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큰들의 새 마당극 <남명>은 2018년 10월 20일 제42회 남명선비문화축제 기간에 산청군 시천면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처음 공연했다. 11월 11일 동의보감촌에서 다시 공연한 뒤 연말연시에 몇 차례 더 공연했다. <남명>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실천유학자로 추앙받는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과 일생을 극화한 것이다. ‘성리학’이라는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의 세계와 지조와 절개, 그리고 실천으로 점철된 남명의 삶을 마당극이라는 형식에 맞춰 매우 잘 풀어낸 수작이다.
2월 설날을 앞두고 하동군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공연한 뒤 한동안 소식이 없던 <남명>이 산청 동의보감촌 상설공연작품으로 돌아왔다. 6월 1일과 2일, 6회와 7회 공연을 잇따라 열고 7월 19일(금), 20일(토) 저녁 7시, 8월 16일(금), 17일(토) 저녁 7시에 각각 공연할 예정이다. 그 사이 6월 29일에는 진주 큰들 창립 35주년 기념 정기공연을 오후 2시와 6시 두 차례 공연하는데 올해 공연작품은 <남명>이다. 남명 선생의 가르침을 현대감각에 맞게 되살려낸 빼어난 작품 <남명>을 앞으로 5번 더 볼 기회가 주어져 있다, 최소한.
토요일 아침은 거의 심한 두통과 복통으로 시작한다. 불금을 놓치지 않은 덕분이다. 목요일부터 시작한 술이었으니 토요일이 개운할 리 없다. 큰형과 한 약속을 잊지 않은 건 다행이다. 아버지 산소 옆 대밭에 죽순 꺾으러 가기로 했다. 해가 뜨면 더우니까 새벽 일찍 서두르기로 했다. 5시 50분에 눈은 떴으나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낫과 호미 따위 연장을 챙겼다. 아버지 앞에 따를 소주도 넣었다. 모자 쓰고 안경 쓰고 길을 나섰다. 아침밥은 수정김밥에서 살 요량이었다. 7시에 큰형과 만나 산소로 향했다. 시내에선 보이지 않던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미천면 반지로 향하는 마음은 늘 숙연하고 죄송하고 그러면서도 그립다.
이슬이 채 떨어지지 않은 풀들 사이를 지났다. 바짓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었다. 풀씨들 덕분에 검정색 신발은 색깔이 달라져 버렸다. 아버지 앞에 절 두 번 하고 대밭으로 향했다. 죽순은 해걸이를 한다. 한 해는 무척 많이 수확할 수 있고 그다음 해에는 허탕치기 일쑤다. 올해는 과연 어떨까. 잔뜩 기대를 안고 대밭에 이르렀으나 웬걸, 죽순은 하나도 없다. 누가 베어간 게 아니라 아예 나지 않았다. 봄비가 제법 왔는데, 지금 시장에 가면 죽순이 엄청 나와 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할 수 없다. 산소 주변에 잡초만 좀 뽑아주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큰형은 별일도 없고 하니 산청에 같이 가자고 한다. 큰형은 내 ‘카카오스토리’를 통하여 마당극 공연일정을 챙겨 보신다.
11시 30분 큰형 차를 타고 출발했다. 동행이 없으면 혼자라도 곧잘 가는 길이고 누군가 함께한다면 더욱 즐거운 여행이다. 진주에서 산청 동의보감촌까지는 대략 30~40분 정도 걸린다. 12시쯤 동의보감촌을 지나 ‘주암식당’으로 간다. 지난 번에 큰형과 이 식당에서 메기매운탕을 먹었는데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식당에 정형상 형님과 처음 간 이후로 단골이 되었다. 오늘은 어탕국수를 먹었다. 임천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우려낸 국물은 시원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키운 고춧가루 덕분인지 뒷맛은 칼칼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국수 한 그릇 비웠다. 반찬이랬자 나물 하나, 열무김치와 깍두기가 전부였는데도 한 상 제대로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처음 들어갔을 땐 우리 둘뿐이었는데 그새 수많은 손님이 들어찼다. 음식 날라주는 사람이 우리가 먹을 국수를 딴 사람에게 먼저 줘버리는 실수를 할 정도였다. 우리는 웃었다. 막걸리가 있었으므로.
동의보감촌에는 유월 오후의 햇살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마당극 공연을 할 무대는 잘 갖추어져 있었다. 관객이 앉을 자리엔 차양을 치고 의자를 줄지어 세워 놓았다. 보통 마당을 지키고 있던 극단 가족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동의보감촌 대장간 쪽으로 가다 보니 무대 뒤편에서 남명 역을 할 김상문 배우가 보인다. 가볍게 손인사를 나누었다. 몸과 손으로는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머릿속으로 한창 대본을 외우고 있을 터여서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공연 전에 마당 주변을 배회하다가 배우를 만나더라도 길게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그냥 “오늘도 공연 잘하세요”라거나 “안녕하세요?”라고만 한다. 이런저런 말을 걸면 그들의 머릿속 회로가 엉켜버릴까 봐서 그렇다. 몇 마디 인사 나눈다고 그럴 배우들이 아니겠지만, 그냥 그렇게 한다.
<남명>은 거의 넉 달 만에 공연하는 셈이다. 소문에 따르면 그동안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고 한다. 몇 차례 공연하는 동안 여러 곳에서 이러저러하게 지적하였을 것이고, 그중 받아들일 만한 부분을 수정한 것이겠다. 원래 스스로 변화 발전하는 데 천재라고 할 극단 큰들이므로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웬만한 오류는 잡아내고 오류가 아니라도 더 재미있고 내용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업데이트’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5회 공연까지가 첫 번째 판본이라고 하면 오늘 공연은 두 번째 판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문에 따르면 남명 역을 맡은 김상문 배우는 좀더 남명처럼 보이기 위해 최근 살을 10kg 뺐다고 했다. 6월 29일 정기공연 때는 더욱 많이 바뀐 <남명>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볼 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는 마당극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마음은 노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극 전체를 이끌고 가는 이야기꾼인 돌이는, 원래 충청도 사투리를 썼는데 오늘은 경상도 말을 쓴다. 첫 시작부터 신선하다. 굳이 경상도 말이어야 할 까닭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다른 배우들의 대사와 궁합을 맞춘 듯하다. 남명에게서 글을 배우는 유생들이 경의사상을 설명할 때 “내명자경 외단자의!”를 구체적으로 한번 더 외쳐준다. 남명이 떡과 술을 갖고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는 “산청 약초로 만든 술과 떡일세”라고 한다. 전에는 없던 대사이다. 남명과 돌이의 승강이도 더 보충됐다. “군자지대로행”이라던 대사와 “몰카네. 몰카!” 하던 대사는 빠졌다. 이 외에도 곳곳에 대사가 바뀌거나 더해지거나 빠졌다. 그렇지만 마당극 <남명>을 보는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대사가 바뀌었는지 하나하나 헤아려 볼 까닭은 전혀 없다. 그냥 그날 자신이 보는 마당극이 원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화 필름처럼 원본이 있고 감독판이 있고 고친판이 있고,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것이다.
사실 잘은 모르지만, 요즘 절찬리에 공연 중인 <오작교 아리랑>이나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 들도 10여 년씩 공연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대사가 바뀌고 배역이 바뀌고 했을 것이다. 여러 차례 구경 가는 나로서는 그런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다. 한 번 만든 작품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고쳐 나가고 주제를 더 잘 드러내는 방법으로 개작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하자면 관객들의 반응을 눈여겨 보는 것은 필수이고,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 과정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객에 대한 배려의 정신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하나하나 다 설명하지 않을 것이고, 설명한다 한들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오늘 나는 대사와 배우들의 몸짓이 조금씩 변화, 발전한 것을 보고 ‘역시! 큰들’이라고 느꼈다.
산청군청 공무원이 나와서 남사 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벌어지는 국악공연에 대해 홍보한다. 이름하여 ‘토요상설공연 해설이 있는 기산이야기-治癒樂(치유악) 힐링콘서트’이다. 기산국악제전위원회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가 후원하는 이 공연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의보감촌에서는 마당극이, 남사 예담촌에서는 국악 공연이 주말마다 열리는 셈이다. 문화를 사랑하고 특히 우리것을 아끼고 보전하려는 산청군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두 곳 모두 성공적인 공연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나가길 기원드린다.
공연이 끝났다. 손뼉과 함성이 쏟아졌다. 남명 조식 선생의 사상에 대해 알고 있던 분들은 ‘그 어려운 경의사상을 이렇게 쉽고도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느꼈을 것이고, 남명에 대해 잘 모르던 분들은 ‘우리 역사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었다니? 지금부터라도 좀 배워야겠다.’라고 느꼈을 것이고, 그 외 다른 분들도 ‘마당극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연희양식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들 중 몇몇 분은 다음 공연 일정을 찾아 스마트폰 일정표에 적어넣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동의보감촌 잔디마당 옆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시원한 깡통커피를 몇 개 샀다. 고생한 배우들에게 드리기 위해서이다. 큰형이 계산했다. 큰형은 지난해 5월에 어머니와 함께 <오작교 아리랑>을 보셨고, 올해 나와 함께 <효자전>을 보셨고, 역시 올해 비오는 날 동의보감촌 주제관 실내에서 친구분들과 함께 <오작교 아리랑>을 보셨고, 드디어 오늘 <남명>을 보신 것이다. 하동에서 하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만 남았다. 틈만 나면 나에게 “6월 29일 열리는 정기공연 표는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형수님과 함께 어머니 모시고 갈 것이라고 벌써 기대감에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신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라 주마다 토, 일요일은 쉰다. 국사봉도 가고 자전거도 타고 집안 청소도 하고 본가에도 들른다. 그러다가 마당극의 재미를 알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기회 되면 언제든 모시고 가야겠다.
큰형과 함께 본가로 직행했다. 어머니는 “냉장고에 돼지고기도 있고 오리고기도 있다. 언제 와서 먹을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셨다. 누구든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으니 여럿 모이라는 뜻이었다. 큰형과 나는 목욕 가신 어머니 기다리는 동안에 어머니 못 드시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어버렸다. 소맥도 몇 잔 했다. 이윽고 돌아오신 어머니와 일 마치고 오신 형수님께 드릴 오리를 내가 장만했다. 이것저것 넣고 지지고 볶고 했다. 눈으로는 맛있게 보였지만 실제로는 맛이 별로였다. 그래도 상추쌈에 밥 놓고 그 위에 오리 고기 얹고 매운 고추와 마늘 얹어 한쌈씩 싸 드시는 어머니를 뵈니 참 다행이고 행복하다 싶었다.
토요일이 다 갔다. 아프던 머리도 말짱해졌고 부글거리던 뱃속도 가라앉았다. 아내의 출장을 틈타 내일 먹을 어묵 볶음과 김치찌개를 미리 만들었다. 보리차를 끓이고 밥을 안쳤다. 내일은 이른 아침을 먹고 동의보감촌 뒤 왕산을 오를 것이다. <효자전>에서, 무덤에서 나온 귀신이 터가 좋은 왕산으로 이장해 갔으니, 어쩌면 귀신 여럿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리와 허리 힘이 받쳐주면 정상을 밟을 것이고 기운이 빠지면 중도에 돌아내려올 것이다. 이렇게 한들 저렇게 한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나만의 일요일이니까.
2019. 6. 1.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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