 다시 생일잔칫상을 받는 극중 어머니를 보고서는 객석 어머니들은 어깨를 들썩인다.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던 불쌍한 중생이 다시 생일상을 받았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마치 자신들도 그러한 행운을 얻었으면 하는 눈치다. 저승이란 어차피 우리네 인생이 결국에는 가고야 말 길이지만, 그 길에서 다시 이승으로 되돌아오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고 기쁘겠는가.
<효자전>은 자식의 이야기다. 부모를 잘 모시고 행복하게 잘 사는 효자의 이야기다. 처음부터 효자는 없다.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 반성하고 후회하며 효자가 된다. 관객들에게 ‘당신들도 부모님을 잘 모셔야 합니다’라 이야기한다. ‘만약 당신들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으면 후회합니다’라는 말도 해준다. 그래서 대다수 관객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부터라도 효도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들 한다. 그런 반면, 그 어머니의 위치에 계신 분들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마당극을 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심정으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어머니의 입장에서 자식들의 행동과 태도를 살펴보고 평가하고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큰아들 귀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자식들을 그렇게 키워왔음을 새삼 알게 된다. 그러한 교육의 결과가 긍정적으로 드러난 경우도 없지는 않겠으나 부모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음을 알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해본 적 있는 어머니들은 극중의 귀남 어머니가 안쓰럽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자식 그렇게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분도 있지 않았을까.
마당극 공연이 끝나는 징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221번째 <효자전>이 끝났다. 배우들도 웃고 관객들도 웃고 있지만, 마음은 무겁다. 나 또한 눈시울이 벌게졌다. 함께 공연보러 간 방 선생도 큰들이 파 놓은 웃음함정과 눈물요소를 피해가지 못한 듯했다. 중진공의 이 처장은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와 카톡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셨다. 다음에 다시 모시고 가야겠다.
돌아오는 길은 바빴다. 송강식당 진주시청점에서 오후 5시에 열리는 재즈공연에도 함께하고 싶었다. 마당극 끝나자마자 그대로 돌아왔더라면 넉넉했을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행사장 한 귀퉁이에서 번지고 있는 멸치구이 냄새를 피해가지 못했다. 막걸리 애주가인 이 처장이 소매를 끌었고 우리는 다시 주저앉았다. 만 원짜리 멸치 구이 하나 놓고 막걸리 두 병을 보기 좋게 비우고 일어섰다. 덕분에 진주로 돌아오는 길이 바빴다.
마당극 <효자전>은 6월 15일(토)과 16일(일) 오후 2시 산청군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잇따라 열린다. 222번째, 223번째 공연이 될 것이다. 이번 남해공연까지 <효자전>을 열다섯 번 본 나는 이번주에는 애매하다, 현재로서는... 그래도 꾀를 내어 본다.
2019. 6. 9.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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