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날씨 알림을 보니 온 나라에 폭염주의보가 내린다고 한다.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건 견디기 힘들다. 이런 날씨에도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 든 어른이 밭에서 일하다가 쓰러지는 일도 일어난다. 그들의 고통이 전해 온다. 아무리 더워도 바깥으로 놀러 나가는 사람도 많다. 뜨거움을 오히려 즐기는 그들의 삶이 부럽다. 휴가는 모두에게 골고루 필요하다.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곳곳에서 머리를 짜낸다. 도심에 물놀이장을 만든다. 아이들이 뛰어논다. 그런 일에 쓰는 세금은 전혀 아깝지 않다. 공원에는 분수대를 만든다. 물이 아래에서 솟아오르는가 하면 갑자기 위에서도 떨어지는 것 같다.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이 듣기만 해도 시원하다.
강가에서는 음악 연주회가 열린다. 지방정부가 지원하고 지역 방송국이 주선하여 가수를 불러 모은다. 서울에서 노는 가수도 오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도 온다.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다 보면 시원한 강바람에 스며드는 가락이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한다. 더위에 이기도록 하기 위해,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애 쓰는 덕분에 그럭저럭 여름을 견딘다.
‘쿨링포그’(Cooling Fog)라는 낯선 물건이 등장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폭염 대비용 ‘쿨링포그’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쿨링포그는 야외 냉방 장치로, 안개가 공기 중에서 증발할 때 주위의 열을 빼앗는 원리를 활용한다. 분무기보다 훨씬 작은 약 2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입자가 분사되는 모습에서 보기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어 온 나라 곳곳의 야외 시설에 점차 도입되는 추세라고 한다. 전주 한옥마을에도, 정선 아리랑시장 입구에도, 수원 수원천 옆에도, 양주시 회암사지 공원에도 설치했거나 할 예정이다.
이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친환경 요소 때문이라고 한다. 에어컨과는 달리 열을 내뿜지 않고 온도를 낮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돗물을 음용수용 정수 거르개(필터)에 걸러 분무하기 때문에 인체에 닿아도 아무런 해가 없단다. 참 잘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이 희한하고 기발한 물건을 굳이 ‘쿨링포그’라고 할 건 뭔가. 어린 아이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들까지 누구나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이 멋진 물건 이름을 영어로 붙일 건 무엇이란 말인가. 이 물건이 올해 처음 생겼는지 아니면 지난해부터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온 나라에 널리 퍼져나가는 이때 이름을 잘 지어놓으면 영원히 멋진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수원천에 이 물건을 설치했다는 기사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저는 이것을 보고 안개분수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여름에 이보다 시원한 것이 있겠어요. 우리 지동교와 수원천, 그리고 팔달구청 앞인 매향교 인근에 설치했다고 하는데 안개처럼 피어나는 물보라가 올 여름 더위를 식혀줄 수 있을 것 같아요.”(이 수원 뉴스)
실제 시민이 이렇게 말했는지, 관공서의 보도자료에 이렇게 씌었던지, 기자가 좀 창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른바 쿨링포그라고 하는 이 물건을 ‘안개분수’라고 하니 꼭 알맞은 이름 같다. 자욱한 안개 같은 물 알갱이가 위에서 내려오는 듯, 옆에서 번져오는 듯,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듯 주변을 자욱하게 한다. 그 속에 들어가면 신기한 시원함과 신비로운 환상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 같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쿨링포그에 대해 ‘주변 온도를 낮추기 위하여 안개 형태로 분사되는 물. 또는 그런 장치.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제 막 생겨난 이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한 듯하다. 좀 서둘러 주고, 새로 정한 이름을 온 나라 지방정부와 이 물건을 만드는 회사 같은 곳에 얼른 퍼뜨려서 멋진 우리말 이름을 갖도록 해주면 고맙겠다. 그 새 이름이 ‘안개 분수’이면 좋겠다. ‘안개 분무’, ‘인공 안개’, ‘안개 바람’, ‘얼음 바람’이라고도 함 직하다.
창 밖에 매미 노랫소리가 가득하다. 내리쬐는 햇볕이 만만찮다. 흰 구름이 가끔 떠다니고는 있지만 열기를 가려주지는 못한다. 저 흰 구름이 ‘안개분수’처럼 온 땅과 공기를 좀 식혀주면 좋겠다. 며칠 넘기면 입추이고 조금 더 참으면 처서라 하니 그럭저럭 견뎌나 볼까.
2019. 7. 30.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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