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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세종 나신 날’에 돌아본 우리말, 우리글

by 이우기, yiwoogi 2019. 5. 24.





경상대신문 원고

 

세종 나신 날에 돌아본 우리말, 우리글

 

이우기 홍보실장

 

우리 겨레에게 가장 높은 스승은 세종대왕이다. 515일이 스승의 날인 것은, 세종대왕이 태어난 1397(태조 6) 4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 이 날이기 때문이다. 온 겨레가 세종대왕을 우르르는 것은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훈민정음(한글) 창제를 으뜸으로 친다. 그러기에 해마다 109일 한글날이 되면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함을 찬양한다. 한글은 우리말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를 발음에 가장 가깝게 적을 수 있는 문자이다. 세종대왕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려운 중국글자를 쓰다가 지금은 미국글자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말과 우리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른다.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우리말, 우리글을 아끼고 가꾸자고 오래전부터 목소리를 높였고 메아리도 넓게 번져갔다. 우리말과 글에는 우리 겨레의 얼이 담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어는 의사전달 도구일 뿐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었던 것 같다. 의사전달만 되면 그 말이 우리말이어야 할 까닭도 없고 그 문자가 굳이 한글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언론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실은 한심하다 못해 끔찍한데도 대부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신문들은 거의 한자를 쓰지 않는다. 몇몇 신문은 아직 제목에서 한자를 쓰고 본문에서 묶음표 안에 나란히 적기는 하지만 이제 거의 쫓겨난 듯하다. 그런데 한자가 비켜난 자리를 영어가 차지하고 들어앉았다. 서울에서 나오는 종합일간지의 간지 이름은 ‘Sports’, ‘Business’라고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돼 버렸다. 기사 제목이나 본문에서 영어는 없어서는 안될 양념처럼 보인다. 예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DJ’라고 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YS’라고 하던 버릇도 요즘 되살아나고 있다. 신문들은 자기가 어떤 사건이나 사물, 사람의 이름을 정하면 그것이 곧 법인 줄 안다. 특히 일반 국민들이 잘 모르는 영어를 아무렇게나 갖다 쓰는 걸 무슨 벼슬인 줄 안다.

방송들은 우리말과 글을 왜 아끼고 가꿔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한국방송공사 텔레비전에서는 월요일마다 우리말 겨루기를 방송하고 라디오에선 매일 아침 바른 우리말 사용에 대해 방송한다. 한쪽에선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말 파괴에 앞장선다. 프로그램 제목부터 요상하다. ‘아침 뉴스타임’, ‘코딩 TV 플러스’, ‘파워 매거진’, ‘마이 리틀 텔레비전’, ‘풋볼 매거진 골’, ‘뉴스 브리핑같은 게 아주 많다. 한 방송사의 뉴스에는 작은 제목들이 죄다 영어다. ‘앵커 브리핑’, ‘팩트 체크’, ‘비하인드 뉴스라는 말이 화면으로 튀어나온다. 지상파 방송과 제법 유명한 종합편성채널이 이 정도이고, 나머지는 보나마나이다. 특히 오락 프로그램들은 보기 민망하다. 특정 계층에서만 쓰는 유행어를 마구잡이로 갖다 쓰는가 하면 영어 자막도 거리낌없이 쓴다.

국제화 시대다. 우리말과 글만으로 생활할 수 없다. ‘외국어라도 쓸 수밖에 없고 쓰다 보면 외래어가 된다. 외래어라는 인식이 줄어들면 그냥 우리말이 된다. 이런 과정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필요없는 외국어를 아무렇게나 가져다 쓰면 곤란하다. 특히 신문, 방송은 국민들의 말글살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만큼 더욱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글날마다 한글의 우수함을 찬양하는 언론들이라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한글이 얼마나 뛰어난 문자인지 안다면, 그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 세종대왕이라는 것을 안다면 515일을 더욱 기리고 빛내야 하지 않을까. 세종 나신 날을 지나며 우리 언론의 말글 씀씀이를 보노라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