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기다렸다. 2017년 6월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진주 큰들 창립 33주년 정기공연을 보았다. <오작교 아리랑>을 무대에 올렸다. 웃음과 즐거움, 흥분과 감동으로 얼룩졌다. 2018년 9월 창원 성산아트홀 대공연장에서 창원 큰들 창립 13주년 정기공연을 보았다.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했다. 진한 여운이 남았다. 그리고 1년 만인 6월 29일 오후 2시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진주 큰들 창립 35주년 정기공연을 보았다. 진주 공연은 2년 만이다.
정기공연을 하는 줄은 이미 알았다. 그러나 6월 29일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사이 누리소통망(SNS) 여기 저기에 소문을 냈다. 요사이 마당극 보러 몇번 같이 간 큰형님이 어머니 모시고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표를 샀다. 어머니는 경로당에서 자랑했다. 그랬더니 생초 국제조각공원과 동의보감촌에 함께 가셨던 친구분들이 따라나섰다. 어머니는 미리 현금 2만 원씩 받아놓고 표를 구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일행이 여덟 명이나 되었다.
6월 26~28일 제주에 출장을 갔다 왔다. 출장은 대개 늦은 술자리로 이어진다. 낮 동안은 꽤 괜찮은 데로 돌아다녔다. 금요일 돌아와서는 숙직 근무를 했다. 당직실을 지키다가 건물을 서너 바퀴 돌아다닌다. 각 사무실을 열고 들어가 보안점검부에 서명한다. 12시 30분 넘어 불편한 잠자리에 몸을 누인다. 아침 8시 30분에 교대할 직원이 나와서 집으로 왔다. 몸은 고단했다. 요기를 하고 잠시 눈 붙였다가 11시 40분 경남도문화예술회관으로 아내와 함께 간다. 12시부터 입장권을 좌석표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비는 많이 내렸다.
예술회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층 매표소로 갔더니 벌써 열대여섯 분이 줄을 서 있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 속에는 아는 사람이 있다. 이명기 씨가 보인다. 지난해 7월 군대 간 이명기 씨는 배우로 활약할 때보다 얼굴이 더 하얗다. 요즘 군대 좋은가 보다. 몸은 더 날렵하고 단단해 보인다. 체질인가 보다. 반갑게 손 맞잡고 껴안았다. 어깨에 손을 얹었는데 보기보다 더 단단하다. 이제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역할 것이다. 그는 군대보다 큰들이 체질에 맞다. 총검술이나 유격훈련보다 상모 돌리기가 더 체질에 맞다. 정기공연에 맞춰 휴가 나온 게 반갑다.
줄을 서 있자니 아는 분이 자꾸 온다. 아내가 아는 분도 온다. 공연을 기다리는 설렘이 가득한 표정이다. 표를 한두 장만 갖고 오는 사람은 없다. 대여섯 장에서 수십 장을 한번에 갖고 온다. 단체 관객을 대표하여 온 분이다. 12시 정각에 좌석표 배정이 시작됐다. 큰들 단원들과 가볍게 눈인사 나누었다. 예술회관 앞 칠암곰탕으로 갔다. 빗소리 들으며 먹는 곰탕은 맛났다. 한 그릇 잘 비웠다. 아내는, 어머니와 친구분들 모시러 가고 나는, 하염없이 예술회관 매표소 앞에 섰다. 큰들 대표, 예술감독, 기획실장 님들이 왔다 갔다 하며 손님을 챙긴다. 서로 나누는 인사에서 정겨움을 느낀다. 지인들이 저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나타난다. 대단한 만남의 광장이다.
관광버스가 들어온다. 어머니 또래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조심조심 내려온다. 목에 이름표를 걸었다. 젊은이들이 왔다 갔다 하며 어르신들을 챙긴다. 큰들 정기공연장에서 또는 상설공연장에서 흔히 보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런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큰들이라는 매개로 모이는 사람들의 마음씨와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멀어도 멀다 아니하고, 비 와도 괜찮다 하면서 손 잡고 웃으며 온다. 예술회관 주차장은 빗속에서도 차분하고 정연하고 나란했다.
어머니와 친구분들, 큰형과 형수님, 아내와 함께 출입구 앞에 섰다. 표를 검사했다. 큰들에서 준비한 안내책자를 하나씩 안겼다. 집에 가서 꼭 읽으시라고 했다. 드디어 1시 30분. 입장이 시작됐다. 큰들 단원과 130명 풍물놀이 참가자들과 예술회관 직원이 자리를 안내했다. B구역 15열 2번부터 9번까지 여덟 자리를 차지했다. 무대는 검은 천으로 가려졌다. 천장에 매달린 펼침막에는 ‘2019 진주큰들 35주년 정기공연’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그 아래엔 ‘위대한 스승, 다시 세상을 깨우다’라는 글과 ‘마당극 남명’이라는 글이 보인다. 그렇게 준비된 정기공연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렘, 기대, 떨림, 긴장, 흥분 들이었다.
어른들과 형님 등 가족을 자리에 안내한 뒤 나는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큰들 단원들이 바쁘게 오고가며 손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안내책자를 나눠주었다.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창구도 마련돼 있다. 짙은 초록빛깔 단체복을 입은 큰들 가족들 얼굴이 어느 때보다 밝고 환하다. 물론 공연을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마저 없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온 큰 공연을 드디어 펼치게 됐다는 자긍심과 자부심은 얼굴에 가득했다. 그들의 긍정의 에너지, 희망의 에너지, 긍지의 에너지가 내게로 마구 전해져 온다.
정기공연에서 주인으로 공연하는 작품으로는 <오작교 아리랑>이 제격이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웃길 때 웃고 울릴 때 울 수 있다. 남돌이 어머니와 꽃분이 어머니가 등장할 때 웃으며 손뼉 치지 아니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 그런데, 올해 정기공연 작품은 <남명>이다. <남명>은 2018년 10월 20일 처음 공연하여 현재까지 열 번도 채 공연하지 않았다. 그런데다 처음 공연한 작품에서 상당 부분을 바꾸었다고 한다.
<남명>은 “학문하는 선비들이 청렴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해야 백성이 평안해진다.”라고 설파한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의 일대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敬義思想)은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에서 온 말로 ‘안으로는 성찰, 밖으로는 실천’을 강조한 사상이다. 남명 조식 선생을 ‘실천유학자’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남명의 제자 수십 명이 남명 사후 20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가족과 생이별하고 전 재산을 내놓으면서 의병장으로 떨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은, 왜 남명을 실천유학자라고 부르는지 알려준다.
진주 큰들 정기공연으로 마당에 펼쳐놓은 마당극 <남명>은 지난해부터 올해 봄까지 공연하던 작품과는 완전히 달랐다.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마치 처음 창작하여 초연을 하는 듯했다. 처음부터 <남명>을 유심히 보아온 사람이라면 그 차이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고, 이날 공연에서 처음 <남명>을 본 사람은 72년을 살다 가신 경남지역 대표 유학자 남명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남명 조식 같은 유학자의 삶과 철학도 마당극 소재가 되고, 그 마당극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가 500년 전 한 위대한 인물에게서 배울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으로 명종 임금은 꼭두각시였다. 외척 윤원형을 비롯한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 옛 선현의 말대로 “백성은 물이다.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엎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하여 선비들이 죽임을 당한다(을사사화). 문정왕후는 “어디 감히 선비 나부랭이들이 임금이 하늘인데 감 놔라 배 놔라 한답니까?”라고 소리 치고 윤원형은 “맞습니다, 누님. 전하가 열두 살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맞장구친다. “그러니 동생이 외숙부로서 앞으로 전하를 잘 보필해 주세요”란다. “초반에 피맛을 제대로 보였으니 이제 조선은 전하의 뜻대로, 아니 누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윤원형이 권세를 누리며 온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게 되는 원인이다. 백성들의 삶을 살피거나 외적을 방비할 생각 같은 건 애당초 갖고 있지 않았던 시절이다.
사또는 한 해에도 몇 번씩 바뀐다. 한양의 높은 벼슬아치에게 뇌물을 바치고 사또 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백성들을 모아 놓고 신관사또 취임식을 하는 도중에 새 사또가 부임한다. 앞의 사또는 마을 한 바퀴 돌고 취임사 한 마디 하고는 내려간다. 이 사또는 관객 중 한 명이다. 얼떨결에 사또가 되어 허리말을 타고 무대를 한 바퀴 열심히 달린다. 그의 열연은 5분 만에 끝난다. ‘5분 사또’이다. 새로 부임한 사또는 마치 청렴한 듯 너스레를 떨지만 그의 본색은 여느 사또와 다를 바 없다. 한양에 있는 기와집을 세 채나 윤원형에게 바쳐 겨우 얻은 자리이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고혈을 짜낼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신 교묘하고도 노회하게, 즉 창조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그들의 입에서는 백성들의 고혈을 쪽쪽 짜내어 대궐의 대신들에게 쭉쭉 들어간다는 말이 나온다. “없는 사람들한테 돈을 쪽쪽 쪽쪽 뜯어내 갖고 윤원형 대감 밑으로 쭉쭉 쭉쭉 들어간다 안 카요?” 나쁜 놈들을 잡아가지만 그놈들은 병원으로 가도 휠체어를 타고 나온다고 비판한다. “부자놈들은 돈을 그리 해쳐 먹어도 잡히 가지도 않고 잡히 갔다 쿠모 또 아프네. 아파. 입원을 한다. 휠체어 타고 나온다.”라며 비판한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가진 자들의 비리와 횡포, 법망을 피해가는 재주는 똑같다는 말이다. ‘신발끈’, ‘조카십팔색깔크레파스’ 같은 신조 욕도 나온다. 백성들은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하지 않고는 견뎌낼 재간이 없던 것이다.
군대를 열세 번이나 가는 노인이 있다. 군대를 안 가려면(군역) 군포를 내야 하는데 그럴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 잘 만난 놈들은 한 번도 안 가는 군대를 열세 번이나 간다고? 삼대가 빌어 처먹을 새끼들!” 예나 지금이나 군대는 사달의 원인이 된다. 주막의 주모는 술과 밥만 파는 게 아니다. 나루터에서 배도 저어야 한다. ‘투 잡’을 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다. 주말에는 대리운전까지 뛴다. 처참해질 대로 처참해진 백성들은 “하늘하고 땅하고 팍 붙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한탄한다.
그런 세상에 남명이 있다. 남명이 배를 탔다. 다른 백성들도 많이 탔다. 배에는 여유가 없다. 그런데 윤원형 하인들이 나타나 시골 마을에서 뺏은 온갖 재물들을 배에 싣고 가겠다고 한다. 먼저 탔던 백성들은 눈치를 보며 배에서 내린다. 쫓겨난 것이다. 남명이 이 장면을 보고 일어섰다. “응당 차례를 기다려 뒷배를 타면 될 것이지. 지금 이게 무슨 횡포냐?”라며 점잖게 타이른다. 말대꾸하는 하인들에게 남명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라며 징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은 커진다. 윤원형의 위세를 등에 업고 거들먹거리며 “윤 대감을 모르느냐?”는 하인놈들에게 남명은 “돈에 눈이 멀어 짐승만도 못하게 되었다는 천하의 개 잡놈 윤원형 말이더냐!”라며 하인들이 배에 실은 물건들을 강물에 던져버린다. 이 일로 인해 죄없는 백성들이 붙잡혀 간다. 남명은 백성을 돕고자 한 행동으로 인해 오히려 백성들이 감옥으로 가게 되자 고민에 빠진다.
이 장면은 홍명희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에도 나온다. 다른 데에도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임꺽정> 제3권 양반편(권세)에는 윤원형의 온갖 잡스런 패악질과 행패가 묘사된다. 하인들이 남명에게 당한 일을 윤원형에게 일러바치지만 윤원형은 “조식이로구나. 내가 잘못 걸렸다. 아무 소리 마라. 그 자는 나도 꺼리는 자이다.”라며 꼬리를 내린다.
남명 조식이 단성 현감에 제수되었을 때 이를 거부하며 사직상소를 올리는데 그해가 을묘년이라 하여 ‘을묘사직소’라 하기도 하고, 산청군 단성현에서 올린 상소라 하여 ‘단성소’라고도 한다. 남명의 일대기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일화는 이 단성소와 윤원형 하인들을 회술레시킨 일이라고 한다. 명종 시절 활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의적을 다룬 소설 <임꺽정>에는 남명 이야기가 제법 길게 언급된다. 조선 3대 천재 홍명희가 어떤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짐작게 한다.
앞서 말한 ‘단성소’는 유명하다. “전하! 낮은 벼슬아치들은 아랫자리에서 히히덕거리며 술과 여색에 빠져 있고, 높은 벼슬아치들은 윗자리에서 빈둥빈둥거리며 뇌물을 받아들여 재산 긁어모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사직상소는 마당극 <남명>의 갈등구조가 절정에 다다른 대목에 나온다. 목숨을 걸고 쓴 남명 선생의 상소문으로 조선이 발칵 뒤집어진다. 조선 팔도에서 남명의 제자가 되기 위해 뜻있는 선비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남명은 제자들에게 묻는다. 제자들은 답한다. “너희들은 공부를 왜 하느냐?” “나를 알고 세상을 알기 위해 합니다.” “왜 알고자 하느냐?” “제대로 알아야 정의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느냐?” “그래야 백성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남명 정신의 핵심이다.
남명은 72살을 일기로 세상을 하직한다. 1572년이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20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남명의 제자들은 가족과 생이별하고 의병장이 된다. 의령 곽재우, 합천 정인홍, 고령 김면, 함양 조종도, 초계 전치원, 산청 오장, 단성 이유성, 진주 이정, 거창 문위 등이 등장한다. 무대 위쪽에는 이들 외에도 의병장이 된 남명 제자들 이름이 드리워진다. 국난의 위기에서 제 한 몸 돌보지 아니하고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떨쳐 일어선 남명의 제자들. 남명의 경의사상이 국난의 상황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 대목이다.
그들은 갓을 벗어던지고 칼을 들었다. 의병장들은 ‘경의’ 깃발을 앞세워 왜적과 맞서 싸운다. 그들이 적에 맞서 싸울 때 부르는 군가의 주제는 경의사상이다. “가세 가세! 우리들 일어나. 실천과 행동 스승님의 가르침 백성은 물이요 하늘이니 백성을 구하리라. 가세 가세! 우리들 일어나. 남명의 정신 스승님의 뜻 따라 험하고 어두운 이 세상을 우리가 밝히리라.” 힘찬 음악과 칼같은 군무 속에서 임진왜란 당시 구국의 일념으로 칼은 든 선비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힘들지 않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사실도 있다. 극단 큰들의 최샛별 배우가 마당극 <남명>에서 빠지고 배우 겸 의상 담당 하은희 씨가 등장했다. 그의 연기를 처음 보는 우리는 놀랐다. 분명 최 배우 목소리는 아니고, 그렇다고 딱 떠오르는 사람도 없다. 누굴까. 무대가 멀어서 잘 알 수 없었다. 몇 번 생각했다. 나중에 안내책자를 보고 알았다. 그의 연기는 한번도 본 적 없었는데, 정말 대단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곁에 앉은 아내도 깜짝 놀란 듯 “샛별 배우가 아닌가 본데...” 하다가 “연기 잘하네”라고 맺었다. 앞으로 마당극에서 자주 만나 뵙기를 기대, 고대한다.
마당극이 끝났다. 손뼉 소리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이어진 공연은 박병천류 진도북춤과 가수 백자의 노래 공연이었다. 그중 백자의 <꽃2>가 와닿는다. 맑고 투명한 가사가 가만히 가슴에 와닿는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인용했다고 한다. 누리집에서 찾아 여기에 가만히 옮겨 놓는다. “예뻐서가 아니다 / 잘나서가 아니다 /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 다만 너이기 때문에 / 네가 너이기 때문에 / 보고 싶은 것이고 / 사랑스런 것이고 / 안쓰러운 것이고 /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 박히는 것이다 /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 네가 너라는 사실 / 네가 너이기 때문에 /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 네가 너라는 사실 / 네가 너이기 때문에 /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 그렇게 있거라 /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진주 큰들 35주년 정기공연 마지막은 130명 풍물놀이이다. 해마다 대미를 장식해온 130명 풍물놀이다. 나는 이제 이 130명 풍물놀이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다. 지난해 창원 공연을 보고, 그 전해 진주 공연을 보고 느낀 감동을 중언부언 늘어놓은 바 있다. 올해는 그러하지 못하겠다. 이 벅참과 두근거림을 말로 표현하는 게 마뜩찮아서이다. 14분 남짓 이어진 풍물놀이의 장엄함과 웅장함을 글로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사고를 짜부라뜨리는 짓인지 알겠기 때문이다. 북, 징, 장구, 꽹과리 등 흔히 이르는 사물이 만들어내는 화음과 가락을 나는 도무지 설명하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다만, 석 달 동안 매주 두 번씩 모여 웃음과 기쁨과 즐거움으로 함께하였을 그 시간들을 충분히 보상받았기를 빌 뿐이다. 130명 시민들과 단원들과 일본 로온(勞音) 사물놀이 교실 ‘우리가락’ 회원들의 마음과 가슴에 잊히지 않을 추억이 예쁘게 자리 잡았기를 빌 뿐이다. 연습하는 동안 흘린 땀방울이 공연 마친 뒤 흘린 환희의 눈물로 되돌아와 내년을 기약하고 그다음 해를 기약하게 해줄 것을 빌 뿐이다. 모두모두 수고하셨다. 멋진 분들에게 경의의 손뼉을 쳐 드리고 싶다. 내년에도 130명 풍물놀이에 참가하려고 미리 신청서를 냈다는 분도 계신다.
비는 내렸다. 공연 마치고 화장실 잠시 들렀다 나오는 사이에 어머니와 친구분들은 벌써 바깥 계단을 내려가고 계신다. 그 빗속에 집까지 걸어가겠다고 우긴다. 친구 아이들에게 신세지기 싫다는 고운 심성들. 배우들과 단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으나 그럴 겨를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남명 역을 맡은 김상문 배우 손을 한번 꼭 쥐었다가 돌아섰다. 그 옆에 섰던 다른 배우들에게도 눈인사 손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큰형 차에 두 분, 내 차에 두 분씩 모시고 옥봉동으로 태워 드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주 큰들 35주년 정기공연을 맞이하는 내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공연인 6시에도 가고 싶었으나 역시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정기공연의 설렘과 감동은 그렇게 빗물과 함께 남강으로 흘러 들어가 큰들로 흘러갔다. 두 번 공연에 함께한 2645명의 관객들 마음도 빗소리처럼 남강물처럼 큰들처럼 내리고 흐르고 모여서 그래서 되살아났을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큰들에서 나눠준 안내책자를 꼼꼼히 넘겨 보았다. 아, 세상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큰들과 함께하고 있다니. 놀랍고 놀랍다. 반갑고 반갑다. 나보다 더 큰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고맙고 고맙다. 즐겁고 즐겁다. 큰들은 우리것을 사랑하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구마구 끌어들이는 자석 같다. 지구에 중력이 있듯이 큰들에도 중력이 작용하는 것 같다. 2000명에 가까운 후원회원 분들, 이번 정기공연에 도움 주신 특별후원회원 분들, 130명 풍물놀이에 참가한 개인과 가족들, 해외에서 오신 분들, 온나라에서 큰들 공연을 불러주시는 분들, 축하공연 하러 멀리서 오신 분들... 이 모든 게 가능한 것은 오로지 그곳이 큰들인 덕분. 멋지고 훌륭하고 상냥하고 친절하고 그리고 진정성을 다하는 큰들이므로...
극단 큰들의 마당극은 여름에도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계속된다. 7월 6일(토) 저녁 7시에는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한다. 7월 19일(금) 20일(토) 저녁 7시에는 <남명>을 공연한다. 7월 26일(금) 27일(토) 저녁 7시에는 <효자전>을 공연한다. 7월 한 달 동안 동의보감촌에 가면 큰들의 마당극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미리 행복하다.
2019. 6. 30.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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