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에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가 있다. 임권택 영화 박물관이 있고 소향시어터신한카드홀도 있다. ‘소향’은 이 대학 이사장의 아호이다. 2개 단과대학 학생들이 여기서 공부를 한다. 맵시와 규모를 제대로 갖춘 멋진 건물이다. 이 건물을 돋보이게 하는 건 피노키오상이다. 이사장이 미국에서 몇 억 원을 주고 사왔다고 한다.
피노키오. 1883년 이탈리아 동화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쓴 <피노키오의 모험>에 등장하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목수 제페토가 나무를 깎아 만든 인형을 피노키오라 이름 붙였다. 요정이 마법을 부려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피노키오는 거짓이 없는 순수한 동심, 착하고 순진한 어린이의 마음 따위를 상징하게 됐다.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앞 피노키오는 동화 속 주인공이 아니다. 어른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큰 키다. 너무 키가 커서 얼굴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바라보고 있다. 그 앞을 지나는 어른들에게 “당신은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묻는 듯하다. “나를 보세요. 거짓말하지 않고 순진무구했던 당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피노키오 앞에서 잠시 동안 어릴 적으로 돌아갔다. 시골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의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나중에 커서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몰랐다. 그저 타잔놀이가 재미있었고 얼음판에서 타는 ‘쓰케토’가 재미있었다. 대나무 베어 활을 만들고 살대를 쪄 화살은 만든 뒤 토끼, 노루를 잡을 것이라고 야산을 뛰어다니던 철딱서니 없던 시절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몰라서 좋았고 알고 싶지 않았기에 두렵지 않았던 시절이다. 피노키오 앞에서 현기증을 느꼈다.
2019. 6. 6.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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