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 <남명>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들...
여름 휴가 셋째날이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간다. 아주 덥겠다던 날씨알림과 달리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오전 내도록 거실에서 뒹굴며 읽을거리들을 찾아 챙겼다. ≪임꺽정≫ 10권은 다 읽었다. 한 달 걸렸다. 해묵은 숙제를 한 느낌이다. 세 번째 독서였다. 그것 말고 자그마한 일거리 하나를 붙들었다. 올 연말 안으로 해결해 주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읽은 곳을 접어 놓았다. 점심 먹고 길을 나섰다.
산청 ‘수선사’로 가기로 했다. 시간을 잘 맞추면 ‘정취암’에도 갈 수 있겠다 싶었다. 하고 많은 관광지와 절 가운데 하필 산청 수선사로 간 것은 왜일까. 소문만 듣다가 드디어 마음을 먹었다. 수선사와 동의보감촌이 멀지 않은 때문이다. 8월 2일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보던 날 박영선 진주 YWCA 전 사무총장께서 수선사에 다녀왔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이다. 오래전부터 찾아가 불공을 드리지는 않더라도 구경이라도 해야지 했는데, 박 전 총장님 덕분에 다시 기억났다. 수선사 가는 길은 맑았다. 하늘은 파랗게 높았고 구름은 하얗게 낮았다.
쉬는 날 어디를 가려고 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책꽂이에 꽂힌 ≪경남의 재발견≫ ≪경남 음식 이야기≫ ≪맛있는 경남≫ ≪한국 속 경남≫ ≪경남의 숨은 매력≫ ≪경남 명품 축제 30선≫ 같은 책을 넘겨본다. 눈길을 확 잡아 끄는 내용이 있으면 거기로 간다. 대개 성공한다. 언론사에서 펴낸 책들엔 정보가 알차다. 그다음 갈곳을 정하는 방법으로는 이른바 에스엔에스(SNS), 즉 누리소통망을 뒤져보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훑어보다 보면 갈곳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수선사로 가기로 한 것은, 큰들의 마당극 공연이 펼쳐지는 동의보감촌과 가까운 데다 박 전 총장님이 말씀하신 데다 오래전부터 염두에 둔 덕분이다. 세 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붙어돌아 갔다. 절은 깨끗하고 조용했다. 불자들이 앉아서 쉬도록 곳곳에 배려해 놨다. 연못 정원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절집 뒤에서 바라본 풍경은 압권이었다. 사람들은 쉴새없이 올라왔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차분하게 절 구경을 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앉아서 쉬었다. 절 뒷산에서 불어내려오는 바람은 상쾌했다. 수선사를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한 스님이 26년 동안 가꿨다고 들었다.
시원한 오미자차 한 잔 마시고 한참 앉아 있다가 동의보감촌으로 옮겼다. 동의보감촌은, 몇 번이나 갔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대개 마당극을 보고 돌아온 터라 곳곳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다. 주제관과 박물관은 봤다. 기천문과 기바위도 물론 돌아보았다. 아이들 노는 수영장, 황금거북, 호랑이와 곰, 구절초 군락 등등 대개 가 보았다. 동의보감촌에서 영업하는 식당도 거의 가 보았다. 조청도 샀고 호미와 칼도 샀다. 기바위빵도 당연히 먹어봤다.
오늘은 풍차가 있는 전망대와 미로공원에 갔다. 풍차가 보이는 누에 올랐더니 왕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잠시 드러누워 팔베개 하고 하늘을 보니 가을이 눈앞이로구나 싶다. 함께한 아내도 감탄사를 여러 번 내뱉었다. 미로공원은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중간에 갇힐까 두려워서라기보다 화장실이 급해서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포항에서, 돌아와서 마신 술이 여태 힘을 내고 있다. 산청각 식당에서 전골 한 냄비 잘 끓여 먹고 공연장으로 갔다.
마당극 <남명>은 변신을 거듭하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처음 공연할 때의 내용과 올해 6월 29일 창립 35주년 정기공연 때 내용이 달랐다. 8월 16일 공연 내용도 그 전과 같지 않았다. 전체 줄거리는 같은데 부분부분 많이 고쳤다. 더운 여름날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극단 큰들의 땀방울이 보인다. 맨 처음 우물굿을 하기 전에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해 강의하듯, 그러나 강의 아닌 것처럼 보여주는 대목은 정말 남명 조식 선생을 잘 모르는 관객들에겐 친절한 설명이 된다. 정기공연 때는 사라졌던 ‘앵두나무 우물가에’도 다시 등장했다. 배꼽 잡게 하는 장면이자 곧이어 터지는 사건으로 인해 비극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대목이다.
마을 사람들이 우물굿을 올린다. 밥은 못 먹어도 물배는 실컷 채우게 해주는 우물이다. 칠년대한 가뭄, 아니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 때부터 이용하던 우물이다. 우물은 마당극 <남명>에서 중요한 소재이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라고 할 때 ‘물’과 맥이 닿는다. 백성을 살게 하는 생명의 근원이다. 백성들의 재물을 뺏으려는 탐관오리가 노리는 것도 우물이다. 우물굿이 끝난 뒤 남명이 등장한다. 남명은 우물굿을 통해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을사람들을 위해 술과 떡을 갖고 온다. “자, 이거 산청 약초로 만든 술과 떡일세! 가져가서 요기들 하시게.”라며 가져온 술과 떡을 마을사람들에게 권한다.
앗, 놀라운 발견을 했다. 지난해 처음 <남명>을 볼 때 남명은 이 대목에서 그냥 “자, 술과 떡일세!”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산청 약초로 만든”이 들어갔다. 산청 약초로 빚은 술은 어떤 술일까. 산청 약초가 들어간 떡은 또 어떤 맛일까. 산청에서 나는 약초는 어떤 게 있을까. 이런 물음은 부질없다. 지리산은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산청, 함양, 하동은 경남 쪽이고, 구례는 전남 쪽이며, 남원은 전북 쪽이다. 아무튼 이 지리산은 식생이 매우 다양하여 목본식물이 245종, 초본식물이 579종으로 모두 800여 종이 분포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약용 174종, 식용 285종이 포함돼 있다. 174가지 약용 식물, 즉 약초로 빚은 술과 떡이라니.
“자, 이거 산청 약초로 만든 술과 떡일세! 가져가서 요기들 하시게.”
여기서 산청군의 지혜를 읽는다. <남명>은 경상남도((재)경남문화예술진흥원)와 산청군에서 지원하여 만든 마당극이다. 공연은 주로 산청군에서 한다. 남명 조식 선생이 말년에 산청군에 ‘산천재’를 지어 놓고 제자들을 길렀기 때문이다. 남명은 태어난 곳, 자란 곳, 말년을 보내고 묻힌 곳이 모두 다른데 유독 산청군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 까닭은 ‘덕천서원’과 ‘남명기념관’, ‘산천재’, ‘남명의 묘소’ 들이 산청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청군이 마당극 <남명> 제작을 지원한 이유이기도 하리라 짐작해 본다.
마당극 대사 중에 “산청 약초로 만든”이라는 이 한마디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마당극을 보는 관객들은 부지불식간에 ‘산청=약초’라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물론 그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 약초가 산청에서만 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생각을 밀고 가 보자. 산청에서는 해마다 ‘산청한방약초축제’를 9월 말~10월 초에 한다. 전국에서 아주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전국에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덕분이다. 마당극 <남명>은 산청과 약초를 연결짓는 여러 가지 장치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남명의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온다. “지는예, 산청에 오면 산청 곶감을 꼭 먹어보고 싶었십니더! 곶감아 기다려라, 내가 곧 감~!”이라고 말한다. 아재개그인데 곶감으로 유명한 산청을 홍보하는 말이다. 전국에 곶감으로 유명한 곳이 많다.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마당극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산청=곶감’을 연결지어 기억하게 된다. 기억은 오래가지 않아서 당장 곶감 사러 달려가지 않는 한 큰 의미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산청군과 극단 큰들이 깔아놓은 복선은 좀 치밀하다.
“지는예, 산청에 오면 산청 곶감을 꼭 먹어보고 싶었십니더! 곶감아 기다려라, 내가 곧 감~!”
마당극 <남명>에서는 ‘지리산’과 ‘천왕봉’도 몇 번 언급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리산은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어느 한 지자체의 산이 아니다. 그런데도 마당극 대사에서 ‘지리산’과 ‘천왕봉’을 수차례 언급함으로써 은연중 지리산과 천왕봉은 산청군의 산처럼 느끼게 해준다. 그런 대사 몇 마디 듣는다고 하여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에 대한 사전 정보를 뒤바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대사를 들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 미세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산청군의 노림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마당극 <남명>만 놓고 보아도 그러한데 <효자전>과 <오작교 아리랑>은 어떨까.
먼저 <효자전>을 보자. <효자전>은 2010년 5월 8일 처음 공연하여 2019년 7월 27일 225회 공연을 했다. 참 오랫동안 많이도 공연했다. <효자전>에서는 산청군과 관련한 대사가 여럿 등장한다. 둘째아들 갑동이가 어머니 돈을 훔쳐갔다. 어머니에게 붙들렸다. “니, 옴마 돈 들고 오데 갔다 왔노?” “그기, 저 경호강에 은어 잡는데 그물도 사야 되고….”란다. 경호강에서는 은어가 잘 잡힌다. 경호강 주변에 은어요리집이 많다. 그 말은 “그물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라는 말에 묻힌다. 래프팅하기 제일 좋은 곳이 경호강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제는 “내가 엄마 줄라고 저 황매산에 꽃 따러 갔는데 입장료를 달라카는 기라.”라고 핑계댄다. “황매산에? 황매산에 그런 거 없다.” 아들과 어머니의 대사에서 꽃이 많은 황매산에는 입장료가 없다는 사실이 공개된다. 황매산에는 봄철 철쭉을 보러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내가 엄마 줄라고 저 황매산에 꽃 따러 갔는데 입장료를 달라카는 기라.” “황매산에? 황매산에 그런 거 없다.”
큰아들 귀남이 한양에 내의원 시험 보러 떠나는 날이다. 가난한 살림인지라 어머니는 기둥뿌리까지 뽑아서 노자를 만들어 준다. 길 떠나는 귀남에게 어머니는 “네가 좋아하는 산청 곶감이다.”라며 보따리를 싸준다. 이웃에 사는 한의사인 임뻥아재는 귀남에게 총명탕을 챙겨준다. “자네 내의원 시험치러 간다면서? 자 이거, 산청 약초로 만든 머리가 총명 총명 총명해지는 총명탕일세.”라고 말한다. 산청 곶감과 약초가 한꺼번에 등장했다.
“네가 좋아하는 산청 곶감이다.”
귀남이 내의원 시험에 합격하여 의사가 된다. 세자가 병에 걸렸다. 내의원은 깊은 걱정에 빠진다. 종묘사직의 안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때 귀남이 말한다. “제가 산삼을 구해 올리겠습니다!” 눈이 똥그래진 대감이 말한다. “그렇지! 고 의원 자네 고향이 약초로 유~명한 지리산 청정골, 산청이라고 그랬지?” 귀남이 대답한다. “예, 나으리. 산청입니다.” 약초로 유명한 산청에서는 산삼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전언이다.
“그렇지! 고 의원 자네 고향이 약초로 유~명한 지리산 청정골, 산청이라고 그랬지?”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도 빼놓지 않고 산청을 홍보한다.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가 결혼을 하게 된다. 남돌이 친구들이 함을 팔러 간다. 꽃분이 이모들이 함진애비를 으르고 달랜다. 결국 함진애비가 꽃분이 집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면서 조건을 단다. “들어가긴 들어갈 낀데, 약속 하나 해야 됩니다. 결혼식은 산청에서 해야 됩니다이!”라고. 그러자 꽃분이 이모가 “산청이요? 아, 약초로 유명한 동의보감의 고장 산청 말입니까?”라고 묻고 함진애비가 “그렇지!”라고 맞장구치자 “좋습니다. 70년만에 어렵게 하는 혼례인데 지리산 정기가 가득한 산청에서 해야지요!”란다. 남돌이와 꽃분이는 산청에서 결혼을 하게 된다. 남돌이 부모와 꽃분이 부모가 등장하여 부모 허락도 받지 않고 결혼하는 이들을 뜯어 말리러 산청으로 달려간다.
“산청이요? 아, 약초로 유명한 동의보감의 고장 산청 말입니까?”
극단 큰들 마당극을 보면 공연을 하는 그 지역 또는 그 기관을 은근슬쩍 띄워주는 재치가 드러난다. 공연을 주최한 지자체나 기관들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준다. 그런 경우 대개 그 지역 사람들이 많이 관람하게 되는데 공감과 고마움의 손뼉이 훨씬 크게 터져나오게 된다.
산청군 동의보감촌이나 한방약초축제장에서 주로 공연하는 마당극에서 산청과 관련한 대사가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 산청 사람이고 몇 명이 딴 지역 사람인지 세어보지도 않았고 세어볼 수도 없다. 산청 사람이든 아니든 마당극 대사에서 산청과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고 하여 어색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산청군 공무원들의 용의주도함과 주도면밀함을 읽는다. 노림수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대단한 분들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문화를 사랑하고 예술을 드높이며, 문화예술이 가진 보이지 않는 영향, 잘 드러나지 않지만 깊이 파고드는 영향력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마당극 한 번 공연할 때 관객은 몇 명일까. 어림잡아 300명이라고 본다. 그 사람들이 마당극 한 번 볼 때 주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산청 이야기를 적게는 두어 번, 많게는 예닐곱 번 듣게 된다. 자연스럽게 황매산 무료, 경호강 은어, 경호강 래프팅, 산청 곶감, 지리산, 천왕봉, 청정 약초골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집어넣게 된다. <효자전> 하나만 놓고 보면 225회에 300명을 곱하여 6만 7500여 명에게 산청을 홍보했다. 참고로 산청군 인구는 3만 7000명 안팎이다. 어디 광고탑을 세워 놓고 지나가는 장삼이사가 보아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특정한 장소에 사람을 모아놓고 특정한 주제로 공연을 펼치면서 알게 모르게 산청을 홍보한다. 마당극을 보면서 ‘산청=곶감’이라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명절을 앞두고 선물을 고를 때 ‘산청 곶감’을 고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광고, 홍보를 멋지게 한다.
산청군 동의보감촌에서 마당극을 상설공연한 것은 올해 3년째이다. 2017년 5월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20회 정도 공연한다.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을 주로 공연해 왔고 올해는 <남명>까지 가세했다. 산청한방약초축제에서도 거의 날마다 공연하는데 한 해에 10회 정도 공연한다. 그 외에도 산청군 문화예술회관이나 관내 학교들에서도 공연한다. 어림잡아 보자면 산청군에서 한 해에 마당극을 30회 공연하고 한 회당 관람객은 300명이라고 한다면 9000여 명에게 ‘직접’ 홍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 회당 평균 관람객을 아주 적게 잡아 300명으로 봤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 오늘 마당극 <남명>을 보는 동안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기를 두드렸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흔히 문화산업, 관광산업을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한다. 사람을 불러 모으고 신나게 놀게 하거나 신중하게 감상하게 한다. 즐겁게 손뼉 치며 웃고 떠들게 한다. 직접 체험을 하게도 한다. 그래놓고 그와 관련한 상품을 내밀면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냥 주마간산으로 휘휘 둘러보고 돌아간 관광객은 머리에 남는 게 별로 없을 것이다. 마당극이나 뮤지컬이나 그림전시회 같은 걸 보고 돌아간 관광객은 머리에 남는 게 많아진다. 그것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게 산청군인 듯하다. 물론 이런 전략은 산청군에만 있는 게 아니다. 또한 마당극만 그런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산청군은 여러 가지 문화산업, 공연예술 가운데 마당극을 선택한 듯하다. 아, 동의보감촌에 가면 산청을 주제로 한 노래가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것으로 봐서 음악, 노래를 소재로 한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남사예담촌에서 국악공연을 주말마다 한다. 산청군은 오래전부터 이런 데 신경을 남다르게 많이 쓴 듯하다. 마당극 <허준>은 제8회 산청한방약초축제 공식지정마당극이었다. 2009년 경상남도 무대공연작품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013년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참가작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효자전>은 산청군 지원으로 제작했고 <남명>은 (재)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산청군에서 지원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이런 이야기는 세세히 다 옮기긴 힘들고, 극단 큰들 누리집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동의보감촌과 산청한방약초축제장, 생초국제조각공원에 여러 번 갔다. 지난해 올해 합하여 줄잡아 서른 번은 간 것 같다. 마당극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당극을 보고 있노라면 배우들, 스태프들과 안면을 익히게 된다. 나처럼 자주 마당극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도 알게 된다. 그런 관객들은 ‘팬’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나는 ‘팬’이다. 좀 극성스럽기도 하다. 그런 ‘팬’ 말고도 낯익은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된다. 처음엔 데면데면하다가 몇 번 더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통성명을 하게 되고, 어쩌다 그 사람이 안 나오면 찾기도 한다. 그런 사람 가운데 산청군청 공무원들이 있다.
공무원들은, 문화 관련 부서의 공무원으로 추측되는, 거의 매번 공연장에 나타난다. 와서는 단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리 없다. 공연할 때 어려운 점은 없는지,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는 건 없는지, 군청에서 도울 일은 없는지, 마당극마을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따위를 이야기하지 않을까 막연히 추측해 본다. 공무원들은 공연 장면을 사진으로 담는다. 배우도 찍고 객석도 찍는다. 공연할 때마다 그렇게 찍어서 윗사람들에게 시시콜콜 보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잘하고 있는지, 잘되고 있는지 보살피려 나왔다가 흔적 정도 남기는 것이겠지. 8월 16일 공연 때 관객들이 모기 따위 물것들 때문에 관람하는 데 방해받을까 봐 긴급방역반이 출동하여 주변을 한두 번 휩쓸어주고 갔다. 현장을 왔다갔다하는 공무원이 없으면 쉽사리 이뤄질 일이 아닐 것이다.
잔디마당 있겠다, 배우들 연기는 알아서 하겠다, 관객 모으는 것도 알아서 하겠다, 끝나면 정리 잘하고 돌아가겠다, 일년 동안 서로 합의하여 정해둔 날짜에 와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할 것이므로 공무원이 할 일은 사실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공무원은 나타난다. 관람하기 좋은 위치에 앉았다가도 관객이 많아 자리가 모자라다 싶으면 슬쩍 옆으로 물러난다. 다른 관객들 뒤쪽에 서서 끝날 때까지 보고 있다. 어떤 때는 오른쪽에 있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조명은 제대로 서 있는지 확인해 보기도 한다. 세심하고 조심성 있는 배려 덕분에 공연이 무사히 끝난다. 배우와 연출팀, 심지어 나 같은 단골 관객에게 커피를 사 줄 때도 있다. 그런 정성과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또 보러 간다. 애정 없는 사명감만으로는 절대 그런 행동이나 태도가 나올 수 없다.
마당극 <남명>을 보면서 번쩍 생각난 주제 하나를 오랫동안 붙들었다. 사실 이런 노력과 정성은 하동군도 만만찮다. 소설 ≪토지≫를 각색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하동군 평사리에서 토지문학제 10주년이던 2010년 9월 첫 공연을 올린 이후 현재까지 해마다 상설공연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마당극 <남명>을 하동군 공무원을 대상으로 공연한 적도 있다. 산청군과 하동군이 큰들의 마당극을 각각 대표적 관광지에서 공연하게 하는 것은, 대단한 결정이다. 공연을 이끌어가는 데 비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가량 마당극을 펼칠 마당을 만들어 주는 데는, 그만큼 홍보효과가 클 것이다. 대기업 하청업체 하나 유치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덕분일 것이다. 문화를 높이 치는 안목과 식견도 크게 기여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원대하고 치밀한 작전을 세워 빈틈없이 꾸준히 밀고 나가는 두 지자체에 경의를 표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결정하고 추진해온 분들에게 큰 손뼉 쳐 드리고 싶다.
하동군은 소설 ≪토지≫를 각색한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하동군 평사리에서, 토지문학제 10주년이던 2010년 9월 첫 공연을 올린 이후 현재까지 해마다 상설공연하고 있다.
산청 수선사는 참 좋은 절이다. 알고 있었지만 겨를이 없어 못 가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통 모르고 있던 사람도 많을 것이다. 누리소통망이나 어디에서 수선사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면 가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커질 것이다. 그래서 가게 된다. 내가 오늘 수선사로 간 것도 그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홍보란 이런 것이다. 광고란 이렇다. 마당극에서 산청의 여러 가지 관광상품을 한두 번 듣다 보면 가 보고 싶어지고 사고 싶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외국에서 들어온 연희ㆍ공연 양식이 아니라 우리 전통의 가락과 춤이 곁들여진 마당극이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도, 연세 지긋한 팔순 노인도 아무런 부담없이 편하게 앉아서 신나게 즐기다 보면, ‘아, 산청 참 좋네.’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눈길 끌어당기고 발길 붙드는, 이만한 관광ㆍ홍보 상품이 있을까 싶다. 마당극을 수십 번 보면서 내린 나만의 결론이다.
큰들 배우들은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찍는 사람이 “하나둘셋!”이라고 하면 “산청~!”이라고 외친다. 한번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시 “하나둘셋!”이라고 하면 “좋다~!”고 외친다. 공연 모습 또는 마지막 배우와의 촬영 등 사진을 찍어간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놀고 있는 누리소통망에다 사진을 올리고 해시태그를 달 것이다. ‘산청, 동의보감촌, 마당극, 큰들, 남명,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산청 곶감, 경호강 은어, 래프팅, 황매산 철쭉, 산청 좋다’ 같은 태그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2019. 8. 16.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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